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주장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주장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때 아지따 께사깜발리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지따 존자여, 여러 직업의 결실은 … 아지따 존자여,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Ekamidāhaṁ, bhante, samayaṁ yena ajito kesakambal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ajitena kesakambalena saddhiṁ sammodiṁ.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o kho ahaṁ, bhante, ajitaṁ kesakambalaṁ etadavocaṁ: ‘yathā nu kho imāni, bho ajita, puthusippāyatanāni …pe… sakkā nu kho, bho ajit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aññapetu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막칼리에게서 떠난 왕이 세 번째로 아지따 께사깜발리를 방문했던 일을 보고합니다. 인사와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 착석 뒤 `bho ajita`를 두 번 써서 직업의 결실과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습니다. 원문의 `…pe…` 한 곳은 앞에서 온전히 제시된 직업 목록과 그 결실의 정형을 줄인 반복 생략이며 한국어와 같은 위치에 남아 있습니다. 이 동일한 질문을 기준으로 다음 아지따의 여러 부정을 평가하게 됩니다.

묵상

왕은 아지따에게도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 생활의 결실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어요. 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건넬 때, 답을 비교하기 위해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한 표현은 무엇인가요?

“세존이시여,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보시·제사·헌공은 뜻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결과도 없습니다. 이 세상과 저세상, 어머니와 아버지, 저절로 태어나는 존재도 없습니다. 바르게 수행하여 이 세상과 저세상을 직접 알고 밝히는 수행자나 바라문도 없습니다.’”

Evaṁ vutte, bhante, ajito kesakambalo maṁ etadavoca: ‘natthi, mahārāja, dinnaṁ, natthi yiṭṭhaṁ, natthi hutaṁ, n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natthi ayaṁ loko, natthi paro loko, natthi mātā, natthi pitā, natthi sattā opapātikā, natthi loke samaṇabrāhmaṇā sammaggatā sammāpaṭipannā, ye imañca lokaṁ parañca lok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 께사깜발리가 왕의 질문에 여러 존재와 행위 결과를 부정하며 답하기 시작합니다. 보시·제사·헌공 세 가지와 선악 행위의 결과, 이 세상·저세상, 어머니·아버지, 저절로 태어나는 존재를 모두 `natthi`로 부정합니다. 끝에서는 두 세계를 직접 알고 밝히는 바르게 수행한 수행자나 바라문도 없다고 합니다. 이는 아지따의 견해를 왕이 인용한 것이며, 부처님이 부모나 행위의 의미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묵상

지금 이 문답의 범위 안에서, “보시·제사·헌공은 뜻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결과도 없습니다”는 아지따의 답으로 제시돼요. 이 문장을 나의 가치 판단으로 옮기기 전에, 화자와 질문을 분명히 표시할 수 있나요?

“‘이 사람은 네 큰 요소로 이루어졌습니다. 죽으면 몸의 땅·물·불·바람은 각각 땅·물·불·바람의 무리로 돌아가고 감각 기관은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네 사람이 들것에 시신을 메어 화장터까지 간 발자국이 남고, 뼈는 비둘기 빛이 되며 제물은 재가 됩니다. 보시라는 것은 어리석은 이들이 정한 말입니다.’”

Cātumahābhūtiko ayaṁ puriso, yadā kālaṁ karoti, pathavī pathavikāyaṁ anupeti anupagacchati, āpo āpokāyaṁ anupeti anupagacchati, tejo tejokāyaṁ anupeti anupagacchati, vāyo vāyokāyaṁ anupeti anupagacchati, ākāsaṁ indriyāni saṅkamanti. Āsandipañcamā purisā mataṁ ādāya gacchanti. Yāvāḷāhanā padāni paññāyanti. Kāpotakāni aṭṭhīni bhavanti, bhassantā āhutiyo. Dattupaññattaṁ yadidaṁ dāna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유물론적 답이 죽음 뒤 몸의 해체를 묘사하는 대목입니다. 땅·물·불·바람의 네 요소가 각 요소의 무리로 돌아가고 감각 기관은 허공으로 간다고 하며, `āsandipañcamā purisā`는 죽은 이를 든 들것을 포함해 다섯째가 되는 네 운반자를 가리킵니다. 화장터의 발자국·비둘기 빛 뼈·재가 된 제물을 이은 뒤 보시를 부정하지만, 이는 왕이 전한 아지따의 견해이지 부처님의 결론이 아닙니다.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이 사람은 네 큰 요소로 이루어졌습니다”라는 말부터 화장 장면까지는 아지따의 주장으로 인용돼요. 죽음의 묘사가 힘들면 이 대목은 지금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누가 말했고 누가 다시 전하는지만 확인해 볼 수 있나요?

“‘긍정적인 뜻을 말하는 자들의 주장은 공허하고 거짓된 헛소리입니다.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몸이 무너지면 끊어지고 사라져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지따는 현세의 수행 결실을 묻자 단멸론을 답했습니다.”

Tesaṁ tucchaṁ musā vilāpo ye keci atthikavādaṁ vadanti. Bāle ca paṇḍite ca kāyassa bhedā ucchijjanti vinassanti, na honti paraṁ maraṇā’ti. Itthaṁ kho me, bhante, ajito kesakambal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ucchedaṁ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의 답을 마치고 왕이 그 답을 ‘단멸’이라고 명명하는 자리입니다. `ucchijjanti·vinassanti·na honti`는 몸이 무너지면 끊어지고 사라져 죽은 뒤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 단계의 서술이며,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를 함께 듭니다. 이어 `ucchedaṁ byākāsi`가 이 말의 성격을 분명히 하므로, 부처님의 죽음 이해나 독자의 상태에 대한 판정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묵상

“아지따는 … 단멸을 답했습니다”라는 왕의 보고가 이 주장의 소유자를 밝혀 줘요. 사라짐을 다루는 문장이 힘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이 말과 뒤에 나올 부처님의 답을 섞지 않고 둘 수 있나요?

“세존이시여,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한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질문과 대답이 달랐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내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어찌 나무라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아지따 께사깜발라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ṁ vā puṭṭho labujaṁ byākareyya, labujaṁ vā puṭṭho ambaṁ byākareyya; evameva kho me, bhante, ajito kesakambalo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ṭṭho samāno ucchedaṁ byākāsi. Tassa mayhaṁ, bhante, etadahosi: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vijite vasantaṁ apasādetabbaṁ maññeyyā’ti. So kho ahaṁ, bhante, ajitassa kesakambalassa bhāsitaṁ neva abhinandiṁ nappaṭikkos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답에 대한 왕의 평가와 퇴장을 묶는 결론입니다. 망고와 빵나무 열매의 엇갈린 문답 비유 뒤에 `ucchedaṁ byākāsi`, 곧 단멸을 답했다는 판정이 다시 놓여 질문과 답의 불일치를 특정합니다. 왕은 자신의 영토에 사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폄하하지 않으려 했고, `neva … nappaṭikkosiṁ`으로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멸론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다음 방문으로 넘어가는 장면입니다.

묵상

왕은 “아지따의 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말해 침묵의 뜻을 제한해요. 불편한 주장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을 때, 그 침묵을 동의로 오해하지 않도록 덧붙일 수 있는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불쾌했지만 불쾌하다는 말을 내지 않았고, 그 말을 붙들지도 뒤집지도 않았습니다.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ṁ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ṁ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아지따의 단멸론이 질문과 달랐다고 평가한 뒤, 왕이 그 방문을 마친 방식을 설명하는 마지막 카드입니다. `anattamano`로 불쾌했으나 불쾌하다는 말을 내지 않았고, 그의 말을 붙들지도 뒤집지도 않았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는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는 두 유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는 동작으로 닫힙니다. 이는 아지따의 견해에 동의한 침묵이 아니라 공개 논쟁을 하지 않은 퇴장입니다.

묵상

왕은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라고 대응의 끝을 밝혀요. 어떤 주장에 답하지 않고 대화를 마쳐야 할 때, 침묵을 동의로 오해하지 않게 할 표현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