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띠 마을에 머무신 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띠까로 가자.”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많은 수행자 승가와 나띠까에 이르러 벽돌집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koṭigāme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nātikā tenup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nātikā tadavasari. Tatrapi sudaṁ bhagavā nātike viharati giñjakāvasathe.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1/9번째이며, 새 장면이나 논증을 여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꼬띠 마을에 머무신 뒤 세존께서는 아난다와 함께 나띠까로 가자고 하셨고 아난다는 따르겠다고 답했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꼬띠 마을에 머무신 뒤 세존께서는 아난다와 함께 나띠까로 가자고 하셨고 아난다는 따르겠다고 답했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예경하고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나띠까에서 살하 남성 수행자가 죽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과 앞날은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난다 비구니가 죽었습니다. 그녀의 태어날 곳과 앞날은 어떻습니까?”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sāḷho nāma, bhante, bhikkhu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Nandā nāma, bhante, bhikkhunī nātike kālaṅkatā, tassā kā gati, ko abhisamparāyo?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2/9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예경하고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예경하고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세존이시여, 나띠까에서 재가 신자 수닷따가 죽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과 앞날은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수자따가 죽었습니다. 그녀의 앞날은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꾹꾸따가 죽었습니다. 그의 앞날은 어떻습니까?”
Sudatt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Sujātā nāma, bhante, upāsikā nātike kālaṅkatā, tassā kā gati, ko abhisamparāyo? Kukkuṭ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3/9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세존이시여 나띠까에서 죽은 재가 신자 수닷따와 수자따 꾹꾸따는 어디에 태어났으며 그 앞날은 어떠합니까’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세존이시여 나띠까에서 죽은 재가 신자 수닷따와 수자따 꾹꾸따는 어디에 태어났으며 그 앞날은 어떠합니까’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세존이시여, 재가 신자 깔림바가 … 세존이시여, 니까따가 … 세존이시여, 까띳사하가 … 세존이시여, 뚯타가 … 세존이시여, 산뚯타가 …
세존이시여, 밧다가 … 세존이시여, 수밧다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 태어났으며 그 앞날은 어떠합니까?”
Kāḷimbo nāma, bhante, upāsako …pe… nikaṭo nāma, bhante, upāsako … kaṭissaho nāma, bhante, upāsako … tuṭṭho nāma, bhante, upāsako … santuṭṭho nāma, bhante, upāsako … bhaddo nāma, bhante, upāsako … subhadd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4/9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빠알리 원문에는 반복 생략 ‘…pe…’ 1곳과 일반 생략 ‘…’ 5곳이 표시되어 있으며, 한국어에는 같은 자리에 ‘…’로 표시했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또 재가 신자 깔림바·니까따·까띳사하·뚯타·산뚯타·밧다·수밧다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또 재가 신자 깔림바·니까따·까띳사하·뚯타·산뚯타·밧다·수밧다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난다여, 살하 남성 수행자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이 삶에서 스스로 깨달아 성취해 머물렀느니라.
아난다여, 난다 비구니는 다섯 낮은 결박을 다하여 저절로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느니라.”
“Sāḷho, ānanda, bhikkhu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Nandā, ānanda, bhikkhunī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ī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5/9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아난다여 살하 남성 수행자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이 삶에서 스스로 깨달아 성취해 머물렀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아난다여 살하 수행자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이 삶에서 스스로 깨달아 성취해 머물렀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난다여, 수닷따는 세 결박을 다하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져 이 세상에 한 번만 돌아와 괴로움을 끝낼 것이니라.
아난다여, 수자따는 세 결박을 다한 수다원로서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이 확정되었느니라. 아난다여, 꾹꾸따는 다섯 낮은 결박을 다해 저절로 태어나 그곳에서 열반하고 돌아오지 않느니라.”
Sudatto, ānanda, upāsako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ṁ tanuttā sakadāgāmī sakideva imaṁ lokaṁ āgantvā dukkhassantaṁ karissati. Sujātā, ānanda, upāsikā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 Kukkuṭo, ānanda, upāsako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6/9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수닷따는 세 결박을 다하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돌아오는 이가 되었으며 이 세상에 한 번만 돌아와’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수닷따는 세 결박을 다하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돌아오는 이가 되었으며 이 세상에 한 번만 돌아와’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난다여, 재가 신자 깔림바는 … 아난다여, 니까따는 … 아난다여, 까띳사하는 … 아난다여, 뚯타는 … 아난다여, 산뚯타는 … 아난다여, 밧다는 …
아난다여, 수밧다는 다섯 낮은 결박을 다했느니라. 그들은 저절로 태어났고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여,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느니라.”
Kāḷimbo, ānanda, upāsako …pe… nikaṭo, ānanda, upāsako … kaṭissaho, ānanda, upāsako … tuṭṭho, ānanda, upāsako … santuṭṭho, ānanda, upāsako … bhaddo, ānanda, upāsako … subhaddo, ānanda, upāsako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7/9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빠알리 원문에는 반복 생략 ‘…pe…’ 1곳과 일반 생략 ‘…’ 5곳이 표시되어 있으며, 한국어에는 같은 자리에 ‘…’로 표시했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아난다여 깔림바·니까따·까띳사하·뚯타·산뚯타·밧다·수밧다는 다섯 낮은 결박을 다했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아난다여 깔림바·니까따·까띳사하·뚯타·산뚯타·밧다·수밧다는 다섯 낮은 결박을 다했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쉰 명이 넘는 재가 신자들은 다섯 낮은 결박을 다하여 그곳에서 열반하고 돌아오지 않느니라.
아난다여, 아흔 명이 넘는 이들은 세 결박을 다하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만 돌아와 괴로움을 끝낼 것이니라.”
Paropaññāsaṁ, ānanda,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o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 Sādhikā navuti, ānanda,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ṁ tanuttā sakadāgāmino sakideva imaṁ lokaṁ āgantvā dukkhassantaṁ karissan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8/9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나띠까에서 죽은 쉰 명이 넘는 재가 신자들은 다섯 낮은 결박을 다하여 그곳에서 열반하고 돌아오지 않는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나띠까에서 죽은 쉰 명이 넘는 재가 신자들은 다섯 낮은 결박을 다하여 그곳에서 열반하고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오백 명이 넘는 재가 신자들은 세 결박을 다한 수다원들이니라.
그들은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이 확정되어 있느니라.”
Sātirekāni, ānanda, pañcasatāni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이 카드는 「나띠까에서 죽은 이들의 행방」 대목의 9/9번째이며, 앞선 논증을 맺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죽은 남성 수행자·비구니와 여러 재가 신자의 행방을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돌아오지 않는 이·한 번 돌아오는 이·흐름에 든 이라는 서로 다른 성취와 인원수를 구별해 답하십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오백 명이 넘는 재가 신자들은 세 결박을 다한 흐름에 든 이들이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개별 장면이 긴 여정의 앞뒤 인과와 반복 구조에서 떨어져 서로 다른 사건으로 오해되지 않습니다.
묵상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오백 명이 넘는 재가 신자들은 세 결박을 다한 흐름에 든 이들이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