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갖추고 두 병렬 청원을 올리다

사함빠띠가 예를 갖춘 뒤 세존과 선서께 각각 설법을 청하며 알아들을 이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범천 사함빠띠는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세존을 향해 합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해 주소서. 선서께서는 가르침을 설해 주소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해 쇠퇴합니다. 가르침을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Atha kho brahmā sahampati ekaṁsaṁ uttarāsaṅgaṁ karitvā dakkhiṇajāṇumaṇḍalaṁ pathaviyaṁ nihantvā yena bhagav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bhagavantaṁ etadavoca: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상윳따 니까야 SN 6.1 범천의 청원경 (Brahmāyācanasutta)

배경

세존 앞에 나타난 사함빠띠는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세존을 향해 합장한 뒤 산문 청원을 올립니다. “세존께서는 설해 주소서”와 “선서께서는 설해 주소서”라는 두 병렬 표현에서 같은 동사 desetu가 두 번 쓰입니다. 이어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가르침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쇠퇴한다고 원인을 밝히고,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호소합니다. 이는 세 차례의 반복이 아니라, 하나의 예경·청원 장면 안의 두 병렬 호칭과 그 이유입니다.

묵상

두 번의 “설해 주소서” 뒤에 티끌이 적은 중생과 이해할 이들이 이어지는 순서에서 무엇이 가장 눈에 들어오나요? 청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신에게 적용할 필요는 없어요. 요청과 그 이유의 배열만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