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풀려나다

번뇌의 소멸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을 벗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자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기울인다. 괴로움·그 발생·그 소멸·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결실 뒤, 마지막으로 번뇌의 소멸을 아는 단계가 시작됩니다. 삼매의 마음에 붙는 여덟 성질을 반복한 다음, `āsavānaṁ khayañāṇa`,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이끌고 기울입니다. 이어 괴로움,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그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네 항목을 각각 `yathābhūtaṁ pajānāti`,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합니다. 이는 네 항목의 앎을 기술하며 독자에게 괴로움을 부정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묵상

본문은 괴로움·발생·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고 네 번 배열해요. 지금의 상태를 단정하지 않고, 이 네 항목이 어떤 순서로 놓였는지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이것들이 번뇌다. 이것이 번뇌가 생기는 까닭이다. 이것이 번뇌가 멎는 것이며, 이것이 번뇌가 멎는 데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실상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괴로움에 관한 네 항목을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한 데 이어, 번뇌 자체를 같은 네 갈래 구조로 살핍니다. `ime āsavā`, 이것들이 번뇌라고 알고, 번뇌의 발생과 소멸,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차례로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합니다. 단수 지시어로 발생·소멸·길을 가리키면서 첫 항목의 번뇌는 복수로 제시합니다. 앞 카드의 괴로움 네 항목과 구조는 같지만 대상이 번뇌로 바뀐 카드이며, 구체적인 세 번뇌는 다음 카드에서 나옵니다.

묵상

“이것들이 번뇌다”에서 시작해 발생·소멸·소멸로 이끄는 길까지 네 항목이 이어져요. 앞 카드의 괴로움 네 항목과 나란히 놓고, 지금 같아진 구조와 달라진 대상을 구분해 볼 수 있나요?

“이렇게 알고 보아 감각적 즐거움의 번뇌, 존재하고자 하는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난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음을 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 상태는 없다’고 안다.”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괴로움과 번뇌의 발생·소멸·길을 아는 설명 뒤, 그렇게 알고 보는 데 따른 풀려남을 제시합니다. 마음은 감각적 즐거움의 번뇌(`kāmāsava`), 존재의 번뇌(`bhavāsava`), 무명의 번뇌(`avijjāsava`)라는 세 가지에서 풀려납니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고,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됐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러한 상태는 없다는 네 완결 표현을 압니다. 경의 성취 서술이지 독자의 상태를 대신 판정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묵상

본문은 마음이 풀려나는 번뇌 세 가지와, 이어지는 완결 표현 네 가지를 구분해 제시해요. 이를 내 성취로 선언하지 않고, 세 항목과 네 항목의 경계를 텍스트에서 나눠 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산골짜기에 투명하고 맑은 호수가 있어 눈 밝은 사람이 기슭에서 조개류와 자갈·돌조각, 헤엄치거나 멈춘 물고기 떼를 보고, ‘이 호수는 맑고 그 안에 이것들이 있다’고 아는 것과 같다.”

Seyyathāpi, mahārāja, pabbatasaṅkhep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sambukampi sakkharakat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Tassa evamassa: ‘ayaṁ kho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rime sippisambukāpi sakkharakathalāpi macchagumbāpi carantipi tiṭṭhantip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번뇌에서 풀려남을 설명한 뒤, 앎과 봄의 투명함을 산골짜기의 맑은 호수에 빗댑니다. 호수는 투명하고 맑고 흐리지 않다는 세 성질을 지니며, 눈 밝은 사람이 기슭에 서서 조개류, 자갈과 돌조각, 물고기 떼라는 세 부류를 봅니다. 물고기에는 헤엄치는 경우와 멈춰 있는 경우 두 상태가 붙습니다. 그는 물의 맑음과 그 안의 대상들을 그대로 알아봅니다. 다음 카드에서 이 비유가 번뇌 소멸의 앎에 적용됩니다.

묵상

눈 밝은 사람은 맑은 호수 안의 조개류·자갈과 돌조각·물고기 떼를 보고, 물고기의 움직임 두 가지도 구별해요. 호수의 세 성질과 안에 보이는 세 부류를 지금 각각 찾아볼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깨끗하고 밝고 부드러우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기울인다. 괴로움·그 발생·그 소멸·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산골짜기의 맑은 호수에서 안의 대상들을 훤히 보는 비유를 번뇌 소멸의 앎에 적용합니다. `Evameva kho` 뒤에 삼매의 마음이 지닌 깨끗함부터 흔들림 없음까지 여덟 성질을 반복하고, 그 마음을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기울입니다. 이어 괴로움·그 발생·그 소멸·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안다고 다시 말합니다. 비유의 투명한 봄과 네 항목의 앎을 연결하는 카드이며, 번뇌 네 항목은 다음 카드에 이어집니다.

묵상

“그와 같이” 뒤에는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과 괴로움에 관한 네 항목이 다시 나와요. 호수 비유가 무엇을 분명히 보는 구조로 적용되는지, 네 항목의 배열에서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이것들이 번뇌이고,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며,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맑은 호수 비유를 적용하며 괴로움에 관한 네 항목을 반복한 뒤, 번뇌에 관한 네 항목도 다시 제시합니다. 이것들이 번뇌라고 알고, 번뇌의 발생, 번뇌의 소멸,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차례로 각각 `yathābhūtaṁ`,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합니다. 앞의 195번 카드와 같은 구조가 비유 뒤에 반복된 것이며, 새로운 다섯째 항목이나 구체적 번뇌 목록은 없습니다. 이어지는 카드에서 이 앎에 따른 세 번뇌로부터의 풀려남을 다시 말합니다.

묵상

본문은 번뇌·번뇌의 발생·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다시 네 항목으로 나열해요. 앞의 같은 목록과 대조하여, 비유 뒤에도 순서와 “있는 그대로 안다”는 반복이 유지되는지 볼 수 있나요?

“이렇게 알고 보아 감각적 즐거움의 번뇌, 존재하고자 하는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난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음을 알고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 상태는 없다’고 안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앞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눈앞의 수행 결실이다.”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Idaṁ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번뇌에 관한 네 항목을 있는 그대로 아는 데 이어, 그 앎과 봄의 결과를 반복하고 단락을 닫습니다. 마음이 감각적 즐거움·존재·무명의 세 번뇌에서 풀려나고, 풀려났다는 앎이 생깁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러한 상태는 없다는 네 완결 표현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이것이 앞의 눈앞의 수행 결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평가합니다. 수행 성취를 기술하는 경문이지 독자에게 동일한 성취를 선언하게 하지 않습니다.

묵상

이 카드는 세 번뇌에서의 풀려남, 네 완결 표현, 앞 결실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차례로 묶어요. 각 부분의 경계를 지금 나누어 보면, 마지막 평가가 무엇을 받는지 확인할 수 있나요?

“대왕이시여, 이 눈앞의 수행 생활의 결실보다 더 뛰어나거나 훌륭한 다른 눈앞의 결실은 없다.”

Imasmā ca pana, mahārāja, sandiṭṭhikā sāmaññaphalā aññaṁ sandiṭṭhikaṁ sāmaññaphalaṁ uttaritaraṁ vā paṇītataraṁ vā natthī”ti.

디가 니까야 DN 2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삶의 열매에 관한 경 (Sāmaññaphalasutta)

배경

번뇌 소멸의 앎과 그 결실을 모두 설명한 뒤, 부처님의 긴 답변을 최종적으로 닫는 문장입니다. `imasmā`, ‘이것보다’라고 바로 앞의 눈앞의 수행 생활의 결실을 기준으로 삼고, 더 뛰어나거나(`uttaritara`) 더 훌륭한(`paṇītatara`) 다른 결실은 `natthi`, 없다고 부정합니다. 새 결실을 하나 더 소개하는 문장이 아니라 최상성을 밝히는 종결이며, 다음 카드부터 아자따삿뚜 왕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묵상

“이것보다 더 뛰어나거나 훌륭한 다른 눈앞의 결실은 없다”에서 `natthi`는 문장 전체의 부정을 맡아요. ‘다른 결실이 있다’로 뒤집지 않고, 비교 기준과 부정 범위를 확인해 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