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으려고 빠딸리 마을에 성채를 짓고 있었다.
수천 신들이 터를 차지했으며, 위력 있는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위력 있는 왕과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는 마음을 냈다.
Tena kho pana samayen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ṁ māpenti vajjīnaṁ paṭibāhāya. Tena samayena sambahul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 Yasmiṁ padese mahesakkh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hesakkh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1/15번째이며, 새 장면이나 논증을 여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으려고 빠딸리 마을에 성채를 짓고 있었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으려고 빠딸리 마을에 성채를 짓고 있었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중간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중간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낮은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낮은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 했다.
세존께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수천 신들이 그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셨다.
Yasmiṁ padese majjhim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jjhim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Yasmiṁ padese nīc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nīc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Addasā kho bhagavā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t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yo.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2/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중간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중간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낮은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낮은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집을’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중간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중간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낮은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낮은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집을’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새벽녘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난다여, 누가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짓느냐?” “세존이시여,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족을 막으려고 짓습니다.”
“아난다여, 마치 삼십삼천의 신들과 상의한 듯하구나. 아난다여, 그 두 마가다 대신이 왓지족을 막으려고 도시를 짓고 있느니라.”
Atha kho bhagavā rattiyā paccūsasamayaṁ paccuṭṭhāya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Ke nu kho, ānanda, pāṭaligāme nagaraṁ māpentī”ti? “Sunidhavassakārā, bhante,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ṁ māpenti vajjīnaṁ paṭibāhāyā”ti. “Seyyathāpi, ānanda, devehi tāvatiṁsehi saddhiṁ mantetvā; evameva kho, ānand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ṁ māpenti vajjīnaṁ paṭibāhāya.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3/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새벽녘 세존께서 아난다에게 누가 성채를 짓는지 물으셨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새벽녘 세존께서 아난다에게 누가 성채를 짓는지 물으셨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난다여,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수천 신들이 빠딸리 마을의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느니라.
아난다여, 위력 있는 신들이 터를 차지한 곳에는 위력 있는 왕과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 마음을 내느니라.”
Idhāhaṁ, ānanda, addasaṁ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mbahul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yo. Yasmiṁ, ānanda, padese mahesakkh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hesakkh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4/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수천 신들이 빠딸리 마을의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수천 신들이 빠딸리 마을의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중간 지위의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중간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낮은 지위의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낮은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 마음을 내느니라.”
Yasmiṁ padese majjhim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jjhim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Yasmiṁ padese nīc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nīc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5/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중간 지위의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중간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낮은 지위의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낮은 지위의 왕과’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중간 지위의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중간 지위의 왕과 대신들이 낮은 지위의 신들이 차지한 곳에는 낮은 지위의 왕과’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난다여, 문명과 교역이 미치는 곳까지 빠딸리뿟따는 물품을 풀어 거래하는 으뜸 도시가 될 것이니라.
아난다여, 빠딸리뿟따에는 불·물·내부 분열이라는 세 가지 위험이 있을 것이니라.”
Yāvatā, ānanda, ariyaṁ āyatanaṁ yāvatā vaṇippatho idaṁ agganagaraṁ bhavissati pāṭaliputtaṁ puṭabhedanaṁ. Pāṭaliputtassa kho, ānanda, tayo antarāyā bhavissanti— aggito vā udakato vā mithubhedā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6/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아난다여 문명과 교역이 미치는 곳까지 빠딸리뿟따는 물품을 풀어 거래하는 으뜸 도시가 될 것이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아난다여 문명과 교역이 미치는 곳까지 빠딸리뿟따는 물품을 풀어 거래하는 으뜸 도시가 될 것이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 다가가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서서 청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수행자 승가와 함께 오늘 저희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받아들이셨다.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ṁsu,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aṭṭhaṁsu, ekamantaṁ ṭhitā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ṁ etadavocuṁ: “adhivāsetu no bhavaṁ gotamo ajjatanāya bhattaṁ saddhiṁ bhikkhusaṅghenā”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7/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 다가가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서서 청했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 다가가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서서 청했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두 대신은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기 객사로 가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을 마련했다.
그들은 세존께 “고따마 존자여, 때가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 알렸다.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to adhivāsanaṁ viditvā yena sako āvasatho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sake āvasathe paṇītaṁ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paṭiyādāpetvā bhagavato kālaṁ ārocāpesuṁ: “kālo, bho gotama, niṭṭhitaṁ bhat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8/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두 대신은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기 객사로 가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을 마련했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두 대신은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기 객사로 가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을 마련했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침에 세존께서는 발우와 가사를 들고 승가와 함께 두 대신의 객사에 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을 앞세운 수행자 승가에게 훌륭한 음식을 손수 충분히 대접했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ṁ bhikkhusaṅghena yena sunidhavassakārānaṁ magadhamahāmattānaṁ āvasath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uddhappamukhaṁ bhikkhusaṅghaṁ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uṁ sampavār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9/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아침에 세존께서는 발우와 가사를 들고 승가와 함께 두 대신의 객사에 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아침에 세존께서는 발우와 가사를 들고 승가와 함께 두 대신의 객사에 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세존께서 드시고 발우에서 손을 떼시자 두 대신은 낮은 자리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감사하셨다.
“지혜로운 이는 머물 곳을 정하고 계행 있고 절제된 청정한 삶의 수행자에게 음식을 베푸느니라.”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ṁ bhuttāviṁ onītapattapāṇiṁ aññataraṁ nīcaṁ āsanaṁ gah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e kho sunidhavassakāre magadhamahāmatte bhagavā imāhi gāthāhi anumodi: “Yasmiṁ padese kappeti, vāsaṁ paṇḍitajātiyo; Sīlavantettha bhojetvā, saññate brahmacārayo.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10/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세존께서 드시고 발우에서 손을 떼시자 두 대신은 낮은 자리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세존께서 드시고 발우에서 손을 떼시자 두 대신은 낮은 자리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그곳의 신들에게 공덕을 돌리면, 공경받은 신들은 그를 공경하고 존중받은 신들은 그를 존중하느니라.
그들은 친어머니가 친아들을 아끼듯 그를 가엾이 여기며, 신들의 보살핌을 받는 이는 언제나 좋은 일을 보느니라.”
Yā tattha devatā āsuṁ, tāsaṁ dakkhiṇamādise; Tā pūjitā pūjayanti, mānitā mānayanti naṁ. Tato naṁ anukampanti, mātā puttaṁva orasaṁ; Devatānukampito poso, sadā bhadrāni pa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11/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그곳의 신들에게 공덕을 돌리면 공경받은 신들은 그를 공경하고 존중받은 신들은 그를 존중한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그곳의 신들에게 공덕을 돌리면 공경받은 신들은 그를 공경하고 존중받은 신들은 그를 존중한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세존께서 게송으로 감사한 뒤 떠나시자 두 대신은 뒤따랐다.
그들은 세존께서 나가시는 문을 ‘고따마 문’, 갠지스강을 건너시는 나루를 ‘고따마 나루’라고 부르기로 했다.
Atha kho bhagavā sunidhavassakāre magadhamahāmatte imāhi gāthāhi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Tena kho pana samayen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ṁ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ā honti: “yenajja samaṇo gotamo dvārena nikkhamissati, taṁ gotamadvāraṁ nāma bhavissati. Yena titthena gaṅgaṁ nadiṁ tarissati, taṁ gotamatitthaṁ nāma bhav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12/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세존께서 게송으로 감사한 뒤 떠나시자 두 대신은 뒤따랐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세존께서 게송으로 감사한 뒤 떠나시자 두 대신은 뒤따랐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세존께서 나가신 문은 고따마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존께서 갠지스강에 이르셨을 때 강물은 까마귀가 서서 물을 마실 만큼 가득했다.
건너려는 사람들은 배나 작은 배를 찾거나 뗏목을 묶고 있었다.
Atha kho bhagavā yena dvārena nikkhami, taṁ gotamadvāraṁ nāma ahosi. Atha kho bhagavā yena gaṅgā nadī tenupasaṅkami. Tena kho pana samayena gaṅgā nadī pūrā hoti samatittikā kākapeyyā. Appekacce manussā nāvaṁ pariyesanti, appekacce uḷumpaṁ pariyesanti, appekacce kullaṁ bandhanti apārā, pāraṁ gantukām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13/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세존께서 나가신 문은 고따마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세존께서 나가신 문은 고따마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세존께서는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수행자 승가와 함께 이쪽 강둑에서 사라져 저쪽 강둑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배를 찾고 뗏목을 묶으며 건너려는 사람들을 보셨다.
Atha kho bhagavā—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v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v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gaṅgāya nadiyā orimatīre antarahito pārimatīre paccuṭṭhāsi saddhiṁ bhikkhusaṅghena. Addasā kho bhagavā te manusse appekacce nāvaṁ pariyesante appekacce uḷumpaṁ pariyesante appekacce kullaṁ bandhante apārā pāraṁ gantukāme.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14/15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세존께서는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수행자 승가와 함께 이쪽 강둑에서 사라져 저쪽 강둑에’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세존께서는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수행자 승가와 함께 이쪽 강둑에서 사라져 저쪽 강둑에’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그 뜻을 아신 세존께서 감흥의 말씀을 읊으셨다.
“큰물과 흐름을 건너는 지혜로운 이들은 다리를 놓고 늪을 뒤에 남기느니라. 사람들이 아직 뗏목을 묶고 있을 때 그들은 이미 건너갔느니라.”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ṁ viditvā 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 “Ye taranti aṇṇavaṁ saraṁ, Setuṁ katvāna visajja pallalāni; Kullañhi jano bandhati, Tiṇṇā medhāvino janā”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빠딸리 마을의 성채」 대목의 15/15번째이며, 앞선 논증을 맺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자리입니다.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을 성채를 세웁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곳이 빠딸리뿟따라는 으뜸 교역 도시가 되지만 불·물·분열의 위험을 겪으리라 말씀하시며 갠지스강을 건너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그 뜻을 아신 세존께서 감흥의 말씀을 읊으셨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그 뜻을 아신 세존께서 감흥의 말씀을 읊으셨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