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으로 이끄는 것이 참된 기적이다

계행에서 선정과 지혜에 이르는 전 수행 과정이 왜 참된 기적인지 설명합니다.

다시, 께왓따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태어나나니, 공양받아 마땅하고 바르게 깨달은 이이니라… 께왓따여, 이렇게 수행자는 계행을 갖추게 되나니… 첫 번째 선정을 이루어 머무느니라. 께왓따여, 이것도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이라 하나니…

Puna caparaṁ, kevaṭṭa, idha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ṁ sammāsambuddho …pe… Evaṁ kho, kevaṭṭa, bhikkhu sīlasampanno hoti …pe…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Idampi vuccati, kevaṭṭa, anusāsanīpāṭihāriyaṁ …pe…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을 실제로 어떻게 펼치는지 보이는 대목입니다. 원문은 여래의 출현에서 계행을 갖추는 과정, 감각의 문을 지키는 수행을 거쳐 첫째 선정에 이르는 전 과정을 줄임표로 압축해 놓았는데, 이는 다른 경(사문과경 등)에 이미 온전히 나오는 잘 알려진 정형구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 자체의 관심은 그 세부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이 전 과정 하나하나가 다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에 해당한다고 거듭 선언하는 데 있습니다. 원문의 생략 표시는 편집자가 이미 다른 곳에 있는 내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줄인 것이며, 없는 내용을 지어 채우지 않았습니다.

묵상

계행을 갖추고 마음을 다잡아 가는 그 오랜 과정 하나하나가 "기적"이라 불린다면, 지금 나의 작은 습관 하나도 그런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요? 거창한 결과보다 그 과정 자체를 바라보면 어떻게 다르게 보이나요?

둘째 선정을… 셋째 선정을… 넷째 선정을 이루어 머무느니라. 께왓따여, 이것도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이라 하나니…

dutiyaṁ jhānaṁ …pe… tatiyaṁ jhānaṁ …pe…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Idampi vuccati, kevaṭṭa, anusāsanīpāṭihāriyaṁ …pe…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네 가지 선정, 곧 마음을 고요히 모아 가는 네 단계를 차례로 지나는 대목입니다. 원문은 각 선정의 세부 내용을 이미 다른 곳에서 다룬 대로 생략하고, 둘째·셋째 선정은 이름만, 넷째 선정만 "이루어 머무느니라"까지 온전히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하나에도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이라는 이름이 똑같이 되풀이해 붙습니다. 선정이라는, 화려하지 않은 내면의 성취조차 이 경에서는 신통이나 마음 읽기보다 더 참된 기적으로 대접받습니다.

묵상

마음이 차츰 고요해지는 것을 스스로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고요함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 해도, 그것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 중 잠깐이라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혜와 봄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나니… 이것도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이라 하나니… ‘다시는 이러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꿰뚫어 아나니… 이것도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이라 하느니라. 께왓따여, 이 셋이 내가 몸소 깨달아 스스로 실현하여 알려 온 기적이니라.

ñāṇadassanāya cittaṁ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pe… idampi vuccati, kevaṭṭa, anusāsanīpāṭihāriyaṁ …pe…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pe… idampi vuccati, kevaṭṭa, anusāsanīpāṭihāriyaṁ. Imāni kho, kevaṭṭa, tīṇi pāṭihāriyāni may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itān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선정을 발판으로 지혜와 봄으로 마음을 돌려, 마침내 "다시는 이러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꿰뚫어 아는 데까지 이르는 대목입니다. 이 마지막 앎은 다른 경들에서 번뇌가 다한 이의 앎으로 설명되는 정형구이며, 여기서도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 대목을 끝으로 세존은 처음에 약속한 대로 세 가지 기적을 정리해 다시 선언하십니다 - 신통, 마음 읽기, 그리고 이 길고 긴 수행의 전 과정인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입니다. 셋 중 이것만이 뒤에서도 다시 부정되지 않고 살아남습니다.

묵상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아차린 순간이 살면서 있었나요? 크든 작든, 그런 앎이 찾아온 순간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그 앎이 찾아오기까지 무엇을 지나왔는지도 함께 헤아려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