애써 깨달은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으리라

전에 듣지 못한 게송이 떠오르며 탐욕과 성냄에 사로잡힌 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때 초자연적인 영감에서 온 것이 아니며 전에 들어 본 적도 없는 이 게송들이 세존께 떠올랐다. “애써서 내가 깨달은 것을 이제 드러낼 필요가 없으리라. 탐욕과 성냄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 가르침을 잘 깨닫지 못하리라.”

Apissu bhagavantaṁ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Kicchena me adhigataṁ, halaṁ dāni pakāsituṁ; Rāgadosaparetehi, nāyaṁ dhammo susambudho.

상윳따 니까야 SN 6.1 범천의 청원경 (Brahmāyācanasutta)

배경

서술자는 이 게송들이 초자연적인 영감에서 온 것이 아니며 전에 들은 적도 없었다는 두 부정적 한정을 붙인 뒤 세존께 떠올랐다고 밝히고, 생각의 화자를 세존의 1인칭으로 옮깁니다. 첫 두 행은 애써 깨달은 것을 이제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음 두 행은 탐욕과 성냄에 사로잡힌 이들이 이 가르침을 잘 깨닫지 못하리라는 부정으로 그 이유를 압축합니다. 앞 카드의 긴 조건적 숙고가 게송의 짧은 대비로 다시 표현된 대목이며, 게송은 다음 카드까지 이어집니다.

묵상

“애써 깨달은 것”과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두 구절을 나란히 둘 때 어떤 긴장이 느껴지나요? 자신의 노력이나 이해를 재단할 필요는 없어요. 짧은 게송이 앞선 망설임을 어떻게 압축하는지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