께왓따여, 옛적에 이 수행자 승가 가운데 한 수행자에게 이런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느니라 -
‘이 네 가지 큰 요소, 곧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4. Bhūtanirodhesakabhikkhuvatthu Bhūtapubbaṁ, kevaṭṭa, imasmiññeva bhikkhusaṅghe aññatarassa bhikkhuno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kattha nu kh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가르침으로 이끄는 기적을 다 설명한 세존께서 화제를 바꾸어, 옛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어떤 수행자가 땅·물·불·바람이라는 네 가지 큰 요소가 "남김없이 그치는(aparisesā nirujjhanti)"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합니다. 이 물음은 뒤이어 그 수행자가 신들의 세계를 차례로 오르내리며 답을 찾아다니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 이야기는 앞서 다룬 "참된 기적"의 주제와 이어져, 아무리 높은 신이라도 답할 수 없는 것을 결국 누가 답해 주는지를 보여 주게 됩니다.
묵상
풀리지 않는 물음 하나를 붙들고 여기저기 물으러 다녀 본 적이 있나요? 그 답을 결국 어디서, 혹은 누구에게서 찾았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아직 풀리지 않은 물음이 지금 남아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러자 께왓따여, 그 수행자는 어떤 집중에 들었는데, 마음이 고요히 모이자 신들에게 이르는 길이 나타났느니라.
그는 네 대왕천의 신들에게 다가가 물었느니라 -
‘벗들이여,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네 대왕천의 신들이 답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우리도 알지 못하오. 다만 우리보다 뛰어나고 훌륭하신 사대천왕이 계시니, 그분들은 아실 것이오.’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tathārūpaṁ samādhiṁ samāpajji, yathāsamāhite citte devayāniyo maggo pāturahosi.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yena cātumahārājikā de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cātumahārājike deve etadavoca: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Evaṁ vutte, kevaṭṭa, cātumahārājikā devā taṁ bhikkhuṁ etadavocuṁ: ‘mayampi kho, bhikkhu, na jānāma: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Atthi kho, bhikkhu, cattāro mahārājāno amhehi abhikkantatarā ca paṇītatarā ca. Te kho etaṁ jāneyyuṁ: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수행자가 답을 찾아 신들의 세계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첫 장면입니다. 그는 삼매의 힘으로 신들에게 이르는 길을 얻어, 가장 낮은 하늘인 네 대왕천의 신들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들도 답을 모른 채, 자신들보다 "뛰어나고 훌륭한(abhikkantatarā ca paṇītatarā ca)" 이가 알 것이라며 더 위의 존재를 가리킵니다. 이 물음-모름-위로 미루기의 틀은 이 뒤로 하늘의 위계를 오를 때마다 그대로 되풀이되며, 그 되풀이 자체가 이 이야기의 요점이 됩니다.
묵상
누구에게 물어도 "나는 모른다, 저 사람은 알 것이다"는 대답만 돌아온 적이 있나요? 그럴 때 어디까지 물으러 다니고, 어디서 멈추게 되던가요? 그 물음을 아직 붙들고 있다면 지금은 어디쯤 와 있나요?
그 수행자는 사대천왕에게 다가가 물었느니라 -
‘벗들이여,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사대천왕이 답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우리도 알지 못하오. 다만 우리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서른셋 하늘의 신들이 있으니, 그들은 이를 알 것이오.’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yena cattāro mahārājān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cattāro mahārāje etadavoca: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Evaṁ vutte, kevaṭṭa, cattāro mahārājāno taṁ bhikkhuṁ etadavocuṁ: ‘mayampi kho, bhikkhu, na jānāma: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Atthi kho, bhikkhu, tāvatiṁsā nāma devā amhehi abhikkantatarā ca paṇītatarā ca. Te kho etaṁ jāneyyuṁ: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수행자가 네 대왕천의 신들에 이어, 이번에는 사대천왕 자신들을 찾아가는 대목입니다. 앞서 그 신하격인 신들이 몰랐던 것처럼 사대천왕도 알지 못하며, 자신들보다 뛰어난 서른셋 하늘의 신들을 가리킵니다. 물음과 대답의 문장은 앞 카드와 토씨까지 똑같이 되풀이되는데, 이는 이 경 자체가 이런 반복을 통해 위계를 하나씩 오르는 구조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읽힙니다. 이 되풀이는 다음 카드의 서른셋 하늘, 그다음 카드의 삭까에 이르기까지 같은 틀로 이어집니다.
묵상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같은 대답만 돌아온다면, 그것이 알려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계속 위로만 찾아 올라가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답을 찾는 것 사이에서 지금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그 수행자는 서른셋 하늘의 신들에게 다가가 물었느니라 -
‘벗들이여,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서른셋 하늘의 신들이 답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우리도 알지 못하오. 다만 우리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신들의 왕 삭까가 있으니, 그가 이를 알 것이오.’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yena tāvatiṁsā de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āvatiṁse deve etadavoca: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Evaṁ vutte, kevaṭṭa, tāvatiṁsā devā taṁ bhikkhuṁ etadavocuṁ: ‘mayampi kho, bhikkhu, na jānāma: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Atthi kho, bhikkhu, sakko nāma devānamindo amhehi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a. So kho etaṁ jāneyya: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다시 한 단계 위, 서른셋 하늘의 신들을 찾아가지만 대답은 똑같습니다. 이번에 가리키는 이는 "신들의 왕 삭까(sakko devānamindo)"로, 이 하늘 세계 전체를 다스린다고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같은 물음과 같은 모름이 세 번째로 되풀이되면서, 지위가 아무리 높아져도 답에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다음 카드에서는 마침내 그 삭까를 직접 찾아가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묵상
더 높은 자리, 더 대단한 이름을 가진 존재라면 답을 알 것이라는 기대가 이번에도 무너집니다. 그런 기대가 무너질 때, 다음에는 어디로 눈을 돌리게 되나요? 지금 그 답을 찾고 있다면 어디쯤에 있나요?
그 수행자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다가가 물었느니라 -
‘벗이여,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삭까가 답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나 또한 알지 못하오.
다만 나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야마천의 신들이 있으니…’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yena sakko devānamind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sakkaṁ devānamindaṁ etadavoca: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Evaṁ vutte, kevaṭṭa, sakko devānamindo taṁ bhikkhuṁ etadavoca: ‘ahampi kho, bhikkhu, na jānāmi: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신들의 왕 삭까에게 마침내 이르지만, 그조차 답을 모릅니다. 앞서 신들의 무리는 "우리는(mayampi)"이라는 말로 함께 모른다고 답했는데, 삭까는 홀로 "나는(ahampi)"이라는 말로 답합니다. 이는 삭까가 무리가 아니라 단독으로 존재하는 신들의 왕이기 때문이며, 이 미묘한 말투 차이를 원문 그대로 살렸습니다. 다음 카드에서는 삭까보다도 위에 있다는 야마천부터 시작해 여러 하늘이 한꺼번에 압축되어 이어집니다.
묵상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도 결국 모른다고 답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나에게 어떤 위안이나 깨달음을 주나요? 답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함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여, 야마천이라는 신들이 있으니…
수야마라는 천자가 있으니… 도솔천이라는 신들이 있으니…
산뚜싯따라는 천자가 있으니… 화락천이라는 신들이 있으니…
수님미따라는 천자가 있으니… 타화자재천이라는 신들이 있으니…
와사왓띠라는 천자가 우리보다 뛰어나고 훌륭하니, 그가 알 것이오.’
Atthi kho, bhikkhu, yāmā nāma devā …pe… suyāmo nāma devaputto … tusitā nāma devā … santussito nāma devaputto … nimmānaratī nāma devā … sunimmito nāma devaputto … paranimmitavasavattī nāma devā … vasavattī nāma devaputto amhehi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a. So kho etaṁ jāneyya: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야마천에서 타화자재천에 이르는 여러 하늘을 잇달아 오르는 대목입니다. 원문 자체가 이 구간을 "…pe…" 표시로 크게 줄여 놓았는데, 이는 앞서 나온 것과 같은 물음-모름-위로 미루기의 틀이 각 하늘마다 이름만 바뀌어 되풀이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카드도 원문이 이미 압축한 그대로, 하늘의 이름만 이어 옮겼습니다. 삭까가 야마천을 가리킨 뒤로 여섯 하늘을 더 거쳐 마침내 타화자재천의 와사왓띠 천자에 이르는 것으로, 신들의 위계가 얼마나 겹겹이 높은지를 보여 줍니다.
묵상
한 사람에게 물어 다음 사람을, 또 그다음 사람을 소개받으며 점점 더 멀리 가 본 적이 있나요?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끝이 있을 거라 믿게 되나요? 그 믿음이 흔들렸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요?
그 수행자는 와사왓띠 천자에게 다가가 물었느니라 -
‘벗이여,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와사왓띠 천자가 답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나 또한 알지 못하오. 다만 나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범천의 무리가 있으니, 그들은 알 것이오.’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yena vasavattī devaputt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vasavattiṁ devaputtaṁ etadavoca: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Evaṁ vutte, kevaṭṭa, vasavattī devaputto taṁ bhikkhuṁ etadavoca: ‘ahampi kho, bhikkhu, na jānāmi: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Atthi kho, bhikkhu, brahmakāyikā nāma devā amhehi abhikkantatarā ca paṇītatarā ca. Te kho etaṁ jāneyyuṁ: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타화자재천의 와사왓띠 천자를 실제로 찾아가는 장면으로, 앞 카드에서 줄였던 서술이 다시 온전한 문장으로 돌아옵니다. 이 천자는 앞서 삭까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ahampi)"이라는 홀로된 말투로 답하며, 자신보다 위에 있는 "범천의 무리(brahmakāyikā devā)"를 가리킵니다. 이 지점부터는 신들의 세계를 벗어나 범천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가 되며, 수행자의 여정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층위로 들어섭니다.
묵상
믿고 찾아간 곳에서마저 "나도 모른다"는 답을 들었을 때,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의 차이를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지금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도 함께 살펴보아도 괜찮아요.
그러자 그 수행자는 어떤 집중에 들었는데, 마음이 고요히 모이자 범천에 이르는 길이 나타났느니라.
그는 범천의 무리에게 다가가 물었느니라 -
‘벗들이여,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범천의 무리가 답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우리도 알지 못하오.’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tathārūpaṁ samādhiṁ samāpajji, yathāsamāhite citte brahmayāniyo maggo pāturahosi.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yena brahmakāyikā de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rahmakāyike deve etadavoca: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Evaṁ vutte, kevaṭṭa, brahmakāyikā devā taṁ bhikkhuṁ etadavocuṁ: ‘mayampi kho, bhikkhu, na jānāma: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수행자가 다시 삼매의 힘으로 이번에는 범천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얻어 올라가는 대목입니다. 신들의 하늘을 다 거쳤음에도 답을 얻지 못한 그는 이제 신들보다 한층 높다고 여겨지는 범천의 세계로 향합니다. 그러나 범천의 무리조차 "우리도 알지 못하오"라는 같은 대답을 되풀이하니, 하늘의 위계를 아무리 오른다 해도 답에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묵상
더 높은 곳, 더 대단한 사람에게 가면 답을 알 것이라 믿었던 기대가 무너진 적이 있나요? 그 순간 어디로 마음을 돌리게 되던가요? 지금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고 싶나요?
‘다만 범천, 대범천, 정복하는 이, 다스리는 이, 짓는 이, 만드는 이, 이미 있었고 앞으로 있을 것들의 아버지가 계시니, 그가 우리보다 뛰어나고 훌륭하시오. 그분은 아실 것이오.’
‘벗들이여, 그렇다면 그 대범천은 지금 어디 계시오?’
‘수행자여, 우리도 범천이 어디 계신지 알지 못하오. 다만 이런 조짐이 있으니 - 빛이 생겨나고 광채가 나타나면, 범천이 나타나리라는 것을.’
Atthi kho, bhikkhu, brahmā mahābrahmā abhibhū anabhibhūto aññadatthudaso vasavattī issaro kattā nimmātā seṭṭho sajitā vasī pitā bhūtabhabyānaṁ amhehi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a. So kho etaṁ jāneyya: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Kahaṁ panāvuso, etarahi so mahābrahmā’ti? ‘Mayampi kho, bhikkhu, na jānāma, yattha vā brahmā yena vā brahmā yahiṁ vā brahmā; api ca, bhikkhu, yathā nimittā dissanti, āloko sañjāyati, obhāso pātubhavati, brahmā pātubhavissati, brahmuno hetaṁ pubbanimittaṁ pātubhāvāya, yadidaṁ āloko sañjāyati, obhāso pātubhavat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범천의 무리가 자신들보다 위에 있는 대범천을 여러 존칭으로 소개하는 대목입니다. "정복하는 이", "다스리는 이", "짓는 이", "만드는 이", "이미 있었고 앞으로 있을 것들의 아버지"라는 이 호칭들은 당대에 창조주로 여겨지던 신을 가리키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그 대범천이 지금 어디 있는지 되묻자, 범천의 무리조차 정확한 위치는 모른 채 "빛과 광채가 나타나면 곧 나타나신다"는 조짐만을 말해 줍니다. 창조주로 떠받들어지는 이조차 아랫것들에게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 은근히 드러납니다.
묵상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고 여겨지는 존재라도, 정작 그 실체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크고 대단해 보이는 이름 뒤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해 본 적 있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범천이 나타났느니라.
수행자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느니라 -
‘벗이여,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대범천이 답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요, 정복하는 이요, 다스리는 이요, 짓는 이요, 만드는 이요, 이미 있었고 앞으로 있을 것들의 아버지로다.’
Atha kho so, kevaṭṭa, mahābrahmā nacirasseva pāturahosi.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yena so mahābrahm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ṁ mahābrahmānaṁ etadavoca: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Evaṁ vutte, kevaṭṭa, so mahābrahmā taṁ bhikkhuṁ etadavoca: ‘ahamasmi, bhikkhu, brahmā mahābrahmā abhibhū anabhibhūto aññadatthudaso vasavattī issaro kattā nimmātā seṭṭho sajitā vasī pitā bhūtabhabyānan’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마침내 대범천이 직접 나타나는 대목입니다. 수행자가 곧바로 본래의 물음을 던지자, 대범천은 그 물음에 답하는 대신 자신의 위대한 이름들을 늘어놓습니다. 이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확인시키는 말이며, 뒤이어 이 어긋남이 두 번 더 되풀이됩니다. 창조주로 여겨지는 존재조차 구체적인 물음 앞에서 이름과 위엄만 내세운다는 것이, 이 이야기가 은근히 겨누는 지점입니다.
묵상
구체적인 질문에 지위나 명성으로만 답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나요? 그럴 때 정말 알고 싶었던 것에는 다가갈 수 있었나요? 그런 자리에서 나는 다시 물었나요, 아니면 그냥 물러섰나요?
수행자는 두 번째로도 대범천에게 말하였느니라 -
‘벗이여, 저는 그대가 범천이요 대범천인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묻는 것은 이것입니다 -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범천은 두 번째로도 같은 말로 답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요… 이미 있었고 앞으로 있을 것들의 아버지로다.’
Dutiyampi kho so, kevaṭṭa, bhikkhu taṁ mahābrahmānaṁ etadavoca: ‘na khohaṁ taṁ, āvuso, evaṁ pucchāmi: “tvamasi brahmā mahābrahmā abhibhū anabhibhūto aññadatthudaso vasavattī issaro kattā nimmātā seṭṭho sajitā vasī pitā bhūtabhabyānan”ti. Evañca kho ahaṁ taṁ, āvuso, pucchāmi: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Dutiyampi kho so, kevaṭṭa, mahābrahmā taṁ bhikkhuṁ etadavoca: ‘ahamasmi, bhikkhu, brahmā mahābrahmā abhibhū anabhibhūto aññadatthudaso vasavattī issaro kattā nimmātā seṭṭho sajitā vasī pitā bhūtabhabyānan’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수행자가 자신의 물음이 지위 확인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히는 대목입니다. "저는 그대가 범천인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오해를 바로잡고, 본래의 물음을 다시 또렷이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대범천은 이번에도 똑같은 이름의 목록으로 답하니, 원문에서도 이 대답을 앞서와 같은 말로 되풀이해 적습니다. 같은 어긋남이 두 번째로 되풀이되면서, 이 답변 밖에 없다는 것이 대범천 자신의 한계임이 점점 분명해집니다.
묵상
오해를 바로잡아 다시 물었는데도 같은 대답만 돌아온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럴 때 한 번 더 시도해 보나요, 아니면 다른 길을 찾게 되나요? 지금 그런 상황이 있다면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수행자는 세 번째로도 대범천에게 말하였느니라 -
‘벗이여, 저는 그대가 범천이요 대범천인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묻는 것은 이것입니다 -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Tatiyampi kho so, kevaṭṭa, bhikkhu taṁ mahābrahmānaṁ etadavoca: ‘na khohaṁ taṁ, āvuso, evaṁ pucchāmi: “tvamasi brahmā mahābrahmā abhibhū anabhibhūto aññadatthudaso vasavattī issaro kattā nimmātā seṭṭho sajitā vasī pitā bhūtabhabyānan”ti. Evañca kho ahaṁ taṁ, āvuso, pucchāmi: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같은 물음을 세 번째로 되풀이하는 대목입니다. 이 셋이라는 반복은 이 경의 첫머리, 께왓따가 세 번 청했던 것과 짝을 이룹니다. 다만 이번에는 세 번째에도 대범천이 곧바로 답을 바꾸지 않고, 대신 뒤이은 대목에서 수행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 은밀히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세 번째 반복이 이번에는 대답의 전환이 아니라 장면의 전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다릅니다. 경 전체에 걸쳐 셋이라는 수가 되풀이해 등장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물러서지 않는 끈질김이 결국 다른 국면을 열어 준다는 점을 보여 주는 짜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로 같은 것을 되물어야 했던 적이 있나요? 그 끈질김이 결국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몇 번째 물음에서 비로소 다른 대답을 듣게 되었나요?
대범천은 그 수행자의 팔을 잡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이 범천의 무리는 나를 두고 ‘범천이 모르는 것은 없다’고 여기고 있소. 그래서 나는 그들 앞에서 답하지 못한 것이오.
수행자여, 실은 나 또한 이 네 가지 큰 요소가 어디서 그치는지 알지 못하오.
그대가 세존을 지나쳐 바깥에서 답을 찾으려 한 것이야말로 그대의 잘못이요 허물이오.
그대는 가서 바로 그 세존께 이 물음을 여쭈시오.’
Atha kho so, kevaṭṭa, mahābrahmā taṁ bhikkhuṁ bāhāyaṁ gahetvā ekamantaṁ apanetvā taṁ bhikkhuṁ etadavoca: ‘ime kho maṁ, bhikkhu, brahmakāyikā devā evaṁ jānanti, “natthi kiñci brahmuno aññātaṁ, natthi kiñci brahmuno adiṭṭhaṁ, natthi kiñci brahmuno aviditaṁ, natthi kiñci brahmuno asacchikatan”ti. Tasmāhaṁ tesaṁ sammukhā na byākāsiṁ. Ahampi kho, bhikkhu, na jānāmi yatth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Tasmātiha, bhikkhu, tuyhevetaṁ dukkaṭaṁ, tuyhevetaṁ aparaddhaṁ, yaṁ tvaṁ taṁ bhagavantaṁ atidhāvitvā bahiddhā pariyeṭṭhiṁ āpajjasi imassa pañhassa veyyākaraṇāya. Gaccha tvaṁ, bhikkhu, tameva bhagavantaṁ upasaṅkamitvā imaṁ pañhaṁ puccha, yathā ca te bhagavā byākaroti, tathā naṁ dhāreyyās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대범천이 부하 신들 앞에서는 지킬 수 없었던 체면을 벗고, 수행자를 따로 불러 진실을 털어놓는 대목입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것이 없다"고 떠받들어지고 있어 사람들 앞에서 모른다고 말할 수 없었을 뿐, 실제로는 이 물음의 답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애초에 세존을 두고 바깥에서 답을 찾아 헤맨 것 자체가 수행자의 잘못이었다고 지적하며, 세존께 직접 물으라고 돌려보냅니다. 신들의 위계를 다 오른 끝에 나온 결론이 "처음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라는 점이 이 이야기의 반전입니다.
묵상
누구도 대신 답해 줄 수 없는 물음을, 정작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멀리서만 찾아 헤맨 적이 있나요? 지금 나에게 그런 물음이 있다면, 어디로 돌아가 물어야 할까요? 체면 때문에 못 한 말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그러자 께왓따여, 그 수행자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는 것처럼 순식간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느니라.
그는 나에게 절하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씀드렸느니라 -
‘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칩니까?’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v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v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 brahmaloke antarahito mama purato pāturahosi.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m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kevaṭṭa, so bhikkhu maṁ etadavoca: ‘kattha nu kho, bhante,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긴 여정 끝에 수행자가 마침내 세존 앞으로 돌아오는 대목입니다. 지금까지 이 이야기는 "께왓따여"로 시작해 그 수행자를 삼인칭으로 서술해 왔는데, 이 대목에서 "내 앞에(mama purato)"라는 말로 처음 화자가 드러나, 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다름 아닌 세존 자신이었음이 분명해집니다. 힘센 사람이 팔을 펴고 굽히는 것처럼 순식간이라는 비유는 신들의 신통력조차 이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용구입니다. 수행자는 처음 품었던 물음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다시 여쭙습니다.
묵상
멀리 돌아 결국 처음 물었어야 할 사람에게 되돌아온 경험이 있나요? 그 되돌아옴이 헛걸음이었다고 생각되나요, 아니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되나요? 지금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면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