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칼리 고살라의 주장

막칼리 고살라의 주장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한때 막칼리 고살라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고살라 존자여, 여러 직업인이 … 고살라 존자여,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Ekamidāhaṁ, bhante, samayaṁ yena makkhali gosāl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makkhalinā gosālena saddhiṁ sammodiṁ.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o kho ahaṁ, bhante, makkhaliṁ gosālaṁ etadavocaṁ: ‘yathā nu kho imāni, bho gosāla, puthusippāyatanāni …pe… sakkā nu kho, bho gosāl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뿌라나와의 방문 보고를 마친 왕이 두 번째인 막칼리 고살라에게 갔던 일을 시작합니다. 인사·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착석을 거쳐 `bho gosāla`를 두 번 쓰며 직업의 결실과 수행 생활의 현세적 결실을 묻습니다. 원문의 `…pe…` 한 곳은 뿌라나에게 이미 온전히 제시한 직업 목록과 그 결실의 정형을 줄인 것으로, 편집자가 임의로 내용을 덜어 낸 표지가 아닙니다. 같은 질문을 유지해야 여섯 답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묵상

왕은 막칼리에게도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같은 질문을 유지해요. 여러 사람의 답을 비교하려면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어야 할 질문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막칼리 고살라는 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존재가 오염되거나 깨끗해지는 원인과 조건은 없습니다. 원인 없이 오염되고 원인 없이 깨끗해집니다. 자신이나 남이나 사람이 하는 행위도 없고, 힘·정진·사람의 기력·분투도 없습니다.’”

Evaṁ vutte, bhante, makkhali gosālo maṁ etadavoca: ‘natthi, mahārāja,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ṁ saṅkilesāya, ahetū a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ṁ visuddhiyā, ahetū apaccayā sattā visujjhanti. Natthi attakāre, natthi parakāre, natthi purisakāre, natthi balaṁ, natthi vīriyaṁ, natthi purisathāmo, natthi purisaparakkam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의 질문에 막칼리 고살라가 존재의 오염과 정화에 원인이나 행위 능력이 없다고 답하기 시작합니다. `natthi hetu natthi paccayo`가 오염과 정화에 각각 반복되고, 원인도 조건도 없이 오염되고 깨끗해진다고 합니다. 이어 자신의 행위·남의 행위·사람의 행위를 부정하고, 힘·정진·사람의 기력·분투도 `natthi`로 모두 부정합니다. 이는 왕이 인용한 막칼리의 결정론이며 부처님이 노력의 무용함을 가르친 말이 아닙니다.

묵상

“원인과 조건은 없습니다”라는 말은 막칼리 고살라의 답으로 인용되고 있어요. 이 문장을 내 노력에 대한 판정으로 옮기지 않고, 누가 어떤 질문에 이렇게 답했는지만 먼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모든 존재와 생명과 영혼은 통제력도 힘도 정진도 없으며, 운명·상황·본성에 따라 변하여 여섯 태어남의 부류에서 행복과 괴로움을 경험합니다.’”

Sabbe sattā sabbe pāṇā sabbe bhūtā sabbe jīvā avasā abalā avīriyā niyatisaṅgatibhāvapariṇatā chasvevābhijātīsu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 고살라의 결정론을 왕이 보고하는 가운데, 존재의 행위 능력을 부정하는 핵심 문장입니다. `sabbe`가 네 번 반복되어 존재들(`sattā`), 생명들(`pāṇā`), 생겨난 것들(`bhūtā`), 살아 있는 것들(`jīvā`)을 각각 포괄하고, 통제력·힘·정진이 없다는 세 부정 뒤에 운명·상황·본성 및 여섯 태어남의 부류가 이어집니다. 이 견해는 막칼리의 답으로 인용되며 부처님이 무기력을 권한 말이 아닙니다.

묵상

“모든 존재와 생명과 생겨난 것과 살아 있는 것은 통제력도 힘도 정진도 없다”는 말은 막칼리 고살라의 주장으로 소개돼요. 이 문장을 내 상태에 대한 판정으로 삼지 않고, 지금 누구의 견해가 인용되는지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주요 태 140만·6천·600, 행위 500·5·3, 온전한 행위와 반쪽 행위, 수행 길 62·중간 겁 62·태어남 6·인간 단계 8이 있다. 아지와까·유행자·용의 처소 각 4,900, 감각 기능은 2천, 지옥은 3천, 먼지 영역은 36이다. 인식 있는 태·인식 없는 태·매듭 없는 태·신·인간·귀신은 각 7, 흐름은 7, 버려진 삶·추락·꿈은 각각 7과 700이다.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는 840만 대겁을 윤회한 뒤 괴로움을 끝낸다.”

Cuddasa kho panimāni yonipamukhasatasahassāni saṭṭhi ca satāni cha ca satāni pañca ca kammuno satāni pañca ca kammāni tīṇi ca kammāni kamme ca aḍḍhakamme ca dvaṭṭhipaṭipadā dvaṭṭhantarakappā chaḷābhijātiyo aṭṭha purisabhūmiyo ekūnapaññāsa ājīvakasate ekūnapaññāsa paribbājakasate ekūnapaññāsa nāgāvāsasate vīse indriyasate tiṁse nirayasate chattiṁsa rajodhātuyo satta saññīgabbhā satta asaññīgabbhā satta nigaṇṭhigabbhā satta devā satta mānusā satta pisācā satta sarā satta pavuṭā satta pavuṭasatāni satta papātā satta papātasatāni satta supinā satta supinasatāni cullāsīti mahākappino satasahassāni, yāni bāle ca paṇḍite ca sandhāvitvā saṁsaritvā dukkhassantaṁ kariss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의 결정론이 세계와 윤회의 고정된 구성을 매우 긴 수 목록으로 제시하는 대목입니다. 주요 태 140만·6천·600, 행위 500·5·3, 수행 길과 중간 겁 각 62, 태어남 6, 인간 단계 8을 든 뒤 여러 무리와 감각·지옥·먼지 영역, 각 7과 700의 항목을 열거합니다. 마지막의 840만 대겁은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모두 정해진 윤회를 거친 뒤 괴로움을 끝낸다는 주장에 연결됩니다. 수량은 막칼리의 교설을 보고하는 것이지 부처님의 우주론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묵상

이 카드의 긴 숫자 목록은 끝에서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는 840만 대겁을 윤회한 뒤 괴로움을 끝낸다”는 막칼리의 주장으로 모여요. 내 삶에 적용하기보다, 수량이 어느 화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계율·서원·고행·청정한 삶으로 익지 않은 행위를 익게 하거나 익은 행위를 거듭 겪어 없앤다는 일은 없습니다. 행복과 괴로움은 정해진 양이고 윤회에는 끝이 있으므로 줄거나 늘지 않고 높아지거나 낮아지지도 않습니다.’”

Tattha natthi “imināhaṁ sīlena vā vatena vā tapena vā brahmacariyena vā aparipakkaṁ vā kammaṁ paripācessāmi, paripakkaṁ vā kammaṁ phussa phussa byantiṁ karissāmī”ti hevaṁ natthi. Doṇamite sukhadukkhe pariyantakate saṁsāre, natthi hāyanavaḍḍhane, natthi ukkaṁsāvakaṁse.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가 고정된 윤회 수량을 제시한 뒤, 수행으로 그 과정을 앞당기거나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계율·서원·고행·청정한 삶 네 가지로 익지 않은 행위를 익게 하거나 익은 행위를 거듭 겪어 없앤다는 일이 `natthi`라고 합니다. 행복과 괴로움은 정해진 양이고 윤회에도 끝이 정해져 있어 감소와 증가, 높아짐과 낮아짐이 없다는 네 부정이 이어집니다. 이는 막칼리의 주장이지 수행이 변화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부처님의 지침이 아닙니다.

묵상

“계율·서원·고행·청정한 삶으로 … 한다는 일은 없습니다”는 막칼리 고살라의 부정으로 인용돼요. 이 말을 현재의 가능성에 대한 결론으로 삼지 않고, 주장과 보고의 층위를 나눌 수 있나요?

“‘실뭉치를 던지면 풀리면서 굴러가듯,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는 윤회한 뒤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이시여, 막칼리 고살라는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윤회를 통한 정화를 답했습니다.”

Seyyathāpi nāma suttaguḷe khitte nibbeṭhiyamānameva paleti; evameva bāle ca paṇḍite ca sandhāvitvā saṁsaritvā dukkhassantaṁ karissantī’ti. Itthaṁ kho me, bhante, makkhali gosāl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saṁsārasuddhiṁ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 고살라의 답을 실뭉치 비유로 마치고, 왕이 그 답의 성격을 이름 붙이는 대목입니다. 던진 실뭉치가 풀리며 굴러가듯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정해진 윤회를 거친 뒤 괴로움을 끝낸다고 합니다. 이어 왕은 `saṁsārasuddhiṁ byākāsi`, 곧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윤회를 통한 정화를 답했다고 평가합니다. 비유가 막칼리의 결정론에 속한다는 점과 왕의 평가를 함께 두어 부처님의 답과 섞이지 않게 합니다.

묵상

왕은 막칼리의 말을 전한 뒤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윤회를 통한 정화를 답했습니다”라고 질문과 답을 나란히 놓아요. 긴 비유 뒤에도 원래 질문에 답했는지 확인하려면 무엇을 비교해야 하나요?

“세존이시여, 그것은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음과 답이 달랐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막칼리 고살라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ṁ vā puṭṭho labujaṁ byākareyya, labujaṁ vā puṭṭho ambaṁ byākareyya; evameva kho me, bhante, makkhali gosāl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saṁsārasuddhiṁ byākāsi.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vijite vasantaṁ apasādetabbaṁ maññeyyā’ti. So kho ahaṁ, bhante, makkhalissa gosālassa bhāsitaṁ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 고살라의 긴 답을 마친 뒤 왕이 그 답의 성격과 자신의 대응을 정리합니다. 망고와 빵나무 열매 비유 뒤에 `saṁsārasuddhiṁ byākāsi`, 곧 윤회를 통한 정화를 답했다는 구체적 판정이 놓이고, 왕은 영토 안의 수행자나 바라문을 폄하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합니다.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는 두 부정이며, 침묵을 동의로 읽지 않게 합니다.

묵상

왕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자신의 대응 범위를 분명히 밝혀요. 당장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대화라면, 동의나 거절 전에 사실관계를 더 확인해도 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불만을 말하지 않았고, 그 대답을 받아들이지도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찬성과 반대를 모두 유보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ṁ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ṁ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왕이 막칼리의 답을 평가하고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고 한 뒤, 실제 퇴장 동작을 마무리합니다. `anattamano`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불만을 말로 내지 않았고, 그 대답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았습니다.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는 결말입니다. 뿌라나 방문과 같은 정형이지만 이 카드에는 스승 이름이나 교설이 다시 나오지 않으므로, 왕의 대응 방식 자체가 핵심입니다.

묵상

왕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불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감정과 표현을 구분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해치는 말을 줄일 수 있는 반응은 지금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