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는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 계셨느니라.
장자의 아들 께왓따가 다가와 절하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씀드렸느니라.
‘세존이시여, 이 날란다는 부유하고 번창하며 사람이 많고 붐비니, 세존께 깊이 신심을 내고 있습니다.
부디 한 수행자에게 명하시어 사람을 뛰어넘는 신통의 기적을 보이게 하소서.
그리하면 이 날란다는 더욱더 신심을 내게 될 것입니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nāḷandāyaṁ viharati pāvārikambavane. Atha kho kevaṭṭo gahapat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kevaṭṭo gahapat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ayaṁ, bhante, nāḷandā iddhā ceva phītā ca bahujanā ākiṇṇamanussā bhagavati abhippasannā. Sādhu, bhante, bhagavā ekaṁ bhikkhuṁ samādisatu, yo uttari manussadhammā iddhipāṭihāriyaṁ karissati; evāyaṁ nāḷandā bhiyyoso mattāya bhagavati abhippasīd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경의 첫 장면입니다. 장자의 아들 께왓따가 부유한 도시 날란다를 더 신심 있게 만들 방법으로, 한 수행자가 신통력을 보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원문의 "사람을 뛰어넘는 신통의 기적(uttari manussadhammā iddhipāṭihāriyaṁ)"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초인적 시범을 뜻합니다. 께왓따는 이것이 사람들의 신심을 더 굳게 만들 것이라 기대하지만, 경은 이 요청을 곧바로 들어주지 않고 세 번이나 되풀이하게 하면서 그 요청의 전제를 되짚어 보게 합니다. 이 장면은 뒤이어 나오는 "진짜 기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화려한 능력이나 특별한 증거를 보면 믿음이 더 굳어질 거라 기대해 본 적 있나요? 돌아보면, 누군가를 정말로 신뢰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요?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나 장면이 있다면 잠시 머물러 보아도 좋아요.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 께왓따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께왓따여, 나는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느니라 -
‘그대들은 흰옷 입은 재가자들 앞에서
사람을 뛰어넘는 신통의 기적을 보이라’
이렇게는 설하지 않느니라.’
Evaṁ vutte, bhagavā kevaṭṭaṁ gahapatiputtaṁ etadavoca: “na kho ahaṁ, kevaṭṭa, bhikkhūnaṁ evaṁ dhammaṁ desemi: ‘etha tumhe, bhikkhave, gihīnaṁ odātavasanānaṁ uttari manussadhammā iddhipāṭihāriyaṁ karothā’”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께왓따의 청에 대한 세존의 첫 대답입니다. 신통의 기적을 재가자 앞에서 보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부정문으로 답하며, 요청을 곧바로 거절합니다. 이 대답은 경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 곧 신통이 가르침의 중심이 아니라는 입장을 처음으로 드러냅니다. 께왓따는 이 대답에 물러서지 않고 곧 다시 청하게 되는데, 그 반복은 뒤 카드에서 다룹니다. 세존이 딱 잘라 부정하는 말투를 쓴 것은 이 물음 자체를 아예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누군가 원하는 것을 곧바로 들어주지 않고 거절해 본 적 있나요? 지금 이 장면에서 세존의 대답이 매정하게 들리나요, 아니면 다른 뜻으로 읽히나요? 거절 뒤에 숨은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질 수 있어요.
께왓따 장자는 두 번째로도 세존께 말씀드렸느니라 -
‘세존이시여, 저는 감히 세존을 거스르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렇게 말씀드릴 뿐입니다 -
…
그리하면 이 날란다는 더욱더 신심을 내게 될 것입니다.’
세존께서도 두 번째로 께왓따 장자에게 말씀하셨느니라 -
‘께왓따여, 나는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느니라 -
‘그대들은 흰옷 입은 재가자들 앞에서 신통의 기적을 보이라’
이렇게는 설하지 않느니라.’
Dutiyampi kho kevaṭṭo gahapat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nāhaṁ, bhante, bhagavantaṁ dhaṁsemi; api ca evaṁ vadāmi:… evāyaṁ nāḷandā bhiyyoso mattāya bhagavati abhippasīdissatī’”ti. Dutiyampi kho bhagavā kevaṭṭaṁ gahapatiputtaṁ etadavoca: “na kho ahaṁ, kevaṭṭa, bhikkhūnaṁ evaṁ dhammaṁ desemi: ‘etha tumhe, bhikkhave, gihīnaṁ odātavasanānaṁ uttari manussadhammā iddhipāṭihāriyaṁ karothā’”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께왓따가 두 번째로 청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첫 번째와 똑같은 말로 다시 청하는데, 원문이 되풀이하는 날란다에 대한 설명은 앞 카드에 이미 나왔으므로 여기서는 줄이고 앞뒤의 새로운 표현("저는 감히 거스르려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한 표현과, 세존의 되풀이된 거절)에 집중했습니다. 세존은 이번에도 첫 번째와 똑같은 말로 거절하십니다. 다음 카드에서 세 번째 청이 이어집니다.
묵상
한 번 거절당한 뒤에도 조심스러운 말투로 다시 청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진심을 더 잘 전달했던 경험이 있다면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 그런 청함이 필요한 자리가 있나요?
께왓따 장자는 세 번째로도 세존께 말씀드렸느니라 -
‘세존이시여, 저는 감히 세존을 거스르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렇게 말씀드릴 뿐입니다 -
…
그리하면 이 날란다는 더욱더 신심을 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자, 이번에는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Tatiyampi kho kevaṭṭo gahapat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nāhaṁ, bhante, bhagavantaṁ dhaṁsemi; api ca evaṁ vadāmi:… Evāyaṁ nāḷandā bhiyyoso mattāya bhagavati abhippasīd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께왓따가 세 번째로 같은 말을 청하는 대목입니다. 이번에도 날란다에 대한 설명은 앞서와 같으므로 줄였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세존께서 이전 두 번처럼 거절을 되풀이하지 않고, 대신 신통이 아닌 다른 것을 설명하기로 마음을 돌리십니다. 세 번째 청에 이르러서야 대답이 달라진다는 것이, 께왓따의 거듭된 간절함과 세존이 결국 답을 내놓게 되는 전환점을 함께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부탁을 세 번이나 되풀이해야 했던 께왓따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떠올려 보면 어떤가요? 거절이 반복될 때 오히려 더 매달리게 되는 마음을 겪어 본 적이 있나요? 그 매달림이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께왓따여, 내가 몸소 깨달아 스스로 실현하여 세상에 알려 온 기적에 이 세 가지가 있느니라.
무엇이 셋인가?
신통의 기적과 마음을 알아내는 기적과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이니라.
1. Iddhipāṭihāriya “Tīṇi kho imāni, kevaṭṭa, pāṭihāriyāni may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itāni. Katamāni tīṇi? Iddhipāṭihāriyaṁ, ādesanāpāṭihāriyaṁ, anusāsanīpāṭihāriyaṁ.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세 번째 청을 받은 세존께서 마침내 답을 내놓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원문에는 이 앞에 "하나, 신통의 기적"이라는 편집자의 소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는 뒤에 이어질 세 항목의 첫째를 미리 알리는 표시입니다. 세존은 신통을 곧바로 보이는 대신, 자신이 인정하는 "기적"에 세 가지가 있다고 재정의합니다 - 신통의 기적, 남의 마음을 아는 기적, 그리고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입니다. 이 셋 가운데 앞의 둘은 뒤에서 곧 그 한계가 드러나고, 셋째만이 참된 기적으로 남게 됩니다.
묵상
"기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삶을 바꾼 것이 화려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건넨 말 한마디였는지 돌아보아도 좋아요. 그 말 한마디를 지금 다시 떠올려 보아도 괜찮아요.
께왓따여, 무엇이 신통의 기적인가?
여기 수행자가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부리나니 -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며,
나타났다 사라지고,
담과 성벽과 산을 허공처럼 걸림 없이 지나가며,
땅속을 물처럼 오르내리고, 물 위를 땅처럼 걸어가며,
하늘을 새처럼 가부좌한 채 날아가고,
저리도 큰 위력을 지닌 해와 달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몸으로 범천의 세계까지 자유로이 다다르느니라.
Katamañca, kevaṭṭa, iddhipāṭihāriyaṁ? Idha, kevaṭṭa, bhikkhu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oti—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āvibhāvaṁ tirobhāvaṁ tirokuṭṭaṁ tiropākāraṁ tiropabbataṁ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ṁ karoti seyyathāpi udake; udakepi abhijjamāne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aṁ;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imepi candimasūriye evaṁ mahiddhike evaṁ mahānubhāve pāṇinā parāmasati parimajjati;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세존께서 스스로 정의하신 첫째 기적, 신통의 기적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몸을 여럿으로 나누거나 합치고, 물체를 통과하고, 물과 땅을 뒤바꾸어 다니고, 해와 달을 만지는 등 초인적인 능력의 목록이 나열됩니다. 이 목록은 다른 경들에도 되풀이해 나오는 신통력의 정형구로, 수행으로 얻어지는 능력 가운데 하나로 설명되는 것들입니다. 다만 이 경의 흐름에서는 이 능력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뒤이어 이 능력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그 한계를 드러내기 위한 도입부로 쓰입니다.
묵상
몸을 나누고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능력을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놀라울지 상상해 본 적 있나요? 그런 놀라움이 지나간 뒤에도 남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해도 괜찮아요. 놀라움과 믿음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도 함께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믿음 있고 신심 있는 어떤 이가 그 수행자가 이런 신통변화를 부리는 것을 보고,
믿음 없는 다른 이에게 이렇게 알리느니라.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신기하구나,
수행자의 저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이여!
내가 그 수행자가 이런 일들을 몸소 부리는 것을 직접 보았노라!’
Tamenaṁ aññataro saddho pasanno passati taṁ bhikkhuṁ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ontaṁ—ekopi hutvā bahudhā hontaṁ, bahudhāpi hutvā eko hontaṁ; āvibhāvaṁ tirobhāvaṁ; tirokuṭṭaṁ tiropākāraṁ tiropabbataṁ asajjamānaṁ gacchantaṁ seyyathāpi ākāse;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ṁ karontaṁ seyyathāpi udake; udakepi abhijjamāne gacchantaṁ seyyathāpi pathaviyaṁ; ākāsepi pallaṅkena kamantaṁ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imepi candimasūriye evaṁ mahiddhike evaṁ mahānubhāve pāṇinā parāmasantaṁ parimajjantaṁ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ntaṁ. Tamenaṁ so saddho pasanno aññatarassa assaddhassa appasannassa āroceti: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samaṇ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Amāhaṁ bhikkhuṁ addasaṁ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ontaṁ—ekopi hutvā bahudhā hontaṁ, bahudhāpi hutvā eko hontaṁ …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ntan’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신통을 본 사람의 반응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그 광경에 감탄하여 믿음 없는 사람에게 자랑삼아 전합니다. 이 장면은 신통이 보는 사람에게 놀라움과 감탄은 줄 수 있어도, 아직 그 자체로 가르침이나 깨달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음 대목에서 믿음 없는 사람이 이 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이어지며, 그 반응이 세존께서 신통을 경계하시는 이유로 연결됩니다.
묵상
누군가 놀라운 것을 보고 흥분해서 전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항상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던가요? 놀라움을 전하는 것과 믿음이 생기는 것은 같은 일일까요, 다른 일일까요? 지금 떠오르는 경험이 있다면 잠시 머물러 보아도 좋아요.
믿음 없는 그 사람은 믿음 있는 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니라 -
‘여보게, 간다리라는 주문이 있다네. 그 수행자는 그 주문으로 그런 신통변화를 부리는 것이라네.’
께왓따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믿음 없는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께왓따여, 나는 신통의 기적에서 이런 위험을 보기에, 신통의 기적을 몹시 꺼리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하느니라.
Tamenaṁ so assaddho appasanno taṁ saddhaṁ pasannaṁ evaṁ vadeyya: ‘atthi kho, bho, gandhārī nāma vijjā. Tāya so bhikkhu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oti—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tī’ti. Taṁ kiṁ maññasi, kevaṭṭa, api nu so assaddho appasanno taṁ saddhaṁ pasannaṁ evaṁ vadeyyā”ti? “Vadeyya, bhante”ti. “Imaṁ kho ahaṁ, kevaṭṭa, iddhipāṭihāriye ādīnavaṁ sampassamāno iddhipāṭihāriyena aṭṭīyāmi harāyāmi jigucchām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신통을 본 믿음 없는 사람이 그것을 도리어 의심하는 장면입니다. "간다리"는 저잣거리에 알려진 주문이나 술법의 이름으로, 믿음 없는 사람은 수행자의 신통을 수행의 결실이 아니라 그런 술법 하나로 치부해 버립니다. 세존은 께왓따의 동의를 받아 낸 뒤, 바로 이 위험 때문에 신통의 기적을 몹시 꺼리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한다고 직접 밝히십니다. 아무리 놀라운 능력이라도 보는 사람이 술수로 의심해 버리면 믿음을 굳히기는커녕 오히려 헛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세존이 신통을 경계하시는 이유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진심 어린 행동을 보고도 "수를 쓴 것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본 적이 있나요? 반대로 내가 진심으로 한 일이 그렇게 의심받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의심과 진심 사이에서 무엇이 더 오래 남는지도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께왓따여, 무엇이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기적인가?
여기 수행자가 다른 사람의 마음도, 마음의 상태도, 생각도, 헤아림도 알아내어 이렇게 말하나니 -
‘그대의 뜻은 이러하고, 이러하며, 그대의 마음은 이러하다.’
2. Ādesanāpāṭihāriya Katamañca, kevaṭṭa, ādesanāpāṭihāriyaṁ? Idha, kevaṭṭa, bhikkhu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ittampi ādisati, cetasikampi ādisati, vitakkitampi ādisati, vicāritampi ādisati: ‘evampi te mano, itthampi te mano, itipi te cittan’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세존께서 정의하시는 둘째 기적,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기적입니다. 앞서 신통의 기적이 몸으로 부리는 재주였다면, 이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각, 헤아림까지 읽어 말로 짚어 내는 능력입니다. 구조는 앞의 신통 항목과 나란하니, 능력을 정의한 뒤 그것을 본 사람의 반응이 곧이어 나오고, 그 반응에서 이 기적의 한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원문은 "마음도, 마음의 상태도, 생각도, 헤아림도"라는 네 낱말을 나란히 두어, 읽어 내는 대상이 겉생각 하나에 그치지 않음을 보입니다.
묵상
누군가 내 마음을 정확히 읽어 낸다면 반가울까요, 아니면 불편할까요? 마음을 읽히는 것과 마음이 이해받는 것은 같은 것일지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지금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믿음 있는 어떤 이가 그 수행자가 이렇게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을 보고,
믿음 없는 다른 이에게 이렇게 알리느니라.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구나, 수행자의 저 큰 신통력이여!
내가 그 수행자가 ‘그대의 뜻은 이러하고, 그대의 마음은 이러하다’
이렇게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을 직접 보았노라!’
Tamenaṁ aññataro saddho pasanno passati taṁ bhikkhuṁ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ittampi ādisantaṁ, cetasikampi ādisantaṁ, vitakkitampi ādisantaṁ, vicāritampi ādisantaṁ: ‘evampi te mano, itthampi te mano, itipi te cittan’ti. Tamenaṁ so saddho pasanno aññatarassa assaddhassa appasannassa āroceti: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samaṇ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Amāhaṁ bhikkhuṁ addasaṁ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ittampi ādisantaṁ, cetasikampi ādisantaṁ, vitakkitampi ādisantaṁ, vicāritampi ādisantaṁ: “evampi te mano, itthampi te mano, itipi te cittan”’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남의 마음을 읽어 내는 것을 본 사람의 반응이 앞의 신통 대목과 같은 틀로 되풀이됩니다. 믿음 있는 이는 감탄하여 전하고, 이 감탄이 다음 대목에서 믿음 없는 사람에 의해 다시 의심받게 됩니다. 같은 구조가 두 번째 기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이 경이 신통뿐 아니라 마음을 읽는 능력조차 같은 이유로 완전한 기적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똑같이 놀라운 일도 두 번째로 들으면 처음만큼 놀랍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 익숙해짐은 무엇을 말해 준다고 생각하나요? 놀라움이 옅어진 자리에 무엇이 대신 남는지도 살펴보아도 좋아요.
믿음 없는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니라 -
‘여보게, 마니까라는 주문이 있다네. 그 수행자는 그 주문으로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이라네.’
께왓따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믿음 없는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께왓따여, 나는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기적에서 이런 위험을 보기에, 그 기적을 몹시 꺼리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하느니라.
Tamenaṁ so assaddho appasanno taṁ saddhaṁ pasannaṁ evaṁ vadeyya: ‘atthi kho, bho, maṇikā nāma vijjā; tāya so bhikkhu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ittampi ādisati, cetasikampi ādisati, vitakkitampi ādisati, vicāritampi ādisati: “evampi te mano, itthampi te mano, itipi te cittan”’ti. Taṁ kiṁ maññasi, kevaṭṭa, api nu so assaddho appasanno taṁ saddhaṁ pasannaṁ evaṁ vadeyyā”ti? “Vadeyya, bhante”ti. “Imaṁ kho ahaṁ, kevaṭṭa, ādesanāpāṭihāriye ādīnavaṁ sampassamāno ādesanāpāṭihāriyena aṭṭīyāmi harāyāmi jigucchām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둘째 기적도 첫째와 똑같은 결말을 맞습니다. 이번에는 "마니까"라는 주문의 이름이 등장하여, 믿음 없는 사람은 마음을 읽어 내는 능력마저 술법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세존은 다시 께왓따의 동의를 확인한 뒤, 같은 이유로 이 기적 또한 몹시 꺼리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한다고 밝히십니다. 신통과 마음 읽기, 이 두 가지 기적이 나란히 같은 위험 때문에 기각되면서, 경은 이제 셋째 기적으로 눈을 돌릴 준비를 합니다.
묵상
겉으로 보기에 신비하고 놀라운 것일수록, 그것을 의심하는 마음도 함께 커지는 것 같지 않나요? 정말 믿을 만한 것은 오히려 평범해 보일 때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 하나를 떠올려 보아도 괜찮아요.
께왓따여, 무엇이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인가?
여기 수행자가 이렇게 가르쳐 이끄나니 -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는 생각하지 말라.
이렇게 마음에 새기고 저렇게는 마음에 새기지 말라.
이것은 버리고 저것을 이루어 머물라.’
께왓따여, 이것을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이라 하느니라.
3. Anusāsanīpāṭihāriya Katamañca, kevaṭṭa, anusāsanīpāṭihāriyaṁ? Idha, kevaṭṭa, bhikkhu evamanusāsati: ‘evaṁ vitakketha, mā evaṁ vitakkayittha, evaṁ manasikarotha, mā evaṁ manasākattha, idaṁ pajahatha, idaṁ upasampajja viharathā’ti. Idaṁ vuccati, kevaṭṭa, anusāsanīpāṭihāriyaṁ.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셋째 기적,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이 정의되는 대목입니다. 앞의 둘이 초능력적인 시범이었던 것과 달리, 이것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지 말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이룰지 구체적으로 일러 주는 가르침 그 자체입니다. 신통이나 마음 읽기와 달리 이 기적은 술법으로 의심받을 여지가 없습니다 - 누구나 그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의만으로는 짧아 보이지만, 뒤이어 이 가르침이 실제로 어떤 길을 거쳐 사람을 이끄는지 아주 길게 펼쳐집니다.
묵상
누군가 신기한 능력을 보여줄 때와, 누군가 진심으로 "이렇게 해보라"고 일러 줄 때, 어느 쪽이 실제로 삶을 바꾸던가요? 지금 떠오르는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조언을 누가, 어떤 말투로 건넸는지도 함께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