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 사만냐팔라경

디가 니까야 DN 2

아버지를 죽인 아자따삿뚜 왕에게 수행자의 삶이 주는 이로움을 단계별로 설명한다.

인용된 가르침 207구절

이 경을 3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보름밤의 왕과 대신들 10구절

보름밤의 왕과 대신들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 있는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망고 숲에서 천이백오십 명의 큰 수행자 승가와 함께 머무셨다. 그때 마가다의 웨데히뿟따 아자따삿뚜 왕은 넉 달째 꼬무디 보름 포살일 밤,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왕궁 누각 위에 앉아 있었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jīvakassa komārabhaccassa ambavane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aḍḍhateḷasehi bhikkhusatehi. Tena kho pana samayena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adahuposathe pannarase komudiyā cātumāsiniyā puṇṇāya puṇṇamāya rattiyā rājāmaccaparivuto uparipāsādavaragato nisinn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경의 첫 장면으로, 세존은 라자가하의 지와까 꼬마라밧짜 망고 숲에서 큰 수행자 승가와 함께 머뭅니다. `aḍḍhateḷasehi bhikkhusatehi`는 수행자 천이백오십 명이며, 같은 밤 아자따삿뚜 왕은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왕궁 누각에 앉아 있습니다. `uposatha·pannarasa·komudī·cātumāsiniyā·puṇṇamā`가 포살일인 꼬무디 보름밤의 시점을 겹쳐 밝히며, 뒤의 두 장소와 두 무리를 한 이야기 안에서 만나게 할 무대를 세웁니다.

묵상

“세존께서는 지와까의 망고 숲에서 천이백오십 명의 큰 수행자 승가와 함께 머무셨다”는 서두가 한 장소를 분명히 해요.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먼저 사실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이 감탄했다. “벗들이여, 달 밝은 밤이 참 즐겁구나! 벗들이여, 달 밝은 밤이 참 아름답구나! 벗들이여, 달 밝은 밤이 참 볼 만하구나! 벗들이여, 달 밝은 밤이 참 사랑스럽구나! 벗들이여, 달 밝은 밤이 참 상서롭구나! 오늘 어느 수행자나 바라문을 찾아가 섬기면 우리 마음이 맑아지겠는가?”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adahuposathe udānaṁ udānesi: “ramaṇīyā vata bho dosinā ratti, abhirūpā vata bho dosinā ratti, dassanīyā vata bho dosinā ratti, pāsādikā vata bho dosinā ratti, lakkhaññā vata bho dosinā ratti. Kaṁ nu khvajja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payirupāseyyāma, yaṁ no payirupāsato cittaṁ pasīdeyy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망고 숲의 세존과 왕궁 누각의 왕을 나란히 놓은 뒤, 왕이 보름밤을 찬탄하며 방문할 스승을 묻는 장면입니다. `dosinā ratti`를 두고 즐거움·아름다움·볼 만함·사랑스러움·상서로움의 다섯 감탄이 각각 `vata bho`와 함께 반복됩니다. 이어 어느 수행자나 바라문을 찾아가야 ‘우리 마음이 맑아질까’라고 질문하며, 이 구체적인 물음이 다음 여섯 스승의 추천과 지와까의 대답을 이끄는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왕은 “오늘 어느 수행자나 바라문을 찾아가 섬기면 우리 마음이 맑아지겠는가?”라고 목적까지 담아 물어요. 지금 조언을 구한다면, 누구에게 묻는가와 무엇을 알고 싶은가를 한 문장에 함께 담을 수 있나요?

한 대신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교단과 무리를 이끄는 이름난 스승이며 많은 사람이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오래 출가해 나이 든 분입니다. 대왕께서 그를 찾아가시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Evaṁ vutte, aññataro rājāmacco rājānaṁ māgadhaṁ ajātasattuṁ vedehiputtaṁ etadavoca: “ayaṁ, deva, pūraṇo kassap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Taṁ devo pūraṇaṁ kassapaṁ payirupāsatu. Appeva nāma devassa pūraṇaṁ kassapaṁ payirupāsato cittaṁ pasīdeyy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의 질문에 첫 대신이 뿌라나 깟사빠를 추천하는 첫 답변입니다. `deva`로 왕을 부른 뒤 `saṅghī·gaṇī·gaṇācariyo`로 교단과 무리를 이끄는 위치를, 알려짐·명성·종파 창시·많은 이의 호평과 오래 출가하고 만년에 이른 경력을 차례로 듭니다. 끝의 `appeva nāma … cittaṁ pasīdeyya`는 찾아가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일 뿐이며, 아직 왕의 선택이나 그 스승의 교설에 대한 판단은 나오지 않습니다.

묵상

첫 대신은 “대왕께서 뿌라나 깟사빠를 찾아가시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라고 가능성으로 추천해요. 누군가를 추천할 때, 알려진 평판과 내가 직접 확인한 근거를 어떻게 구분해 말할 수 있나요?

왕은 침묵했다. 다른 대신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막칼리 고살라는 교단과 무리를 이끄는 이름난 종교 지도자이며 많은 사람이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오래 출가해 나이 든 그를 찾아가 섬기십시오.”

Evaṁ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ṁ māgadhaṁ ajātasattuṁ vedehiputtaṁ etadavoca: “ayaṁ, deva, makkhali gosāl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Taṁ devo makkhaliṁ gosālaṁ payirupāsatu.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뿌라나 깟사빠의 추천을 들은 왕이 `tuṇhī ahosi`, 곧 침묵한 뒤 다른 대신이 막칼리 고살라를 추천하기 시작합니다. 대신은 `deva`로 왕을 부르고 교단·무리·무리의 스승이라는 세 위치와 알려짐·명성·종파 창시·많은 이의 호평, 오래 출가하고 나이 든 경력을 열거합니다. 이 카드에서는 ‘그를 찾아가 섬기라’는 권유까지만 나오며, 마음이 맑아질지 모른다는 기대와 왕의 다음 침묵은 뒤 카드로 이어집니다.

묵상

“왕은 침묵했다”는 구절 뒤에 막칼리 고살라를 향한 새 추천이 시작돼요. 여러 선택지가 연달아 제시될 때, 바로 답하지 않고 각 제안의 근거를 따로 적어 본다면 무엇부터 확인하고 싶은가요?

“대왕께서 막칼리 고살라를 찾아가시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왕은 침묵했다. 또 다른 대신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교단과 무리를 이끄는 이름난 스승이며 오래 출가해 나이 든 분입니다.”

Appeva nāma devassa makkhaliṁ gosālaṁ payirupāsato cittaṁ pasīdeyyā”ti. Evaṁ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ṁ māgadhaṁ ajātasattuṁ vedehiputtaṁ etadavoca: “ayaṁ, deva, ajito kesakambal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선 대신이 막칼리 고살라를 추천했지만 왕은 침묵하고, 다른 대신이 아지따 께사깜발리를 추천하는 자리입니다. `deva`는 대신이 왕에게 쓰는 호격이며, `saṅghī·gaṇī·gaṇācariyo`와 `ñāto·yasassī·titthakaro·sādhusammato bahujanassa`는 교단 지도력과 세평을 차례로 열거합니다. 오래 출가하고 나이 들었다는 마지막 표현까지 추천자의 평가이지, 왕이나 부처님이 그의 견해를 승인한 말은 아닙니다.

묵상

“왕은 침묵했다”는 짧은 문장이 한 추천에서 다음 추천으로 장면을 넘깁니다. 대답을 바로 내놓지 않고 잠시 멈추었을 때,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아직 판단을 보류해도 되는 부분은 각각 무엇인가요?

“대왕께서는 아지따 께사깜발리를 찾아가 섬기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듣고도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은 침묵했다.

Taṁ devo ajitaṁ kesakambalaṁ payirupāsatu. Appeva nāma devassa ajitaṁ kesakambalaṁ payirupāsato cittaṁ pasīdeyyā”ti. Evaṁ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시작된 아지따 께사깜발리 추천을 마치고 왕의 반응까지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대신은 왕에게 아지따를 찾아가 섬기라고 한 뒤 `appeva nāma … cittaṁ pasīdeyya`, 곧 그렇게 하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른다고 가능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왕은 `tuṇhī ahosi`, 다시 침묵합니다. 추천의 기대와 왕의 침묵을 이어 놓아, 높은 평판만으로는 왕의 물음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대신의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라는 권유 뒤에도 “왕은 침묵했다”고 이어져요. 기대를 담은 제안을 들었지만 아직 결정하지 않았을 때, 판단을 위해 더 필요한 정보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또 다른 대신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빠꾸다 깟짜야나는 교단과 무리를 이끄는 이름난 종교 지도자이며 많은 사람이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오래 출가해 나이 든 분입니다. 대왕께서 그를 찾아가시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ṁ māgadhaṁ ajātasattuṁ vedehiputtaṁ etadavoca: “ayaṁ, deva, pakudho kaccāyan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Taṁ devo pakudhaṁ kaccāyanaṁ payirupāsatu. Appeva nāma devassa pakudhaṁ kaccāyanaṁ payirupāsato cittaṁ pasīdeyy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의 추천에도 왕이 침묵한 뒤, 또 다른 대신이 빠꾸다 깟짜야나를 새 후보로 제시합니다. `saṅghī·gaṇī·gaṇācariyo`의 세 지도자 표현과 알려짐·명성·종파 창시·많은 이의 호평, 오래 출가하고 만년에 이른 경력이 한 번에 열거됩니다. 권유는 빠꾸다를 찾아가 섬기면 왕의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으로 끝나며, 뒤에서 왕이 실제로 보고할 빠꾸다의 답과는 구별되는 추천자의 평가입니다.

묵상

대신은 “빠꾸다 깟짜야나를 찾아가시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라고 평판을 근거로 권해요. 누군가의 경력과 명성을 들었을 때, 실제 답변의 내용까지 확인하기 전에 보류하고 싶은 판단은 무엇인가요?

왕은 침묵했다. 다른 대신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산자야 벨랏타뿟따는 교단과 무리를 이끄는 이름난 종교 지도자이며 많은 사람이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오래 출가해 나이 든 그를 찾아가 섬기십시오.”

Evaṁ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ṁ māgadhaṁ ajātasattuṁ vedehiputtaṁ etadavoca: “ayaṁ, deva, sañcayo belaṭṭhaputt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Taṁ devo sañcayaṁ belaṭṭhaputtaṁ payirupāsatu.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빠꾸다 깟짜야나의 추천을 들은 왕이 다시 침묵하고, 다음 대신이 산자야 벨랏타뿟따를 추천하기 시작합니다. `tuṇhī ahosi`가 후보 전환을 표시하고, 산자야에게도 교단과 무리를 이끌고 가르치는 세 위치, 알려짐·명성·종파 창시·대중의 호평, 오래 출가하고 나이 든 경력이 같은 순서로 붙습니다. 이 카드는 찾아가 섬기라는 권유에서 멈추므로, 추천의 끝과 왕의 다음 반응은 뒤 카드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묵상

왕의 침묵 뒤에 “산자야 벨랏타뿟따를 찾아가 섬기십시오”라는 새 권유가 놓여요. 비슷한 추천이 반복될 때, 이름만 바꾸어 듣지 않고 이번 제안만의 실제 근거를 묻는다면 어떤 질문이 될까요?

“대왕께서 산자야 벨랏타뿟따를 찾아가시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왕은 침묵했다. 또 다른 대신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니간타 나타뿟따는 교단과 무리를 이끄는 이름난 스승이며 오래 출가해 나이 든 분입니다.”

Appeva nāma devassa sañcayaṁ belaṭṭhaputtaṁ payirupāsato cittaṁ pasīdeyyā”ti. Evaṁ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ṁ māgadhaṁ ajātasattuṁ vedehiputtaṁ etadavoca: “ayaṁ, deva, nigaṇṭho nāṭaputt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선 대신이 산자야 벨랏타뿟따를 추천했지만 왕은 다시 침묵하고, 다음 대신이 니간타 나타뿟따를 추천합니다. `deva`는 왕을 부르는 말이고, `saṅghī·gaṇī·gaṇācariyo` 뒤에 알려짐·명성·종파 창시·많은 이의 호평이 이어지며 오래 출가하고 만년에 이르렀다는 말로 닫힙니다. 이 긴 수식열은 추천 이유를 보여 줄 뿐, 뒤에 소개될 교설의 옳음을 미리 판정하지 않습니다.

묵상

“왕은 침묵했다”는 구절은 여섯 스승을 둘러싼 추천이 아직 결론에 이르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여러 사람의 좋은 평판을 들었을 때, 평판과 실제 대답을 구분해 살펴볼 수 있는 기준은 지금 무엇인가요?

“대왕께서는 니간타 나타뿟따를 찾아가 섬기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듣고도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은 침묵했다.

Taṁ devo nigaṇṭhaṁ nāṭaputtaṁ payirupāsatu. Appeva nāma devassa nigaṇṭhaṁ nāṭaputtaṁ payirupāsato cittaṁ pasīdeyyā”ti. Evaṁ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니간타 나타뿟따를 추천하던 대신의 말을 마치고 여섯 스승 추천 장면을 닫습니다. 대신은 그를 찾아가 섬기면 `cittaṁ pasīdeyya`,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왕은 이번에도 `tuṇhī ahosi`라고 침묵합니다. 앞선 다섯 후보와 같은 반응이 여섯 번째에도 반복되어 대신들의 추천만으로는 선택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다음에는 말없이 있던 지와까를 왕이 직접 지목하게 됩니다.

묵상

여섯 번째 추천 뒤에도 “왕은 침묵했다”는 같은 반응이 남아요. 여러 제안을 모두 들었지만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아직 말하지 않은 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지와까와의 문답 6구절

지와까와의 문답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그때 왕 가까이에 지와까 꼬마라밧짜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왕이 물었다. “친애하는 지와까여, 그대는 왜 침묵하는가?” “대왕이시여, 세존·아라한·완전히 깨달은 부처께서 제 망고 숲에 천이백오십 명의 큰 수행자 승가와 함께 머무십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jīvako komārabhacco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avidūre tuṇhībhūto nisinno hoti.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jīvakaṁ komārabhaccaṁ etadavoca: “tvaṁ pana, samma jīvaka, kiṁ tuṇhī”ti? “Ayaṁ, deva,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amhākaṁ ambavane viharati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aḍḍhateḷasehi bhikkhusateh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여섯 대신의 추천이 모두 왕의 침묵으로 끝난 뒤, 가까이서 말없이 앉아 있던 지와까에게 왕이 직접 까닭을 묻습니다. 왕은 `samma jīvaka`라고 친근하게 부르고, 지와까는 자신의 망고 숲에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인 세존이 수행자 천이백오십 명과 머문다고 답합니다. 다른 대신이 외부 스승의 평판을 말한 것과 달리 지와까는 장소와 승가 규모를 직접 제시하며, 방문 대상이 세존으로 좁혀집니다.

묵상

왕은 말없이 있던 지와까에게 “친애하는 지와까여, 그대는 왜 침묵하는가?”라고 직접 물어요. 대화에서 아직 말하지 않은 사람의 의견도 필요하다면,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질문할 수 있나요?

“세존께서는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았고, 앎과 실천을 갖추었으며 잘 가셨고 세상을 알며 길들일 사람을 이끄는 위없는 스승이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며 깨달은 복된 분이라는 좋은 명성이 있습니다. 대왕께서 찾아가시면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친애하는 지와까여, 그러면 코끼리 탈것을 준비하라.”

Taṁ kho pana bhagavantaṁ evaṁ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itipi s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Taṁ devo bhagavantaṁ payirupāsatu. Appeva nāma devassa bhagavantaṁ payirupāsato cittaṁ pasīdeyyā”ti. “Tena hi, samma jīvaka, hatthiyānāni kappāpeh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지와까가 망고 숲에 머무는 세존을 알린 데 이어, 좋은 명성이 퍼진 이유와 방문 권유를 덧붙입니다. 아라한에서 세존까지 아홉 호칭을 온전히 열거하고, 찾아가면 왕의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왕은 더 침묵하지 않고 `samma jīvaka`라고 부르며 코끼리 탈것을 준비하라고 명령합니다. 여섯 추천과 같은 기대 표현이지만, 이번에는 실제 이동을 결정하는 응답이 뒤따른다는 점이 장면을 바꿉니다.

묵상

지와까의 설명을 들은 왕은 “그러면 코끼리 탈것을 준비하라”고 처음으로 결정을 말해요. 여러 선택지를 검토한 뒤 움직이기로 했다면, 그 결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첫 준비는 무엇인가요?

지와까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답하고 암코끼리 오백 마리와 왕이 탈 수코끼리를 준비했다. 이어 왕에게 알렸다. “대왕이시여, 코끼리 탈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실 때 가십시오.”

“Evaṁ, devā”ti kho jīvako komārabhacco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paṭissuṇitvā pañcamattāni hatthinikāsatāni kappāpetvā rañño ca ārohaṇīyaṁ nāgaṁ,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paṭivedesi: “kappitāni kho te, deva, hatthiyānāni, yassadāni kālaṁ maññas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지와까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 지와까가 밤길의 이동을 준비하여 출발 직전에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pañcamattāni hatthinikāsatāni`는 암코끼리 약 오백 마리이며 정확히 오백이라고 확정한 수가 아니고, 왕이 탈 수코끼리는 별도로 준비됩니다. `deva`가 두 번 쓰여 명령을 받은 답변과 준비 완료 보고를 각각 왕에게 향하게 하며, 방문이 우발적 이동이 아니라 갖추어진 행차였음을 드러냅니다.

묵상

“코끼리 탈것이 준비되었습니다”라는 보고에는 약 오백 마리와 왕의 탈것을 따로 갖춘 과정이 담겨 있어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된 것과 아직 확인이 필요한 것을 한 가지씩 나누어 볼 수 있나요?

‘왕은 오백 암코끼리에 각각 여인을 태우고 자신은 수코끼리에 올랐다. 횃불을 든 시종과 큰 왕의 위세를 갖추어 라자가하를 떠나 지와까의 망고 숲으로 갔다. 그러나 숲 가까이에 이르자 왕에게 두려움과 공포가 일고 털이 곤두섰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pañcasu hatthinikāsatesu paccekā itthiyo āropetvā ārohaṇīyaṁ nāgaṁ abhiruhitvā ukkāsu dhāriyamānāsu rājagahamhā niyyāsi mahaccarājānubhāvena, yena jīvakassa komārabhaccassa ambavanaṁ tena pāyāsi. Atha kho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avidūre ambavanassa ahudeva bhayaṁ, ahu chambhitattaṁ, ahu lomahaṁs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지와까가 탈것 준비를 마친 뒤 왕의 행차가 라자가하에서 망고 숲으로 이동하는 장면입니다. 오백 암코끼리마다 여인이 한 명씩 타고, 왕은 별도의 수코끼리에 오르며 횃불과 큰 왕의 위세가 따릅니다. 그러나 숲 가까이에서 `bhaya·chambhitatta·lomahaṁsa`가 차례로 일어나 두려움·공포·털이 곤두섬으로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화려한 출발과 낯선 고요 앞의 신체 반응을 맞세워 다음 세 질문의 이유를 마련합니다.

묵상

왕은 큰 행차로 출발했지만 숲 가까이에 이르자 “두려움과 공포가 일고 털이 곤두섰다”고 서술돼요. 예상과 다른 반응이 몸에 나타났을 때, 판단을 서두르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 하나는 무엇인가요?

왕이 말했다. “친애하는 지와까여, 그대가 나를 속이거나 배신하거나 적에게 넘기는 것은 아니겠지? 천이백오십 명이나 되는 큰 수행자 승가에서 재채기·헛기침·웅성거리는 소리 하나 나지 않을 수 있는가?”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īto saṁviggo lomahaṭṭhajāto jīvakaṁ komārabhaccaṁ etadavoca: “kacci maṁ, samma jīvaka, na vañcesi? Kacci maṁ, samma jīvaka, na palambhesi? Kacci maṁ, samma jīvaka, na paccatthikānaṁ desi? Kathañhi nāma tāva mahato bhikkhusaṅghassa aḍḍhateḷasānaṁ bhikkhusatānaṁ neva khipitasaddo bhavissati, na ukkāsitasaddo na nigghos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지와까 망고원에 가까워져 승가의 이례적인 고요를 마주한 왕이 두려움과 불안으로 털이 곤두선 채 지와까를 추궁하는 장면입니다. `kacci maṁ … na`로 시작하는 세 질문은 속임·배신·적에게 넘김을 각각 부정 의문으로 묻고, 매번 `samma jīvaka`라고 부릅니다. 이어 천이백오십 명에게 재채기·헛기침·웅성거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공포의 근거로 제시되며, 이는 왕의 반응을 서술한 것이지 고요 자체를 위험하다고 규정한 말은 아닙니다.

묵상

“그대가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첫 질문에는 낯선 고요 앞에서 커진 왕의 두려움이 드러나요. 비슷한 불안이 생길 때, 사실로 확인된 것과 아직 두려움이 덧붙인 가능성을 지금 구분해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저는 속이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배신하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적에게 넘기지도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앞으로 가십시오. 대왕이시여, 앞으로 가십시오. 원형 누각에 등불이 빛납니다.”

“Mā bhāyi, mahārāja, mā bhāyi, mahārāja. Na taṁ, deva, vañcemi; na taṁ, deva, palambhāmi; na taṁ, deva, paccatthikānaṁ demi. Abhikkama, mahārāja, abhikkama, mahārāja, ete maṇḍalamāḷe dīpā jhāyant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고요한 승가를 매복으로 의심한 직후, 지와까가 위험이 없다고 거듭 확인시키는 답변입니다. `mā bhāyi`가 두 번, 속이지 않음·배신하지 않음·적에게 넘기지 않음의 세 부정이 이어지고, `abhikkama`도 두 번 반복됩니다. 마지막의 ‘원형 누각에 등불이 빛난다’는 말은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앞으로 갈 수 있는 눈앞의 표지를 제시하며, 왕을 공포에서 실제 접근으로 이끕니다.

묵상

지와까는 “원형 누각에 등불이 빛납니다”라고 안전을 확인할 구체적인 표지를 알려 줘요. 불안한 상황에서 막연한 안심보다 도움이 되는, 지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3 수행 삶의 결실을 묻다 7구절

수행 삶의 결실을 묻다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왕은 코끼리가 갈 수 있는 곳까지 탄 뒤 내려서 걸어 원형 누각 문에 이르렀다. “친애하는 지와까여, 세존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대왕이시여, 저분이 세존이십니다. 대왕이시여,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동쪽을 향해 수행자 승가 앞에 앉아 계십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yāvatikā nāgassa bhūmi nāgena gantvā, nāgā paccorohitvā, pattikova yena maṇḍalamāḷassa dvār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jīvakaṁ komārabhaccaṁ etadavoca: “kahaṁ pana, samma jīvaka, bhagavā”ti? “Eso, mahārāja, bhagavā; eso, mahārāja, bhagavā majjhimaṁ thambhaṁ nissāya puratthābhimukho nisinno purakkhato bhikkhusaṅghass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지와까의 안심을 받은 왕이 코끼리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뒤 내려서, 걸어서 원형 누각 문에 도착합니다. 왕은 `samma jīvaka`라고 부르며 세존의 위치를 묻고, 지와까는 `eso mahārāja bhagavā`를 두 번 반복해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동쪽을 향하고 승가 앞에 앉은 분을 가리킵니다. 이동의 마지막 단계와 정확한 좌표가 제시되어, 왕의 시선이 고요한 무리 속 세존에게 향하게 됩니다.

묵상

지와까는 “저분이 세존이십니다”라고 두 번 말한 뒤 가운데 기둥과 동쪽 방향까지 알려 줘요. 낯선 장소에서 누군가를 안내한다면, 혼동을 줄이기 위해 덧붙일 수 있는 구체적인 표지는 무엇인가요?

왕은 세존께 다가가 한쪽에 서서 맑고 고요한 호수처럼 잠잠한 수행자 승가를 둘러보고 감탄했다. “내 아들 우다이밧다 왕자도 이 승가가 갖춘 고요를 갖추기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그대 마음이 사랑하는 이에게로 갔구나.”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bhūtaṁ tuṇhībhūtaṁ bhikkhusaṅghaṁ anuviloketvā rahadamiva vippasannaṁ udānaṁ udānesi: “iminā me upasamena udayabhaddo kumāro samannāgato hotu, yenetarahi upasamena bhikkhusaṅgho samannāgato”ti. “Agamā kho tvaṁ, mahārāja, yathāpem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세존에게 다가가 한쪽에 선 채, 잠잠한 승가를 맑고 고요한 호수에 견주어 바라보는 첫 대면입니다. `tuṇhībhūtaṁ`이 두 번 반복되어 승가의 침묵을 강조하고, 왕은 사랑하는 우다이밧다 왕자도 같은 고요를 갖추기를 바랍니다. 세존의 `agamā … yathāpemaṁ`은 왕의 마음이 사랑하는 이에게로 향했다고 짚습니다. 장면은 승가의 고요에서 왕의 가족에 대한 바람으로 옮겨 갑니다.

묵상

왕은 “내 아들 우다이밧다 왕자도 이 승가가 갖춘 고요를 갖추기를”이라고 바람을 드러내요. 사랑하는 이를 향한 기대 속에서, 그 사람의 선택과 별개로 내가 솔직히 인정할 수 있는 바람은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저는 우다이밧다 왕자를 사랑합니다. 세존이시여, 제 아들도 지금 수행자 승가가 갖춘 고요를 갖추기를 바랍니다.” 왕은 세존께 절하고 승가를 향해 합장한 뒤 한쪽에 앉았다.

“Piyo me, bhante, udayabhaddo kumāro. Iminā me, bhante, upasamena udayabhaddo kumāro samannāgato hotu yenetarahi upasamena bhikkhusaṅgho samannāgato”ti.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ntaṁ abhivādetvā, bhikkhusaṅghassa añjaliṁ paṇāmetvā, ekamantaṁ nisī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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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존이 왕의 마음이 사랑하는 이에게 갔다고 하자, 왕이 우다이밧다 왕자를 사랑한다고 직접 확인하는 답변입니다. `bhante`를 두 번 써서 사랑과 고요에 대한 바람을 각각 세존께 말하고, 이어 세존께 절하고 수행자 승가를 향해 합장한 뒤 한쪽에 앉습니다. 서 있던 첫 대면이 예경과 착석으로 마무리되어, 개인적인 바람을 밝히던 장면에서 정식 문답을 시작할 자세로 전환됩니다.

묵상

왕은 “저는 우다이밧다 왕자를 사랑합니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먼저 밝혀요. 누군가를 위한 바람을 말할 때, 상대의 삶을 대신 결정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만 책임지고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왕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한 가지 일을 여쭙고 싶습니다. 세존께서 답할 기회를 주신다면 묻겠습니다.” “대왕이시여, 원하는 것을 물으십시오.”

Ekamantaṁ nisinno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puccheyyāmahaṁ, bhante, bhagavantaṁ kañcideva desaṁ; sace me bhagavā okāsaṁ karoti pañhassa veyyākaraṇāyā”ti. “Puccha, mahārāja, yadākaṅkhas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예경을 마치고 한쪽에 앉은 왕이 본 질문에 앞서 답변의 기회를 청하는 장면입니다. `puccheyyāmahaṁ`으로 묻고 싶다고 밝히고, `sace` 조건을 써서 세존이 질문에 답할 기회를 허락한다면 묻겠다고 합니다. 세존은 `Puccha, mahārāja, yadākaṅkhasī`, 곧 원하는 것을 물으라고 짧게 허락합니다. 질문의 내용보다 먼저 청자에게 공간을 구하는 절차가 뒤의 긴 문답을 정식으로 엽니다.

묵상

왕은 “세존께서 답할 기회를 주신다면 묻겠습니다”라고 먼저 허락을 구해요. 길거나 중요한 질문을 꺼내기 전에, 상대가 들을 여유가 있는지 확인하는 말을 지금 어떻게 건넬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코끼리병·기병·전차병·궁수·기수·부관·보급병·장군·왕자·돌격병·큰 용사·영웅·가죽 갑옷 병사·종의 아들부터 빵 굽는 이·이발사·목욕 시중·요리사·꽃장식꾼·염색공·직조공·바구니공·옹기공·회계사·손가락 계산사까지 여러 직업이 있습니다. 그들은 현세에서 기술의 결실로 자신·부모·배우자와 자녀·친구와 동료를 기쁘게 하고, 수행자와 바라문에게 천상과 행복으로 이끄는 보시를 올립니다.”

“Yathā nu kho imāni, bhante, puthusippāyatanāni, seyyathidaṁ—hatthārohā assārohā rathikā dhanuggahā celakā calakā piṇḍadāyakā uggā rājaputtā pakkhandino mahānāgā sūrā cammayodhino dāsikaputtā āḷārikā kappakā nhāpakā sūdā mālakārā rajakā pesakārā naḷakārā kumbhakārā gaṇakā muddikā, yāni vā panaññānipi evaṅgatāni puthusippāyatanāni, te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ippaphalaṁ upajīvanti; te tena attānaṁ sukhenti pīṇenti, mātāpitaro sukhenti pīṇenti, puttadāraṁ sukhenti pīṇenti, mittāmacce sukhenti pīṇenti, samaṇabrāhmaṇesu uddhaggikaṁ dakkhiṇaṁ patiṭṭhapenti sovaggikaṁ sukhavipākaṁ saggasaṁvattanik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현세에서 보이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묻기 위해 먼저 세속 직업의 눈앞의 결실을 길게 제시하는 첫 질문입니다. `rajaka`는 염색공이 아니라 세탁공이고, 병사 계열에서 빵 굽는 이·이발사·세탁공·직조공·바구니공·옹기공·회계사·손가락 계산사까지 이어집니다. 그 수입이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기쁘게 하고 수행자와 바라문에게 보시하는 데 쓰인다는 구조가, 뒤의 수행 결실을 비교할 구체적 기준을 세웁니다.

묵상

왕은 “여러 직업이 있습니다”라고 한 뒤 그 결실이 자신과 가까운 이들, 보시로 이어지는 모습을 말해요. 내가 하는 일의 눈앞의 결실 가운데 돈이나 성과 말고도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로웠던 한 가지가 있나요?

“세존이시여, 이처럼 바로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도 제시할 수 있습니까?” “대왕이시여, 이 질문을 다른 수행자와 바라문들에게 물은 것을 기억합니까?” “기억합니다, 세존이시여.”

Sakkā nu kho, bhante,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Abhijānāsi no tvaṁ, mahārāja, imaṁ pañhaṁ aññe samaṇabrāhmaṇe pucchitā”ti? “Abhijānāmahaṁ, bhante, imaṁ pañhaṁ aññe samaṇabrāhmaṇe pucchit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세속 직업이 눈앞의 결실을 낸다는 긴 예시를 마친 왕이, 바로 그와 같은 수행 생활의 현세적 결실을 제시할 수 있는지 핵심 질문을 냅니다.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은 바로 이 삶에서 직접 볼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합니다. 세존은 곧바로 답하지 않고 다른 수행자와 바라문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는지 되묻고, 왕은 기억한다고 답하여 여섯 스승의 응답을 검토할 문을 엽니다.

묵상

왕은 “바로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범위를 분명히 해요. 지금 묻는 일에서 먼 약속보다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결과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대왕이시여, 괜찮다면 그들이 어떻게 답했는지 말해 보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과 같은 분이 여기 앉아 계시니 어렵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러면 말해 보십시오.”

“Yathā kathaṁ pana te, mahārāja, byākariṁsu, sace te agaru bhāsassū”ti. “Na kho me, bhante, garu, yatthassa bhagavā nisinno, bhagavantarūpo vā”ti. “Tena hi, mahārāja, bhāsass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다른 수행자와 바라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고 확인한 뒤, 세존이 그 답들을 먼저 말해 보라고 청합니다. `sace te agaru`는 왕에게 부담스럽지 않다면 말하라는 조건이고, 왕은 세존과 같은 분이 앉아 있는 자리이므로 어렵지 않다고 답합니다. 세존의 `tena hi … bhāsassu`가 보고를 허락하며, 문답은 부처님의 답을 바로 제시하지 않고 앞선 여섯 답의 내용과 왕의 평가를 차례로 확인하는 구조로 들어갑니다.

묵상

세존은 “괜찮다면 그들이 어떻게 답했는지 말해 보십시오”라고 부담 여부를 먼저 확인해요. 누군가에게 이전 경험을 말해 달라고 부탁할 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남기는 질문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요?

4 뿌라나 깟사빠의 주장 7구절

뿌라나 깟사빠의 주장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때 저는 뿌라나 깟사빠에게 가서 그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Ekamidāhaṁ, bhante, samayaṁ yena pūraṇo kassap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pūraṇena kassapena saddhiṁ sammod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세존이 여섯 스승이 어떻게 답했는지 말해 보라고 하자, 왕이 첫 방문인 뿌라나 깟사빠와의 만남부터 회상합니다. 이 카드의 `sammodiṁ`은 뿌라나에게 다가가 서로 인사를 나눈 데까지만 소유하고,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 앉는 동작은 다음 카드에 이어집니다. 짧은 시작을 따로 두어 왕이 과거 대화를 보고하는 층위와 그 안에서 뿌라나가 말할 교설의 층위를 구분하게 합니다.

묵상

왕은 “뿌라나 깟사빠에게 가서 그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라고 만남의 시작부터 보고해요. 이전 대화를 되짚을 때, 평가보다 먼저 장소와 상대와 첫 행동을 사실대로 말한다면 무엇부터 적을 수 있나요?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세존이시여, 저는 뿌라나 깟사빠에게 물었습니다. ‘깟사빠 존자여, 코끼리병·기병·전차병·궁수·기수·부관·보급병·장군·왕자·돌격병·큰 용사·영웅·가죽 갑옷 병사·종의 아들·빵 굽는 이·이발사·목욕 시중·요리사·꽃장식꾼·세탁공·직조공·바구니공·옹기공·회계사·손가락 계산사 등 여러 기술자는 바로 이 삶에서 눈앞에 확인되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o kho ahaṁ, bhante, pūraṇaṁ kassapaṁ etadavocaṁ: ‘yathā nu kho imāni, bho kassapa, puthusippāyatanāni, seyyathidaṁ—hatthārohā assārohā rathikā dhanuggahā celakā calakā piṇḍadāyakā uggā rājaputtā pakkhandino mahānāgā sūrā cammayodhino dāsikaputtā āḷārikā kappakā nhāpakā sūdā mālakārā rajakā pesakārā naḷakārā kumbhakārā gaṇakā muddikā, yāni vā panaññānipi evaṅgatāni puthusippāyatanāni, te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ippaphalaṁ upajīv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인사에 이어 왕이 뿌라나와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쪽에 앉은 뒤, 세속 직업의 사례로 질문을 시작합니다. `bho kassapa`로 뿌라나를 부르고 병사 계열부터 세탁공·직조공·바구니공·옹기공·회계사·손가락 계산사까지 직업을 열거합니다. 이들이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ippaphalaṁ`, 바로 이 삶에서 눈앞에 보이는 기술의 결실로 산다는 전제가 다음 카드의 수행 결실 질문을 준비합니다.

묵상

왕은 여러 기술자가 “바로 이 삶에서 눈앞에 확인되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라고 공통 기준을 세워요. 비교 질문을 만들기 전에, 두 대상을 함께 살필 수 있는 한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 결실로 자신과 부모, 배우자와 자녀, 친구와 동료를 기쁘게 하고 수행자와 바라문에게 천상과 행복으로 이끄는 보시를 올립니다. 깟사빠 존자여, 이처럼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도 제시할 수 있습니까?”

te tena attānaṁ sukhenti pīṇenti, mātāpitaro sukhenti pīṇenti, puttadāraṁ sukhenti pīṇenti, mittāmacce sukhenti pīṇenti, samaṇabrāhmaṇesu uddhaggikaṁ dakkhiṇaṁ patiṭṭhapenti sovaggikaṁ sukhavipākaṁ saggasaṁvattanikaṁ. Sakkā nu kho, bho kassap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열거한 직업의 현세적 결실이 어디에 쓰이는지 밝힌 뒤, 뿌라나에게 본 질문을 내는 대목입니다. 기술의 결실은 자신·부모·배우자와 자녀·친구와 동료를 기쁘게 하는 네 범위와 수행자와 바라문에게 올리는 보시로 이어집니다. 이어 `bho kassapa`라고 다시 부르며 수행 생활에도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바로 이 삶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결실을 제시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질문은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 확인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묵상

왕은 “이처럼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세속 직업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요. 어떤 주장에 대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를 묻는다면, 지금 가장 구체적인 질문은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남을 처벌하고 자르고 괴롭히고 슬프게 하고 지치게 하고 떨게 하거나 그렇게 시키고, 죽이고 훔치고 침입해 약탈하고 길에서 강도질하고 간음하고 거짓말해도 악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날 선 원반으로 땅의 모든 생명을 한 덩이 고기로 만들어도 거기서 생기는 악과 악의 결과는 없습니다.’”

Evaṁ vutte, bhante, pūraṇo kassapo maṁ etadavoca: ‘karoto kho, mahārāja, kārayato, chindato chedāpayato, pacato pācāpayato socayato, socāpayato, kilamato kilamāpayato, phandato phandāpayato, pāṇamatipātāpayato, adinnaṁ ādiyato, sandhiṁ chindato, nillopaṁ harato, ekāgārikaṁ karoto, paripanthe tiṭṭhato, paradāraṁ gacchato, musā bhaṇato, karoto na karīyati pāpaṁ. Khurapariyantena cepi cakkena yo imissā pathaviyā pāṇe ekaṁ maṁsakhalaṁ ekaṁ maṁsapuñjaṁ kareyya, natthi tatonidānaṁ pāpaṁ, natthi pāpassa āgam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첫 스승 뿌라나 깟사빠에게서 들은 답을 부처님께 그대로 보고하는 대목입니다. 직접 하거나 시켜 처벌·절단·괴롭힘·슬픔·피로·떨림·살해를 일으키는 행위와 절도·침입·약탈·한 집 털기·노상강도·간음·거짓말을 열거한 뒤에도 `na karīyati pāpaṁ`, 곧 악이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뿌라나의 무작용론을 인용한 것이며 부처님의 허용이나 수행 지침이 아닙니다.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왕은 이 폭력의 열거를 자신의 지침으로 삼지 않고 “뿌라나 깟사빠는 답했습니다”라고 화자를 분명히 밝혀 전해요. 이 대목이 불편하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주장한 사람과 이를 보고한 사람을 구분해 볼 수 있나요?

“‘갠지스강 남쪽 언덕을 따라 죽이고 자르고 괴롭히거나 그렇게 시켜도 악과 그 결과가 없습니다. 북쪽 언덕을 따라 주고 보시하고 제사하거나 그렇게 시켜도 공덕과 그 결과가 없습니다. 보시·자기 절제·단속·참된 말에도 공덕과 그 결과가 없습니다.’”

Dakkhiṇañcepi gaṅgāya tīraṁ gaccheyya hananto ghātento chindanto chedāpento pacanto pācāpento, natthi tatonidānaṁ pāpaṁ, natthi pāpassa āgamo. Uttarañcepi gaṅgāya tīraṁ gaccheyya dadanto dāpento yajanto yajāpento, natthi tatonidānaṁ puññaṁ, natthi puññassa āgamo. Dānena damena saṁyamena saccavajjena natthi puññaṁ, natthi puññassa āgam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뿌라나 깟사빠의 무작용론이 갠지스강의 남쪽과 북쪽 강기슭을 대조하며 계속됩니다. 남쪽 강기슭에서는 죽임과 괴롭힘을 직접 하거나 시켜도 `natthi … pāpaṁ`이라 하고, 북쪽 강기슭에서는 보시와 제사를 하거나 시켜도 `natthi … puññaṁ`이라 하며, 끝에서는 보시·절제·단속·참된 말에도 공덕과 결과가 없다는 부정을 반복합니다. 이는 왕이 인용한 견해이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공덕과 그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뿌라나 깟사빠의 주장으로 인용되고 있어요. 불편하면 이 대목은 지금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반복되는 “없습니다”가 무엇을 부정하는지 주장자의 말 안에서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는 제게 행위가 작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물음과 다른 답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

Itthaṁ kho me, bhante, pūraṇo kassap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akiriyaṁ byākāsi. Seyyathāpi, bhante, ambaṁ vā puṭṭho labujaṁ byākareyya, labujaṁ vā puṭṭho ambaṁ byākareyya; evameva kho me, bhante, pūraṇo kassap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akiriyaṁ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뿌라나 깟사빠의 답을 전한 뒤 왕이 그 답을 평가하는 결론입니다. `akiriyaṁ byākāsi`, 곧 ‘행위가 작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답했다’는 판정이 망고와 빵나무 열매의 엇갈린 문답 비유 앞뒤에 똑같이 놓입니다. 이 반복은 교설 전체를 논박하기보다 ‘현세의 수행 결실’이라는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았음을 밝히며, 왕은 공개적인 모욕 대신 답의 불일치만 기록하고 다음 스승으로 넘어갑니다.

묵상

왕은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라고 질문과 답의 어긋남을 짚어요. 어떤 대화에서 상대의 말 전체를 평가하기 전에, 내가 물은 한 가지와 실제로 돌아온 대답을 나누어 볼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저는 ‘나 같은 사람이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불만스러웠지만 말로 드러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vijite vasantaṁ apasādetabbaṁ maññeyyā’ti. So kho ahaṁ, bhante, pūraṇassa kassapassa bhāsitaṁ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ṁ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ṁ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뿌라나의 무작용론이 질문과 어긋났다고 평가한 뒤, 왕이 당시 자신의 대응과 퇴장을 설명합니다. 영토 안의 수행자나 바라문을 `apasādetabbaṁ`,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으로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불만을 말로 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일어나 떠났다는 연속 동작은, 견해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공개적 모욕도 피한 왕의 선택을 닫습니다.

묵상

왕은 “그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한 뒤 자리에서 떠났어요. 대답에 동의하지 않지만 다툼도 더하지 않으려 할 때, 내 입장을 오해 없이 남길 수 있는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5 막칼리 고살라의 주장 8구절

막칼리 고살라의 주장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한때 막칼리 고살라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고살라 존자여, 여러 직업인이 … 고살라 존자여,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Ekamidāhaṁ, bhante, samayaṁ yena makkhali gosāl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makkhalinā gosālena saddhiṁ sammodiṁ.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o kho ahaṁ, bhante, makkhaliṁ gosālaṁ etadavocaṁ: ‘yathā nu kho imāni, bho gosāla, puthusippāyatanāni …pe… sakkā nu kho, bho gosāl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뿌라나와의 방문 보고를 마친 왕이 두 번째인 막칼리 고살라에게 갔던 일을 시작합니다. 인사·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착석을 거쳐 `bho gosāla`를 두 번 쓰며 직업의 결실과 수행 생활의 현세적 결실을 묻습니다. 원문의 `…pe…` 한 곳은 뿌라나에게 이미 온전히 제시한 직업 목록과 그 결실의 정형을 줄인 것으로, 편집자가 임의로 내용을 덜어 낸 표지가 아닙니다. 같은 질문을 유지해야 여섯 답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묵상

왕은 막칼리에게도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같은 질문을 유지해요. 여러 사람의 답을 비교하려면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어야 할 질문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막칼리 고살라는 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존재가 오염되거나 깨끗해지는 원인과 조건은 없습니다. 원인 없이 오염되고 원인 없이 깨끗해집니다. 자신이나 남이나 사람이 하는 행위도 없고, 힘·정진·사람의 기력·분투도 없습니다.’”

Evaṁ vutte, bhante, makkhali gosālo maṁ etadavoca: ‘natthi, mahārāja,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ṁ saṅkilesāya, ahetū a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ṁ visuddhiyā, ahetū apaccayā sattā visujjhanti. Natthi attakāre, natthi parakāre, natthi purisakāre, natthi balaṁ, natthi vīriyaṁ, natthi purisathāmo, natthi purisaparakkam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의 질문에 막칼리 고살라가 존재의 오염과 정화에 원인이나 행위 능력이 없다고 답하기 시작합니다. `natthi hetu natthi paccayo`가 오염과 정화에 각각 반복되고, 원인도 조건도 없이 오염되고 깨끗해진다고 합니다. 이어 자신의 행위·남의 행위·사람의 행위를 부정하고, 힘·정진·사람의 기력·분투도 `natthi`로 모두 부정합니다. 이는 왕이 인용한 막칼리의 결정론이며 부처님이 노력의 무용함을 가르친 말이 아닙니다.

묵상

“원인과 조건은 없습니다”라는 말은 막칼리 고살라의 답으로 인용되고 있어요. 이 문장을 내 노력에 대한 판정으로 옮기지 않고, 누가 어떤 질문에 이렇게 답했는지만 먼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모든 존재와 생명과 영혼은 통제력도 힘도 정진도 없으며, 운명·상황·본성에 따라 변하여 여섯 태어남의 부류에서 행복과 괴로움을 경험합니다.’”

Sabbe sattā sabbe pāṇā sabbe bhūtā sabbe jīvā avasā abalā avīriyā niyatisaṅgatibhāvapariṇatā chasvevābhijātīsu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 고살라의 결정론을 왕이 보고하는 가운데, 존재의 행위 능력을 부정하는 핵심 문장입니다. `sabbe`가 네 번 반복되어 존재들(`sattā`), 생명들(`pāṇā`), 생겨난 것들(`bhūtā`), 살아 있는 것들(`jīvā`)을 각각 포괄하고, 통제력·힘·정진이 없다는 세 부정 뒤에 운명·상황·본성 및 여섯 태어남의 부류가 이어집니다. 이 견해는 막칼리의 답으로 인용되며 부처님이 무기력을 권한 말이 아닙니다.

묵상

“모든 존재와 생명과 생겨난 것과 살아 있는 것은 통제력도 힘도 정진도 없다”는 말은 막칼리 고살라의 주장으로 소개돼요. 이 문장을 내 상태에 대한 판정으로 삼지 않고, 지금 누구의 견해가 인용되는지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주요 태 140만·6천·600, 행위 500·5·3, 온전한 행위와 반쪽 행위, 수행 길 62·중간 겁 62·태어남 6·인간 단계 8이 있다. 아지와까·유행자·용의 처소 각 4,900, 감각 기능은 2천, 지옥은 3천, 먼지 영역은 36이다. 인식 있는 태·인식 없는 태·매듭 없는 태·신·인간·귀신은 각 7, 흐름은 7, 버려진 삶·추락·꿈은 각각 7과 700이다.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는 840만 대겁을 윤회한 뒤 괴로움을 끝낸다.”

Cuddasa kho panimāni yonipamukhasatasahassāni saṭṭhi ca satāni cha ca satāni pañca ca kammuno satāni pañca ca kammāni tīṇi ca kammāni kamme ca aḍḍhakamme ca dvaṭṭhipaṭipadā dvaṭṭhantarakappā chaḷābhijātiyo aṭṭha purisabhūmiyo ekūnapaññāsa ājīvakasate ekūnapaññāsa paribbājakasate ekūnapaññāsa nāgāvāsasate vīse indriyasate tiṁse nirayasate chattiṁsa rajodhātuyo satta saññīgabbhā satta asaññīgabbhā satta nigaṇṭhigabbhā satta devā satta mānusā satta pisācā satta sarā satta pavuṭā satta pavuṭasatāni satta papātā satta papātasatāni satta supinā satta supinasatāni cullāsīti mahākappino satasahassāni, yāni bāle ca paṇḍite ca sandhāvitvā saṁsaritvā dukkhassantaṁ kariss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의 결정론이 세계와 윤회의 고정된 구성을 매우 긴 수 목록으로 제시하는 대목입니다. 주요 태 140만·6천·600, 행위 500·5·3, 수행 길과 중간 겁 각 62, 태어남 6, 인간 단계 8을 든 뒤 여러 무리와 감각·지옥·먼지 영역, 각 7과 700의 항목을 열거합니다. 마지막의 840만 대겁은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모두 정해진 윤회를 거친 뒤 괴로움을 끝낸다는 주장에 연결됩니다. 수량은 막칼리의 교설을 보고하는 것이지 부처님의 우주론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묵상

이 카드의 긴 숫자 목록은 끝에서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는 840만 대겁을 윤회한 뒤 괴로움을 끝낸다”는 막칼리의 주장으로 모여요. 내 삶에 적용하기보다, 수량이 어느 화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계율·서원·고행·청정한 삶으로 익지 않은 행위를 익게 하거나 익은 행위를 거듭 겪어 없앤다는 일은 없습니다. 행복과 괴로움은 정해진 양이고 윤회에는 끝이 있으므로 줄거나 늘지 않고 높아지거나 낮아지지도 않습니다.’”

Tattha natthi “imināhaṁ sīlena vā vatena vā tapena vā brahmacariyena vā aparipakkaṁ vā kammaṁ paripācessāmi, paripakkaṁ vā kammaṁ phussa phussa byantiṁ karissāmī”ti hevaṁ natthi. Doṇamite sukhadukkhe pariyantakate saṁsāre, natthi hāyanavaḍḍhane, natthi ukkaṁsāvakaṁse.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가 고정된 윤회 수량을 제시한 뒤, 수행으로 그 과정을 앞당기거나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계율·서원·고행·청정한 삶 네 가지로 익지 않은 행위를 익게 하거나 익은 행위를 거듭 겪어 없앤다는 일이 `natthi`라고 합니다. 행복과 괴로움은 정해진 양이고 윤회에도 끝이 정해져 있어 감소와 증가, 높아짐과 낮아짐이 없다는 네 부정이 이어집니다. 이는 막칼리의 주장이지 수행이 변화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부처님의 지침이 아닙니다.

묵상

“계율·서원·고행·청정한 삶으로 … 한다는 일은 없습니다”는 막칼리 고살라의 부정으로 인용돼요. 이 말을 현재의 가능성에 대한 결론으로 삼지 않고, 주장과 보고의 층위를 나눌 수 있나요?

“‘실뭉치를 던지면 풀리면서 굴러가듯,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는 윤회한 뒤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이시여, 막칼리 고살라는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윤회를 통한 정화를 답했습니다.”

Seyyathāpi nāma suttaguḷe khitte nibbeṭhiyamānameva paleti; evameva bāle ca paṇḍite ca sandhāvitvā saṁsaritvā dukkhassantaṁ karissantī’ti. Itthaṁ kho me, bhante, makkhali gosāl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saṁsārasuddhiṁ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 고살라의 답을 실뭉치 비유로 마치고, 왕이 그 답의 성격을 이름 붙이는 대목입니다. 던진 실뭉치가 풀리며 굴러가듯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정해진 윤회를 거친 뒤 괴로움을 끝낸다고 합니다. 이어 왕은 `saṁsārasuddhiṁ byākāsi`, 곧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윤회를 통한 정화를 답했다고 평가합니다. 비유가 막칼리의 결정론에 속한다는 점과 왕의 평가를 함께 두어 부처님의 답과 섞이지 않게 합니다.

묵상

왕은 막칼리의 말을 전한 뒤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윤회를 통한 정화를 답했습니다”라고 질문과 답을 나란히 놓아요. 긴 비유 뒤에도 원래 질문에 답했는지 확인하려면 무엇을 비교해야 하나요?

“세존이시여, 그것은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음과 답이 달랐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막칼리 고살라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ṁ vā puṭṭho labujaṁ byākareyya, labujaṁ vā puṭṭho ambaṁ byākareyya; evameva kho me, bhante, makkhali gosāl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saṁsārasuddhiṁ byākāsi.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vijite vasantaṁ apasādetabbaṁ maññeyyā’ti. So kho ahaṁ, bhante, makkhalissa gosālassa bhāsitaṁ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 고살라의 긴 답을 마친 뒤 왕이 그 답의 성격과 자신의 대응을 정리합니다. 망고와 빵나무 열매 비유 뒤에 `saṁsārasuddhiṁ byākāsi`, 곧 윤회를 통한 정화를 답했다는 구체적 판정이 놓이고, 왕은 영토 안의 수행자나 바라문을 폄하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합니다.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는 두 부정이며, 침묵을 동의로 읽지 않게 합니다.

묵상

왕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자신의 대응 범위를 분명히 밝혀요. 당장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대화라면, 동의나 거절 전에 사실관계를 더 확인해도 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불만을 말하지 않았고, 그 대답을 받아들이지도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찬성과 반대를 모두 유보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ṁ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ṁ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왕이 막칼리의 답을 평가하고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고 한 뒤, 실제 퇴장 동작을 마무리합니다. `anattamano`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불만을 말로 내지 않았고, 그 대답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았습니다.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는 결말입니다. 뿌라나 방문과 같은 정형이지만 이 카드에는 스승 이름이나 교설이 다시 나오지 않으므로, 왕의 대응 방식 자체가 핵심입니다.

묵상

왕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불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감정과 표현을 구분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해치는 말을 줄일 수 있는 반응은 지금 무엇인가요?

6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주장 6구절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주장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때 아지따 께사깜발리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지따 존자여, 여러 직업의 결실은 … 아지따 존자여,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Ekamidāhaṁ, bhante, samayaṁ yena ajito kesakambal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ajitena kesakambalena saddhiṁ sammodiṁ.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o kho ahaṁ, bhante, ajitaṁ kesakambalaṁ etadavocaṁ: ‘yathā nu kho imāni, bho ajita, puthusippāyatanāni …pe… sakkā nu kho, bho ajit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에게서 떠난 왕이 세 번째로 아지따 께사깜발리를 방문했던 일을 보고합니다. 인사와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 착석 뒤 `bho ajita`를 두 번 써서 직업의 결실과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습니다. 원문의 `…pe…` 한 곳은 앞에서 온전히 제시된 직업 목록과 그 결실의 정형을 줄인 반복 생략이며 한국어와 같은 위치에 남아 있습니다. 이 동일한 질문을 기준으로 다음 아지따의 여러 부정을 평가하게 됩니다.

묵상

왕은 아지따에게도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어요. 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건넬 때, 답을 비교하기 위해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한 표현은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보시·제사·헌공은 뜻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결과도 없습니다. 이 세상과 저세상, 어머니와 아버지, 저절로 태어나는 존재도 없습니다. 바르게 수행하여 이 세상과 저세상을 직접 알고 밝히는 수행자나 바라문도 없습니다.’”

Evaṁ vutte, bhante, ajito kesakambalo maṁ etadavoca: ‘natthi, mahārāja, dinnaṁ, natthi yiṭṭhaṁ, natthi hutaṁ, n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natthi ayaṁ loko, natthi paro loko, natthi mātā, natthi pitā, natthi sattā opapātikā, natthi loke samaṇabrāhmaṇā sammaggatā sammāpaṭipannā, ye imañca lokaṁ parañca lok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 께사깜발리가 왕의 질문에 여러 존재와 행위 결과를 부정하며 답하기 시작합니다. 보시·제사·헌공 세 가지와 선악 행위의 결과, 이 세상·저세상, 어머니·아버지, 저절로 태어나는 존재를 모두 `natthi`로 부정합니다. 끝에서는 두 세계를 직접 알고 밝히는 바르게 수행한 수행자나 바라문도 없다고 합니다. 이는 아지따의 견해를 왕이 인용한 것이며, 부처님이 부모나 행위의 의미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묵상

지금 이 문답의 범위 안에서, “보시·제사·헌공은 뜻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결과도 없습니다”는 아지따의 답으로 제시돼요. 이 문장을 나의 가치 판단으로 옮기기 전에, 화자와 질문을 분명히 표시할 수 있나요?

“‘이 사람은 네 큰 요소로 이루어졌습니다. 죽으면 몸의 땅·물·불·바람은 각각 땅·물·불·바람의 무리로 돌아가고 감각 기관은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네 사람이 들것에 시신을 메어 화장터까지 간 발자국이 남고, 뼈는 비둘기 빛이 되며 제물은 재가 됩니다. 보시라는 것은 어리석은 이들이 정한 말입니다.’”

Cātumahābhūtiko ayaṁ puriso, yadā kālaṁ karoti, pathavī pathavikāyaṁ anupeti anupagacchati, āpo āpokāyaṁ anupeti anupagacchati, tejo tejokāyaṁ anupeti anupagacchati, vāyo vāyokāyaṁ anupeti anupagacchati, ākāsaṁ indriyāni saṅkamanti. Āsandipañcamā purisā mataṁ ādāya gacchanti. Yāvāḷāhanā padāni paññāyanti. Kāpotakāni aṭṭhīni bhavanti, bhassantā āhutiyo. Dattupaññattaṁ yadidaṁ dān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유물론적 답이 죽음 뒤 몸의 해체를 묘사하는 대목입니다. 땅·물·불·바람의 네 요소가 각 요소의 무리로 돌아가고 감각 기관은 허공으로 간다고 하며, `āsandipañcamā purisā`는 죽은 이를 든 들것을 포함해 다섯째가 되는 네 운반자를 가리킵니다. 화장터의 발자국·비둘기 빛 뼈·재가 된 제물을 이은 뒤 보시를 부정하지만, 이는 왕이 전한 아지따의 견해이지 부처님의 결론이 아닙니다.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이 사람은 네 큰 요소로 이루어졌습니다”라는 말부터 화장 장면까지는 아지따의 주장으로 인용돼요. 죽음의 묘사가 힘들면 이 대목은 지금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누가 말했고 누가 다시 전하는지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긍정적인 뜻을 말하는 자들의 주장은 공허하고 거짓된 헛소리입니다.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몸이 무너지면 끊어지고 사라져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지따는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단멸론을 답했습니다.”

Tesaṁ tucchaṁ musā vilāpo ye keci atthikavādaṁ vadanti. Bāle ca paṇḍite ca kāyassa bhedā ucchijjanti vinassanti, na honti paraṁ maraṇā’ti. Itthaṁ kho me, bhante, ajito kesakambal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ucchedaṁ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의 답을 마치고 왕이 그 답을 ‘단멸’이라고 명명하는 자리입니다. `ucchijjanti·vinassanti·na honti`는 몸이 무너지면 끊어지고 사라져 죽은 뒤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 단계의 서술이며,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를 함께 듭니다. 이어 `ucchedaṁ byākāsi`가 이 말의 성격을 분명히 하므로, 부처님의 죽음 이해나 독자의 상태에 대한 판정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아지따는 … 단멸을 답했습니다”라는 왕의 보고가 이 주장의 소유자를 밝혀 줘요. 사라짐을 다루는 문장이 힘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이 말과 뒤에 나올 부처님의 답을 섞지 않고 둘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질문과 대답이 달랐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아지따 께사깜발라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ṁ vā puṭṭho labujaṁ byākareyya, labujaṁ vā puṭṭho ambaṁ byākareyya; evameva kho me, bhante, ajito kesakambal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ucchedaṁ byākāsi.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vijite vasantaṁ apasādetabbaṁ maññeyyā’ti. So kho ahaṁ, bhante, ajitassa kesakambalassa bhāsitaṁ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답에 대한 왕의 평가와 퇴장을 묶는 결론입니다. 망고와 빵나무 열매의 엇갈린 문답 비유 뒤에 `ucchedaṁ byākāsi`, 곧 단멸을 답했다는 판정이 다시 놓여 질문과 답의 불일치를 특정합니다. 왕은 자신의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폄하하지 않으려 했고, `neva … nappaṭikkosiṁ`으로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멸론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다음 방문으로 넘어가는 장면입니다.

묵상

왕은 “아지따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말해 침묵의 뜻을 제한해요. 불편한 주장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을 때, 그 침묵을 동의로 오해하지 않도록 덧붙일 수 있는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불쾌했지만 불쾌하다는 말을 내지 않았고, 그 말을 붙들지도 뒤집지도 않았습니다.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ṁ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ṁ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의 단멸론이 질문과 달랐다고 평가한 뒤, 왕이 그 방문을 마친 방식을 설명하는 마지막 카드입니다. `anattamano`로 불쾌했으나 불쾌하다는 말을 내지 않았고, 그의 말을 붙들지도 뒤집지도 않았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는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는 두 유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는 동작으로 닫힙니다. 이는 아지따의 견해에 동의한 침묵이 아니라 공개 논쟁을 하지 않은 퇴장입니다.

묵상

왕은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라고 대응의 끝을 밝혀요. 어떤 주장에 답하지 않고 대화를 마쳐야 할 때, 침묵을 동의로 오해하지 않게 할 표현은 무엇인가요?

7 빠꾸다 깟짜야나의 주장 7구절

빠꾸다 깟짜야나의 주장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때 빠꾸다 깟짜야나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Ekamidāhaṁ, bhante, samayaṁ yena pakudho kaccāyan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pakudhena kaccāyanena saddhiṁ sammod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세 번째 방문인 빠꾸다 깟짜야나와의 만남을 부처님께 회상하는 시작입니다. 이 카드가 소유한 `sammodiṁ`은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다는 데까지만 이르며,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표현은 다음 원문 키와 다음 카드에 속합니다. 짧은 경계지만 인사와 본 질문 사이를 정확히 나누어, 뒤에 전할 빠꾸다의 견해가 왕이나 부처님의 발화로 섞이지 않게 합니다.

묵상

“빠꾸다 깟짜야나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라는 구절은 만남의 시작만 담고 있어요. 대화의 첫인사와 그 뒤의 중요한 질문을 서두르지 않고 나누어 본다면, 지금 먼저 분명히 할 말은 무엇인가요?

“인사를 마치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깟짜야나 존자여, 여러 직업의 결실은 … 깟짜야나 존자여,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o kho ahaṁ, bhante, pakudhaṁ kaccāyanaṁ etadavocaṁ: ‘yathā nu kho imāni, bho kaccāyana, puthusippāyatanāni …pe… sakkā nu kho, bho kaccāyan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짧은 인사에 이어, 왕이 빠꾸다와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본 질문을 꺼내는 장면입니다. `bho kaccāyana`가 두 번 반복되어 직업의 결실을 예로 드는 앞부분과 수행 생활의 눈앞의 결실을 묻는 끝부분을 각각 빠꾸다에게 향하게 합니다. 원문의 `…pe…` 한 곳은 앞서 이미 온전히 제시한 여러 직업과 그 결실의 정형구를 생략한 것이며, 편집자가 임의로 덜어 낸 문장이 아닙니다.

묵상

왕은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의 범위를 분명히 해요. 긴 배경 설명 뒤에도 상대가 답해야 할 핵심을 한 문장으로 남긴다면, 지금 내 질문은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빠꾸다 깟짜야나는 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만들어지지도 생겨나지도 창조되지도 않은 일곱 실체가 있습니다. 산봉우리와 기둥처럼 굳게 서서 움직이거나 변하거나 서로 방해하지 않고, 서로에게 행복이나 괴로움이나 둘 모두를 줄 수도 없습니다. 일곱은 무엇입니까?’”

Evaṁ vutte, bhante, pakudho kaccāyano maṁ etadavoca: ‘sattime, mahārāja, kāyā akaṭā akaṭavidhā animmitā animmātā vañjhā kūṭaṭṭhā esikaṭṭhāyiṭṭhitā. Te na iñjanti, na vipariṇamanti, na aññamaññaṁ byābādhenti, nālaṁ aññamaññassa sukhāya vā dukkhāya vā sukhadukkhāya vā. Katame satt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의 질문에 빠꾸다 깟짜야나가 일곱 실체론으로 답하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akaṭā·akaṭavidhā·animmitā·animmātā·vañjhā`는 만들어지지 않음·어떤 방식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음·창조되지 않음·창조자가 없음·아무것도 낳지 않음을 차례로 말합니다. 이어 산봉우리와 기둥처럼 굳고 서로 행복·괴로움·둘 모두를 주지 못한다고 한 뒤 ‘어떤 일곱인가’라고 묻습니다. 이는 빠꾸다의 주장이지 부처님의 존재론이 아닙니다.

묵상

“일곱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은 앞에서 한꺼번에 붙인 여러 성질 뒤에 실제 목록이 이어질 것을 알려 줘요. 낯선 주장을 들을 때, 먼저 그 주장이 몇 가지를 말하는지와 각 항목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땅·물·불·바람의 실체와 행복·괴로움·영혼이라는 일곱입니다. 이들은 만들어지지 않고 조성되지 않고 창조되지 않고 창조자 없이 아무것도 낳지 않으며, 산봉우리와 기둥처럼 굳게 서 있습니다. 움직이지도 변하지도 서로 해치지도 않으며 서로에게 행복이나 괴로움이나 둘 모두를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이는 자와 시키는 자, 듣는 자와 들려주는 자, 아는 자와 알게 하는 자도 없습니다.’”

Pathavikāyo, āpokāyo, tejokāyo, vāyokāyo, sukhe, dukkhe, jīve sattame— ime satta kāyā akaṭā akaṭavidhā animmitā animmātā vañjhā kūṭaṭṭhā esikaṭṭhāyiṭṭhitā. Te na iñjanti, na vipariṇamanti, na aññamaññaṁ byābādhenti, nālaṁ aññamaññassa sukhāya vā dukkhāya vā sukhadukkhāya vā. Tattha natthi hantā vā ghātetā vā, sotā vā sāvetā vā, viññātā vā viññāpetā v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어떤 일곱인가’에 답하여 땅·물·불·바람, 행복·괴로움, 영혼을 일곱 실체로 열거합니다. 이어 만들어지지 않음부터 아무것도 낳지 않음까지 다섯 성질과 움직이지 않음·변하지 않음·서로 해치지 않음을 반복하고, 살해자와 시키는 자·듣는 자와 들려주는 자·아는 자와 알게 하는 자가 없다고 세 쌍을 부정합니다. 이는 왕이 인용한 빠꾸다의 교설로, 행위 책임을 없애라는 부처님의 지침이 아닙니다.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죽이는 자와 시키는 자도 없습니다”라는 말은 빠꾸다 깟짜야나의 일곱 실체론 안에 놓여 있어요. 불편하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이 주장을 인용한 왕과 주장한 빠꾸다를 구분해 볼 수 있나요?

“‘날카로운 칼로 남의 머리를 잘라도 누구도 생명을 빼앗지 않습니다. 칼날이 일곱 실체 사이의 틈으로 지나갈 뿐입니다.’ 세존이시여, 빠꾸다는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전혀 다른 것을 답했습니다.”

Yopi tiṇhena satthena sīsaṁ chindati, na koci kiñci jīvitā voropeti; sattannaṁ tveva kāyānamantarena satthaṁ vivaramanupatatī’ti. Itthaṁ kho me, bhante, pakudho kaccāyan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aññena aññaṁ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빠꾸다의 일곱 실체론이 머리를 칼로 베는 극단적 예를 든 뒤, 왕의 평가로 넘어가는 카드입니다. `na koci kiñci jīvitā voropeti`는 누구도 어떤 생명도 빼앗지 않는다는 빠꾸다의 주장이고, 칼날이 일곱 실체 사이의 틈으로 갈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왕은 이를 `aññena aññaṁ byākāsi`, 곧 물은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답했다고 규정합니다. 폭력을 허용하는 부처님의 말이 아니며,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왕은 머리를 베는 예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혀 다른 것을 답했습니다”라고 질문과의 어긋남을 밝혀요. 폭력 묘사가 힘들면 이 대목은 지금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예시와 왕의 평가를 분리해 볼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대답은 물음과 달랐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ṁ vā puṭṭho labujaṁ byākareyya, labujaṁ vā puṭṭho ambaṁ byākareyya; evameva kho me, bhante, pakudho kaccāyan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aññena aññaṁ byākāsi.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vijite vasantaṁ apasādetabbaṁ maññeyy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빠꾸다의 답을 망고와 빵나무 열매의 엇갈린 문답에 견주어 평가하는 대목입니다. 비유 뒤에 `aññena aññaṁ byākāsi`가 다시 나와 ‘물은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답했다’는 구체적 판정을 반복합니다. 이어 왕은 자신의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폄하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하며 공개적인 논박을 삼갑니다. 이는 빠꾸다의 말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과 대답의 불일치를 확인하고 만남을 끝내는 절차입니다.

묵상

왕은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라고 비유한 뒤, 물음과 전혀 다른 답이었다고 다시 짚어요. 대화가 빗나갔다면,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고 원래 질문을 다시 말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빠꾸다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불만스러웠지만 말로 드러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So kho ahaṁ, bhante, pakudhassa kaccāyanassa bhāsitaṁ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ṁ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ṁ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빠꾸다 깟짜야나의 일곱 실체론과 왕의 망고 비유 평가 뒤, 왕이 당시의 반응과 퇴장을 정리합니다.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으로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고, 불만을 말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는 정형은, 머리를 베는 예를 승인했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에 맞지 않는 답과 거리를 두고 방문을 끝낸 행동입니다. 앞의 폭력적 예가 힘들다면 이 결론만 읽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왕은 “빠꾸다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자신의 태도를 제한해요. 앞의 폭력적 예가 힘들면 이 결론만 읽어도 괜찮아요. 동의하지 않음을 차분히 밝히는 말은 무엇인가요?

8 니간타 나타뿟따의 주장 5구절

니간타 나타뿟따의 주장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때 니간타 나타뿟따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Ekamidāhaṁ, bhante, samayaṁ yena nigaṇṭho nāṭaputt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nigaṇṭhena nāṭaputtena saddhiṁ sammod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네 번째 방문인 니간타 나타뿟따와의 만남을 회상하는 시작입니다. 이 카드의 마지막 낱말 `sammodiṁ`은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다는 데까지만 말하며,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쪽에 앉았다는 내용은 다음 카드가 소유합니다. 발화 경계를 이렇게 나누면 만남의 관례적 시작과 뒤의 ‘네 겹 단속’ 답변을 구별할 수 있고, 인사말 자체를 교설의 일부로 오해하지 않게 합니다.

묵상

“니간타 나타뿟따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라는 문장은 만남의 문턱만 보여 줘요. 중요한 의견 차이가 예상되는 대화에서도, 본론과 섞지 않고 먼저 주고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인사는 무엇인가요?

“인사를 마치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악기웨사나 존자여, 여러 직업의 결실은 … 악기웨사나 존자여,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니간타 수행자는 네 겹 단속으로 단속합니다.’”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o kho ahaṁ, bhante, nigaṇṭhaṁ nāṭaputtaṁ etadavocaṁ: ‘yathā nu kho imāni, bho aggivessana, puthusippāyatanāni …pe… sakkā nu kho, bho aggivessan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Evaṁ vutte, bhante, nigaṇṭho nāṭaputto maṁ etadavoca: ‘idha, mahārāja, nigaṇṭho cātuyāmasaṁvarasaṁvu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인사 뒤에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쪽에 앉은 왕이 니간타에게 본 질문을 하는 장면입니다. `bho aggivessana`가 두 번 반복되고, 원문의 `…pe…` 한 곳은 이미 앞서 온전히 제시된 여러 직업과 눈앞의 결실을 줄인 정형 생략입니다. 질문이 끝나자 화자가 니간타로 바뀌어 `mahārāja`라고 왕을 부르며 ‘네 겹 단속’을 답하기 시작하므로, 질문과 인용 답변의 경계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

묵상

왕은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니간타는 “네 겹 단속”으로 답하기 시작해요. 질문과 첫 답이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지, 핵심 명사를 나란히 놓고 살펴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네 겹 단속이란 무엇입니까? 대왕이시여, 니간타 수행자는 단속할 모든 것을 막고, 모든 것에 굴레를 씌우고, 모든 잘못을 털어 내며, 모든 단속으로 가득합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네 겹 단속입니다. 대왕이시여, 이처럼 네 겹으로 단속했을 때 대왕이시여, 그는 자아를 이루고 억제하고 확고히 세운 니간타라 불립니다.’”

Kathañca, mahārāja, nigaṇṭho cātuyāmasaṁvarasaṁvuto hoti? Idha, mahārāja, nigaṇṭho sabbavārivārito ca hoti, sabbavāriyutto ca, sabbavāridhuto ca, sabbavāriphuṭo ca. Evaṁ kho, mahārāja, nigaṇṭho cātuyāmasaṁvarasaṁvuto hoti. Yato kho, mahārāja, nigaṇṭho evaṁ cātuyāmasaṁvarasaṁvuto hoti; ayaṁ vuccati, mahārāja, nigaṇṭho gatatto ca yatatto ca ṭhitatto c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니간타 나타뿟따가 말한 ‘네 겹 단속’의 내용을 왕이 인용하는 핵심 대목입니다. `mahārāja`가 다섯 번 반복되고, 모든 것을 막음·모든 것에 굴레를 씌움·모든 잘못을 털어 냄·모든 단속으로 가득함의 네 설명이 `sabbavāri-` 복합어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네 겹으로 단속한 니간타를 `gatatto·yatatto·ṭhitatto`, 자아를 이루고 억제하고 확고히 세운 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니간타의 자기 규정이며 부처님의 계행 체계와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묵상

“네 겹 단속이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 뒤에 네 설명이 차례로 나와요. 낯선 용어를 들었을 때, 이름만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 구성 항목을 확인하려면 어떤 질문을 덧붙일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니간타 나타뿟따는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네 겹 단속을 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답은 질문과 달랐습니다. 세존이시여,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

Itthaṁ kho me, bhante, nigaṇṭho nāṭaputt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cātuyāmasaṁvaraṁ byākāsi. Seyyathāpi, bhante, ambaṁ vā puṭṭho labujaṁ byākareyya, labujaṁ vā puṭṭho ambaṁ byākareyya; evameva kho me, bhante, nigaṇṭho nāṭaputt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cātuyāmasaṁvaraṁ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니간타 나타뿟따의 답을 전한 뒤 왕이 질문과의 관련성을 평가하는 결론입니다. `cātuyāmasaṁvaraṁ byākāsi`, 곧 ‘네 겹 단속을 답했다’는 문장이 망고와 빵나무 열매의 엇갈린 문답 비유 앞뒤에 똑같이 반복됩니다. 왕은 네 겹 단속 자체의 세부를 여기서 다시 논박하기보다, 자신이 요구한 ‘현세의 수행 결실’이 직접 제시되지 않았다는 문답상의 불일치를 분명히 하고 다음 대목으로 넘어갑니다.

묵상

왕은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네 겹 단속을 답했습니다”라고 답의 내용을 특정해 두 번 말해요. 내 질문과 상대의 답이 어긋났다고 느낄 때, 먼저 각각의 핵심 명사를 한 문장씩 정확히 되짚어 볼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저는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를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불만을 말로 드러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vijite vasantaṁ apasādetabbaṁ maññeyyā’ti. So kho ahaṁ, bhante, nigaṇṭhassa nāṭaputtassa bhāsitaṁ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ṁ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ṁ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니간타의 네 겹 단속이 현세의 수행 결실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았다고 평가한 뒤, 왕이 방문을 마무리합니다. 영토 안의 수행자나 바라문을 폄하하지 않으려 했고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으로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불만을 말로 드러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는 동작이 이어집니다. 이는 네 겹 단속에 대한 승인이나 반박이 아니라 문답의 불일치를 확인한 뒤의 유보입니다.

묵상

본문의 항목을 따라, 왕은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를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한 뒤 찬반을 유보해요. 답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사람을 폄하하지 않으면서, 질문이 남았다고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9 산자야 벨랏타뿟따의 주장 8구절

산자야 벨랏타뿟따의 주장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때 산자야 벨랏타뿟따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Ekamidāhaṁ, bhante, samayaṁ yena sañcayo belaṭṭhaputt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sañcayena belaṭṭhaputtena saddhiṁ sammod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다섯 번째 방문인 산자야 벨랏타뿟따와의 만남을 회상하는 시작입니다. 이 카드가 소유한 `sammodiṁ`은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다는 사실까지만 담고,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와 한쪽에 앉는 동작은 다음 카드로 이어집니다. 짧은 장면을 원문 경계대로 두면 산자야가 뒤에서 보이는 다섯 겹의 회피 답변을 왕의 말이나 부처님의 가르침과 섞지 않고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산자야 벨랏타뿟따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라는 구절은 아직 질문도 대답도 시작하지 않은 장면이에요. 본론에 들어가기 전, 상대와 나 사이에서 먼저 확인하면 대화를 덜 어긋나게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인사를 마치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산자야 존자여, 여러 직업의 결실은 … 산자야 존자여,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o kho ahaṁ, bhante, sañcayaṁ belaṭṭhaputtaṁ etadavocaṁ: ‘yathā nu kho imāni, bho sañcaya, puthusippāyatanāni …pe… sakkā nu kho, bho sañcay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인사에 이어 왕과 산자야가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쪽에 앉은 뒤, 왕이 본 질문을 꺼냅니다. `bho sañcaya`가 두 번 반복되어 직업의 결실을 드는 부분과 현세의 수행 생활 결실을 묻는 부분을 모두 산자야에게 향하게 합니다. 원문의 `…pe…` 한 곳은 앞에서 완전히 제시된 여러 직업과 그 결실을 줄인 정형 생략이며, 그 뒤의 질문 문장은 생략 없이 온전히 제시됩니다.

묵상

왕은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산자야에게 묻고 있어요. 이미 나눈 긴 이야기를 잠시 옆에 두고, 상대에게 꼭 답을 듣고 싶은 질문 하나를 지금 짧고 분명하게 말한다면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산자야는 답했습니다. ‘저세상이 있는지 묻는다면, 있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있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다거나 저렇다거나 다르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도,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Evaṁ vutte, bhante, sañcayo belaṭṭhaputto maṁ etadavoca: ‘atthi paro lokoti iti ce maṁ pucchasi, atthi paro lokoti iti ce me assa, atthi paro lokoti iti te naṁ byākareyyaṁ. Evantipi me no, tathātipi me no, aññathātipi me no, notipi me no, no notipi me n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산자야 벨랏타뿟따가 왕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며, 저세상의 존재 여부를 예로 완전한 회피 정형을 한 번 보여 줍니다. 있다고 생각한다면 있다고 답하겠다고 조건을 붙인 뒤, `evaṁ·tathā·aññathā·no·no no`에 해당하는 그렇다·저렇다·다르다·아니다·아닌 것도 아니다를 모두 말하지 않는다고 다섯 부정을 나열합니다. 이는 산자야의 답변 방식이며, 모른다고 열어 두는 태도 일반을 비난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묵상

현재 보이는 구절만 놓고, 산자야는 저세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다섯 방식 모두로 답하지 않아요. 불확실함을 솔직히 말하는 것과 질문 자체를 계속 피하는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저세상이 없는가 … 있으면서 없는가 …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가 … 저절로 태어나는 존재가 있는가 … 없는가 … 있으면서 없는가 …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가 … 선행과 악행의 결과가 있는가 … 하고 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Natthi paro loko …pe… atthi ca natthi ca paro loko …pe… nevatthi na natthi paro loko …pe… atthi sattā opapātikā …pe… natthi sattā opapātikā …pe… atthi ca natthi ca sattā opapātikā …pe… nevatthi na natthi sattā opapātikā …pe… 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pe…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온전히 제시한 산자야의 다섯 회피 정형을 여러 질문에 적용하여 줄여 적은 부분입니다. 저세상이 없음·있으면서 없음·있지도 없지도 않음의 세 질문, 저절로 태어나는 존재에 관한 네 질문, 선악 행위 결과가 있음이라는 첫 질문 뒤에 원전의 `…pe…`가 모두 여덟 번 놓입니다. 각 생략은 앞 카드와 같은 회피 답변이 반복된다는 뜻이며, 편집자가 내용을 임의로 덜어 낸 표지가 아닙니다.

묵상

이 카드의 `…pe…` 여덟 곳은 앞에서 온전히 나온 다섯 회피 답변이 각 질문마다 반복된다는 표시예요. 생략표를 빈칸으로 여기지 않고, 무엇이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선악 행위의 결과가 없는가 … 있으면서 없는가 …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가 … 여래가 죽은 뒤 존재하는가 … 존재하지 않는가 …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가 …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를 묻는다면, 내가 그렇게 생각할 경우에만 그렇게 답할 것입니다.’”

n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pe… atthi ca natthi ca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pe… nevatthi na n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pe…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pe…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pe…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iti ce maṁ pucchas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iti ce me assa,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ti iti te naṁ byākareyy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산자야의 회피 목록이 선악 행위 결과와 여래의 사후 상태에 관한 질문으로 계속됩니다. 행위 결과가 없음·있으면서 없음·있지도 없지도 않음의 세 경우와, 여래가 죽은 뒤 존재함·존재하지 않음·둘 다임의 세 경우에 원전 `…pe…`가 모두 여섯 번 놓입니다. 마지막 ‘둘 다 아님’ 질문은 생략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할 경우에만 그렇게 답하겠다는 조건을 온전히 제시하여 다음 카드의 다섯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이 카드의 표현을 기준으로, 여섯 생략 뒤 마지막 질문은 “내가 그렇게 생각할 경우에만 그렇게 답할 것입니다”라고 온전히 제시돼요. 반복이 길어도 마지막에 새로 나온 조건 하나를 찾아 본다면 무엇인가요?

“‘그러나 이렇다거나 저렇다거나 다르다고도 말하지 않고, 그렇지 않다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산자야는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말을 이리저리 피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질문과 다른 답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

Evantipi me no, tathātipi me no, aññathātipi me no, notipi me no, no notipi me no’ti. Itthaṁ kho me, bhante, sañcayo belaṭṭhaputt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vikkhepaṁ byākāsi. Seyyathāpi, bhante, ambaṁ vā puṭṭho labujaṁ byākareyya, labujaṁ vā puṭṭho ambaṁ byākareyya; evameva kho me, bhante, sañcayo belaṭṭhaputt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vikkhepaṁ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산자야의 다섯 번째 회피 정형이 끝나고 왕이 답 전체를 평가하는 카드입니다. ‘그렇다·저렇다·다르다·아니다·아닌 것도 아니다’라는 다섯 부정을 마친 뒤 `vikkhepaṁ byākāsi`, 곧 ‘말을 이리저리 피했다’는 판정이 망고와 빵나무 열매 비유 앞뒤에 두 번 반복됩니다. 왕은 견해의 참거짓을 여기서 확정하기보다, 현세의 수행 결실이라는 질문에 응답하지 않은 형식을 짚어 다음 방문의 보고로 넘어갑니다.

묵상

왕은 “말을 이리저리 피했습니다”라고 같은 평가를 두 번 반복해 질문이 답되지 않았음을 밝혀요. 대화에서 여러 말이 오갔지만 핵심이 남아 있다면,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고 다시 확인할 질문은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저는 ‘이 사람이 모든 수행자와 바라문 가운데 가장 어리석고 혼미하구나.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는데 말을 이리저리 피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ayañca imes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bbabālo sabbamūḷho. Kathañhi nām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vikkhepaṁ byākarissatī’ti.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vijite vasantaṁ apasādetabbaṁ maññeyyā’ti. So kho ahaṁ, bhante, sañcayassa belaṭṭhaputtassa bhāsitaṁ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산자야의 다섯 회피와 망고 비유를 마친 뒤, 왕이 그 답에 대한 내적 평가와 외적 대응을 구분해 보고합니다. 마음속으로는 모든 수행자와 바라문 가운데 가장 어리석고 혼미하며 수행 결실을 묻는데 회피한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영토 안의 수행자나 바라문을 공개적으로 폄하하지 않으려 했고, 산자야의 말을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거친 내적 평가는 부처님의 독자 평가가 아닙니다.

묵상

왕은 마음속의 강한 평가와 실제로 한 말을 구분해 보고해요. 어떤 답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 않고 질문이 답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표현하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저는 불만스러웠지만 말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았습니다.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ṁ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ṁ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산자야 방문 보고의 마지막으로, 왕이 불만을 행동으로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정형구로 닫습니다. `anattamano`로 불만스러웠지만 불만의 말을 내지 않았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았습니다.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는 결말은 여섯 스승의 보고 전체를 끝냅니다. 다음부터 세존은 같은 질문에 직접 답하므로, 이 카드는 회피 답변에 대한 승인 없이 비교 자료의 끝을 표시합니다.

묵상

왕은 “불만스러웠지만 말로 드러내지 않았고” 자리에서 떠났어요. 감정이 큰 순간에 결론을 더하지 않고 대화를 끝내야 한다면, 내 안전과 상대의 경계를 함께 지키는 마무리는 무엇인가요?

10 수행 삶의 첫째 눈앞의 결실 9구절

수행 삶의 첫째 눈앞의 결실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세존께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코끼리병·기병·전차병·궁수·기수·부관·보급병·장군·왕자·돌격병·큰 용사·영웅·가죽 갑옷 병사·종의 아들·빵 굽는 이·이발사·목욕 시중·요리사·꽃장식꾼·세탁공·직조공·바구니공·옹기공·회계사·손가락 계산사 등 여러 기술자는 현세의 기술 결실로 살아갑니다. 그 결실로 자신·부모·아내와 자녀·벗과 동료를 편안하고 넉넉하게 하며, 수행자와 바라문에게 하늘과 행복으로 이끄는 보시를 올립니다.”

Sohaṁ, bhante, bhagavantampi pucchāmi: ‘yathā nu kho imāni, bhante, puthusippāyatanāni seyyathidaṁ—hatthārohā assārohā rathikā dhanuggahā celakā calakā piṇḍadāyakā uggā rājaputtā pakkhandino mahānāgā sūrā cammayodhino dāsikaputtā āḷārikā kappakā nhāpakā sūdā mālakārā rajakā pesakārā naḷakārā kumbhakārā gaṇakā muddikā, yāni vā panaññānipi evaṅgatāni puthusippāyatanāni, te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ippaphalaṁ upajīvanti, te tena attānaṁ sukhenti pīṇenti, mātāpitaro sukhenti pīṇenti, puttadāraṁ sukhenti pīṇenti, mittāmacce sukhenti pīṇenti, samaṇabrāhmaṇesu uddhaggikaṁ dakkhiṇaṁ patiṭṭhapenti sovaggikaṁ sukhavipākaṁ saggasaṁvattanik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여섯 스승의 답과 왕의 평가를 모두 보고한 뒤, 왕이 처음의 질문을 세존께 직접 다시 제시합니다. 코끼리병부터 손가락 계산사까지 같은 직업 목록을 생략 없이 되풀이하고, 그들의 현세적 기술 결실이 자신·부모·배우자와 자녀·벗과 동료를 편안하게 하며 수행자와 바라문에게 올리는 보시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반복은 질문의 기준이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하여, 이제 부처님의 답을 앞선 여섯 답과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게 합니다.

묵상

왕은 “저도 세존께 묻습니다”라고 한 뒤 직업의 현세적 결실을 다시 온전히 설명해요. 여러 답을 비교하는 자리에서 처음 세운 기준을 잊지 않으려면, 어떤 핵심 문장을 그대로 남겨 두고 싶은가요?

“세존이시여, 이와 마찬가지로 바로 이 삶에서 눈앞에 확인되는 수행 생활의 결실도 제시할 수 있습니까?” “대왕이시여, 제시할 수 있습니다.”

Sakkā nu kho, bhante,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Sakkā, mahārāj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직업의 결실을 재제시한 뒤, 수행 생활에도 바로 이 삶에서 눈앞에 확인되는 결실을 제시할 수 있는지 세존께 묻습니다.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은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세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수행의 결실을 강조합니다. 세존은 `Sakkā, mahārāja`, 곧 ‘제시할 수 있습니다’라고 짧게 확답합니다. 앞선 여섯 스승과 달리 질문 자체를 먼저 받아들인 이 응답이 두 구체적 사례를 엽니다.

묵상

세존은 “대왕이시여, 제시할 수 있습니다”라고 왕의 질문에 먼저 직접 답해요. 긴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가능 여부를 분명히 말해야 하는 질문이라면, 지금 첫 문장은 어떻게 답할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러면 내가 되묻겠으니 원하는 대로 답하십시오. 대왕이시여, 그대에게 일찍 일어나 늦게 자며 명령을 따르고 마음에 들게 행동하고 부드럽게 말하며 얼굴을 살피는 종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생각합니다. ‘공덕의 행로와 결과는 참 놀랍다.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Tena hi, mahārāja, taññevettha paṭipucchissāmi.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ṁ byākareyyās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idha te assa puriso dāso kammakāro pubbuṭṭhāyī pacchānipātī kiṅkārapaṭissāvī manāpacārī piyavādī mukhullokako. Tassa evamassa: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puññānaṁ gati, puññānaṁ vipāko. Ayañhi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manusso; ahampi manuss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부처님이 왕에게 첫 번째 눈앞의 수행 결실을 설명하기 위해, 왕의 종을 사례로 되묻기 시작합니다. `yathā te khameyya`는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대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답하라’는 뜻이며, 종은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명령을 따르고 마음에 들게 행동하고 부드럽게 말하며 얼굴을 살피는 사람으로 규정됩니다. `acchariyaṁ`과 `abbhutaṁ` 두 감탄은 공덕의 행로와 결과가 ‘놀랍고 경이롭다’는 인식을 강조합니다.

묵상

종은 왕과 자신이 모두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공덕의 행로와 결과는 놀랍고 경이롭다”고 생각해요. 역할이나 지위의 차이를 잠시 내려놓았을 때, 서로에게 똑같이 보이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왕은 신처럼 감각적 즐거움의 다섯 가닥을 누리지만 나는 일찍 일어나 늦게 자며 명령을 따르고 왕의 얼굴을 살피는 종이다. 나도 공덕을 지어야겠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떨까?’”

Ayañhi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ti, devo maññe. Ahaṁ panamhissa dāso kammakāro pubbuṭṭhāyī pacchānipātī kiṅkārapaṭissāvī manāpacārī piyavādī mukhullokako. So vatassāhaṁ puññāni kareyyaṁ. Yannūnā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부처님이 든 첫 사례에서 왕의 종이 자신의 처지와 출가 가능성을 생각하는 독백입니다. 왕과 자신이 모두 사람이라는 전제 아래, 왕은 `pañcahi kāmaguṇehi`인 감각적 즐거움의 다섯 가닥을 누리지만 자신은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명령에 응하고 왕의 얼굴을 살피는 종이라고 대조합니다. 이어 자신도 공덕을 짓겠다고 하며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집을 떠날 가능성을 스스로 묻습니다.

묵상

종은 “왕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라는 생각에서 자신의 다음 선택을 바라봐요. 지금의 역할이나 처지가 나 전체를 규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가능한 작은 선택은 무엇인가요?

“뒤에 그는 실제로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출가합니다. 몸·말·마음을 단속하고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하며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깁니다.”

So aparena samayena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 So evaṁ pabbajito samāno kāyena saṁvuto vihareyya, vācāya saṁvuto vihareyya, manasā saṁvuto vihareyya, ghāsacchādanaparamatāya santuṭṭho, abhirato paviveke.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출가를 생각한 왕의 종이 뒤에 실제로 그 선택을 실행하고, 출가 뒤 생활의 특징까지 제시하는 대목입니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 뒤, 몸·말·마음의 세 영역을 단속합니다. 이어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하고 `paviveka`,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긴다고 합니다. 생각에서 행동으로 옮긴 사실과 그 뒤의 수행 생활이 이어져 첫 눈앞의 결실을 왕이 판단할 근거를 만듭니다.

묵상

그는 “몸·말·마음을 단속하고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하며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깁니다”라고 달라진 생활을 보여 줘요. 새로운 선택이 실제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은 무엇인가요?

“대왕의 사람들이 보고합니다. ‘대왕이시여, 일찍 일어나 늦게 자며 명령을 따르고 부드럽게 말하던 그 종이 출가했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집을 떠났습니다.’”

Tañce te purisā evamāroceyyuṁ: ‘yagghe, deva, jāneyyāsi, yo te so puriso dāso kammakāro pubbuṭṭhāyī pacchānipātī kiṅkārapaṭissāvī manāpacārī piyavādī mukhullokako; so, deva,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종이 출가한 뒤 왕의 사람들이 그 변화를 왕에게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보고는 그를 종과 일꾼으로 부르고, 일찍 일어남·늦게 잠듦·명령에 응함·마음에 들게 행동함·부드럽게 말함·얼굴을 살핌이라는 여섯 특징을 다시 열거합니다. 이어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집을 떠났다고 두 번 `deva`로 왕에게 알립니다. 과거 역할과 현재 선택을 함께 제시해 왕의 다음 판단이 정보에 근거하게 합니다.

묵상

왕의 사람들은 “그 종이 출가했습니다”라고 과거 역할과 현재 변화를 함께 보고해요. 누군가의 변화를 전할 때, 이전의 평가보다 지금 확인된 행동을 중심에 두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그는 출가하여 몸·말·마음을 단속하고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하며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깁니다.’ 그때 그 사람을 다시 불러 예전처럼 종으로 일하게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So evaṁ pabbajito samāno kāyena saṁvuto viharati, vācāya saṁvuto viharati, manasā saṁvuto viharati, ghāsacchādanaparamatāya santuṭṭho, abhirato paviveke’ti. Api nu tvaṁ evaṁ vadeyyāsi: ‘etu me, bho, so puriso, punadeva hotu dāso kammakāro pubbuṭṭhāyī pacchānipātī kiṅkārapaṭissāvī manāpacārī piyavādī mukhullokako’”ti? “No hetaṁ, bhante.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의 종이 출가하여 몸·말·마음을 단속하고 음식과 옷에 만족하며 홀로 있기를 즐긴다는 보고 뒤, 부처님이 왕의 반응을 묻는 대목입니다. `bho`로 그 사람을 직접 부르는 말과 함께 일찍 일어남·늦게 잠듦·명령에 응답함·마음에 들게 행동함·부드럽게 말함·얼굴을 살핌이라는 종의 여섯 특징이 다시 온전히 반복됩니다. 왕의 `No hetaṁ`은 그를 예전 종의 자리로 되돌리지 않겠다는 분명한 부정입니다.

묵상

왕은 출가한 사람을 다시 예전의 종으로 일하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답해요. 누군가의 달라진 선택을 과거 역할로만 판단하지 않으려면, 지금 새로 확인해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요?

“오히려 그에게 절하고 일어나 맞으며 자리를 권하고, 가사·탁발 음식·거처·병에 필요한 약과 물품을 받으라고 청하며 올바르게 지키고 보호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렇다면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Atha kho naṁ mayameva abhivādeyyāmapi, paccuṭṭheyyāmapi, āsanenapi nimanteyyāma, abhinimanteyyāmapi naṁ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ehi, dhammikampissa rakkhāvaraṇaguttiṁ saṁvidaheyyāmā”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yadi evaṁ sante hoti vā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no v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출가한 종을 예전 자리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한 왕이, 오히려 어떻게 존중하고 지원할지 답합니다. 절하고 일어나 맞으며 자리를 권하는 세 예우 뒤에 가사·탁발 음식·거처·병에 필요한 약과 물품의 네 필수품을 제공하고, 정당한 보호를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세존은 이 답을 받아 `hoti vā … no vā`, 그렇다면 현세의 수행 결실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습니다. 사회적 대우의 실제 변화를 첫 결실의 판정 기준으로 삼습니다.

묵상

지금 텍스트 안에서, 왕은 출가한 사람에게 “절하고 일어나 맞으며 자리를 권하겠습니다”라고 대우의 변화를 말해요. 누군가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뜻을 실제 행동 하나로 보여 준다면 무엇이 가능할까요?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분명히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이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내가 제시한 첫째 눈앞의 수행 결실입니다.”

“Addhā kho, bhante, evaṁ sante hoti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n”ti. “Idaṁ kho te, mahārāja, mayā paṭhamaṁ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tt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부처님의 종 사례를 들은 왕이 현세에서 보이는 수행 생활의 결실이 분명히 있다고 인정하고, 세존이 첫 사례의 지위를 확정합니다. 왕의 `addhā`는 ‘분명히’라는 강한 확인이고, 세존은 이를 `paṭhamaṁ`, 첫째 눈앞의 결실이라고 명명합니다. 내용은 출가자의 내적 성취를 추측한 것이 아니라, 이전의 종이라도 출가 뒤에는 왕이 예경하고 필수품과 보호를 제공하겠다는 현재의 사회적 변화가 직접 보이는 결실이라는 데 있습니다.

묵상

차분히 본문의 순서대로, 왕은 “분명히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이 있습니다”라고 자신이 인정한 결과를 말해요. 설명을 들은 뒤 처음 생각과 달리 분명해진 사실 한 가지가 지금 있나요?

11 수행 삶의 둘째 눈앞의 결실 6구절

수행 삶의 둘째 눈앞의 결실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또 다른 눈앞의 결실도 제시할 수 있습니까?” “대왕이시여, 할 수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다시 되물을 테니 원하는 대로 답하십시오. 대왕이시여, 그대에게 농사를 지으며 재산을 모으는 집안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공덕의 행로와 결과는 참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Sakkā pana, bhante, aññampi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Sakkā, mahārāja. Tena hi, mahārāja, taññevettha paṭipucchissāmi.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ṁ byākareyyās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idha te assa puriso kassako gahapatiko karakārako rāsivaḍḍhako. Tassa evamassa: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puññānaṁ gati, puññānaṁ vipāk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첫 사례와 같은 또 하나의 눈앞의 결실을 요청하자, 부처님이 농부인 집안사람을 두 번째 사례로 듭니다. `yathā te khameyya`는 왕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답하라는 말이고, `kassako·gahapatiko·karakārako·rāsivaḍḍhako`는 농사짓고 집안을 꾸리며 일하고 재산을 늘리는 네 측면을 열거합니다. `acchariyaṁ`과 `abbhutaṁ`은 공덕의 행로와 결과가 놀랍고 경이롭다는 두 감탄입니다.

묵상

집안사람은 “공덕의 행로와 결과는 놀랍고 경이롭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살펴요. 지금 익숙한 역할을 계속하면서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을 더 분명히 보여 줄 수 있는 작은 선택은 무엇인가요?

“‘아자따삿뚜 왕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지만 왕은 신처럼 감각적 즐거움의 다섯 가닥을 누리고, 나는 농사와 일로 재산을 모으는 집안사람이다. 나도 공덕을 지어야겠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출가하면 어떨까?’”

Ayañhi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manusso, ahampi manusso. Ayañhi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ti, devo maññe. Ahaṁ panamhissa kassako gahapatiko karakārako rāsivaḍḍhako. So vatassāhaṁ puññāni kareyyaṁ. Yannūnā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둘째 눈앞의 결실 사례에서 농사짓는 집안사람이 자신의 처지와 출가를 생각하는 독백입니다. 왕과 자신이 모두 사람이라고 한 뒤, 왕은 감각적 즐거움의 다섯 가닥을 신처럼 누리지만 자신은 `kassako·gahapatiko·karakārako·rāsivaḍḍhako`, 농부·집안사람·일하는 사람·재산을 늘리는 사람이라고 네 측면으로 대조합니다. 이어 자신도 공덕을 지어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출가할 가능성을 묻습니다.

묵상

이 대목에 적힌 말만으로, 집안사람은 “아자따삿뚜 왕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라고 공통점을 확인해요. 지위나 재산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사람으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 하나는 무엇인가요?

“뒤에 그는 많거나 적은 재산과 친족을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출가합니다. 몸·말·마음을 단속하고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하며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깁니다.”

So aparena samayena appaṁ vā bhogakkhandhaṁ pahāya mahantaṁ vā bhogakkhandhaṁ pahāya, appaṁ vā ñātiparivaṭṭaṁ pahāya mahantaṁ vā ñātiparivaṭṭaṁ pahāya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 So evaṁ pabbajito samāno kāyena saṁvuto vihareyya, vācāya saṁvuto vihareyya, manasā saṁvuto vihareyya, ghāsacchādanaparamatāya santuṭṭho, abhirato paviveke.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농사와 재산을 돌보던 집안사람이 출가 결심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둘째 사례입니다. 재산이 적든 많든, 친족 무리가 작든 크든 버렸다는 두 쌍의 표현이 먼저 나오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이어 몸·말·마음의 세 단속,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함,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김이 붙습니다. 첫 사례와 달리 재산과 친족을 떠난 조건을 분명히 하여 둘째 결실의 별도 근거를 만듭니다.

묵상

그는 “많거나 적은 재산과 친족을 버리고” 출가했다고 서술돼요. 이 대목을 일반 독자에게 같은 선택을 요구하는 말로 바꾸지 않고, 이 사례의 인물이 실제로 내려놓은 두 범주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대왕의 사람들이 보고합니다. ‘대왕이시여, 농사를 지으며 일하고 재산을 모으던 그 사람이 출가했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는 몸·말·마음을 단속하고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하며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깁니다.’”

Tañce te purisā evamāroceyyuṁ: ‘yagghe, deva, jāneyyāsi, yo te so puriso kassako gahapatiko karakārako rāsivaḍḍhako; so deva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So evaṁ pabbajito samāno kāyena saṁvuto viharati, vācāya saṁvuto viharati, manasā saṁvuto viharati, ghāsacchādanaparamatāya santuṭṭho, abhirato pavivek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농부인 집안사람이 출가한 뒤 왕의 사람들이 그 변화를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kassako·gahapatiko·karakārako·rāsivaḍḍhako`의 네 표현으로 이전 생활을 다시 밝히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출가한 사실을 왕에게 알립니다. 이어 몸·말·마음의 세 단속,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함,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김을 보고합니다. 이전 역할과 현재 생활을 모두 제시하여 왕이 강제 귀환이 아닌 존중을 선택할 조건을 갖춥니다.

묵상

왕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일하고 재산을 모으던 그 사람이 출가했습니다”라고 확인된 변화를 보고해요. 누군가의 선택을 전할 때 추측을 덧붙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요?

“그를 다시 불러 예전처럼 농사와 일로 재산을 모으게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오히려 절하고 일어나 맞으며 자리와 가사·음식·거처·약을 드리고 지키겠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Api nu tvaṁ evaṁ vadeyyāsi: ‘etu me, bho, so puriso, punadeva hotu kassako gahapatiko karakārako rāsivaḍḍhako’”ti? “No hetaṁ, bhante. Atha kho naṁ mayameva abhivādeyyāmapi, paccuṭṭheyyāmapi, āsanenapi nimanteyyāma, abhinimanteyyāmapi naṁ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ehi, dhammikampissa rakkhāvaraṇaguttiṁ saṁvidaheyyāmā”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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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출가한 집안사람을 다시 예전 역할로 돌려보낼지 묻고, 왕이 어떻게 대우할지를 답하는 두 번째 사례의 결론입니다. 질문은 `bho`라고 그를 부르며 농부·집안사람·일하는 사람·재산을 늘리는 사람이라는 네 표현을 다시 반복합니다. 왕은 부정한 뒤 절하고 일어나 맞으며 자리와 가사·음식·거처·병의 약을 제공하고 정당한 보호를 마련하겠다고 열거합니다. 이는 강제 귀환보다 바뀐 삶을 존중하는 눈앞의 결실입니다.

묵상

왕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한 뒤, 오히려 절하고 맞이하며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보호하겠다고 답해요. 누군가의 새로운 선택을 존중한다면, 붙잡아 되돌리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지원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분명히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내가 제시한 둘째 눈앞의 수행 결실입니다.”

Yadi evaṁ sante hoti vā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no vā”ti? “Addhā kho, bhante, evaṁ sante hoti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n”ti. “Idaṁ kho te, mahārāja, mayā dutiyaṁ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tt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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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왕이 출가한 집안사람을 예우하고 지원하겠다고 답한 뒤, 부처님이 둘째 사례의 결론을 묻고 확정합니다. `hoti vā … no vā`라는 있음과 없음의 질문에 왕은 `addhā`, 분명히 현세의 결실이 있다고 답합니다. 세존은 이를 `dutiyaṁ`, 둘째 눈앞의 수행 결실이라고 명명합니다. 첫째가 종의 신분 변화였다면 둘째는 재산을 늘리던 집안사람도 출가 뒤 왕의 존중과 지원을 받는 사회적 변화로 구별됩니다.

묵상

현재 확인되는 범위에서, 세존은 “이것이 내가 제시한 둘째 눈앞의 수행 결실입니다”라고 순서를 분명히 해요. 두 사례가 비슷해 보여도, 첫째와 둘째를 구분해 주는 인물의 이전 처지는 각각 무엇인가요?

12 더 뛰어난 결실 6구절

더 뛰어난 결실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도 제시할 수 있습니까?” “대왕이시여, 할 수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잘 듣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내가 말하겠습니다.” 왕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답했다.

“Sakkā pana, bhante, aññampi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ṁ 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ā”ti? “Sakkā, mahārāja. Tena hi, mahārāja, suṇohi, sādhukaṁ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to paccasso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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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왕이 첫째와 둘째 눈앞의 결실을 인정한 뒤, 그것들보다 `abhikkantatara` 더 뛰어나고 `paṇītatara` 더 훌륭한 결실도 있는지 묻습니다. 세존은 가능하다고 답하고 `suṇohi, sādhukaṁ manasi karohi`, 잘 듣고 주의 깊게 마음에 새기라고 한 뒤 말하겠다고 합니다. 왕은 `Evaṁ, bhante`,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합니다. 짧은 문답이 사회적 결실에서 계행·삼매·앎으로 이어지는 긴 점진 수행 설명의 청취 조건을 세웁니다.

묵상

세존은 “잘 듣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내가 말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왕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해요. 중요한 설명을 듣기 전에, 지금 주의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조건은 무엇인가요?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여래·아라한·완전히 깨달은 부처가 세상에 나타나 앎과 실천을 갖추고 잘 가며 세상을 알고 길들일 사람을 이끄는 위없는 스승이 된다. 그는 신·악마·범천과 수행자·바라문·신·인간이 있는 이 세상을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알린다.”

Bhagavā etadavoca: “idha, mahārāja,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 So imaṁ lokaṁ sadevakaṁ samārakaṁ sabrahmakaṁ sassamaṇabrāhmaṇiṁ pajaṁ sadevamanuss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두 가지 눈앞의 결실을 인정한 왕이 더 뛰어난 결실을 묻자, 부처님이 점진적 수행의 본론을 여는 대목입니다. 여래에게 붙는 아홉 표현은 여래·아라한·완전히 깨달은 이·앎과 실천을 갖춘 이·잘 간 이·세상을 아는 이·길들일 사람을 이끄는 위없는 이·신과 인간의 스승·깨달은 세존입니다. 이어 신·마라·범천, 수행자·바라문, 신·인간의 세계를 스스로 알고 실현해 알린다고 하며 가르침의 권위를 선언합니다.

묵상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알린다”는 구절은 이어질 수행 단계가 전해 들은 주장만은 아니라는 구조를 세워요. 어떤 가르침이나 조언을 들을 때, 말한 이의 권위와 내가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어떻게 나누어 살펴볼 수 있나요?

“그는 처음도 중간도 끝도 훌륭하고 뜻과 표현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며, 완전하고 깨끗한 청정한 삶을 밝힌다. 집안사람이나 그 자녀가 그 가르침을 듣고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어 생각한다. ‘가정생활은 비좁고 먼지 나는 길이며 출가는 탁 트여 있다.’”

So dhammaṁ deseti ādikalyāṇaṁ majjhekalyāṇaṁ pariyosānakalyāṇaṁ sātthaṁ sabyañjanaṁ,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brahmacariyaṁ pakāseti. Taṁ dhammaṁ suṇāti gahapati vā gahapatiputto vā aññatarasmiṁ vā kule paccājāto. So taṁ dhammaṁ sutvā tathāgate saddhaṁ paṭilabhati. So tena saddhāpaṭilābhena samannāgato iti paṭisañcikkhati: ‘sambādho gharāvāso rajopatho, abbhokāso pabbajj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여래의 아홉 호칭과 직접 앎을 밝힌 뒤, 그가 어떤 가르침을 설하고 청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설명합니다. 가르침은 처음·중간·끝의 세 단계가 훌륭하고 뜻과 표현을 함께 갖추며, 완전하고 깨끗한 청정한 삶을 밝힙니다. 이를 들은 집안사람이나 그 자녀가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어 `sambādho gharāvāso rajopatho, abbhokāso pabbajjā`, 가정생활은 비좁고 먼지 나는 길이며 출가는 탁 트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침을 들음에서 선택의 숙고로 흐름이 옮겨 갑니다.

묵상

그는 가르침을 들은 뒤 “가정생활은 비좁고 먼지 나는 길이며 출가는 탁 트여 있다”고 자신의 조건을 살펴요. 이 문장을 보편 명령으로 삼지 않고, 이 인물의 숙고를 이루는 대조 두 가지는 무엇인가요?

“‘집에 살면서 조개껍데기처럼 맑고 완전하고 깨끗한 청정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떨까?’”

Nayidaṁ sukaraṁ agāraṁ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ṁ ekantaparisuddhaṁ saṅkhalikhitaṁ brahmacariyaṁ carituṁ. Yannūnāhaṁ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eyy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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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가정생활과 출가를 대조한 집안사람의 숙고가 더 구체적인 결심으로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집에 살면서 `ekantaparipuṇṇaṁ ekantaparisuddhaṁ saṅkhalikhitaṁ`, 한결같이 완전하고 한결같이 깨끗하며 조개껍데기처럼 맑은 청정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이어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떨지 스스로 묻습니다. 이는 경 속 인물의 선택 과정이지 모든 독자에게 출가를 요구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묵상

이 사람은 “집에 살면서 … 완전하고 깨끗한 청정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고 자신의 조건을 판단해요. 같은 결론을 요구받지 않으면서, 지금 내 생활에서 어렵다고 솔직히 인정할 수 있는 한 조건은 무엇인가요?

“뒤에 그는 많거나 적은 재산과 친족 무리를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으며 황토색 옷을 입어 집을 떠나 출가한다.”

So aparena samayena appaṁ vā bhogakkhandhaṁ pahāya mahantaṁ vā bhogakkhandhaṁ pahāya appaṁ vā ñātiparivaṭṭaṁ pahāya mahantaṁ vā ñātiparivaṭṭaṁ pahāya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출가를 숙고한 집안사람이 뒤에 실제로 결심을 실행하는 짧은 장면입니다. 재산이 적거나 많음, 친족 무리가 작거나 큼이라는 두 쌍을 모두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어 `agārasmā anagāriyaṁ`,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생각과 행동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다음 카드에서 계율의 단속부터 만족까지 출가 뒤 훈련의 전체 골격을 제시할 준비를 합니다. 일반 독자에게 동일한 포기를 지시하는 문장은 아닙니다.

묵상

“뒤에 그는 많거나 적은 재산과 친족 무리를 버리고 … 출가한다”는 문장은 이 인물의 실행을 기록해요. 내 선택과 동일시하지 않고, 숙고에서 실제 행동으로 달라진 한 지점만 찾을 수 있나요?

“출가한 그는 계율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실과 활동 영역을 갖추며 작은 잘못에서도 두려움을 본다. 수행 규칙을 받아 지키고 몸과 말의 능숙한 행위를 갖추며 생계를 깨끗이 한다. 계행을 갖추고 감각의 문을 지키며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고 만족한다.”

So evaṁ pabbajito samāno pātimokkhasaṁvarasaṁ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kāyakammavacīkammena samannāgato kusalena, parisuddhājīvo sīlasampanno, indriyesu guttadvāro,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santuṭṭh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재가자가 가르침을 듣고 출가한 뒤, 본격적인 계행 설명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행의 골격을 한 문장에 모은 요약입니다. 계율의 단속, 행실과 활동 영역, 작은 잘못을 경계함, 수행 규칙을 받아 배움, 몸과 말의 선한 행위, 깨끗한 생계, 계행, 감각의 문 지킴,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 만족이 차례로 놓입니다. `kusalena`는 기술적으로 능숙하다는 뜻보다 몸과 말의 행위가 윤리적으로 선하다는 뜻으로 읽어야 뒤의 계목과 맞습니다.

묵상

요약은 “몸과 말의 선한 행위를 갖추며 생계를 깨끗이 한다”는 항목을 감각 단속과 마음챙김보다 앞에 놓아요. 지금 내 말이나 행동 가운데 결과를 살펴보고 더 선한 쪽을 고를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13 짧은 계행 7구절

짧은 계행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대왕이시여, 수행자는 어떻게 계행을 갖추는가? 대왕이시여, 살아 있는 존재를 죽이지 않고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아 모든 생명에게 연민을 품는다. 이것이 그의 계행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주어진 것만 받아 도둑질 없이 깨끗하게 산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sīlasampanno hoti? Idha, mahārāja, bhikkhu pāṇātipātaṁ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vihara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Adinnādānaṁ pahāya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dinnādāyī dinnapāṭikaṅkhī, athenena sucibhūtena attanā vihara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점진적 수행의 첫 세부인 계행에서, 살생과 주지 않은 것을 취하는 행위를 차례로 다룹니다. 살생을 버린 사람은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을 뿐 아니라 `lajjī`로서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로서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이익을 자비롭게 살핍니다. 이어 주어진 것만 받고 훔치지 않아 자신을 깨끗이 지킨다고 하며, 하지 않음과 적극적 태도를 함께 계행으로 제시합니다.

묵상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아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이익을 자비롭게 살핀다”는 말은 멈춤과 돌봄을 함께 두어요. 오늘 한 선택에서 해를 줄인 부분과 누군가의 이익을 살핀 부분을 각각 하나씩 찾을 수 있나요?

“청정하지 않은 성행위를 버리고 성행위를 멀리하며 청정하게 산다. 이것이 그의 계행이다. 거짓말을 버리고 참을 말하며 진실을 지키고 정직하고 믿을 만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Abrahmacariyaṁ pahāya brahmacārī hoti ārācārī virato methunā gāmadhammā. Idampissa hoti sīlasmiṁ. Musāvādaṁ pahāya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saccavādī saccasandho theto paccayiko avisaṁvādako lokassa.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짧은 계행에서 살생과 절도를 다룬 뒤, 성행위와 거짓말을 삼가는 두 항목을 이어 제시합니다. `abrahmacariyaṁ pahāya`는 청정하지 않은 성행위를 버려 성행위를 멀리하고 청정하게 산다는 출가자의 독신 계율입니다. 거짓말에서는 참을 말함·진실을 지킴·정직함·믿을 만함·세상을 속이지 않음의 다섯 적극적 성질이 뒤따릅니다. 두 단락 모두 `Idampissa hoti sīlasmiṁ`, 이것도 그의 계행이라는 결론으로 닫힙니다.

묵상

거짓말을 버린 사람은 “참을 말하며 진실을 지키고 정직하고 믿을 만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고 설명돼요. 지금 전하려는 말에서 사실과 다르게 보이게 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이간하는 말을 버린다. 이쪽에서 들은 말로 저쪽 사람들을 갈라놓지 않고, 저쪽에서 들은 말로 이쪽 사람들을 갈라놓지 않는다. 갈라진 이들을 화해시키고 화합한 이들을 북돋우며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Pisuṇaṁ vācaṁ pahāy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ito sutvā na amutra akkhātā imesaṁ bhedāya; amutra vā sutvā na imesaṁ akkhātā, amūsaṁ bhedāya. Iti bhinnānaṁ vā sandhātā, sahitānaṁ vā anuppadātā, samaggārāmo samaggarato samagganandī samaggakaraṇiṁ vācaṁ bhāsitā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거짓말을 삼가는 항목 뒤에, 이간하는 말을 버리고 화합을 만드는 말로 나아갑니다. 이쪽에서 들은 말을 저쪽 사람들을 갈라놓으려고 전하지 않고, 저쪽에서 들은 말도 이쪽을 갈라놓으려고 전하지 않는 두 대칭이 먼저 놓입니다. 이어 갈라진 이들을 화해시키고 이미 화합한 이들을 북돋우며 화합을 즐기고 기뻐하고 이루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단순한 침묵보다 관계를 가르지 않고 잇는 적극적 말의 계행을 밝힙니다.

묵상

지금 인용의 낱말을 따라, 본문은 “갈라진 이들을 화해시키고 화합한 이들을 북돋운다”고 말해요. 누군가에게 들은 말을 옮기기 전에, 그 말이 관계를 더 가를지 잇는 데 보탤지 지금 확인할 수 있나요?

“거친 말을 버리고 부드럽고 귀에 즐거우며 사랑스럽고 마음에 닿고 예의 바르며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말을 한다. 쓸모없이 늘어놓는 말을 버리고 때에 맞고 참되며 뜻 있고 가르침과 수행 규범에 맞는 말을 한다. 알맞은 때에 근거 있고 한계가 있으며 이로운 말을 한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Pharusaṁ vācaṁ pahāya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yā sā vācā nelā kaṇṇasukhā pemanīyā hadayaṅgamā porī bahujanakantā bahujanamanāpā tathārūpiṁ vācaṁ bhāsitā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Samphappalāpaṁ pahāya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kālavādī bhūtavādī atthavādī dhammavādī vinayavādī, nidhānavatiṁ vācaṁ bhāsitā hoti kālena sāpadesaṁ pariyantavatiṁ atthasaṁhitaṁ.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바른 말의 네 갈래 가운데 거친 말과 쓸모없이 늘어놓는 말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거친 말을 버린 뒤 부드럽고 귀에 즐거우며 사랑스럽고 마음에 닿고 예의 바르며 많은 이가 좋아하는 말을 열거합니다. 이어 때에 맞고 사실에 맞으며 뜻·가르침·수행 규범에 맞는 말, `nidhānavatiṁ` 곧 간직할 만한 말, 때와 근거와 한계가 있고 이익에 이어지는 말을 제시합니다. 단순히 듣기 좋은 말만을 권한 목록이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말을 “때에 맞고 근거 있으며 한계가 있고 이로운가”까지 살펴요. 지금 전하려는 말 하나를 떠올렸을 때, 사실성과 시기와 이로움 가운데 먼저 확인하고 싶은 기준은 무엇인가요?

“씨앗과 식물을 해치지 않고 … 하루 한때만 먹으며 밤과 때 아닌 때의 음식을 삼간다. 춤·노래·연주·구경거리, 꽃장식·향·화장, 높고 호화로운 침상을 삼간다. 금과 은, 날곡식과 날고기를 받지 않는다.”

Bījagāmabhūtagāmasamārambhā paṭivirato hoti …pe… ekabhattiko hoti rattūparato virato vikālabhojanā. Naccagītavāditavisūkadassanā paṭivirato hoti. Mālāgandhavilepanadhāraṇa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 paṭivirato hoti. Uccāsayanamahāsayanā paṭivirato hoti. Jātarūparajat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Āmakadhaññ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Āmakamaṁs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말의 계행을 마친 뒤, 음식·오락·장식·침상·재물 수수에 관한 짧은 계행을 압축해 이어 갑니다. 씨앗과 식물을 해치지 않는 항목 다음의 원전 `…pe…` 한 곳은 앞 계목의 반복 정형을 줄인 표시입니다. 하루 한 끼와 때 아닌 음식, 춤·노래·연주·구경, 꽃장식·향·화장, 높고 큰 침상, 금은·날곡식·날고기의 수수를 차례로 삼갑니다. 이 목록은 당시 수행자의 생활 규범이며 일반 독자에게 같은 식사법이나 소유 제한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묵상

“하루 한때만 먹으며 밤과 때 아닌 때의 음식을 삼간다”는 말은 이 경에서 수행자의 생활 계율로 제시돼요. 내 식사나 소유를 평가하는 질문으로 바꾸지 않고, 규정의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여자와 소녀, 여자 종과 남자 종, 염소와 양, 닭과 돼지, 코끼리·소·말과 암말, 밭과 토지를 받지 않는다. 심부름과 전갈, 사고파는 일을 삼간다.”

Itthikumārik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Dāsidās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Ajeḷak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Kukkuṭasūkar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Hatthigavassavaḷav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Khettavatthu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Dūteyyapahiṇagamanānuyogā paṭivirato hoti. Kayavikkayā paṭivir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짧은 계행의 수수와 거래 항목이 사람·동물·토지에서 심부름과 매매로 이어집니다. 여자와 소녀, 여자 종과 남자 종, 염소와 양, 닭과 돼지, 코끼리·소·말·암말, 밭과 토지의 여섯 묶음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어 심부름과 전갈을 다니는 일, 사고파는 일을 삼갑니다. 이는 사람과 동물을 재산처럼 수수하던 당시 항목을 포함한 수행자의 소유·생계 제한으로, 오늘의 인간관계를 소유 대상으로 해석하는 말이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사람과 동물과 토지를 “받지 않는다”고 한 뒤 심부름과 매매도 삼간다고 해요. 이 목록이 출가자의 소유와 생계 범위를 정한 것임을 확인하면, 적용 대상을 어디까지로 한정할 수 있나요?

“저울·금속·치수를 속이는 일, 뇌물·사기·기만·속임수, 절단·살해·결박·납치·약탈·폭력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Tulākūṭakaṁsakūṭamānakūṭā paṭivirato hoti. Ukkoṭanavañcananikatisāciyogā paṭivirato hoti. Chedanavadhabandhanaviparāmosaālopasahasākār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짧은 계행의 마지막에서 거래의 속임과 강압적 폭력을 함께 열거합니다. 저울·금속·치수의 속임 세 가지, 뇌물·사기·기만·속임수 네 가지를 든 뒤 절단·살해·결박·납치·약탈·폭력을 삼간다고 닫습니다. 이 목록은 그런 행위를 묘사하거나 허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멀리해야 할 행위 범위를 구체화하며, 다음 카드부터 중간 길이의 계행으로 넘어갑니다. 폭력의 낱말이 힘들다면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저울·금속·치수를 속이는 일을 삼간다”는 첫 구절은 일상의 작은 부정확함도 계행의 범위에 둬요. 뒤의 폭력 목록이 힘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오늘 더 정확하고 정직하게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14 중간 계행 15구절

중간 계행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뿌리·줄기·마디·꺾꽂이·씨앗으로 자라는 다섯 종류의 식물과 씨앗을 해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식물과 씨앗의 훼손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bījagāmabhūtagāmasamārambhaṁ anuyuttā viharanti. Seyyathidaṁ—mūlabījaṁ khandhabījaṁ phaḷubījaṁ aggabījaṁ bījabījameva pañcamaṁ, iti evarūpā bījagāmabhūtagāmasamārambh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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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짧은 계행을 마친 뒤 중간 길이의 계행을 시작하며,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가 식물과 씨앗을 해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mūlabīja·khandhabīja·phaḷubīja·aggabīja·bījabīja`는 뿌리·줄기·마디·꺾꽂이·씨앗으로 번식하는 다섯 종류이며 마지막에 `pañcamaṁ`으로 다섯째를 확인합니다. 핵심은 식물 분류 일반보다, 신도의 보시에 의지하는 수행자가 훼손에 몰두하지 않는 계행의 구체적 범위입니다.

묵상

이 카드의 목록 안에서, 본문은 뿌리·줄기·마디·꺾꽂이·씨앗으로 자라는 다섯 종류를 열거한 뒤 훼손을 삼간다고 해요. 오늘 식물이나 환경을 대할 때 불필요한 손상을 줄일 수 있는 작은 선택이 있나요?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음식·음료·옷·탈것·침구·향·물품을 쌓아 두고 쓰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물품을 저장해 쓰는 일을 삼간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sannidhikāraparibhogaṁ anuyuttā viharanti. Seyyathidaṁ—annasannidhiṁ pānasannidhiṁ vatthasannidhiṁ yānasannidhiṁ sayanasannidhiṁ gandhasannidhiṁ āmisasannidhiṁ, iti vā iti evarūpā sannidhikāraparibhogā paṭivirato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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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식물과 씨앗의 훼손을 삼간 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가 물품을 쌓아 두고 사용하는 일을 다룹니다. `annasannidhi`에서 `āmisasannidhi`까지 음식·음료·옷·탈것·침구·향·물품의 일곱 저장 대상을 열거하고, `sannidhikāraparibhoga`를 삼간다고 결론 냅니다. 일반인의 비축을 비난하는 말이 아니라, 보시로 유지되는 출가자가 필요 이상을 저장해 쓰지 않는 중간 계행의 생활 범위를 밝힙니다.

묵상

본문은 음식·음료·옷·탈것·침구·향·물품을 “쌓아 두고 쓰는 일을 삼간다”고 해요. 내 소유를 탓하기보다, 지금 쓰는 것과 막연히 쌓아 둔 것을 한 범주에서만 구분해 볼 수 있나요?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여러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visūkadassanaṁ anuyuttā vihar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물품 저장 항목을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로 닫고, 다음의 구경거리 목록을 여는 연결 카드입니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visūkadassana`, 여러 공연과 싸움 같은 구경거리에 몰두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음을 먼저 제시합니다. 구체적 종류와 이를 삼간다는 결론은 다음 카드에 이어지므로, 이 카드는 금지 목록 자체보다 보시에 의지하면서 오락 관람에 몰두하는 대조를 세우는 도입입니다.

묵상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여러 구경거리를 찾아다닌다”는 문장은 생활의 기반과 시간 사용을 함께 보게 해요. 내가 받은 도움과 지금 몰두하는 일이 어울리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춤·노래·연주·공연·이야기·손뼉 장단·징·북·미인 선발·장대 곡예·시신을 씻는 구경, 코끼리·말·물소·황소·염소·숫양·닭·메추라기의 싸움, 막대기 싸움·권투·씨름·전투·군대 점호·진형·부대 사열이 있다. 그는 이런 구경거리를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Seyyathidaṁ—naccaṁ gītaṁ vāditaṁ pekkhaṁ akkhānaṁ pāṇissaraṁ vetāḷaṁ kumbhathūṇaṁ sobhanakaṁ caṇḍālaṁ vaṁsaṁ dhovanaṁ hatthiyuddhaṁ assayuddhaṁ mahiṁsayuddhaṁ usabhayuddhaṁ ajayuddhaṁ meṇḍayuddhaṁ kukkuṭayuddhaṁ vaṭṭakayuddhaṁ daṇḍayuddhaṁ muṭṭhiyuddhaṁ nibbuddhaṁ uyyodhikaṁ balaggaṁ senābyūhaṁ anīkadassanaṁ iti vā iti evarūpā visūkadassan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중간 길이의 계행에서 수행자가 삼가는 구경거리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카드입니다. 춤과 음악·공연 뒤에 코끼리·말·물소·황소·염소·숫양·닭·메추라기 싸움 여덟 가지, 막대기 싸움·권투·씨름·전투와 군대 점호·진형·부대 사열이 이어집니다. 이 대목은 동물과 사람의 싸움을 권하거나 재현하는 장면이 아니라, 출가 수행자가 신도의 보시로 살면서 피하는 오락과 관람의 역사적 범위를 밝힙니다. 불편하면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본문은 여러 싸움과 전투를 “이런 구경거리를 삼간다”는 결론으로 묶어요. 폭력적 장면의 열거가 힘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내 마음을 거칠게 만드는 관람을 알아차린 적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나요?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여덟 줄 판놀이·열 줄 판놀이·공중 판놀이·사방치기·산가지놀이·판놀이·막대기 치기·제비뽑기·주사위놀이·잎피리·장난감 쟁기·재주넘기·바람개비·장난감 되·장난감 수레·장난감 활·음절로 말 맞히기·마음 맞히기·악기 흉내 같은 방일한 놀이를 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그는 그런 놀이와 도박을 삼간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aṁ anuyuttā viharanti. Seyyathidaṁ—aṭṭhapadaṁ dasapadaṁ ākāsaṁ parihārapathaṁ santikaṁ khalikaṁ ghaṭikaṁ salākahatthaṁ akkhaṁ paṅgacīraṁ vaṅkakaṁ mokkhacikaṁ ciṅgulikaṁ pattāḷhakaṁ rathakaṁ dhanukaṁ akkharikaṁ manesikaṁ yathāvajjaṁ iti vā iti evarūpā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ā paṭivirato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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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싸움과 군사 관람을 삼가는 항목 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가 놀이와 도박에 몰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덟 줄·열 줄 판놀이에서 공중 판놀이·산가지·주사위·잎피리·장난감 쟁기와 수레·활·말 맞히기·마음 맞히기·악기 흉내까지 열아홉 놀이를 열거합니다. `jūtappamādaṭṭhāna`는 단순한 여가 일반이 아니라 도박과 방일의 터가 되는 놀이를 가리키며, 수행자가 보시 생활 중 이에 몰두하지 않는 계행입니다.

묵상

본문의 두 표현을 놓고, 본문은 긴 놀이 목록을 “그런 놀이와 도박을 삼간다”는 결론으로 묶어요. 여가 자체를 탓하지 않으면서, 시간과 주의를 잃게 만드는 몰두가 있는지 한 가지만 살펴볼 수 있나요?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높고 호화로운 침상을 쓰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uccāsayanamahāsayanaṁ anuyuttā vihar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놀이와 도박을 삼간다는 항목을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로 마친 뒤, 높고 큰 침상에 관한 다음 항목을 시작합니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uccāsayanamahāsayana`, 높고 호화로운 침상을 사용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는 대조만 먼저 제시합니다. 구체적인 침구의 종류와 삼감의 결론은 다음 카드가 소유하므로, 이 카드에서는 신도의 보시에 의지하는 생활과 호사스러운 사용의 긴장을 여는 기능이 핵심입니다.

묵상

“높고 호화로운 침상을 쓰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는 문장은 아직 구체적 목록 전의 도입이에요. 다음 항목을 읽기 전에, 이 규정이 누구의 어떤 생활 조건을 다루는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소파·긴 의자와 털이 길거나 다채롭거나 희고 꽃무늬와 동물무늬가 있는 덮개, 술 달린 덮개·보석 박힌 비단·양탄자, 코끼리·말·전차용 깔개, 영양 가죽과 고운 사슴가죽, 덮개와 양쪽 붉은 베개가 있는 침상이 있다. 그는 이런 호화로운 침상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Seyyathidaṁ—āsandiṁ pallaṅkaṁ gonakaṁ cittakaṁ paṭikaṁ paṭalikaṁ tūlikaṁ vikatikaṁ uddalomiṁ ekantalomiṁ kaṭṭissaṁ koseyyaṁ kuttakaṁ hatthattharaṁ assattharaṁ rathattharaṁ ajinappaveṇiṁ kadalimigapavarapaccattharaṇaṁ sauttaracchadaṁ ubhatolohitakūpadhānaṁ iti vā iti evarūpā uccāsayanamahāsayan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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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높고 큰 침상에 관한 계행에서 당시의 호화로운 침구를 상세히 열거합니다. 긴 의자와 소파 뒤에 털이 긴 것·다채로운 것·흰 것·꽃무늬·솜이 든 이불, 동물무늬, 한쪽이나 양쪽에 술이 달린 덮개, 비단과 양탄자, 코끼리·말·전차용 깔개, 영양과 고운 사슴 가죽, 차양과 양쪽 붉은 베개를 갖춘 침상이 이어집니다. 일반인의 휴식을 비난하는 말이 아니라, 신도의 보시에 의지하는 수행자가 호사품을 받지 않는 계행의 범위입니다.

묵상

“그는 이런 호화로운 침상을 삼간다”는 결론은 출가자의 생활 범위를 설명해요. 내 휴식 자체를 탓하기보다, 편안함을 위해 꼭 필요한 것과 과시 때문에 더해진 것을 지금 구분해 볼 수 있나요?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몸을 꾸미고 장식하는 일에 몰두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nuyogaṁ anuyuttā vihar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호화로운 침구의 목록과 삼감을 마친 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가 몸의 꾸밈과 장식에 몰두하는 다음 항목을 엽니다. 원문의 `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nuyoga`는 꾸미고 장식하는 행위에 몰두함을 한 덩어리로 가리킵니다. 이 카드에는 아직 기름·거울·장신구 등의 세부나 삼간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고, 다음 카드가 그 범위를 완성합니다. 출가자의 검소한 생활 문맥이며 몸 돌봄 일반을 비난하는 도입이 아닙니다.

묵상

지금 드러난 항목만으로, “몸을 꾸미고 장식하는 일에 몰두한다”는 말에서 핵심은 장식물 하나보다 몰두의 정도예요. 몸을 돌보는 필요와 타인의 시선을 위한 몰두를 지금 어떻게 구분해 볼 수 있나요?

“기름 바르기·안마·목욕·문지르기와 거울·안약·꽃장식·향·화장·분·얼굴 크림·팔찌·머리띠·장식 지팡이와 통·칼·양산·장식 신발·터번·보석·꼬리털 부채·술 긴 흰옷이 있다. 그는 이런 꾸밈과 장식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Seyyathidaṁ—ucchādanaṁ parimaddanaṁ nhāpanaṁ sambāhanaṁ ādāsaṁ añjanaṁ mālāgandhavilepanaṁ mukhacuṇṇaṁ mukhalepanaṁ hatthabandhaṁ sikhābandhaṁ daṇḍaṁ nāḷikaṁ asiṁ chattaṁ citrupāhanaṁ uṇhīsaṁ maṇiṁ vālabījaniṁ odātāni vatthāni dīghadasāni iti vā iti evarūpā 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nuyog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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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 카드에서 시작한 꾸밈과 장식의 세부를 모두 열거하고, 수행자가 이를 삼간다는 결론을 냅니다. 기름 바르기·안마·목욕·문지르기 네 행위, 거울과 안약·꽃·향·화장, 얼굴용 분과 크림, 팔찌·머리띠·장식 지팡이와 통·칼·양산·장식 신발·터번·보석·꼬리털 부채·술 긴 흰옷이 이어집니다. 위생 행위 하나를 떼어 금지하는 해석보다, 당시 출가자가 신도의 보시로 치장과 과시에 몰두하지 않는 중간 계행의 전체 문맥으로 읽어야 합니다.

묵상

이 구절의 범위 안에서, 본문은 긴 목록 뒤에 “그는 이런 꾸밈과 장식을 삼간다”고 닫아요. 몸을 깨끗이 돌보는 일과 과시를 위해 계속 더하는 일을 구분한다면, 지금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쓸모없는 잡담에 몰두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tiracchānakathaṁ anuyuttā vihar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꾸밈과 장식을 삼간다는 결론 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가 `tiracchānakathā`, 목적 없이 옆으로 뻗는 잡담에 몰두하는 다음 항목을 시작합니다. 이 카드에는 잡담의 구체적인 주제 목록이나 삼간다는 결론이 아직 없고, 다음 카드에서 왕·전쟁·음식·세상 이야기 등으로 펼쳐집니다. 출가자의 시간과 말의 사용을 다루는 도입으로, 일상적인 안부나 필요한 대화까지 모두 금지한다고 넓히지 않습니다.

묵상

현재 문장의 순서에 따라, 본문은 “쓸모없는 잡담에 몰두한다”는 상태를 먼저 제시해요. 대화 자체를 줄이기보다, 지금 이어지는 말이 필요한 소통인지 목적 없이 주의를 흩뜨리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왕·도적·대신·군대·위험·전쟁·음식·음료·옷·침상·꽃·향·친족·탈것·마을·시장·도시·나라·여자·영웅에 관한 말, 거리와 우물가의 말, 죽은 이와 온갖 것에 관한 말, 육지와 바다 이야기, 이런저런 존재가 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그런 잡담을 삼간다.”

Seyyathidaṁ—rājakathaṁ corakathaṁ mahāmattakathaṁ senākathaṁ bhayakathaṁ yuddhakathaṁ annakathaṁ pānakathaṁ vatthakathaṁ sayanakathaṁ mālākathaṁ gandhakathaṁ ñātikathaṁ yānakathaṁ gāmakathaṁ nigamakathaṁ nagarakathaṁ janapadakathaṁ itthikathaṁ sūrakathaṁ visikhākathaṁ kumbhaṭṭhānakathaṁ pubbapetakathaṁ nānattakathaṁ lokakkhāyikaṁ samuddakkhāyikaṁ itibhavābhavakathaṁ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kathāya paṭivir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잡담 도입에 이어, 수행자가 삼가는 이야기의 주제를 길게 열거합니다. 왕·도적·대신·군대·위험·전쟁, 음식부터 향, 친족·탈것·마을·시장·도시·나라·여자·영웅, 거리·우물가·죽은 이·온갖 것, 육지와 바다 및 이런저런 존재가 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주제 하나의 언급 자체보다 `tiracchānakathā`에 몰두하는 방식을 삼간다는 결론이며, 필요한 정보 교환이나 책임 있는 논의를 침묵시키는 규정으로 확대하면 안 됩니다.

묵상

지금 본문을 다시 보며, 본문은 여러 주제를 열거한 뒤 “그는 그런 잡담을 삼간다”고 말해요. 지금 대화가 사실을 나누고 필요한 결정을 돕는지, 아니면 목적 없이 계속되는지 구분할 수 있나요?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논쟁하는 말에 몰두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viggāhikakathaṁ anuyuttā vihar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잡담 목록을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로 닫고,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들이 `viggāhikakathā`, 상대와 맞서 이기려는 논쟁에 몰두하는 다음 항목을 엽니다. 이 카드에는 구체적인 도발과 논박 문구가 아직 나오지 않고, 다음 카드가 ‘그대는 모르고 나는 안다’에서 시작하는 전체 정형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필요한 이견 제시를 금지하는 말이 아니라 승부와 지위 다툼이 된 언쟁을 살필 문맥을 마련합니다.

묵상

“논쟁하는 말에 몰두한다”는 도입은 이견 자체보다 이기려는 방식에 주의를 돌려요. 중요한 차이를 말해야 할 때, 상대를 꺾는 목표와 사실을 밝히는 목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그대는 이 가르침과 수행 규범을 모르고 나는 안다. 그대는 잘못 수행하고 나는 바르게 수행한다. 내 말은 들어맞고 그대 말은 어긋난다. 먼저 할 말을 뒤에 하고 뒤에 할 말을 먼저 했다. 그대 주장은 뒤집혔고 논박됐다. 할 수 있다면 빠져나가 보라’고 다툰다. 그는 이런 논쟁을 삼간다.”

Seyyathidaṁ—na tv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āsi, ah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āmi, kiṁ tv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issasi, micchā paṭipanno tvamasi, ahamasmi sammā paṭipanno, sahitaṁ me, asahitaṁ te, pure vacanīyaṁ pacchā avaca, pacchā vacanīyaṁ pure avaca, adhiciṇṇaṁ te viparāvattaṁ, āropito te vādo, niggahito tvamasi, cara vādappamokkhāya, nibbeṭhehi vā sace pahosīti iti vā iti evarūpāya viggāhikakathāya paṭivir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계행의 말 항목에서, 승려나 바라문들이 서로를 이기려 벌이는 논쟁의 정형을 길게 인용한 뒤 수행자가 이를 삼간다고 합니다. ‘그대는 모른다, 나는 안다’에서 시작해 누가 바르게 수행하는지, 누구 말이 맞는지, 말의 선후가 뒤집혔는지, 주장이 논박되어 궁지에 몰렸는지, 자기 견해를 구하거나 풀어낼 수 있는지를 차례로 다툽니다. 이는 필요한 이견 제시를 금지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눌러 지위를 세우는 승부식 언쟁을 계행의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묵상

본문은 “그대는 모르고 나는 안다”는 식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논쟁을 삼간다고 해요. 중요한 이견을 말해야 할 때도 상대의 지위를 깎지 않으면서, 사실과 근거에만 집중해 표현할 수 있는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왕·대신·귀족·바라문·집안사람·왕자를 위해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 이것을 가져가고 저것을 가져오라’는 심부름과 전갈을 다니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그는 그런 심부름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dūteyyapahiṇagamanānuyogaṁ anuyuttā viharanti. Seyyathidaṁ—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khattiyānaṁ, brāhmaṇānaṁ, gahapatikānaṁ, kumārānaṁ—idha gaccha, amutrāgaccha, idaṁ hara, amutra idaṁ āharā’ti iti vā iti evarūpā dūteyyapahiṇagamanānuyog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승부식 논쟁을 삼간다는 결론 뒤, 왕족과 유력자를 위한 심부름과 전갈을 다루는 중간 계행입니다. 왕·대신·귀족·바라문·집안사람·왕자의 여섯 의뢰자를 열거하고, ‘여기로 가라·저기로 가라·이것을 가져가라·저것을 가져오라’는 네 지시를 직접 인용합니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가 권력자들의 사적인 전달 업무에 몰두하지 않는다는 생계의 경계이며, 도움을 주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말은 아닙니다. 앞뒤로 `이것도 그의 계행`이 놓입니다.

묵상

본문은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 이것을 가져가고 저것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권력자를 위한 심부름의 예로 들어요. 부탁을 받았을 때 내 역할과 책임의 경계를 확인할 질문은 무엇인가요?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아첨·감언·암시·비하를 하고 물질을 써서 더 큰 물질을 얻으려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그는 이런 속임과 아첨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kuhakā ca honti lapakā ca nemittikā ca nippesikā ca lābhena lābhaṁ nijigīsitāro ca. Iti evarūpā kuhanalapan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중간 계행의 끝에서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가 이익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다섯 방식을 열거합니다. `kuhaka·lapaka·nemittika·nippesika`는 아첨·감언·암시·비하에 해당하고, `lābhena lābhaṁ nijigīsitāro`는 이미 얻은 물질을 이용해 더 큰 물질을 얻으려는 태도입니다. 결론은 `kuhanalapanā`, 이런 속임과 아첨을 삼간다는 것입니다. 정중한 말이나 필요한 요청보다, 보시를 더 끌어내기 위한 조작을 수행자의 생계 문제로 다룹니다.

묵상

이 카드에 적힌 범위에서, 본문은 아첨·감언·암시·비하와 “물질을 써서 더 큰 물질을 얻으려는” 태도를 함께 묶어요. 호의를 표현할 때 숨은 대가를 기대하고 있는지 지금 솔직히 살펴볼 수 있나요?

15 긴 계행 16구절

긴 계행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믿음으로 바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천한 지식과 바르지 못한 생계로 삶을 이어 가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ṁ kapp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중간 계행을 마치고 긴 계행으로 들어가며, 뒤에 이어질 점술·예언·의식·치료 목록의 공통 도입을 제시합니다. 믿음으로 바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tiracchānavijjā`인 낮은 지식과 `micchājīva`인 그릇된 생계로 삶을 꾸리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카드에는 구체적인 기술 목록이나 삼간다는 결론이 아직 없고 다음 카드에서 시작됩니다. 지식 자체를 낮춘다기보다 출가자가 보시에 더해 그 기술로 생계를 얻는 방식이 규정의 초점입니다.

묵상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삶을 이어 간다”는 도입은 다음의 여러 기술을 생계 문맥에 놓아요. 어떤 지식을 쓰는 일과 그것으로 타인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일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그들은 몸의 특징과 징조·재앙·꿈·쥐가 갉은 자국을 풀이하고, 불과 국자·겨·쌀가루·쌀·버터·기름·입·피로 제사하며, 신체와 터의 점·퇴마·땅의 술법·뱀·독·전갈·쥐·새·까마귀의 지식·수명 예언·보호 주문·야생동물의 징조를 다룬다. 그는 그런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

Seyyathidaṁ—aṅgaṁ nimittaṁ uppātaṁ supinaṁ lakkhaṇaṁ mūsikacchinnaṁ aggihomaṁ dabbihomaṁ thusahomaṁ kaṇahomaṁ taṇḍulahomaṁ sappihomaṁ telahomaṁ mukhahomaṁ lohitahomaṁ aṅgavijjā vatthuvijjā khattavijjā sivavijjā bhūtavijjā bhūrivijjā ahivijjā visavijjā vicchikavijjā mūsikavijjā sakuṇavijjā vāyasavijjā pakkajjhānaṁ saraparittāṇaṁ migacakkaṁ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긴 계행에서 수행자가 점술과 제의로 생계를 삼지 않는 첫 목록입니다. 신체 특징·징조·재앙·꿈·쥐 자국의 해석, 불에서 피까지 아홉 방식의 제사 뒤에 신체 지식, 건물 터·들판·묘지에 관한 점술, 귀신·땅·뱀·독·전갈·쥐·새·까마귀의 지식, 수명 예언·보호 주문·야생동물의 징조가 이어집니다. 다양한 기술을 한꺼번에 미신으로 조롱하는 문장이 아니라, 출가자가 이를 이용해 보답을 받는 그릇된 생계의 범위를 열거합니다.

묵상

“그는 그런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는 결론은 지식 일반보다 그것을 생계로 쓰는 출가자의 태도에 초점을 두어요. 내가 가진 지식이나 경험을 사용할 때, 상대의 두려움을 이용하지 않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생활을 꾸리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ṁ kapp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첫 점술·제의 목록을 삼간다는 결론 뒤, 긴 계행의 다음 목록을 여는 연결 카드입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으로 앞 항목을 계행에 포함한 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생활을 꾸리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고 같은 도입을 반복합니다. 아직 새 목록의 내용은 나오지 않으며, 다음 카드가 보석·무기·사람·동물의 특징을 읽는 일을 열거합니다. 반복문의 기능은 각 목록이 별개의 계행 항목임을 표시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현재의 인용만 놓고,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가 앞 목록을 닫고, 곧바로 다음 그릇된 생계의 도입이 시작돼요. 반복되는 문장 사이에서 끝난 항목과 새로 열리는 항목을 각각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나요?

“보석·옷·몽둥이·칼·창·화살·활·무기·여자·남자·소년·소녀·남녀 종·코끼리·말·물소·황소·소·염소·숫양·닭·메추라기·왕도마뱀·토끼·거북·사슴의 특징을 읽는 일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천한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

Seyyathidaṁ—maṇilakkhaṇaṁ vatthalakkhaṇaṁ daṇḍalakkhaṇaṁ satthalakkhaṇaṁ asilakkhaṇaṁ usulakkhaṇaṁ dhanulakkhaṇaṁ āvudhalakkhaṇaṁ itthilakkhaṇaṁ purisalakkhaṇaṁ kumāralakkhaṇaṁ kumārilakkhaṇaṁ dāsalakkhaṇaṁ dāsilakkhaṇaṁ hatthilakkhaṇaṁ assalakkhaṇaṁ mahiṁsalakkhaṇaṁ usabhalakkhaṇaṁ golakkhaṇaṁ ajalakkhaṇaṁ meṇḍalakkhaṇaṁ kukkuṭalakkhaṇaṁ vaṭṭakalakkhaṇaṁ godhālakkhaṇaṁ kaṇṇikalakkhaṇaṁ kacchapalakkhaṇaṁ migalakkhaṇaṁ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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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 카드의 공통 도입에 이어, 사물·사람·동물의 특징을 읽어 길흉을 판단하는 목록을 제시합니다. 보석·옷, 몽둥이부터 무기까지 여섯 종류, 여자·남자·소년·소녀와 남녀 종, 코끼리부터 사슴까지 열네 동물의 특징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이를 `tiracchānavijjā`와 `micchājīva`로 삼지 않는다고 결론 냅니다. 대상의 관찰 일반을 금지하는 말이 아니라, 출가자가 특징 읽기로 예언하고 보답을 얻는 당시 생계 관행을 삼가는 항목입니다.

묵상

지금 문장의 구조를 따라, 본문은 보석과 무기, 사람과 동물의 “특징을 읽는 일”을 긴 목록으로 묶어요. 겉으로 보이는 특징만으로 결과나 사람을 단정하지 않으려면, 지금 더 확인해야 할 사실은 무엇인가요?

“이 또한 그의 계행이다. 그러나 일부 수행자와 바라문은 믿음으로 바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와 같은 천한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ṁ kapp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보석·사람·동물의 특징 읽기를 삼간다는 항목을 `이 또한 그의 계행이다`로 닫고, 왕의 진군과 승패를 예언하는 다음 목록의 공통 도입을 반복합니다. 믿음으로 바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살아가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고만 하며, 구체적 예언 쌍은 다음 카드가 소유합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앞 목록의 결론과 다음 목록의 출발점이 한 카드에 만나는 경계이므로, 주제 전체를 되풀이하지 말고 전환 기능을 밝혀야 합니다.

묵상

“이 또한 그의 계행이다”라는 결론 뒤에 다음 생계 목록의 도입이 붙어 있어요. 한 문장이 닫고 다른 문장이 시작하는 경계에서, 각각 가리키는 항목을 어떻게 나누어 읽을 수 있나요?

“왕이 진군할지 진군하지 않을지, 안쪽 왕들이 다가오고 바깥 왕들이 물러날지 또는 그 반대인지, 안쪽 왕들이 이기고 바깥 왕들이 패할지 또는 그 반대인지, 이쪽이 이기고 저쪽이 패할지를 예언하는 일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천한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

Seyyathidaṁ—raññaṁ niyyānaṁ bhavissati, raññaṁ aniyyānaṁ bhavissati, abbhantarānaṁ raññaṁ upayānaṁ bhavissati, bāhirānaṁ raññaṁ apayānaṁ bhavissati, bāhirānaṁ raññaṁ upayānaṁ bhavissati, abbhantarānaṁ raññaṁ apayānaṁ bhavissati, abbhantarānaṁ raññaṁ jayo bhavissati, bāhirānaṁ raññaṁ parājayo bhavissati, bāhirānaṁ raññaṁ jayo bhavissati, abbhantarānaṁ raññaṁ parājayo bhavissati, iti imassa jayo bhavissati, imassa parājayo bhavissati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과 군대의 움직임과 승패를 예언하는 긴 계행의 한 목록입니다. 왕이 진군함과 진군하지 않음, 안쪽 왕의 접근과 바깥 왕의 후퇴 및 그 반대, 안쪽 왕의 승리와 바깥 왕의 패배 및 그 반대, 이쪽의 승리와 저쪽의 패배를 대칭으로 열거합니다. 결론은 이런 예언으로 그릇된 생계를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예측하는 기술의 정확성을 판정하기보다, 믿음의 보시로 사는 출가자가 정치·군사 예언을 생계로 삼지 않는 경계를 밝힙니다.

묵상

본문은 “이쪽이 이기고 저쪽이 패할지”까지 승패 예언을 대칭으로 열거해요. 결과를 장담하는 말에 끌릴 때, 예측과 확인된 사실을 구분하기 위해 물을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이것 역시 그의 계행이다. 그러나 몇몇 수행자와 바라문은 믿음으로 바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와 같은 천한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ṁ kapp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진군과 승패 예언을 삼간다는 결론 뒤, 천문 현상과 그 결과를 예언하는 다음 항목을 여는 연결 카드입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으로 앞 항목을 계행으로 확인하고,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는 수행자가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는 공통 도입을 다시 씁니다. 달·해·별과 하늘의 현상은 다음 카드에 처음 나오므로, 여기서는 반복된 표현의 정보가 아니라 군사 예언에서 천문 예언으로 목록이 바뀌는 경계를 설명해야 합니다.

묵상

“이것 역시 그의 계행이다”가 군사 예언을 닫고 다음 목록을 열어요. 반복되는 도입을 만났을 때, 앞 카드에서 끝난 주제와 다음 카드에서 새로 시작할 주제를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나요?

“달·해·별의 식, 해와 달과 별의 바른 운행과 어긋난 운행, 유성·하늘의 불빛·지진·천둥,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고 흐려지고 밝아지는 일과 그 각각의 결과를 예언하는 일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천한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

Seyyathidaṁ—candaggāho bhavissati, sūriyaggāho bhavissati, nakkhattaggāho bhavissati, candimasūriyānaṁ pathagamanaṁ bhavissati, candimasūriyānaṁ uppathagamanaṁ bhavissati, nakkhattānaṁ pathagamanaṁ bhavissati, nakkhattānaṁ uppathagamanaṁ bhavissati, ukkāpāto bhavissati, disāḍāho bhavissati, bhūmicālo bhavissati, devadudrabhi bhavissati, candimasūriyanakkhattānaṁ uggamanaṁ ogamanaṁ saṅkilesaṁ vodānaṁ bhavissati, evaṁvipāko candaggāho bhavissati, evaṁvipāko sūriyaggāho bhavissati, evaṁvipāko nakkhattaggāho bhavissati, evaṁvipākaṁ candimasūriyānaṁ pathagamanaṁ bhavissati, evaṁvipākaṁ candimasūriyānaṁ uppathagamanaṁ bhavissati, evaṁvipākaṁ nakkhattānaṁ pathagamanaṁ bhavissati, evaṁvipākaṁ nakkhattānaṁ uppathagamanaṁ bhavissati, evaṁvipāko ukkāpāto bhavissati, evaṁvipāko disāḍāho bhavissati, evaṁvipāko bhūmicālo bhavissati, evaṁvipāko devadudrabhi bhavissati, evaṁvipākaṁ candimasūriyanakkhattānaṁ uggamanaṁ ogamanaṁ saṅkilesaṁ vodānaṁ bhavissati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긴 계행에서 천문과 자연 현상을 보고 그 결과를 예언하는 일을 상세히 열거합니다. 달·해·별의 식 세 가지, 해와 달 및 별의 바른 운행과 어긋난 운행, 유성·하늘의 불빛·지진·천둥, 해·달·별의 뜸·짐·흐려짐·밝아짐을 먼저 듭니다. 이어 그 각 현상에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다시 붙입니다. 천문 관측 자체가 아니라, 출가자가 이런 현상의 결과를 점쳐 그릇된 생계로 삼는 것을 피하는 계행입니다.

묵상

이 대목을 차분히 보며, 본문은 천문 현상 자체에 이어 “그 각각의 결과를 예언하는 일”을 삼간다고 해요. 관찰된 현상과 그 위에 덧붙인 결과 예측을 나누어 본다면, 지금 확인된 사실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그러나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바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와 같은 천한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ṁ kapp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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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천문 현상과 결과 예언을 삼간다는 항목을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로 마친 뒤, 날씨·식량·안전·건강의 예언 목록을 여는 공통 도입입니다.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믿음으로 바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고만 하고, 구체적인 네 쌍과 다섯 학문은 다음 카드에서 제시합니다. 앞 카드의 천문 목록을 다시 요약하지 않고, 같은 생계 정형이 새로운 예측 대상으로 전환되는 경계라는 점을 밝혀야 합니다.

묵상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뒤에 다시 그릇된 생계의 도입이 시작돼요.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도 다음 카드의 대상이 달라질 때, 새 목록의 범위를 미리 단정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나요?

“비가 잘 오거나 가물고, 먹을 것이 많거나 굶주리며, 안전하거나 위험하고, 질병이 있거나 건강할지를 예언하고, 글씨·계산·산술·시와 세상 이론으로 일하는 경우가 있다. 그는 이런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Seyyathidaṁ—suvuṭṭhikā bhavissati, dubbuṭṭhikā bhavissati, subhikkhaṁ bhavissati, dubbhikkhaṁ bhavissati, khemaṁ bhavissati, bhayaṁ bhavissati, rogo bhavissati, ārogyaṁ bhavissati, muddā, gaṇanā, saṅkhānaṁ, kāveyyaṁ, lokāyataṁ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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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긴 계행의 예언 목록이 날씨·식량·안전·건강의 네 쌍을 든 뒤, 다섯 종류의 학문적 일로 이어집니다. 비가 잘 옴과 가묾, 풍요와 굶주림, 안전과 위험, 질병과 건강을 예언하는 항목 다음의 `muddā·gaṇanā·saṅkhānaṁ·kāveyyaṁ·lokāyataṁ`은 손가락 셈·계산·산술·시·세상 이론입니다. 글씨로 바꾸면 첫 항목이 어긋납니다. 결론은 출가자가 이런 일로 보답을 받아 생계를 삼지 않는다는 계행이지 학습 자체를 금지하는 말이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손가락 셈·계산·산술·시·세상 이론으로 일하는 경우”까지 출가자의 생계 문맥에 놓아요. 어떤 지식을 배우는 일과 그 지식으로 타인의 불안이나 기대를 이용하는 일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믿음으로 내놓은 음식을 누리면서도 낮은 술수와 잘못된 생계에 기대어 생활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ṁ kapp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날씨·식량·안전·건강 예언과 다섯 학문을 삼간다는 결론 뒤, 혼인·주문·점을 다루는 다음 긴 계행 항목을 여는 도입입니다. 믿음으로 내놓은 음식을 누리면서도 `tiracchānavijjā`와 `micchājīva`에 기대어 생활하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카드에는 혼인이나 주문의 낱말이 아직 없고 다음 카드에서만 구체화됩니다. 지식이나 의례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보시로 사는 출가자의 생계 방식이라는 공통 범위를 다시 설정합니다.

묵상

본문의 표현에 기대어, “믿음으로 내놓은 음식을 누리면서도 … 잘못된 생계에 기대어 생활한다”는 문장이 목록의 범위를 정해요. 다음 세부를 읽기 전, 행위자와 생계 조건을 먼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혼인·이혼·약혼을 주선하고 혼례의 쌀을 안팎으로 흩으며, 행운과 불운의 주문, 태아 치료, 혀와 턱을 묶는 주문, 손·턱·귀의 주문, 거울·소녀·신에게 묻는 점, 해와 위대한 존재 숭배, 불을 뿜는 술법과 행운의 여신 부르기가 있다. 그는 이런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Seyyathidaṁ—āvāhanaṁ vivāhanaṁ saṁvaraṇaṁ vivaraṇaṁ saṅkiraṇaṁ vikiraṇaṁ subhagakaraṇaṁ dubbhagakaraṇaṁ viruddhagabbhakaraṇaṁ jivhānibandhanaṁ hanusaṁhananaṁ hatthābhijappanaṁ hanujappanaṁ kaṇṇajappanaṁ ādāsapañhaṁ kumārikapañhaṁ devapañhaṁ ādiccupaṭṭhānaṁ mahatupaṭṭhānaṁ abbhujjalanaṁ sirivhāyanaṁ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Idampissa hoti sīlas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의 공통 도입에 이어, 혼인과 주문과 점술 및 숭배 행위를 긴 목록으로 제시합니다. 혼인·이혼·약혼 주선과 혼례 쌀을 안팎으로 흩는 일, 행운·불운 주문, 태아와 혀·턱·손·귀에 관한 주술, 거울·소녀·신에게 묻는 세 점, 해와 위대한 존재 숭배, 불을 뿜고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일이 이어집니다. 결론은 출가자가 이를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며, 혼인하거나 치료를 받는 사람을 비난하는 말이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다양한 의식과 점술을 열거한 뒤 “그는 이런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고 닫아요. 이 규정의 대상이 의뢰인이 아니라 그것으로 생계를 삼는 출가자임을 확인할 수 있나요?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생활을 꾸리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ṁ kapp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혼인·주문·점술 목록을 계행으로 닫은 뒤, 의식과 당시 치료 기술을 다루는 마지막 긴 계행 목록의 도입입니다.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으면서도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생활을 꾸리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있다는 공통 정형만 나옵니다. 구체적인 평안 의식·집터·배출 처치·약과 수술은 다음 카드가 소유하므로, 여기서 현대 의료나 특정 의식을 미리 평가하지 않고 목록의 행위자와 생계 범위만 분명히 해야 합니다.

묵상

지금 카드에 나온 말로,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로 생활을 꾸린다”는 도입 뒤에 마지막 세부 목록이 이어져요. 아직 나오지 않은 내용을 추측하지 않고, 이 카드에서 확인되는 행위자와 조건은 무엇인가요?

“평안·소원·귀신·땅·비·재산·집터를 위한 의식, 물 마시기·목욕·제사 의식, 토하게 하거나 설사시키거나 가래를 없애는 처치, 귀 기름·눈 치료·코약·연고, 바늘과 칼 수술, 어린이 치료, 뿌리 약과 약초 붕대가 있다. 그는 이런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

Seyyathidaṁ—santikammaṁ paṇidhikammaṁ bhūtakammaṁ bhūrikammaṁ vassakammaṁ vossakammaṁ vatthukammaṁ vatthuparikammaṁ ācamanaṁ nhāpanaṁ juhanaṁ vamanaṁ virecanaṁ uddhaṁvirecanaṁ adhovirecanaṁ sīsavirecanaṁ kaṇṇatelaṁ nettatappanaṁ natthukammaṁ añjanaṁ paccañjanaṁ sālākiyaṁ sallakattiyaṁ dārakatikicchā, mūlabhesajjānaṁ anuppadānaṁ, osadhīnaṁ paṭimokkho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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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긴 계행의 마지막에서 의식과 당시의 치료 기술로 생계를 삼는 일을 열거합니다. 평안·소원·귀신·땅·비·재산, 집터 의식과 집터 정화, 물 마심·목욕·제사 뒤에 토하게 함·설사·위쪽 배출·아래쪽 배출·머리 배출의 다섯 처치가 이어지고, 귀 기름·눈 처치·코약·연고와 맞연고·눈과 귀의 기구 치료·외과 수술·어린이 치료·뿌리약·약초 붕대를 듭니다. 현대 의료의 효과를 판정하는 말이 아니라 출가자의 생계 규정을 말합니다.

묵상

“그는 이런 낮은 지식과 그릇된 생계를 삼간다”는 문장은 치료를 받는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출가자가 보답을 얻는 방식에 초점을 둬요. 건강 문제는 필요한 전문가와 상의하되, 여기서는 화자와 규정의 대상을 구분해 볼 수 있나요?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대왕이시여, 이렇게 계행을 갖춘 수행자는 계행의 단속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대왕이시여, 적을 물리친 기름 부은 왕이 적에게서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대왕이시여, 수행자도 계행의 단속 때문에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Idampissa hoti sīlasmiṁ. Sa kho so, mahārāja, bhikkhu evaṁ sīlasampanno na kutoci bhayaṁ samanupassati, yadidaṁ sīlasaṁvarato. Seyyathāpi, mahārāja, rājā khattiyo muddhābhisitto nihatapaccāmitto na kutoci bhayaṁ samanupassati, yadidaṁ paccatthikato;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īlasampanno na kutoci bhayaṁ samanupassati, yadidaṁ sīlasaṁvarat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짧고 중간이고 긴 계행의 설명을 모두 마친 뒤, 계행에서 생기는 두려움 없음과 만족을 비유로 정리하는 결론입니다. `muddhābhisitto`는 머리에 관정하여 정식으로 즉위한 왕, 곧 관정받은 왕을 뜻하고 `nihatapaccāmitto`는 적을 물리쳤다는 말입니다. 적에게 두려움이 없는 왕처럼 수행자가 계행의 단속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고 두 번 말합니다. 이는 모든 불안이 사라진다는 임상적 약속이 아니라, 비난받을 행위를 삼간 데서 오는 경문상의 비유입니다.

묵상

본문은 “계행의 단속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고 같은 결론을 두 번 확인해요. 모든 불안이 없어졌는지를 시험하기보다, 오늘 후회나 숨김을 줄일 수 있는 정직한 선택 하나는 무엇인가요?

“그는 이 고귀한 계행의 무리를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행복을 경험한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계행을 갖춘다.”

So iminā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ajjhattaṁ anavajjasukhaṁ paṭisaṁvedeti. Evaṁ kho, mahārāja, bhikkhu sīlasampann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짧고 중간이고 긴 계행의 모든 항목을 마친 뒤, 계행을 갖춘 수행자가 경험하는 결과를 최종 정리합니다. `ariyena sīlakkhandhena`는 고귀한 계행의 무리이며, 이를 갖추어 `ajjhattaṁ anavajjasukhaṁ`, 안으로 허물없는 행복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어 `Evaṁ kho … sīlasampanno`, 이와 같이 수행자가 계행을 갖춘다고 전체 단락을 닫습니다. 외부 보상보다 해가 되는 행위를 삼간 데서 생기는 내적 결과를 제시하고, 다음 감각 단속 단계로 넘어갑니다.

묵상

본문은 “이 고귀한 계행의 무리를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행복을 경험한다”고 계행 단락을 닫아요. 완전함을 시험하기보다, 오늘 숨기거나 후회할 일을 줄인 한 선택을 알아볼 수 있나요?

16 감각 기능의 단속 3구절

감각 기능의 단속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대왕이시여, 수행자는 어떻게 감각의 문을 지키는가? 대왕이시여, 눈으로 형상을 보아도 전체 모습과 세부 특징에 붙잡히지 않는다. 눈을 단속하지 않아 탐욕과 근심이라는 해롭고 능숙하지 못한 상태가 밀려들지 않도록, 눈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한다.”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Idha, mahārāja, bhikkhu cakkhunā rūpaṁ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ṁ cakkhundriyaṁ asaṁvutaṁ viharantaṁ abhijjhā 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ṁ, tassa saṁ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ṁ, cakkhundriye saṁvaraṁ āpajja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계행과 그 기쁨 뒤에 감각의 문을 지키는 수행을 눈의 경우로 온전히 설명하는 첫 카드입니다. 형상을 보고 `nimitta`인 전체 표지와 `anubyañjana`인 세부 특징에 붙잡히지 않으며, 눈을 단속하지 않을 때 탐욕과 근심 및 `pāpakā akusalā dhammā`, 곧 악하고 불선한 상태가 밀려들지 않도록 지키고 단속한다고 세 번 동작을 풉니다. 보지 말라는 금지가 아니라, 본 뒤 마음이 대상을 붙드는 과정을 알아차리고 보호하는 수행입니다.

묵상

“눈으로 형상을 보아도 전체 모습과 세부 특징에 붙잡히지 않는다”는 말은 본 것을 부정하기보다 뒤따르는 붙잡힘을 살펴요. 지금 본 것 하나에서 사실로 보인 부분과 마음이 덧붙인 평가를 나누어 볼 수 있나요?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음으로 현상을 알아도 모습과 특징에 붙잡히지 않는다. 마음을 단속하지 않아 탐욕과 근심이 밀려들지 않도록,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한다.”

Sotena saddaṁ sutvā …pe… ghānena gandhaṁ ghāyitvā …pe… jivhāya rasaṁ sāyitvā …pe… kāyena phoṭṭhabbaṁ phusitvā …pe… manasā dhammaṁ viññāya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ṁ manindriyaṁ asaṁvutaṁ viharantaṁ abhijjhā 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ṁ, tassa saṁ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manindriyaṁ, manindriye saṁvaraṁ āpajja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눈의 감각 단속을 온전히 제시한 뒤 귀·코·혀·몸에는 같은 정형을 `…pe…` 네 번 사용하고, 마음의 경우를 다시 완전하게 밝힙니다. 소리·냄새·맛·감촉 각각의 중간 설명이 생략되었지만 같은 방식으로 닫히며, 마음으로 현상을 안 뒤 전체 표지와 세부 특징에 붙잡히지 않고 탐욕과 근심 및 악하고 불선한 상태가 밀려들지 않게 지키고 단속합니다. 감각을 없애거나 억압하는 말이 아니라 접촉 뒤의 붙잡힘을 살피는 수행입니다.

묵상

“마음으로 현상을 알아도 모습과 특징에 붙잡히지 않는다”는 문장은 생각이 생긴 사실과 거기에 매달리는 반응을 나누어 보여 줘요. 지금 떠오른 생각 하나를 없애려 하지 않고, 생각과 뒤따른 평가를 구분해 볼 수 있나요?

“이 고귀한 감각 단속을 갖춘 그는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행복을 경험한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감각의 문을 지킨다.”

So iminā ariyena indriyasaṁvarena samannāgato ajjhattaṁ abyāsekasukhaṁ paṭisaṁvedeti. Evaṁ kho, mahārāj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눈에서 마음까지 감각의 문을 지키는 방식을 설명한 뒤, 감각 단속의 결과와 단락의 결론을 제시합니다. `ariyena indriyasaṁvarena`는 고귀한 감각 단속이며, 이를 갖춘 수행자는 `ajjhattaṁ abyāsekasukhaṁ`,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행복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어 ‘이와 같이 수행자는 감각의 문을 지킨다’고 정의를 닫습니다. 감각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본 뒤 표지와 세부에 붙잡혀 악하고 불선한 상태가 스며들지 않게 한 결과를 말합니다.

묵상

본문은 “이 고귀한 감각 단속을 갖춘 그는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행복을 경험한다”고 닫아요. 감각을 막았는지 시험하기보다, 접촉 뒤 마음에 덧붙은 반응 하나를 알아볼 수 있나요?

17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 3구절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대왕이시여, 수행자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며 어떻게 드러나는가?”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감각의 문을 지키는 단락을 마친 뒤, 점진 수행의 다음 요소인 `satisampajañña`,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을 새로 묻는 짧은 도입입니다. `Kathañca … samannāgato hoti`는 수행자가 이것을 갖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인지 질문합니다. 이 카드에는 아직 특별한 명상 상태나 생활 동작이 나오지 않으며, 다음 카드가 이동·보기·몸동작·식사·배설·자세·말과 침묵의 실제 목록으로 답합니다. 질문은 추상 용어를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 풀기 위한 문턱입니다.

묵상

“수행자가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을 갖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인가?”라는 질문이 추상어를 행동으로 돌려요. 내가 쓰는 중요한 말 하나를 실제 행동으로 설명하면 어떤 모습인가요?

“대왕이시여, 나아가고 돌아오며, 앞과 옆을 보고, 팔다리를 굽히고 펴며, 겹가사·발우·가사를 지니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며, 대소변을 보고, 가고 서고 앉고 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할 때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

Idha, mahārāja,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질문에 답하여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이 드러나는 일상 동작을 빠짐없이 열거합니다. 나아감과 돌아옴, 앞과 옆을 봄, 팔다리를 굽힘과 폄, 겹가사·발우·가사를 지님, 먹고 마시고 씹고 맛봄, 대소변, 가고 섬·앉음·잠·깸·말함·침묵이 이어집니다. 각 묶음마다 `sampajānakārī`,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고 반복됩니다. 특별한 시간에만 집중하는 수행이 아니라 몸과 생활의 전 과정에서 무엇을 하는지 분명히 아는 범위를 보여 줍니다.

묵상

본문은 “가고 서고 앉고 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할 때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고 해요. 지금 하고 있는 동작 하나를 바꾸려 하지 않고, 몸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부분을 알아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이렇게 모든 움직임과 생활에서 분명히 아는 것이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춘 수행자의 모습이다.”

Evaṁ kho, mahārāj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나아감에서 침묵까지 생활 동작을 열거한 뒤, 그 전체를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의 정의로 다시 묶는 결론입니다. `Evaṁ kho …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는 ‘이와 같이’라는 말로 앞 카드의 여러 행동을 모두 가리킵니다. 새 수행 항목을 추가하지 않고, 움직임과 생활에서 무엇을 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이 이 요소를 갖춘 모습이라고 확정합니다. 다음에는 지니는 물품을 두 가지로 줄인 만족의 단계가 이어집니다.

묵상

“이렇게 모든 움직임과 생활에서 분명히 아는 것”이라는 결론은 앞의 긴 동작 목록을 하나로 묶어요.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일의 시작과 진행과 멈춤 가운데 어느 부분이 가장 분명한가요?

18 만족 2구절

만족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대왕이시여, 수행자는 어떻게 만족하는가? 대왕이시여, 몸을 보호할 가사와 배를 채울 탁발 음식에 만족한다. 어디로 가든 이것들만 가지고 떠난다.”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santuṭṭho hoti? Idha, mahārāja, bhikkhu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을 마친 뒤, 수행자가 `santuṭṭha`, 만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 묻고 답합니다. 몸을 보호하는 가사와 배를 유지하는 탁발 음식이라는 두 필요에 만족하고, 어디로 가든 그것들만 가지고 떠난다고 합니다. `kāyaparihārika`와 `kucchiparihārika`는 옷과 음식의 기능을 각각 몸 보호와 배 유지로 한정합니다. 일반 독자의 소유를 줄이라는 명령보다, 이동하는 출가자가 지니는 필수품의 범위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본문은 가사를 “몸을 보호할 것”, 탁발 음식을 “배를 채울 것”이라고 기능으로 설명해요. 내가 지금 지닌 물건 하나에서 꼭 필요한 기능과 그 밖에 붙인 기대를 구분해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새가 어디로 날든 두 날개만 짐으로 지니는 것과 같다. 대왕이시여, 수행자도 몸을 보호할 가사와 배를 채울 탁발 음식에 만족하고 그것만 가지고 간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만족한다.”

Seyyathāpi, mahārāja, pakkhī sakuṇo yena yeneva ḍeti, sapattabhārova ḍeti;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Evaṁ kho, mahārāja, bhikkhu santuṭṭho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가사와 탁발 음식만 지니는 수행자의 만족을 새의 두 날개 비유로 설명하고 단락을 닫습니다. 새가 어디로 날든 `sapattabhāro`, 자기 날개만 짐으로 지니듯 수행자도 몸을 보호할 가사와 배를 유지할 음식에 만족하여 그것만 가지고 갑니다. `yena yeneva`가 어디로 가든이라는 이동성을 반복하고, 끝에서 ‘이와 같이 수행자는 만족한다’고 정의합니다. 비유는 모든 소유의 포기보다 출가자의 필수품과 이동의 가벼움을 특정합니다.

묵상

“새가 어디로 날든 두 날개만 짐으로 지닌다”는 비유는 이동에 필요한 것을 몸과 함께 둬요. 오늘 움직일 때 실제로 필요한 것과 습관적으로 더 챙긴 것을 한 번 구분해 볼 수 있나요?

19 다섯 장애를 버림 11구절

다섯 장애를 버림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그는 고귀한 계행·감각 단속·알아차림과 분명한 앎·만족을 갖추고 외딴 거처를 찾는다. 숲·나무 아래·산·골짜기·산굴·묘지·숲속·빈터·짚더미에 머문다.”

So iminā ca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indriyasaṁvar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imāya ca ariyāya santuṭṭhiyā samannāgato, vivittaṁ senāsanaṁ bhajati araññaṁ rukkhamūlaṁ pabbataṁ kandaraṁ giriguhaṁ susānaṁ vanapatthaṁ abbhokāsaṁ palālapuñj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계행·감각 단속·마음챙김과 분명한 앎·만족의 네 조건을 갖춘 뒤, 수행자가 선정 준비를 위해 외딴 거처를 찾는 장면입니다. 숲·나무 아래·산·골짜기·산굴·묘지·숲속·빈터·짚더미의 아홉 장소를 열거합니다. `vivittaṁ senāsanaṁ`은 사람과 활동에서 떨어진 거처라는 공통 성격을 묶습니다. 앞의 생활 훈련이 거처 선택으로 이어지고, 다음 카드에서 공양 뒤 앉아 다섯 장애를 버리는 실천이 시작됩니다.

묵상

현재 텍스트를 기준으로, 본문은 아홉 장소를 열거하며 공통으로 “외딴 거처”라고 불러요. 같은 장소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지금 방해를 조금 줄이고 주의를 둘 수 있는 공간의 조건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공양 뒤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하고 몸을 곧게 세워 앞에 알아차림을 둔다.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려 탐욕 없는 마음으로 머물고 마음을 씻는다. 악의와 미움을 버려 모든 생명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머물며 악의에서 마음을 씻는다.”

So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ṁ ābhujitvā ujuṁ kāyaṁ paṇidhāya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 So abhijjhaṁ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ṁ parisodheti. Byāpādapadosaṁ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ṁ parisodh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외딴 거처에 든 수행자가 공양 뒤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하고 몸을 곧게 세우며 앞에 마음챙김을 둔 뒤, 다섯 장애 중 처음 두 가지를 다룹니다.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려 탐욕 없는 마음으로 머물고 `cittaṁ parisodheti`, 마음을 씻습니다. 악의와 미움을 버린 뒤에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이익을 자비롭게 살피며 다시 마음을 씻습니다. 단순히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두 상태를 알아차리고 반대되는 태도로 머무는 준비입니다.

묵상

본문은 악의와 미움을 버린 뒤 “모든 생명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머문다”고 해요. 불편한 감정을 없애야 한다고 몰아붙이지 않고, 지금 해를 더하지 않을 수 있는 작은 반응은 무엇인가요?

“혼침과 졸음을 버려 빛을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분명히 알아 혼침과 졸음에서 마음을 씻는다. 들뜸과 후회를 버려 안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머물며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씻는다. 의심을 버려 능숙한 것에 망설이지 않고 의심에서 마음을 씻는다. 대왕이시여, 이는 빚을 내어 사업에 쓴 사람과 같다.”

Thinamiddhaṁ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ṁ parisodheti. Uddhaccakukkuccaṁ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ṁ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ṁ parisodheti. Vicikicchaṁ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ṅ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ṁ parisodheti.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iṇaṁ ādāya kammante payojeyy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다섯 장애 가운데 탐욕과 악의에 이어 혼침과 졸음, 들뜸과 후회, 의심을 차례로 버리는 마지막 부분입니다. 세 장애마다 `cittaṁ parisodheti`, 곧 마음을 씻는다는 결론이 한 번씩 모두 세 번 반복됩니다. 의심을 건넌 사람은 `kusalesu dhammesu`, 즉 이로운 것들에 관해 망설이지 않는다고 하며, 곧바로 빚을 내어 사업에 쓴 사람의 비유를 시작합니다.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 낙인찍기보다 선정에 앞서 알아차리고 놓는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묵상

본문은 혼침과 졸음, 들뜸과 후회, 의심마다 “마음을 씻는다”고 반복해요. 이 셋 가운데 지금 가장 또렷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가 있나요, 아니면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다고 답해도 괜찮을까요?

“그 사업이 잘되어 오래된 빚을 다 갚고 배우자를 부양할 몫도 남았다고 하자. ‘전에 빚을 냈지만 이제 갚고 남은 것도 있다’고 생각한 그는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Tassa te kammantā samijjheyyuṁ. So yāni ca porāṇāni iṇamūlāni, tāni ca byantiṁ kareyya, siyā cassa uttariṁ avasiṭṭhaṁ dārabharaṇāya.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iṇaṁ ādāya kammante payojesiṁ. Tassa me te kammantā samijjhiṁsu. Sohaṁ yāni ca porāṇāni iṇamūlāni, tāni ca byantiṁ akāsiṁ, atthi ca me uttariṁ avasiṭṭhaṁ dārabharaṇāyā’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다섯 장애를 벗어난 안도감을 설명하는 첫 비유인 빚의 사례를 완성합니다. 빚을 내어 시작한 사업이 잘되어 오래된 빚을 모두 갚고, 배우자를 부양할 몫까지 남았다고 합니다. 과거에 빚을 냈다는 사실, 사업의 성공, 빚의 소멸, 남은 몫이라는 네 요소를 스스로 확인한 사람은 `pāmojja`인 기쁨과 `somanassa`인 행복을 얻습니다. 이는 장애를 버린 안도감의 비유이지 빚이 있는 사람의 가치나 수행 수준을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묵상

그는 “전에 빚을 냈지만 이제 갚고 남은 것도 있다”고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 확인해요. 실제 빚의 유무와 상관없이, 끝낸 부담 하나와 아직 남은 일을 차분히 나누어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몹시 병들어 음식도 당기지 않고 몸에 힘도 없던 사람이 뒤에 그 병에서 벗어나 음식이 당기고 몸에 힘이 생겼다고 하자. 그는 ‘나는 전에는 병들어 몹시 괴로웠고 음식도 당기지 않았으며 몸에 힘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ābādhiko assa dukkhito bāḷhagilāno; bhattañcassa nacchādeyya, na cassa kāye balamattā. So aparena samayena tamhā ābādhā mucceyya; bhattaṁ cassa chādeyya, siyā cassa kāye balamattā.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ābādhiko ahosiṁ dukkhito bāḷhagilāno; bhattañca me nacchādesi, na ca me āsi kāye balamatt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다섯 장애에서 벗어난 기쁨을 설명하는 두 번째 비유로, 심하게 앓던 사람이 회복되는 전후를 제시하는 시작입니다. 전에는 몹시 아파 음식이 당기지 않고 몸에 힘이 없었으나 뒤에는 병에서 벗어나 식욕과 힘이 돌아왔다는 대조가 같은 항목 순서로 놓입니다. 이는 수행의 장애를 벗어남을 설명하기 위한 경 안의 비유이지, 수행이 질병을 치료한다거나 아픈 사람이 수행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질병 묘사가 힘들면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뒤에 그 병에서 벗어나 음식이 당기고 몸에 힘이 생겼다”는 말은 장애에서 벗어남을 설명하는 비유예요. 건강 이야기가 힘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이 비유를 실제 치료의 약속과 구분할 수 있나요?

‘“그러나 지금은 그 병에서 벗어났고 음식도 당기며 몸에 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대왕이시여,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 뒤에 재산을 잃지 않고 안전하고 두려움 없이 풀려났다고 하자.”’

Somhi etarahi tamhā ābādhā mutto; bhattañca me chādeti, atthi ca me kāye balamattā’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bandhanāgāre baddho assa. So aparena samayena tamhā bandhanāgārā mucceyya sotthinā abbhayena, na cassa kiñci bhogānaṁ vay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질병 비유를 마치며 회복한 사람이 그 사실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고 한 뒤, 세 번째인 감옥 비유를 시작합니다. 병에서 벗어남·음식이 당김·몸에 힘이 있음이라는 세 회복 항목이 앞 카드의 세 어려움과 짝을 이루고, 감옥에서는 안전하고 두려움 없이 풀려나며 재산도 잃지 않는 조건이 제시됩니다. 둘 다 다섯 장애에서 벗어난 안도감을 설명하는 비유이며, 실제 질병이나 구금의 책임을 독자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힘들면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회복한 사람은 “지금은 그 병에서 벗어났고 음식도 당기며 몸에 힘도 있다”고 확인해요. 질병이나 구금의 이야기가 힘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전과 달라진 사실 한 가지만 조심스럽게 알아볼 수 있나요?

“‘전에 감옥에 갇혔지만 이제 안전하게 풀려나 재산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는 기뻐한다. 대왕이시여, 남의 지배를 받아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하던 종이 뒤에 자유인이 되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게 된 경우도 같다.”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bandhanāgāre baddho ahosiṁ, somhi etarahi tamhā bandhanāgārā mutto sotthinā abbhayena. Natthi ca me kiñci bhogānaṁ vayo’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dāso assa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ṅgamo. So aparena samayena tamhā dāsabyā mucceyya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ṅgam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의 생각과 기쁨을 마무리한 뒤, 네 번째인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 비유로 넘어갑니다. 감옥에서는 과거의 구금과 현재의 안전한 석방, 재산을 잃지 않음이 대조되고, 다음 사람은 `anattādhīno·parādhīno·na yenakāmaṅgamo`로 자신을 주재하지 못하고 남의 지배를 받아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었다가 자유인이 됩니다. 이는 장애에서 벗어남의 비유이지 실제 구금이나 예속을 겪은 사람을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힘들면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습니다.

묵상

“이제 안전하게 풀려나 재산도 잃지 않았다”는 문장은 감옥 비유의 현재 상태를 확인해요. 구금이나 예속의 말이 힘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과거와 현재를 섞지 않고 지금 달라진 한 사실만 볼 수 있나요?

“‘전에는 남의 지배를 받는 종이었지만 이제 자유인이 되어 원하는 곳에 간다’고 생각한 그는 기뻐한다. 대왕이시여, 재산이 있는 사람이 먹을 것도 없고 위험한 광야 길을 가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dāso ahosiṁ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ṅgamo. Somhi etarahi tamhā dāsabyā mutto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ṅgamo’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sadhano sabhogo kantāraddhānamaggaṁ paṭipajjeyya dubbhikkhaṁ sappaṭibhay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예속에서 벗어난 사람이 자신을 주재하고 남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확인하여 네 번째 비유를 닫고, 다섯 번째인 위험한 광야 길 비유를 엽니다. 과거와 현재에 `anattādhīno/parādhīno`와 `attādhīno/aparādhīno`가 반대로 놓이고, 재산이 있는 사람이 먹을 것이 없고 위험한 길에 들어서는 새 조건이 이어집니다. 이는 다섯 장애와 그 소멸을 설명하는 비유의 연쇄이며 실제 예속이나 위험을 개인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힘들면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이제 자유인이 되어 원하는 곳에 간다”는 구절은 앞선 예속과 현재를 대조해요. 이런 소재가 힘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통제할 수 없는 조건과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을 나누어 볼 수 있나요?

“뒤에 그 광야를 안전하게 건너 위험 없는 마을에 이르면, ‘전에 위험한 광야 길에 있었지만 이제 안전한 마을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So aparena samayena taṁ kantāraṁ nitthareyya sotthinā, gāmantaṁ anupāpuṇeyya khemaṁ appaṭibhayaṁ.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sadhano sabhogo kantāraddhānamaggaṁ paṭipajjiṁ dubbhikkhaṁ sappaṭibhayaṁ. Somhi etarahi taṁ kantāraṁ nitthiṇṇo sotthinā, gāmantaṁ anuppatto khemaṁ appaṭibhayan’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재산을 지닌 사람이 먹을 것이 없고 위험한 광야 길에 들어섰던 다섯 번째 비유를 마무리합니다. 뒤에 그 길을 안전하게 건너 `khemaṁ appaṭibhayaṁ`, 안전하고 두려움 없는 마을에 도착하고, 과거의 위험한 광야와 현재의 안전한 장소를 스스로 대조합니다. 그 사실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고 하며, 곧 다음 카드에서 빚·질병·감옥·예속·광야의 다섯 비유를 다섯 장애와 직접 대응시킵니다. 실제 위험을 겪은 사람의 책임을 묻는 비유가 아닙니다.

묵상

그는 “전에 위험한 광야 길에 있었지만 이제 안전한 마을에 왔다”고 현재 위치를 확인해요. 위험의 이야기가 힘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지금 안전을 알려 주는 구체적 표지는 무엇인가요?

“대왕이시여, 수행자는 버리지 못한 다섯 장애를 빚·질병·감옥·노예 상태·광야 길처럼 본다. 대왕이시여, 반대로 장애를 버렸을 때는 빚 없음·건강·감옥에서 풀림·자유·안전한 땅처럼 본다, 대왕이시여.”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yathā iṇaṁ yathā rogaṁ yathā bandhanāgāraṁ yathā dāsabyaṁ yathā kantāraddhānamaggaṁ, evaṁ ime pañca nīvaraṇe appahīne attani samanupassati. Seyyathāpi, mahārāja, yathā āṇaṇyaṁ yathā ārogyaṁ yathā bandhanāmokkhaṁ yathā bhujissaṁ yathā khemantabhūmiṁ;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e pañca 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빚·질병·감옥·예속·광야 길의 다섯 비유를 모두 제시한 뒤, 그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직접 대응시키는 결론입니다. 버리지 못한 다섯 장애는 빚·질병·감옥·노예 상태·위험한 길과 같고, 버린 때에는 빚 없음·건강·감옥에서 풀림·자유·안전한 땅과 같다고 같은 순서로 짝을 이룹니다. 실제로 아프거나 구금되거나 예속된 사람을 수행 부족으로 판정하는 말이 아니라, 장애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체감 차이를 설명하는 다섯 비유입니다.

묵상

이 구절 안에서 차분히, 본문은 다섯 장애를 다섯 어려움과, 장애의 소멸을 다섯 안도와 같은 순서로 짝지어요. 소재가 힘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첫째와 첫째처럼 한 쌍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다섯 장애가 자신에게서 버려진 것을 보면 기쁨이 생기고, 기쁜 이에게 희열이 생긴다. 희열한 마음에는 몸의 고요가 생기고, 고요한 몸은 행복을 느끼며 행복한 이의 마음은 집중에 든다.”

Tassime pañca 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o pāmojjaṁ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ṁ vedeti, sukhino cittaṁ samādhiy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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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다섯 장애를 버린 상태를 다섯 비유로 확인한 뒤, 선정으로 들어가는 마음의 연쇄를 한 문장으로 제시합니다. 장애가 버려진 것을 보면 `pāmojja` 기쁨이 생기고, 기쁨에서 `pīti` 희열, 희열한 마음에서 몸의 고요, 고요한 몸에서 행복, 행복한 이에게 삼매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다섯 단계는 각각 앞 상태를 조건으로 하며, 억지로 기쁨이나 집중을 만들어 내라는 명령이 아니라 장애를 벗어난 뒤 전개되는 경문상의 순서를 설명합니다.

묵상

본문은 “기쁨이 생기고, 기쁜 이에게 희열이 생긴다”에서 몸의 고요와 행복과 삼매까지 순서대로 이어요. 지금 이 연쇄를 성취해야 한다고 묻지 않고, 가장 이해되는 연결 하나만 찾을 수 있나요?

20 첫째 선정 3구절

첫째 선정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감각적 즐거움과 해로운 것에서 떠나 생각의 적용과 지속이 있고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몸 어디에도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S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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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다섯 장애를 버린 뒤 기쁨에서 삼매까지 이어지는 연쇄 다음에, 첫째 선정을 직접 설명합니다. 감각적 즐거움과 불선한 상태에서 떠나되 `savitakka savicāra`, 생각의 적용과 지속이 있으며, `vivekaja pītisukha`,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어 그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선정의 첫 단계는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떠남과 두 마음 작용 및 몸 전체의 충만을 함께 갖춘 것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본문은 첫째 선정을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라고 원인을 분명히 해요. 같은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묻지 않고, 지금 무언가에서 잠시 떨어졌을 때 달라진 몸의 느낌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능숙한 목욕 시중이나 제자가 청동 대야의 목욕 가루에 물을 조금씩 뿌려 반죽한다고 하자. 가루 덩이가 안팎으로 물기에 젖고 가득하지만 물이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Seyyathāpi, mahārāja, dakkho nhāpako vā nhāpakantevāsī vā kaṁsathāle nhānīyacuṇṇāni ākiritvā udakena paripphosakaṁ paripphosakaṁ sanneyya, sāyaṁ nhānīyapiṇḍi snehānugatā snehaparetā santarabāhirā phuṭā snehena, na ca paggharaṇ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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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첫째 선정의 희열과 행복이 몸 전체에 퍼지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목욕 가루 반죽 비유를 듭니다. 숙련된 목욕 시중이나 그 제자가 청동 대야의 가루에 물을 조금씩 뿌려 반죽하자, 가루 덩이는 안팎으로 물기에 젖고 가득하지만 물이 흘러나오지는 않습니다. 물의 양과 반죽의 균일함이 함께 강조되며, 다음 카드에서 이 비유가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몸 전체에 빠짐없이 스미는 상태와 직접 연결됩니다.

묵상

지금 본문에 나온 범위에서, 목욕 가루는 “안팎으로 물기에 젖고 가득하지만 물이 흘러나오지는 않는다”고 묘사돼요. 이 비유에서 넘침보다 고르게 스며듦을 보여 주는 구체적 장면은 무엇인가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수행자는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ameva kāyaṁ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목욕 가루와 물의 비유를 첫째 선정에 적용하고, 이를 앞의 결실보다 뛰어난 수행 결실로 확정합니다. 수행자는 `vivekaja pītisukha`,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어느 곳도 빠지지 않게 합니다. 비유의 물기처럼 마음의 상태가 몸 전체에 고르게 퍼진다는 대응이며, 끝에서는 이것도 앞의 눈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합니다. 비유·적용·결실 판정이 한 단계의 설명을 닫습니다.

묵상

본문은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운다”고 비유를 적용해요. 성취 여부를 판단하기보다, 지금 몸에서 비교적 편안하거나 생생하게 느껴지는 한 부분은 어디인가요?

21 둘째 선정 4구절

둘째 선정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대왕이시여, 다시 수행자는 생각의 적용과 지속을 가라앉혀 내면의 맑음과 마음의 하나 됨이 있고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든다. 그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Puna caparaṁ, mahārāja, bhikkhu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첫째 선정의 결실을 마친 뒤, 생각의 적용과 지속이 가라앉는 둘째 선정을 설명합니다. `ajjhattaṁ sampasādanaṁ`인 내면의 맑음과 `cetaso ekodibhāvaṁ`인 마음의 하나 됨이 있으며, 적용과 지속이 없는 상태에서 `samādhija pītisukha`,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어 그 희열과 행복이 온몸에 빠짐없이 스민다고 합니다. 첫째의 희열이 떠남에서 생긴 것과 달리 둘째는 삼매에서 생긴다는 원인 차이가 단계의 핵심입니다.

묵상

이 카드의 말에 기대어, 둘째 선정의 희열과 행복은 “삼매에서 생긴다”고 첫째 선정과 다른 원인을 밝혀요. 두 설명을 비교할 때, 그대로 남은 요소와 사라지거나 달라진 요소를 하나씩 찾을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샘물이 솟는 깊은 호수가 있는데 동·남·서·북 어디에도 물이 들어오는 곳이 없고 하늘에서도 때맞춰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하자.”

Seyyathāpi, mahārāja, udakarahado gambhīro ubbhidodako tassa nevassa puratt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dakkhiṇ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pacc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uttar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devo ca na kālena kālaṁ sammādhāraṁ anuppaveccheyy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둘째 선정의 희열과 행복이 안에서 생겨 몸을 채우는 방식을 설명하는 깊은 호수 비유의 첫 부분입니다. 샘물이 솟는 호수에는 동·남·서·북 어느 방향에도 물이 들어오는 길이 없고, 하늘에서도 때맞춰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네 방향과 외부 공급을 모두 부정합니다. 아직 호수를 적시는 물의 근원은 말하지 않고 다음 카드에서 내부의 찬 물줄기를 제시합니다. 이 연속은 둘째 선정의 행복이 외부 유입이 아니라 삼매에서 생긴다는 점을 비유로 준비합니다.

묵상

호수에는 “동·남·서·북 어디에도 물이 들어오는 곳이 없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고 해요. 아직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이 카드가 부정한 외부 유입 조건만 차례로 확인해 볼 수 있나요?

“그러나 호수 안에서 솟는 차가운 물줄기가 호수 전체를 적시고 채워, 차가운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Atha kho tamhāva udakarahadā sītā vāridhārā ubbhijjitvā tameva udakarahadaṁ sītena vārinā abhisandeyya parisandeyya paripūreyya paripphareyya, nāssa kiñci sabbāvato udakarahadassa sītena vārinā apphuṭaṁ ass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외부에서 물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호수 비유의 두 번째 부분으로, 호수 안에서 솟는 차가운 물줄기가 원천임을 밝힙니다. 그 물줄기는 호수 전체를 적시고 채워 `nāssa kiñci … apphuṭaṁ`, 차가운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게 합니다. 앞 카드의 네 방향 유입과 비의 부정을 받아 내부의 샘을 대조하며, 다음 카드에서 이 물이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채우는 둘째 선정에 적용됩니다.

묵상

현재 확인되는 구절 안에서, 외부 유입이 없는 호수는 “안에서 솟는 차가운 물줄기”로 전체가 채워져요. 이 비유 안에서 물의 근원과 물이 미치는 범위를 각각 어떤 구절로 확인할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수행자는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ameva kāyaṁ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안에서 솟는 찬 물이 호수 전체를 채우는 비유를 둘째 선정에 적용하고, 단계의 결실을 확정합니다. 수행자는 `samādhija pītisukha`,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게 합니다. 호수 밖에서 물이 들어오지 않았듯 이 상태의 근원은 삼매로 제시됩니다. 끝에서는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라고 하여 둘째 선정의 설명을 닫습니다.

묵상

본문은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운다”고 호수 비유를 적용해요. 이 상태를 이루었는지 묻지 않고, 비유와 선정 설명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두 표현은 무엇인가요?

22 셋째 선정 3구절

셋째 선정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대왕이시여, 다시 수행자는 희열이 빛바래 평정하게 머물고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어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고귀한 이들이 ‘평정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든다. 희열 없는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운다.”

Puna caparaṁ, mahārāja,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t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ṁ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둘째 선정의 결실을 마친 뒤, 희열이 빛바래고 평온이 두드러지는 셋째 선정을 설명합니다. `pītiyā virāgā`로 희열이 사라지고, 평온하게 머물며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을 갖추고 몸으로 행복을 경험합니다. 고귀한 이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말하는 상태로 셋째 선정에 듭니다. 이어 `nippītikena sukhena`, 희열 없는 행복으로 온몸을 채운다고 하여 희열과 행복을 분리하고 다음 연꽃 비유를 준비합니다.

묵상

셋째 선정은 “희열이 빛바래 평온하게 머물고 …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고 두 상태를 구분해요. 지금 강한 들뜸과 잔잔한 편안함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몸에서 차이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대왕이시여, 푸른 연꽃·붉은 연꽃·흰 연꽃 가운데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나오지 않고 잠긴 채 자라는 꽃들이 있다고 하자.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젖고 가득하여 물이 스며들지 않은 부분이 없다.”

Seyyathāpi, mahārāja, uppaliniyaṁ vā paduminiyaṁ vā puṇḍarīkiniyaṁ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tāni yāva caggā yāva ca mūlā sītena vārinā abhisannāni parisannāni paripūrāni paripphuṭāni, nāssa kiñci sabbāvataṁ uppalānaṁ vā padumānaṁ vā puṇḍarīkānaṁ vā sītena vārinā apphuṭaṁ ass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셋째 선정의 희열 없는 행복이 몸 전체에 스미는 상태를 물속 연꽃 비유로 설명합니다. 푸른 연꽃·붉은 연꽃·흰 연꽃의 세 종류 가운데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나오지 않은 채 잠겨 있는 꽃을 듭니다. 이 꽃들은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젖고 가득하여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바깥에서 적시는 장면이 아니라 물속에서 자란 꽃 전체가 이미 잠겨 있다는 점이 다음 카드의 몸 전체 충만과 연결됩니다.

묵상

지금 이 인용의 순서대로, 세 연꽃은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젖고 가득하다”고 묘사돼요. 이 비유에서 일부만 닿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스민다는 점을 보여 주는 말은 무엇인가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수행자는 희열 없는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ameva kāyaṁ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ṁ hoti.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물속 연꽃이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로 가득한 비유를 셋째 선정에 적용하고 결실을 확정합니다. 수행자는 `nippītikena sukhena`, 희열 없는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게 합니다. 첫째와 둘째 카드의 ‘희열과 행복’과 달리 여기서는 희열이 빠지고 행복만 남는다는 차이를 보존해야 합니다. 끝에서는 이것도 앞의 것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라고 하여 셋째 선정 단락을 닫습니다.

묵상

본문에 적힌 항목만 놓고, 본문은 “희열 없는 행복으로 온몸을 적시고 채운다”고 셋째 선정의 차이를 분명히 해요. 앞 단계의 ‘희열과 행복’과 비교할 때 빠진 말 하나와 남은 말 하나는 무엇인가요?

23 넷째 선정 3구절

넷째 선정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대왕이시여, 다시 수행자는 행복과 괴로움을 버리고 기쁨과 슬픔도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정으로 알아차림이 깨끗한 네 번째 선정에 든다.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온몸을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Puna caparaṁ, mahārāja,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ṁ h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셋째 선정 뒤에 넷째 선정의 성격과 그 상태가 몸 전체에 퍼지는 비유를 제시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pubbeva`, 곧 앞서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데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상태와 평온으로 깨끗해진 마음챙김에 듭니다. 이어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온몸 어느 곳에도 빠짐없이 스민다고 합니다. 감정을 억누르라는 명령이 아니라, 앞 단계의 소멸 순서와 평온·마음챙김의 정화를 설명하는 선정의 정형입니다.

묵상

“앞서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져”라는 말은 넷째 선정에 앞선 순서를 분명히 해요. 지금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몸에서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편안함이나 불편함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대왕이시여, 어떤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을 두르고 앉아 몸 어디에도 흰 천이 덮이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odātena vatthena sasīsaṁ pārupitvā nisinno assa,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odātena vatthena apphuṭaṁ ass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넷째 선정의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온몸에 퍼지는 상태를 흰 천 비유로 설명합니다. 한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을 두르고 앉아 `nāssa kiñci … apphuṭaṁ`, 몸 어디에도 흰 천이 덮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목욕 가루·호수·연꽃처럼 액체가 스미는 앞의 세 비유와 달리, 흰 천이 몸 전체를 빈틈없이 감싸는 이미지가 사용됩니다. 다음 카드에서 이 흰 천은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온몸을 채우는 넷째 선정에 적용됩니다.

묵상

이 대목의 표현을 따라, 흰 천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어디에도 덮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요. 앞의 물 비유들과 달리 이 카드가 전체를 감싸는 모습을 어떤 이미지로 보여 주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수행자는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온몸을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ameva kāyaṁ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ṁ hoti.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이 몸을 덮는 비유를 넷째 선정에 적용하고 네 선정의 마지막 결실을 확정합니다. 수행자는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온몸을 채워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게 합니다. 희열이나 행복의 충만을 말한 앞 단계와 달리, 넷째에서는 평온으로 깨끗해진 마음챙김과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중심입니다. 끝에서는 이것도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라고 닫습니다.

묵상

현재 카드의 범위 안에서, 본문은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온몸을 채운다”고 흰 천 비유를 적용해요. 깨끗함을 성취했는지 평가하기보다, 넷째 선정 설명에서 앞 단계와 달라진 핵심 표현은 무엇인가요?

24 통찰의 앎 5구절

통찰의 앎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앎과 봄으로 기울인다. 그는 안다. ‘내 몸은 부모에게서 생겨나 밥과 죽으로 자란 네 큰 요소의 물질이며, 닳고 부서져 사라질 성질이다. 내 의식은 이 몸에 기대고 묶여 있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evaṁ pajānāti: ‘ayaṁ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ṁsanadhammo;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ṁ ettha sitaṁ ettha paṭibaddha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네 선정의 설명을 마친 뒤, 안정된 마음을 앎과 봄으로 기울이는 첫 지혜 단계가 시작됩니다. 삼매의 마음에는 깨끗함·밝음·흠 없음·오염을 벗음·부드러움·쓰기 좋음·안정됨·흔들림 없음의 여덟 성질이 붙습니다. 수행자는 몸이 부모에게서 생겨 밥과 죽으로 자란 네 요소의 물질이며 닳고 부서져 사라질 성질임을 알고, 의식은 그 몸에 기대고 묶였다고 봅니다. 몸과 의식을 동일하다고 하지 않으면서 의존 관계와 물질의 소멸성을 함께 관찰합니다.

묵상

본문은 몸을 “부모에게서 생겨나 밥과 죽으로 자란 네 큰 요소의 물질”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요. 지금 몸을 평가하지 않고, 먹고 쉬며 유지되는 사실 한 가지만 알아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타고난 빛이 좋고 여덟 면을 잘 다듬어 투명하고 맑으며 모든 좋은 특성을 갖춘 녹주석 보석이 있다고 하자. 거기에 파랑·노랑·빨강·하양·황갈색 실 하나가 꿰어져 있다.”

Seyyathāpi, mahārāja,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ṁ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Tatrāssa suttaṁ āvutaṁ nīlaṁ vā pītaṁ vā lohitaṁ vā odātaṁ vā paṇḍusuttaṁ v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몸과 의식의 관계를 아는 통찰을 설명하기 위해, 녹주석 보석과 그 안에 꿰인 실의 비유를 시작합니다. 보석은 타고난 빛이 좋고 여덟 면을 잘 다듬었으며 투명하고 맑고 흐림이 없고 모든 좋은 특성을 갖췄습니다. 그 안에는 파랑·노랑·빨강·하양·황갈색 가운데 한 색의 실이 꿰어져 있습니다. 보석과 실은 함께 보이지만 같은 것은 아니며, 다음 카드의 관찰자가 둘의 특성을 각각 알아보는 장면을 준비합니다.

묵상

지금 본문에서 확인하며, 비유에는 “여덟 면을 잘 다듬어 투명하고 맑은 녹주석”과 그 안에 꿰인 한 색 실이 함께 있어요. 서로 가까이 붙어 있지만 구별되는 두 대상을 어떤 특징으로 나눌 수 있나요?

“눈 밝은 사람이 그것을 손에 놓고 살핀다. ‘이 녹주석은 타고난 빛이 좋고 여덟 면이 잘 다듬어져 투명하고 맑다. 여기에 파랑·노랑·빨강·하양·황갈색 실이 꿰어져 있다.’”

Tamenaṁ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ayaṁ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ṁ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tatridaṁ suttaṁ āvutaṁ nīlaṁ vā pītaṁ vā lohitaṁ vā odātaṁ vā paṇḍusuttaṁ v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녹주석과 실을 눈 밝은 사람이 손에 놓고 직접 살피는 비유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그는 보석의 타고난 좋은 빛·여덟 면·정교한 다듬음·투명함·맑음·흐림 없음·온전한 특성을 확인하고, 그 안의 실도 파랑·노랑·빨강·하양·황갈색 가운데 어느 색인지 구분합니다. 한 대상 안에 실이 꿰어져 있어도 보석과 실을 섞지 않고 각각의 모양을 아는 관찰이, 다음 카드의 몸과 의식에 대한 앎을 비유합니다.

묵상

이 구절의 말만 기준으로, 눈 밝은 사람은 보석의 성질과 “여기에 꿰어진 실”의 색을 각각 확인해요. 함께 보이는 두 가지를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지금 서로 다른 특징 하나씩을 말해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앎과 봄으로 기울인다. 그는 이 몸이 부모에게서 생겨나 밥과 죽으로 자란 네 큰 요소의 물질이며, 닳고 부서져 사라질 성질임을 안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evaṁ pajānāti: ‘ayaṁ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ṁsanadhamm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녹주석과 그 안의 실을 구별해 보는 비유를 수행자의 앎과 봄에 적용하는 부분입니다. 깨끗하고 밝고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마음이라는 여덟 성질을 다시 제시합니다. 그 마음으로 몸이 부모에게서 생겨 밥과 죽으로 자란 네 큰 요소의 물질이며 `anicca`하고 닳고 부서져 사라질 성질임을 압니다. 아직 의식의 의존 관계와 결실 판정은 다음 카드에 남아 있어, 여기서는 몸의 기원과 성질을 정확히 보는 데 초점을 둡니다.

묵상

현재 드러난 순서에 따라, 본문은 몸이 “닳고 부서져 사라질 성질”임을 안다고 해요. 이 말을 몸을 미워하는 판단으로 바꾸지 않고, 지금 변하고 있는 몸의 중립적인 사실 한 가지만 살펴볼 수 있나요?

“‘내 의식은 이 몸에 기대고 이 몸에 묶여 있다’고 안다.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ṁ ettha sitaṁ ettha paṭibaddhan’ti.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몸의 기원과 사라질 성질을 아는 통찰에 이어, 의식과 몸의 관계를 밝히고 첫 지혜의 결실을 닫습니다. `viññāṇaṁ ettha sitaṁ ettha paṭibaddhaṁ`은 의식이 이 몸에 기대고 이 몸에 묶여 있다는 두 표현입니다. 녹주석 속 실처럼 함께 있으면서 구별되는 관계를 마무리하고, 세존은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abhikkantatara` 더 뛰어나고 `paṇītatara` 더 훌륭한 현세의 수행 결실이라고 평가합니다. 독자에게 같은 통찰의 성취를 요구하는 문장은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내 의식은 이 몸에 기대고 이 몸에 묶여 있다”고 두 관계를 나란히 말해요. 이를 성취 여부의 질문으로 바꾸지 않고, 기대어 있음과 동일함이 왜 다른지만 살펴볼 수 있나요?

25 마음으로 만든 몸 4구절

마음으로 만든 몸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마음으로 만든 몸을 만드는 데 기울인다. 이 몸에서 팔다리와 감각 기관을 온전히 갖춘 다른 물질의 몸을 마음으로 만들어 낸다. 대왕이시여, 줄기에서 속대를 뽑는 것과 같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manomayaṁ kāyaṁ abhinimmān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imamhā kāyā aññaṁ kāyaṁ abhinimmināti rūpiṁ manomayaṁ sabbaṅgapaccaṅgiṁ ahīnindriyaṁ.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muñjamhā īsikaṁ pavāheyy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몸과 의식에 대한 앎을 마친 뒤, 마음으로 만든 몸을 만들어 내는 다음 결실을 시작합니다. 삼매의 마음에 깨끗함부터 흔들림 없음까지 여덟 성질을 붙이고, 그 마음을 `manomayaṁ kāyaṁ abhinimmānāya`에 기울입니다. 현재 몸에서 물질로 이루어지고 팔다리와 감각 기관이 온전한 다른 몸을 마음으로 만든다고 한 뒤, 줄기에서 속대를 뽑는 첫 비유를 듭니다. 이는 경이 열거한 수행 결실이며 독자의 현재 능력을 시험하거나 약속하는 말이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이 몸에서 … 다른 물질의 몸을 마음으로 만들어 낸다”고 경 안의 결실을 설명해요. 내 능력과 비교하지 않고, 여기서 원래 몸과 만들어진 몸을 구분하는 표현은 무엇인가요?

“‘이것은 줄기이고 이것은 속대이며, 속대가 줄기에서 나왔다’고 안다. 대왕이시여, 칼집에서 칼을 뽑고 둘이 다르지만 하나에서 나왔다고 아는 것과 같다. 대왕이시여, 허물에서 뱀을 꺼내 뱀과 허물이 다르지만 하나에서 나왔다고 아는 것도 같다.”

Tassa evamassa: ‘ayaṁ muñjo, ayaṁ īsikā, añño muñjo, aññā īsikā, muñjamhā tveva īsikā pavāḷhā’ti.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puriso asiṁ kosiyā pavāheyya. Tassa evamassa: ‘ayaṁ asi, ayaṁ kosi, añño asi, aññā kosi, kosiyā tveva asi pavāḷho’ti.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puriso ahiṁ karaṇḍā uddhareyya. Tassa evamassa: ‘ayaṁ ahi, ayaṁ karaṇḍo. Añño ahi, añño karaṇḍo, karaṇḍā tveva ahi ubbhat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마음으로 만든 몸을 설명한 뒤, 서로 다르면서 하나에서 나온 관계를 세 비유로 거듭 밝히는 대목입니다. 갈대 줄기와 속대, 칼집과 칼, 바구니(`karaṇḍa`)와 뱀이 각각 구별되며 속대는 줄기에서, 칼은 칼집에서, 뱀은 바구니에서 꺼내졌다고 합니다. 마지막을 뱀의 허물로 옮기면 용기와 내용물의 구별이라는 세 비유의 공통 구조가 깨집니다. 비유는 동일시가 아니라 차이와 유래를 함께 아는 논리를 보여 줍니다.

묵상

본문은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며, 둘은 다르지만 칼집에서 칼이 나왔다”고 구별과 관계를 함께 말해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닌 두 가지를 지금 하나 떠올려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마음으로 만든 몸을 만들어 내는 데 기울인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manomayaṁ kāyaṁ abhinimmān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줄기와 속대·칼집과 칼·바구니와 뱀의 세 비유를 모두 마친 뒤, 그 구조를 수행자의 마음에 적용하는 연결 카드입니다. `Evameva kho`로 ‘그와 같이’라고 받아,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삼매의 마음을 마음으로 만든 몸을 생성하는 데 기울인다고 합니다. 이 카드에는 결과로 생긴 몸의 세부나 결실 판정이 아직 없고, 다음 카드에서 팔다리와 감각 기관의 온전함을 다시 밝힙니다.

묵상

“그와 같이 … 마음을 마음으로 만든 몸을 만들어 내는 데 기울인다”는 문장이 세 비유를 수행 설명에 연결해요. 이 카드가 비유에서 가져온 공통 구조를 한 가지로 말하면 무엇인가요?

“그는 이 몸에서 팔다리와 감각 기관을 온전히 갖춘 다른 물질의 몸을 마음으로 만들어 낸다.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So imamhā kāyā aññaṁ kāyaṁ abhinimmināti rūpiṁ manomayaṁ sabbaṅgapaccaṅgiṁ ahīnindriyaṁ.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세 비유를 적용한 뒤 마음으로 만든 몸의 결과를 다시 밝히고, 이 단계의 결실을 마무리합니다. 수행자는 `imamhā kāyā aññaṁ kāyaṁ`, 이 몸에서 다른 몸을 만들며, 그것은 물질로 이루어지고 모든 팔다리와 감각 기관을 빠짐없이 갖췄다고 합니다. 이어 이것도 앞의 눈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평가합니다. 다른 몸이 원래 몸과 구별되면서 그 몸에서 나왔다는 비유의 논리를 반복하며, 독자의 성취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묵상

지금 카드에 적힌 대로, 본문은 만들어진 몸을 “팔다리와 감각 기관을 온전히 갖춘 다른 물질의 몸”이라고 구체화해요.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가르는 말 가운데 지금 가장 분명한 표현은 무엇인가요?

26 여러 신통 6구절

여러 신통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여러 신통을 향해 마음을 기울인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iddhividh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마음으로 만든 몸의 결실을 마친 뒤, 여러 신통을 다음 눈앞의 수행 결실로 여는 도입입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고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다는 여덟 성질이 다시 반복됩니다. 수행자는 그 마음을 `iddhividhā`, 여러 신통을 향해 기울입니다. 아직 하나가 여럿이 되는 등의 구체적 목록은 다음 카드에서 나오므로, 이 카드는 준비된 마음과 새 앎의 방향만 밝힙니다. 독자에게 신통을 요구하거나 보장하지 않습니다.

묵상

본문은 “여러 신통을 향해 마음을 기울인다”고 새 단계의 방향만 말해요. 다음 목록을 미리 기대하거나 내 경험과 비교하지 않고, 이 카드가 반복한 마음의 성질 하나를 확인할 수 있나요?

“한 몸이 여럿이 되고 여럿이 다시 하나가 되며, 모습을 보이거나 감춘다. 담·성곽·산을 허공처럼 통과하고 땅을 물처럼 오르내리며, 물 위를 땅처럼 걷고 새처럼 가부좌한 채 하늘을 난다. 해와 달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범천 세계까지 몸의 힘을 뻗친다.”

So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oti—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āvibhāvaṁ tirobhāvaṁ tirokuṭṭaṁ tiropākāraṁ tiropabbataṁ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ṁ karoti seyyathāpi udake; udakepi abhijjamāne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ā;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imepi candimasūriye evaṁmahiddhike evaṁmahānubhāve pāṇinā parāmasati parimajjati;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여러 신통의 도입 뒤, 경이 그 범위를 한 문장에 길게 열거합니다. 하나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됨, 나타남과 사라짐, 담·성곽·산 통과, 땅을 물처럼 드나듦, 물 위를 걸음, 가부좌로 하늘을 남, 해와 달을 만짐, 범천 세계까지 몸의 힘을 미침이 이어집니다. 이 목록은 뒤의 세 장인 비유와 적용 뒤 다시 한 번 온전히 반복됩니다. 여기서는 수행 결실로 주장된 항목을 정확히 제시할 뿐, 독자의 경험을 같은 능력으로 해석하거나 수행의 우열을 판정하지 않습니다.

묵상

본문은 “한 몸이 여럿이 되고 여럿이 다시 하나가 된다”에서 신통 목록을 시작해요. 이것을 내 경험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경이 실제로 열거한 첫 번째 대칭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능숙한 옹기공이 잘 반죽한 흙으로 원하는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대왕이시여, 능숙한 상아 세공인이 잘 다듬은 상아로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도 같다.”

Seyyathāpi, mahārāja, dakkho kumbhakāro vā kumbh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āya mattikāya yaṁ yadeva bhājanavikatiṁ ākaṅkheyya, taṁ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dakkho dantakāro vā dant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asmiṁ dantasmiṁ yaṁ yadeva dantavikatiṁ ākaṅkheyya, taṁ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신통의 긴 목록 뒤,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두 장인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숙련된 옹기공이나 제자는 잘 반죽한 흙으로 원하는 그릇을 만들고, 숙련된 상아 세공인이나 제자는 잘 다듬은 상아로 원하는 물건을 만듭니다. 두 비유 모두 `yaṁ yadeva … ākaṅkheyya`, 무엇을 원하든 그것을 만들어 완성한다는 같은 구조를 반복합니다. 다음 카드의 금세공인 비유까지 세 재료와 세 장인이 이어진 뒤 수행자의 마음에 적용됩니다.

묵상

이 본문의 범위만 놓고, 옹기공과 상아 세공인은 각각 “잘 반죽한 흙”과 “잘 다듬은 상아”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요. 두 비유에서 재료는 다르지만 똑같이 반복되는 행동의 구조는 무엇인가요?

“대왕이시여, 능숙한 금세공인이 잘 다듬은 금으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대왕이시여, 수행자도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여러 신통으로 기울인다.”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dakkho suvaṇṇakāro vā suvaṇṇ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asmiṁ suvaṇṇasmiṁ yaṁ yadeva suvaṇṇavikatiṁ ākaṅkheyya, taṁ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iddhividh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옹기공과 상아 세공인에 이어 숙련된 금세공인이 잘 다듬은 금으로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세 번째 비유를 제시하고, 곧 수행에 적용합니다. 흙·상아·금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준비된 재료로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낸다는 구조를 공유합니다. `Evameva kho` 뒤에는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여러 신통으로 기울인다고 합니다. 비유는 마음의 준비성과 사용 가능성을 설명하며, 다음 카드가 신통 목록을 온전히 반복합니다.

묵상

현재 보이는 표현을 따라, 세 번째 장인은 “잘 다듬은 금으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낸다”고 해요. 세 장인의 재료가 모두 미리 준비되어 있다는 점과 마음의 여덟 성질은 어떻게 대응하나요?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되며 나타나고 사라진다. 벽·성벽·산을 허공처럼 지나고 땅을 물처럼 드나들며 물 위를 땅처럼 걷고 새처럼 가부좌한 채 난다. 해와 달을 손으로 만지고 범천 세계까지 몸으로 힘을 미친다.”

So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oti—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āvibhāvaṁ tirobhāvaṁ tirokuṭṭaṁ tiropākāraṁ tiropabbataṁ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ṁ karoti seyyathāpi udake; udakepi abhijjamāne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ā;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imepi candimasūriye evaṁmahiddhike evaṁmahānubhāve pāṇinā parāmasati parimajjati;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세 장인의 비유를 수행자에게 적용한 뒤, 앞서 제시한 여러 신통의 내용을 다시 온전히 반복합니다. 하나와 여럿의 전환, 나타남과 사라짐, 벽·성벽·산 통과, 땅과 물의 교차, 물 위 걷기, 하늘 날기, 해와 달을 만짐, 범천 세계까지 몸의 힘을 미침이 같은 순서로 나옵니다. 반복은 비유가 가리키는 결실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기능이며, 독자에게 이런 경험이 있어야 수행이 옳다고 판정하거나 비유적 일상 경험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묵상

지금 이 대목 안에서, 신통 목록은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부터 같은 순서로 다시 나와요. 성취를 비교하지 않고, 첫 목록과 정확히 반복된 항목 한 쌍만 찾아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이 또한 이전에 밝힌 수행 결실들을 넘어서는 더욱 뛰어나고 훌륭한 현세의 수행 생활의 결실이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신통 목록을 두 번 제시하고 세 장인의 비유로 설명한 뒤, 해당 단락을 한 문장으로 닫습니다. `Idampi kho`는 이것 역시 앞에서 밝힌 결실들과 같은 계열임을 잇고,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는 이전의 눈앞의 수행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비교합니다. 새 신통 항목을 추가하지 않고 그 목록 전체의 지위를 평가하는 결론이며, 다음에는 소리를 아는 신성한 귀로 넘어갑니다. 독자의 수행 성취 서열을 판정하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이 또한 이전에 밝힌 수행 결실들을 넘어서는 … 결실”이라고 단락을 닫아요. 내 경험과 견주지 않고, 여기서 ‘이 또한’이 바로 앞의 어떤 목록 전체를 가리키는지 확인할 수 있나요?

27 신성한 귀 4구절

신성한 귀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신성한 귀로 마음을 기울인다. 인간을 넘어 깨끗해진 신성한 귀로 멀거나 가까운 신과 인간의 두 종류 소리를 듣는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dibbāya sotadhātuyā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여러 신통의 결실을 마친 뒤, `dibbā sotadhātu`, 신성한 귀를 다음 단계로 엽니다. 삼매의 마음에 깨끗함·밝음·흠 없음·오염을 벗음·부드러움·쓰기 좋음·안정됨·흔들림 없음의 여덟 성질이 다시 붙고, 그 마음을 신성한 귀로 기울입니다. 인간을 넘어 깨끗해진 귀로 `ubho sadde`, 신과 인간의 두 종류 소리를 듣고, 각각 멀거나 가까운 경우까지 포괄합니다. 이는 경이 열거한 결실이며 독자의 청각 경험을 신통으로 판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신성한 귀가 “멀거나 가까운 신과 인간의 두 종류 소리를 듣는다”고 범위를 나눠요. 내 경험과 견주지 않고, 소리의 주체 두 종류와 거리 두 가지를 각각 확인해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길을 가는 사람이 큰북·작은북·나팔·쇠북·손북 소리를 듣고 ‘이것은 큰북 소리, 이것은 작은북 소리, 이것은 나팔과 여러 북 소리’라고 아는 것과 같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addhānamaggappaṭipanno. So suṇeyya bherisaddampi mudiṅgasaddampi saṅkhapaṇavadindimasaddampi. Tassa evamassa: ‘bherisaddo’ itipi, ‘mudiṅgasaddo’ itipi, ‘saṅkhapaṇavadindimasaddo’ itip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신성한 귀가 서로 다른 소리를 분명히 구별한다는 기능을 길 가는 사람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그는 큰북(`bheri`)과 작은북(`mudiṅga`), 나팔과 쇠북과 손북의 묶음(`saṅkha·paṇava·dindima`) 소리를 듣고 각각 어떤 소리인지 압니다. 멀고 가까움을 특별한 능력으로 과장하는 대신, 일상에서 서로 다른 악기 소리를 식별하는 장면으로 앎의 성격을 보여 줍니다. 다음 카드에서 이 비유가 준비된 마음을 신성한 귀로 기울이는 설명에 적용됩니다.

묵상

길 가는 사람은 “이것은 큰북 소리, 이것은 작은북 소리”라고 들은 소리를 구분해요. 지금 들리는 소리 하나를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기 전에, 높낮이나 거리 같은 특징으로만 알아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로 기울인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dibbāya sotadhātuyā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길 가는 사람이 여러 북과 나팔 소리를 구별하는 비유를 수행자의 신성한 귀에 적용하는 연결 카드입니다. `Evameva kho`로 ‘그와 같이’라고 받은 뒤, 삼매의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다는 여덟 성질을 반복합니다. 그 마음을 신성한 귀로 기울인다고만 하며, 듣는 대상과 결실 판정은 다음 카드에 이어집니다. 이 카드의 역할은 비유와 수행 설명을 잇는 데 있습니다.

묵상

“그와 같이 … 마음을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로 기울인다”는 문장이 악기 소리 비유를 수행 설명에 연결해요. 비유에서 가져온 ‘구별해 앎’의 기능을 어느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나요?

“인간을 넘어 깨끗해진 신성한 귀로 멀거나 가까운 신과 인간의 소리를 듣는다.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So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악기 소리 비유와 그 적용 뒤, 신성한 귀가 듣는 대상의 범위를 다시 밝히고 결실을 마칩니다. `ubho sadde`는 신과 인간의 두 종류 소리이며, `dūre santike`는 멀거나 가까운 경우를 모두 포괄합니다. 인간을 넘어 깨끗해진 귀로 이 소리들을 듣는다고 한 뒤, 이것도 앞의 눈앞의 수행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평가합니다. 새 목록을 더하지 않고 도입에서 말한 범위를 반복해 단락을 닫으며, 독자의 성취를 시험하지 않습니다.

묵상

본문은 “멀거나 가까운 신과 인간의 소리를 듣는다”고 도입의 범위를 다시 확인해요. 이 결실을 내 능력과 비교하지 않고, 반복된 두 대조가 무엇인지 텍스트 안에서 찾아볼 수 있나요?

28 다른 이의 마음을 앎 8구절

다른 이의 마음을 앎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cetopariya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신성한 귀의 결실을 마친 뒤, `cetopariyañāṇa`,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넘어가는 도입입니다. 삼매에 든 마음의 깨끗함·밝음·흠 없음·오염을 벗음·부드러움·쓰기 좋음·안정됨·흔들림 없음이라는 여덟 성질이 다시 반복되고, 그 마음을 새 앎으로 기울입니다. 아직 탐욕·성냄·어리석음 등의 구체적 마음 상태는 다음 카드부터 열거됩니다. 일상에서 타인의 마음을 추측해 단정하라는 지침이 아니라 경이 제시한 수행 결실의 시작입니다.

묵상

본문은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고 단계의 방향만 제시해요. 이를 타인의 속마음을 추측해도 된다는 말로 넓히지 않고, 이 카드에 실제로 나온 내용만 말할 수 있나요?

“자기 마음으로 다른 존재의 마음을 둘러 알아, 탐욕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오므라든 마음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 …”

So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sarāgaṁ v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ṁ vā cittaṁ ‘vīt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sadosaṁ vā cittaṁ ‘sados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ṁ vā cittaṁ ‘vītadosaṁ cittan’ti pajānāti, samohaṁ vā cittaṁ ‘samoh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ṁ vā cittaṁ ‘vītamohaṁ cittan’ti pajānāti, saṅkhittaṁ vā cittaṁ ‘saṅkhittaṁ cittan’ti pajānāti, …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앎의 구체적 대상을 처음 열거합니다. 자기 마음으로 다른 존재의 마음을 둘러 알아 탐욕의 있음과 없음, 성냄의 있음과 없음, 어리석음의 있음과 없음이라는 세 쌍을 각각 그대로 알고, 오므라든 마음까지 확인합니다. 카드 끝의 편집 연속표 `…` 한 곳은 원전 반복 생략 `…pe…`가 아니라,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긴 목록을 다음 카드와 나눈 표시이며 내용이 빠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타인의 상태를 일상적 추측으로 판정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을 세 쌍으로 나란히 둬요. 타인의 마음을 추측하지 않고, 지금 이 카드에 실제로 열거된 세 쌍과 마지막 한 상태를 확인해 볼 수 있나요?

“… 흩어진 마음, 넓은 마음과 넓지 않은 마음,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과 위없는 마음, 삼매에 든 마음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 …”

… vikkhittaṁ vā cittaṁ ‘vikkhittaṁ cittan’ti pajānāti, mahaggataṁ vā cittaṁ ‘mahaggataṁ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ṁ vā cittaṁ ‘amahaggataṁ cittan’ti pajānāti, sauttaraṁ vā cittaṁ ‘sauttaraṁ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ṁ vā cittaṁ ‘anuttaraṁ cittan’ti pajānāti, samāhitaṁ vā cittaṁ ‘samāhitaṁ cittan’ti pajānāti, …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앞 카드의 긴 마음 상태 목록을 이어, 흩어진 마음과 넓음·높음·삼매의 상태를 열거하는 중간 부분입니다. 흩어진 마음, 넓은 마음과 넓지 않은 마음,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과 위없는 마음, 삼매에 든 마음을 각각 그대로 안다고 합니다. 카드 시작과 끝의 편집 연속표 `…` 두 곳은 원전의 생략이 아니라 앞뒤 카드와 한 문장이 계속된다는 경계 표시입니다. 이 카드는 마음 상태의 우열을 독자에게 매기지 않고, 경이 말하는 앎의 대상 범위를 보존합니다.

묵상

이 카드의 앞뒤 `…` 두 곳은 생략이 아니라 긴 목록이 계속된다는 편집 표시예요. 그 사이에 온전히 제시된 대조 두 쌍과 홀로 제시된 상태 하나를 지금 텍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나요?

“…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풀려난 마음과 풀려나지 않은 마음을 각각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 asamāhitaṁ vā cittaṁ ‘asamāhitaṁ cittan’ti pajānāti, vimuttaṁ vā cittaṁ ‘vimuttaṁ cittan’ti pajānāti, avimuttaṁ vā cittaṁ ‘avimuttaṁ cittan’ti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다른 이의 마음 상태 목록의 마지막 부분으로, 앞 카드의 삼매에 든 마음과 짝을 이루는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제시합니다. 이어 풀려난 마음과 풀려나지 않은 마음을 한 쌍으로 열거하고, 각각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고 합니다. 카드 시작의 편집 연속표 `…` 한 곳은 앞 문장과 이어진다는 표시이며 원전의 반복 생략이 아닙니다. 목록은 앎의 대상을 기술할 뿐, 독자나 주변 사람의 마음이 풀렸는지를 판단하라는 질문으로 바꾸면 안 됩니다.

묵상

본문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풀려난 마음과 풀려나지 않은 마음”을 각각 그대로 안다고 해요. 타인을 판정하지 않고, 앞 카드에서 넘어온 짝과 이 카드의 새 짝을 구분해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꾸미기 좋아하는 젊은 남녀가 맑은 거울이나 투명한 물그릇에 얼굴을 비추어 점이 있으면 있다고, 없으면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대왕이시여,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기울인다.”

Seyyathāpi, mahārāja,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ṁ mukhanimittaṁ paccavekkhamāno sakaṇikaṁ vā ‘sakaṇikan’ti jāneyya, akaṇikaṁ vā ‘akaṇikan’ti jāneyya;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cetopariya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다른 이의 여러 마음 상태를 아는 기능을 맑은 거울이나 투명한 물그릇의 비유로 설명하고 바로 수행에 적용합니다. 꾸미기 좋아하는 젊은 남녀가 자기 얼굴을 비추어 점이 있으면 있다고, 없으면 없다고 두 경우를 정확히 압니다. `Evameva kho` 뒤에는 준비된 삼매의 마음을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기울인다고 합니다. 비유의 핵심은 좋고 나쁨의 평가가 아니라 있는 상태를 있는 그대로 구별함이며, 일상의 심리 추측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묵상

젊은이는 얼굴의 “점이 있으면 있다고, 없으면 없다고” 거울에서 확인해요.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고 여기기보다, 지금 내 눈앞에서 확인되는 있음과 없음 한 쌍을 사실대로 말할 수 있나요?

“자기 마음으로 다른 존재의 마음을 둘러 알아, 탐욕이 있거나 없는 마음, 성냄이 있거나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거나 없는 마음, 오므라든 마음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 …”

So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sarāgaṁ v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ṁ vā cittaṁ ‘vīt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sadosaṁ vā cittaṁ ‘sados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ṁ vā cittaṁ ‘vītadosaṁ cittan’ti pajānāti, samohaṁ vā cittaṁ ‘samoh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ṁ vā cittaṁ ‘vītamohaṁ cittan’ti pajānāti, saṅkhittaṁ vā cittaṁ ‘saṅkhittaṁ cittan’ti pajānāti, …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거울 비유를 수행에 적용한 뒤, 다른 이의 마음 상태 목록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는 앞부분입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있음과 없음 세 쌍, 오므라든 마음을 각각 그대로 안다고 합니다. 카드 끝의 편집 연속표 `…` 한 곳은 다음 카드로 목록이 이어진다는 표시이며 원전의 정형 생략 `…pe…`가 아닙니다. 첫 열거와 같은 순서를 재현하여 비유 뒤에도 앎의 대상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독자에게 타인의 상태를 추정하게 하지 않습니다.

묵상

반복문은 “탐욕이 있거나 없는 마음”에서 시작해 같은 세 쌍과 오므라든 마음을 다시 나열해요. 첫 열거와 순서를 대조하여 지금 텍스트에서 그대로 반복된 부분 하나를 확인해 볼 수 있나요?

“… 흩어진 마음, 넓거나 넓지 않은 마음, 더 높은 것이 있거나 위없는 마음, 삼매에 들거나 들지 않은 마음, 풀려난 마음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 …”

… vikkhittaṁ vā cittaṁ ‘vikkhittaṁ cittan’ti pajānāti, mahaggataṁ vā cittaṁ ‘mahaggataṁ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ṁ vā cittaṁ ‘amahaggataṁ cittan’ti pajānāti, sauttaraṁ vā cittaṁ ‘sauttaraṁ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ṁ vā cittaṁ ‘anuttaraṁ cittan’ti pajānāti, samāhitaṁ vā cittaṁ ‘samāhitaṁ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ṁ vā cittaṁ ‘asamāhitaṁ cittan’ti pajānāti, vimuttaṁ vā cittaṁ ‘vimuttaṁ cittan’ti pajānāti, …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반복된 마음 상태 목록의 중간과 끝부분을 잇는 카드입니다. 흩어진 마음, 넓거나 넓지 않은 마음, 더 높은 것이 있거나 위없는 마음, 삼매에 들거나 들지 않은 마음을 차례로 짝짓고, 풀려난 마음까지 제시합니다. 카드 시작과 끝의 편집 연속표 `…` 두 곳은 한 문장을 카드 경계에서 나눈 표시이며 원전 내용의 생략이 아닙니다. 다음 카드의 풀려나지 않은 마음이 마지막 짝을 완성하므로, 여기서 결실이 이미 끝났다고 읽지 않습니다.

묵상

이 카드의 `…` 두 곳 사이에는 넓음·높음·삼매의 세 대조와 풀려난 마음이 있어요. 마지막 짝이 아직 다음 카드에 남아 있음을 확인하면, 이 카드가 어디에서 멈추는지 알 수 있나요?

“… 풀려나지 않은 마음은 풀려나지 않았다고 안다.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 avimuttaṁ vā cittaṁ ‘avimuttaṁ cittan’ti pajānāti.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반복 목록의 마지막인 풀려나지 않은 마음을 제시하고, 해당 수행 결실을 닫습니다. 카드 시작의 편집 연속표 `…` 한 곳은 앞 카드의 풀려난 마음과 한 쌍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며 원전 반복 생략이 아닙니다. `avimuttaṁ … avimuttaṁ`으로 상태를 그대로 안다고 한 뒤, 이것도 앞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라고 평가합니다. 타인의 해탈 여부를 독자가 판정하라는 말이 아니라 경이 열거한 앎의 종결입니다.

묵상

“풀려나지 않은 마음은 풀려나지 않았다고 안다”는 말이 앞 카드의 풀려난 마음과 마지막 짝을 이뤄요. 타인을 평가하지 않고, 두 카드에 나뉜 한 쌍의 구조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29 지난 삶을 기억함 6구절

지난 삶을 기억함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결실을 닫은 뒤, 지난 삶의 기억으로 넘어가는 도입입니다. 삼매의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다는 여덟 성질을 다시 갖춥니다. 그 마음을 `pubbenivāsānussatiñāṇa`,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이끌고 기울인다고 합니다. 아직 몇 생과 이름·가문·경험을 기억하는지는 다음 카드에 나오므로, 이 카드만으로 세부 범위나 독자의 체험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묵상

본문은 준비된 마음을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이끌고 기울인다”고 방향만 밝혀요. 아직 기억의 횟수나 세부 내용은 나오지 않음을 확인하며, 이 카드가 여는 새 단계만 짚어 볼 수 있나요?

“한 번·두 번·세 번·네 번·다섯 번·열 번·스무 번·서른 번·마흔 번·쉰 번·백 번·천 번·십만 번의 삶과, 세상이 수축하고 팽창한 여러 겁을 기억한다. ‘그곳에서 이런 이름과 가문과 모습과 음식을 지녔고 이런 행복과 괴로움을 느끼며 이만큼 살다가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저곳에서도 그렇게 살다가 죽어 여기 태어났다’고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한다.”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ṁ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ṁ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ṁvaṭṭavivaṭṭakappe, ‘amutr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ṁ; tatrāp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첫 번째 명지인 과거 삶의 기억을 설명하면서 기억 범위와 세부를 열거하는 핵심 카드입니다. 한 번부터 다섯 번, 열·스무·서른·마흔·쉰 번, 백·천·십만 번이라는 특정 수가 차례로 나오고, 이어 수축하는 여러 겁·팽창하는 여러 겁·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의 세 범주가 따로 놓입니다. 각 삶의 이름·가문·모습·음식·행복과 괴로움·수명·이동을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한다는 주장으로, 독자의 기억력이나 성취를 시험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묵상

“한 번·두 번·세 번·네 번·다섯 번”에서 시작하는 열거는 특정 수를 건너뛰며 넓어져요. 이 경문을 내 성취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본문이 실제로 열거한 수와 세 범주를 차분히 확인해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자기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갔다가 또 다른 마을로 가고 다시 자기 마을로 돌아온 사람이 ‘저 마을에서 이렇게 서고 앉고 말하고 침묵했고, 또 다른 마을에서도 그렇게 한 뒤 돌아왔다’고 기억하는 것과 같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sakamhā gāmā aññaṁ gāmaṁ gaccheyya, tamhāpi gāmā aññaṁ gāmaṁ gaccheyya. So tamhā gāmā sakaṁyeva gāmaṁ paccāgaccheyya. Tassa evamassa: ‘ahaṁ kho sakamhā gāmā amuṁ gāmaṁ agacchiṁ, tatra evaṁ aṭṭhāsiṁ, evaṁ nisīdiṁ, evaṁ abhāsiṁ, evaṁ tuṇhī ahosiṁ, tamhāpi gāmā amuṁ gāmaṁ agacchiṁ, tatrāpi evaṁ aṭṭhāsiṁ, evaṁ nisīdiṁ, evaṁ abhāsiṁ, evaṁ tuṇhī ahosiṁ, somhi tamhā gāmā sakaṁyeva gāmaṁ paccāgato’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의 구체적 범위를 제시한 뒤, 기억의 구조를 세 마을 왕래에 빗댑니다. 한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거기서 또 다른 마을로 갔다가 자기 마을로 돌아옵니다. 그는 첫째와 둘째 방문지마다 어떻게 섰고 앉았으며 말했고 침묵했는지 네 행동을 각각 기억합니다. 출발지·두 방문지·귀환의 순서와 각 장소의 구체적 행위를 함께 보존하는 비유이며, 다음 카드에서 이 구조가 지난 삶의 기억에 적용됩니다.

묵상

비유 속 사람은 두 방문지에서 “서고 앉고 말하고 침묵한” 네 행동을 각각 기억해요. 이동 순서와 행동 목록을 섞지 않고, 두 마을에서 똑같이 반복된 네 가지를 찾아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기울인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세 마을을 오가며 각 장소의 일을 기억하는 비유를 수행 설명에 적용하는 연결 카드입니다. `Evameva kho`, ‘그와 같이’라고 받은 뒤 수행자의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함·밝음·흠 없음·오염을 벗음·부드러움·쓰기 좋음·안정됨·흔들림 없음의 여덟 성질을 갖췄다고 반복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이끌고 기울입니다. 비유의 이동과 기억 구조를 적용할 뿐, 이 카드에서는 기억된 생의 세부를 다시 열거하지 않습니다.

묵상

“그와 같이”라는 연결 뒤에 준비된 마음을 지난 삶의 기억으로 기울인다고 해요. 앞 비유의 세 마을 왕래 가운데, 이 적용문이 이어받는 기억의 구조를 한 가지 말해 볼 수 있나요?

“한 생·두 생·세 생·네 생·다섯 생·열 생·스무 생·서른 생·마흔 생·쉰 생·백 생·천 생·십만 생과 세상이 수축하고 팽창한 여러 겁의 과거 삶을 기억한다. ‘그곳에서 이런 이름·가문·모습·음식·행복과 괴로움·수명을 지녔다가 죽어 저곳에 태어났고, 저곳에서도 그렇게 살다가 죽어 여기 태어났다’고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한다.”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ṁ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ṁ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ṁvaṭṭavivaṭṭakappe, ‘amutr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ṁ; tatrāp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과거 삶의 기억이 수행의 더 뛰어난 눈앞의 결실임을 밝힌 뒤, 앞의 성취 문장을 한 번 더 온전히 반복합니다. 한·두·세·네·다섯 생, 열·스무·서른·마흔·쉰 생, 백·천·십만 생을 차례로 들고, 수축하는 여러 겁·팽창하는 여러 겁·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세 범주로 구분합니다. 이를 한 번부터 십만 번까지 연속된 모든 횟수로 넓히면 안 되며, 반복은 앞서 말한 지식의 내용을 결실 판정과 다시 연결합니다.

묵상

“한 생·두 생·세 생·네 생·다섯 생”이라는 구체적 열거가 그대로 다시 나타나요. 익숙한 문장을 빨리 넘기지 않고, 앞 카드와 똑같이 반복된 부분과 새로 붙은 결론을 하나씩 찾을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이것 역시 앞서 제시한 결실들보다 한층 뛰어나며 더 훌륭하게 바로 이 삶에서 확인되는 수행 생활의 결실이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세 마을 비유와 적용, 지난 삶의 구체적 기억 범위를 모두 제시한 뒤 해당 단락을 닫는 평가문입니다. `Idampi kho, mahārāja`로 ‘대왕이시여, 이것도’라고 앞 설명 전체를 받으며, 눈앞에서 확인되는 수행 생활의 결실이라고 부릅니다. 이어 `purimehi`, 앞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고 두 비교급을 나란히 둡니다. 새 수행법이나 기억 내용을 보태지 않는 종결문이며, 독자 개인의 성취를 선언하는 말로 읽지 않습니다.

묵상

“이것도 앞의 눈앞의 수행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문장이 지난 삶의 기억 단락을 닫아요. 새 내용이 아니라 평가문임을 보여 주는 비교 표현 두 가지를 찾아볼 수 있나요?

30 신성한 눈 6구절

신성한 눈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지난 삶을 기억하는 결실을 마친 뒤,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삼매의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다는 여덟 성질을 다시 반복합니다. 그 마음을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a`,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이끌고 기울입니다. 아직 신성한 눈과 행위에 따른 구체적 구분은 다음 카드에서 설명되므로 여기서 미리 덧붙이지 않습니다.

묵상

본문은 준비된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기울인다고 해요. 아직 다음 카드의 구체적 분류를 당겨오지 않고, 이 카드에 나온 앎의 대상 두 가지를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인간을 넘은 맑은 신성한 눈으로 죽고 태어남·낮고 높음·아름답고 추함·좋고 나쁜 행로와 행위대로 감을 본다. 몸·말·마음의 악행과 고귀한 이 비방, 그릇된 견해·행동을 지닌 이는 죽어 비참한 곳·나쁜 행로·파멸처·지옥에 태어난다. 몸·말·마음의 선행과 고귀한 이를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행동을 지닌 이는 죽어 좋은 곳인 천상에 태어난다. 이처럼 신성한 눈으로 죽고 태어남·낮고 높음·아름답고 추함·좋고 나쁜 행로와 행위대로 감을 안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nnā.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ti.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두 번째 명지인 신성한 눈으로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안다는 내용을 온전히 밝히는 카드입니다. 낮고 높음·아름답고 추함·좋고 나쁜 행로의 세 쌍을 제시하고, 몸·말·마음의 행위, 고귀한 이를 비방함과 비방하지 않음, 그릇된 견해와 바른 견해를 두 행로와 연결합니다. 이는 경 안에서 ‘행위에 따라 감’을 설명하는 수행 지식의 정형이며, 현재 겪는 질병·폭력·불행의 원인을 독자 탓으로 단정할 근거가 아닙니다. 내 삶의 피해를 이 문장에 대입하지 않아도 되며, 힘들면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본문은 “행위대로 감을 안다”는 수행 지식의 범위를 설명하지만, 지금 겪는 불행의 원인을 독자에게 판정하지 않아요. 이 대목이 부담스럽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내 경험을 비난하는 말로 바꾸지 않고 둘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사거리 가운데 누각이 있고 눈 밝은 사람이 거기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고 나오며 길을 다니고 사거리에 앉는 모습을 보며, ‘이들은 들어가고 나오며 다니고 앉는다’고 아는 것과 같다.”

Seyyathāpi, mahārāja, majjhe siṅghāṭake pāsādo. Tattha cakkhumā puriso ṭhito passeyya manusse gehaṁ pavisantepi nikkhamantepi rathikāyapi vīthiṁ sañcarante majjhe siṅghāṭake nisinnepi. Tassa evamassa: ‘ete manussā gehaṁ pavisanti, ete nikkhamanti, ete rathikāya vīthiṁ sañcaranti, ete majjhe siṅghāṭake nisin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보는 설명 뒤, 그 관찰의 분명함을 사거리 한가운데의 누각에 빗댑니다. 눈 밝은 사람이 높은 누각에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는 모습, 집에서 나오는 모습, 거리와 길을 오가는 모습, 사거리 가운데 앉은 모습을 봅니다. 그는 이 네 움직임과 위치를 본 그대로 구별해 압니다. 비유는 다음 카드의 신성한 눈 설명에 적용되며, 사람들의 행선이나 도덕적 상태를 비유 자체에 덧붙이지 않습니다.

묵상

누각의 사람은 “들어가고, 나오고, 길을 다니고, 사거리에 앉는” 네 모습을 구별해요.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고, 본문이 제시한 이동 세 가지와 머무름 한 가지를 나눠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기울인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사거리 누각에서 사람들의 드나듦과 이동을 보는 비유를 수행자의 앎에 적용하는 연결 카드입니다. `Evameva kho`로 비유를 받은 뒤, 삼매의 마음에 깨끗함·밝음·흠 없음·오염을 벗음·부드러움·쓰기 좋음·안정됨·흔들림 없음의 여덟 성질을 다시 붙입니다. 그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이끌고 기울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구별하는지는 앞 설명을 받으며, 이 카드 자체는 적용의 방향만 밝힙니다.

묵상

“그와 같이”라는 말은 사거리 누각 비유를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설명에 연결해요. 누각 비유에서 이 적용문이 이어받는 ‘구별해 봄’의 구조를 지금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인간을 넘은 맑은 신성한 눈으로 죽고 태어남·낮고 높음·아름답고 추함·좋고 나쁜 행로와 행위대로 감을 보느니라. … 몸·말·마음의 선행과 고귀한 이를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행동을 지닌 이는 죽어 좋은 곳인 천상에 태어나느니라. 이처럼 신성한 눈으로 행위대로 감을 아느니라.”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nnā.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ti.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두 번째 명지가 더 뛰어난 눈앞의 수행 결실임을 확인한 뒤,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정형을 다시 온전히 반복합니다. 낮음과 높음·아름다움과 추함·좋은 행로와 나쁜 행로, 몸·말·마음의 행위, 비방과 비방하지 않음, 그릇된 견해와 바른 견해가 같은 순서로 재현됩니다. 반복은 결실의 내용을 확정하지만 현재의 피해·질병·불운을 개인의 과거 행위 탓으로 진단하라는 지침은 아닙니다. 부담스럽다면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반복문의 끝도 “행위대로 감을 안다”고 닫히지만, 독자의 현재 처지를 심판하는 질문은 하지 않아요. 이 대목이 힘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경문의 주장 범위와 내 삶의 설명을 분리해 둘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이것도 앞에서 말한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생활의 결실이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사거리 누각 비유와 적용까지 마친 뒤,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단락을 닫는 평가문입니다. `Idampi kho, mahārāja`는 ‘대왕이시여, 이것도’라고 방금 설명한 결실 전체를 받습니다. `purimehi`로 앞의 눈앞의 결실들과 비교하고, `abhikkantatara`와 `paṇītatara`라는 두 비교 표현으로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고 합니다. 새 관찰 대상이나 수행 절차를 보태지 않으며, 다음 카드에서 번뇌의 소멸 단계가 시작됩니다.

묵상

“이것도 앞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말은 신성한 눈 단락의 종결 평가예요. 다음 단계의 내용과 섞지 않고, 이 카드가 비교하는 대상과 두 평가를 짚어 볼 수 있나요?

31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풀려나다 8구절

번뇌의 소멸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기울인다. 괴로움·그 발생·그 소멸·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결실 뒤, 마지막으로 번뇌의 소멸을 아는 단계가 시작됩니다. 삼매의 마음에 붙는 여덟 성질을 반복한 다음, `āsavānaṁ khayañāṇa`,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이끌고 기울입니다. 이어 괴로움,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그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네 항목을 각각 `yathābhūtaṁ pajānāti`,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합니다. 이는 네 항목의 앎을 기술하며 독자에게 괴로움을 부정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묵상

본문은 괴로움·발생·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고 네 번 배열해요. 지금의 상태를 단정하지 않고, 이 네 항목이 어떤 순서로 놓였는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이것들이 번뇌다. 이것이 번뇌가 생기는 까닭이다. 이것이 번뇌가 멎는 것이며, 이것이 번뇌가 멎는 데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실상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괴로움에 관한 네 항목을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한 데 이어, 번뇌 자체를 같은 네 갈래 구조로 살핍니다. `ime āsavā`, 이것들이 번뇌라고 알고, 번뇌의 발생과 소멸,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차례로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합니다. 단수 지시어로 발생·소멸·길을 가리키면서 첫 항목의 번뇌는 복수로 제시합니다. 앞 카드의 괴로움 네 항목과 구조는 같지만 대상이 번뇌로 바뀐 카드이며, 구체적인 세 번뇌는 다음 카드에서 나옵니다.

묵상

“이것들이 번뇌다”에서 시작해 발생·소멸·소멸로 이끄는 길까지 네 항목이 이어져요. 앞 카드의 괴로움 네 항목과 나란히 놓고, 지금 같아진 구조와 달라진 대상을 구분해 볼 수 있나요?

“이렇게 알고 보아 감각적 즐거움의 번뇌, 존재하고자 하는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난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음을 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 상태는 없다’고 안다.”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괴로움과 번뇌의 발생·소멸·길을 아는 설명 뒤, 그렇게 알고 보는 데 따른 풀려남을 제시합니다. 마음은 감각적 즐거움의 번뇌(`kāmāsava`), 존재의 번뇌(`bhavāsava`), 무명의 번뇌(`avijjāsava`)라는 세 가지에서 풀려납니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고,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됐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러한 상태는 없다는 네 완결 표현을 압니다. 경의 성취 서술이지 독자의 상태를 대신 판정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마음이 풀려나는 번뇌 세 가지와, 이어지는 완결 표현 네 가지를 구분해 제시해요. 이를 내 성취로 선언하지 않고, 세 항목과 네 항목의 경계를 텍스트에서 나눠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산골짜기에 투명하고 맑은 호수가 있어 눈 밝은 사람이 기슭에서 조개류와 자갈·돌조각, 헤엄치거나 멈춘 물고기 떼를 보고, ‘이 호수는 맑고 그 안에 이것들이 있다’고 아는 것과 같다.”

Seyyathāpi, mahārāja, pabbatasaṅkhep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sambukampi sakkharakat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Tassa evamassa: ‘ayaṁ kho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rime sippisambukāpi sakkharakathalāpi macchagumbāpi carantipi tiṭṭhantip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번뇌에서 풀려남을 설명한 뒤, 앎과 봄의 투명함을 산골짜기의 맑은 호수에 빗댑니다. 호수는 투명하고 맑고 흐리지 않다는 세 성질을 지니며, 눈 밝은 사람이 기슭에 서서 조개류, 자갈과 돌조각, 물고기 떼라는 세 부류를 봅니다. 물고기에는 헤엄치는 경우와 멈춰 있는 경우 두 상태가 붙습니다. 그는 물의 맑음과 그 안의 대상들을 그대로 알아봅니다. 다음 카드에서 이 비유가 번뇌 소멸의 앎에 적용됩니다.

묵상

눈 밝은 사람은 맑은 호수 안의 조개류·자갈과 돌조각·물고기 떼를 보고, 물고기의 움직임 두 가지도 구별해요. 호수의 세 성질과 안에 보이는 세 부류를 지금 각각 찾아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기울인다. 괴로움·그 발생·그 소멸·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산골짜기의 맑은 호수에서 안의 대상들을 훤히 보는 비유를 번뇌 소멸의 앎에 적용합니다. `Evameva kho` 뒤에 삼매의 마음이 지닌 깨끗함부터 흔들림 없음까지 여덟 성질을 반복하고, 그 마음을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기울입니다. 이어 괴로움·그 발생·그 소멸·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고 다시 말합니다. 비유의 투명한 봄과 네 항목의 앎을 연결하는 카드이며, 번뇌 네 항목은 다음 카드에 이어집니다.

묵상

“그와 같이” 뒤에는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과 괴로움에 관한 네 항목이 다시 나와요. 호수 비유가 무엇을 분명히 보는 구조로 적용되는지, 네 항목의 배열에서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이것들이 번뇌이고,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며,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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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호수 비유를 적용하며 괴로움에 관한 네 항목을 반복한 뒤, 번뇌에 관한 네 항목도 다시 제시합니다. 이것들이 번뇌라고 알고, 번뇌의 발생, 번뇌의 소멸,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차례로 각각 `yathābhūtaṁ`,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합니다. 앞의 195번 카드와 같은 구조가 비유 뒤에 반복된 것이며, 새로운 다섯째 항목이나 구체적 번뇌 목록은 없습니다. 이어지는 카드에서 이 앎에 따른 세 번뇌로부터의 풀려남을 다시 말합니다.

묵상

본문은 번뇌·번뇌의 발생·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다시 네 항목으로 나열해요. 앞의 같은 목록과 대조하여, 비유 뒤에도 순서와 “있는 그대로 안다”는 반복이 유지되는지 볼 수 있나요?

“이렇게 알고 보아 감각적 즐거움의 번뇌, 존재하고자 하는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난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음을 알고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 상태는 없다’고 안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Idaṁ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번뇌에 관한 네 항목을 있는 그대로 아는 데 이어, 그 앎과 봄의 결과를 반복하고 단락을 닫습니다. 마음이 감각적 즐거움·존재·무명의 세 번뇌에서 풀려나고, 풀려났다는 앎이 생깁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러한 상태는 없다는 네 완결 표현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이것이 앞의 눈앞의 수행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평가합니다. 수행 성취를 기술하는 경문이지 독자에게 동일한 성취를 선언하게 하지 않습니다.

묵상

이 카드는 세 번뇌에서의 풀려남, 네 완결 표현, 앞 결실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차례로 묶어요. 각 부분의 경계를 지금 나누어 보면, 마지막 평가가 무엇을 받는지 확인할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이 눈앞의 수행 생활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거나 훌륭한 다른 눈앞의 결실은 없다.”

Imasmā ca pana, mahārāja, sandiṭṭhikā sāmaññaphalā aññaṁ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uttaritaraṁ vā paṇītataraṁ vā natth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번뇌 소멸의 앎과 그 결실을 모두 설명한 뒤, 부처님의 긴 답변을 최종적으로 닫는 문장입니다. `imasmā`, ‘이것보다’라고 바로 앞의 눈앞의 수행 생활의 결실을 기준으로 삼고, 더 뛰어나거나(`uttaritara`) 더 훌륭한(`paṇītatara`) 다른 결실은 `natthi`, 없다고 부정합니다. 새 결실을 하나 더 소개하는 문장이 아니라 최상성을 밝히는 종결이며, 다음 카드부터 아자따삿뚜 왕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묵상

“이것보다 더 뛰어나거나 훌륭한 다른 눈앞의 결실은 없다”에서 `natthi`는 문장 전체의 부정을 맡아요. ‘다른 결실이 있다’로 뒤집지 않고, 비교 기준과 부정 범위를 확인해 볼 수 있나요?

32 아자따삿뚜 왕의 귀의 5구절

아자따삿뚜 왕의 귀의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왕이 말했다.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뒤집힌 것을 세우고 가려진 것을 열며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고 어둠에 등불을 밝혀 눈 있는 이가 보게 하듯,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Evaṁ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abhikkantaṁ, bhante, abhikkantaṁ, bhante.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ante,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부처님이 눈앞의 수행 결실에 관한 답변을 마치자,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 왕이 응답하는 첫 카드입니다. 왕은 `abhikkantaṁ`, ‘훌륭합니다’를 두 번 말한 뒤 네 비유를 듭니다. 뒤집힌 것을 세움, 가려진 것을 드러냄,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림, 어둠에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가 보게 함입니다. 이 네 비유로 부처님이 여러 방식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었다고 찬탄합니다. 귀의와 살인 고백은 뒤 카드에 있으므로 여기서 당겨오지 않습니다.

묵상

왕은 “훌륭합니다”를 두 번 말하고, 뒤집힌 것·가려진 것·잃은 길·어둠의 등불이라는 네 비유를 이어가요. 아직 귀의나 고백으로 넘어가지 않고, 네 비유의 순서를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기억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저는 어리석고 혼미하고 능숙하지 못해 왕권 때문에 올바른 왕인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세존이시여, 앞으로 단속할 수 있도록 제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 주십시오.”

Esāhaṁ, bhante, bhagavant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ṁ maṁ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ṁ. Accayo maṁ, bhante, accagamā yathābālaṁ yathāmūḷhaṁ yathāakusalaṁ, yohaṁ pitaraṁ dhammikaṁ dhammarājānaṁ issariyakāraṇā jīvitā voropesiṁ. Tassa me, bhante bhagavā, accayaṁ accayato paṭiggaṇhātu āyatiṁ saṁvarāy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가르침을 들은 왕이 부처님·가르침·수행자 승가에 귀의한 뒤, 아버지를 죽인 잘못을 직접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yathābālaṁ·yathāmūḷhaṁ·yathāakusalaṁ`은 어리석고 혼미하고 불선하게 행동했다는 왕 자신의 평가이며, `issariyakāraṇā`는 왕권 때문에 생명을 빼앗았다는 동기를 밝힙니다. 왕은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 달라고 하여 앞으로의 단속을 청합니다. 이는 독자에게 죄책감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라 특정 행위자가 자신의 중대한 해를 인정하는 발화입니다. 힘들면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왕은 “앞으로 단속할 수 있도록 제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 주십시오”라고 자신의 행위와 다음 선택을 연결해요. 가족 살해의 내용이 힘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변명과 자기비난을 보태지 않고 책임을 말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대가 어리석고 혼미하며 능숙하지 못해 올바른 왕인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은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러나 대왕이시여,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올바르게 바로잡으므로 받아들인다. 대왕이시여, 잘못을 알아 바로잡고 앞으로 단속하는 것은 고귀한 이의 규율에서 자라남이다.”

“Taggha tvaṁ, mahārāja, accayo accagamā yathābālaṁ yathāmūḷhaṁ yathāakusalaṁ, yaṁ tvaṁ pitaraṁ dhammikaṁ dhammarājānaṁ jīvitā voropesi. Yato ca kho tvaṁ, mahārāja, accayaṁ accayato disvā yathādhammaṁ paṭikarosi, taṁ te mayaṁ paṭiggaṇhāma. Vuddhihesā, mahārāja, ariyassa vinaye, yo accayaṁ accayato disvā yathādhammaṁ paṭikaroti, āyatiṁ saṁvaraṁ āpajjat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의 고백에 부처님이 답하여 잘못의 중대성과 받아들이는 조건을 함께 밝힙니다.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를 분명한 잘못이라고 한 뒤, 왕이 `accayaṁ accayato disvā`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yathādhammaṁ paṭikarosi` 올바르게 바로잡으므로 고백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성장의 근거는 해가 없던 일이 되는 데 있지 않고, 잘못을 보고 바로잡으며 앞으로 단속하는 데 있습니다. 피해나 책임을 지우는 용서 선언이 아니며, 힘들면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본문은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올바르게 바로잡으므로 받아들인다”고 말해 인정과 바로잡음을 함께 둬요. 가족 살해의 내용이 힘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해를 축소하지 않으면서 다음 행동을 바꾸는 조건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나요?

‘왕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제 가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제 때라고 여기는 대로 하십시오.” 왕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찬동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떠났다.’

Evaṁ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handa ca dāni mayaṁ, bhante, gacchāma bahukiccā mayaṁ bahukaraṇīyā”ti. “Yassadāni tvaṁ, mahārāja, kālaṁ maññasī”ti.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ām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의 귀의와 아버지를 죽인 잘못의 고백, 부처님의 수용이 끝난 뒤 대화가 마무리됩니다. 왕은 해야 할 일(`kicca`)과 처리할 일(`karaṇīya`)이 많다며 떠나겠다고 청합니다. 부처님은 ‘대왕이 때라고 여기는 대로’ 하라고 답합니다. 왕은 말씀을 기뻐하고 찬동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도는 예를 갖춘 다음 떠납니다. 이는 서사의 퇴장 절차이며, 독자에게 자리를 떠나거나 의례를 따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묵상

왕은 “해야 할 일과 처리할 일이 많다”고 떠날 뜻을 밝히고, 기뻐함·일어남·절함·오른쪽으로 돎·떠남의 순서를 밟아요. 이 마지막 동작들을 본문 순서대로 차분히 구분해 볼 수 있나요?

‘왕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이 왕은 자신을 파헤치고 해쳤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왕은 자신을 해쳤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올바른 왕인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티끌 없고 때 없는 가르침의 눈이 생겼을 것이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수행자들은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assa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bhikkhū āmantesi: “khatāyaṁ, bhikkhave, rājā. Upahatāyaṁ, bhikkhave, rājā. Sacāyaṁ, bhikkhave, rājā pitaraṁ dhammikaṁ dhammarājānaṁ jīvitā na voropessatha, imasmiññeva āsane virajaṁ vītamalaṁ dhammacakkhuṁ uppajjissathā”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왕이 떠난 직후 부처님이 수행자들에게만 밝히는 경의 마지막 판정입니다. `khatāyaṁ`과 `upahatāyaṁ`은 왕이 무너지고 해를 입었다는 두 서술이며, ‘자신을 파헤쳤다’는 재귀 표현은 원문에 없습니다. `bhikkhave`는 두 판정과 반사실 조건에서 모두 세 번 반복됩니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바로 그 자리에서 티끌 없고 때 없는 가르침의 눈이 생겼을 것이라는 조건문이 이어지고, 수행자들의 기쁨으로 경이 완전히 닫힙니다. 이는 다음 장면을 여는 문장이 아닙니다.

묵상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가르침의 눈이 생겼을 것이다”라는 말은 돌이킬 수 없는 행위의 결과를 분명히 해요. 내용이 힘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해를 미화하지 않는 결론으로만 이 문장을 둘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