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묻자 께왓따여, 나는 그 수행자에게 말하였느니라 -
‘수행자여, 옛적에 바다를 오가는 상인들이 물가를 살피는 새를 데리고 배로 바다에 나갔느니라.
물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면 그들은 그 새를 놓아 준다.
그 새는 동서남북, 위로, 이곳저곳으로 날아가느니라.
어디서든 물가를 보면 그대로 날아가 버리고,
어디서도 물가를 보지 못하면 다시 그 배로 돌아오느니라.’
4.1. Tīradassisakuṇupamā Evaṁ vutte, ahaṁ, kevaṭṭa, taṁ bhikkhuṁ etadavocaṁ— bhūtapubbaṁ, bhikkhu, sāmuddikā vāṇijā tīradassiṁ sakuṇaṁ gahetvā nāvāya samuddaṁ ajjhogāhanti. Te atīradakkhiniyā nāvāya tīradassiṁ sakuṇaṁ muñcanti. So gacchateva puratthimaṁ disaṁ, gacchati dakkhiṇaṁ disaṁ, gacchati pacchimaṁ disaṁ, gacchati uttaraṁ disaṁ, gacchati uddhaṁ disaṁ, gacchati anudisaṁ. Sace so samantā tīraṁ passati, tathāgatakova hoti. Sace pana so samantā tīraṁ na passati, tameva nāvaṁ paccāgaccha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세존께서 답 대신 비유 하나를 드는 대목입니다. 옛적 뱃사람들이 육지가 보이지 않는 먼바다에서 물가를 살피는 새를 놓아 주면, 새는 동서남북과 위, 이곳저곳으로 날아 물가를 찾다가 있으면 그리로 가고 없으면 배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뱃사람들이 먼바다에 나서면서도 미리 돌아올 방법을 마련해 둔 것처럼, 이 비유는 답을 찾는 여정 자체에 이미 돌아올 곳이 있다는 점을 넌지시 보여 줍니다. 이 비유가 실제로 수행자의 여정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다음 카드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먼바다에서 길을 잃었을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어떤 안도감을 줄까요? 지금 나에게도 이곳저곳을 헤매다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그 자리가 사람일 수도, 익숙한 습관일 수도 있어요.
‘이와 같이 수행자여, 그대는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 물음의 답을 찾아다녔으나 얻지 못하고,
결국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느니라.’
Evameva kho tvaṁ, bhikkhu, yato yāva brahmalokā pariyesamāno imassa pañhassa veyyākaraṇaṁ nājjhagā, atha mamaññeva santike paccāgato.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비유를 실제 수행자의 이야기에 적용하는 대목입니다. 세존은 이 수행자가 신들의 세계를 아무리 멀리, 아무리 높이까지 날아 헤매어도 결국 답을 얻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 바로 앞서 든 새와 같다고 짚어 줍니다. 이 비유는 수행자를 나무라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 방향을 바꾸어 물음 자체를 다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는 뜻으로 이어집니다. 뒤이은 대목에서 세존은 수행자가 던진 물음의 형식 자체를 새로 바로잡아 주십니다.
묵상
이곳저곳을 다 찾아다녔지만 결국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야 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 헛걸음처럼 보이는 여정이 실은 무언가를 가르쳐 주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나요? 지금 그 가르침을 다시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여, 이 물음은 이렇게 물어서는 안 되나니 -
‘이 네 가지 큰 요소는 어디서 남김없이 그칩니까?’
수행자여, 이 물음은 이렇게 물어야 하느니라 -
Na kho eso, bhikkhu, pañho evaṁ pucchitabbo: ‘kattha nu kho, bhante,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ṁ—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Evañca kho eso, bhikkhu, pañho pucchitabbo: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세존께서 수행자가 던진 물음의 형식 자체를 바로잡는 대목입니다. 처음의 물음은 땅·물·불·바람이라는 네 요소가 "그치는 장소"를 찾는 것이었는데, 세존은 그런 물음의 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뒤이어 올바른 물음의 형태가 게송으로 제시되는데, 그 물음은 장소를 묻는 대신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이 전환이야말로 지금까지의 긴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진짜 답의 실마리입니다.
묵상
질문을 바꾸자 비로소 답이 보이기 시작한 경험이 있나요? 지금 붙들고 있는 물음이 있다면, 혹시 물음 자체를 다르게 던져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물음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용기일 수 있어요.
‘어디서 물과 땅과
불과 바람이 발붙이지 못하며,
어디서 길고 짧음과
작고 큼과 곱고 미움이,
어디서 이름과 형색이
남김없이 그치는가?’
‘Kattha āpo ca pathavī, tejo vāyo na gādhati; Kattha dīghañca rassañca, aṇuṁ thūlaṁ subhāsubhaṁ; Kattha nāmañca rūpañca, asesaṁ uparujjhat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새로 던져야 할 물음이 게송으로 제시됩니다. 앞서의 산문 물음이 "네 가지 큰 요소"라는 물질적 구성 요소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이 게송은 물음의 범위를 훨씬 넓혀 길고 짧음, 작고 큼, 곱고 미움 같은 상대적 성질들과 "이름과 형색(nāmañca rūpañca)", 곧 정신과 물질 전체로 확장합니다. 장소를 묻던 물음이 이제 무엇이 이 모든 구분과 대립을 넘어서는가를 묻는 물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다음 대목의 게송에서 주어집니다.
묵상
길고 짧음, 곱고 미움처럼 서로 다르다고 여겨 온 것들이 사실은 같은 자리에서 그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지금 나를 가르는 어떤 비교가 있다면, 잠시 내려놓아 보아도 좋아요. 비교를 내려놓는 순간 무엇이 남는지도 살펴보아도 괜찮아요.
여기에 이런 답이 있느니라 -
‘의식은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고
끝이 없으며 사방으로 빛나나니,
여기서 물과 땅과
불과 바람이 발붙이지 못하느니라.
Tatra veyyākaraṇaṁ bhavati: ‘Viññāṇaṁ anidassanaṁ, anantaṁ sabbatopabhaṁ; Ettha āpo ca pathavī, tejo vāyo na gādha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긴 여정의 끝에 나오는 답 자체이자, 이 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의식은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고(viññāṇaṁ anidassanaṁ) 끝이 없으며 사방으로 빛난다"는 표현은 통상적인 여섯 감각의 의식과는 다른 층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져 왔고, 이 구절 하나를 두고도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이 카드에서는 그 답이 물질의 네 요소인 물·땅·불·바람이 "발붙이지 못하는" 자리라고 말하는 데까지만 다룹니다. 처음 수행자가 물었던 네 가지 큰 요소가 여기서 다시 등장하지만, 이번에는 "어디에"가 아니라 "무엇에도 붙지 않는 것"으로 답이 주어집니다.
묵상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사방으로 빛난다"는 말은 언뜻 모순처럼 들리기도 해요. 지금 이 구절을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어떤 느낌이 남나요?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여기서 길고 짧음과
작고 큼과 곱고 미움이,
여기서 이름과 형색이
남김없이 그치나니,
의식이 그침으로써
바로 여기서 이 모든 것이 그치느니라.’
Ettha dīghañca rassañca, aṇuṁ thūlaṁ subhāsubhaṁ; Ettha nāmañca rūpañca, asesaṁ uparujjhati; Viññāṇassa nirodhena, etthetaṁ uparujjhat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게송의 마지막 부분으로, 길고 짧음·크고 작음·곱고 미움 같은 상대적인 성질들과 이름과 형색, 곧 정신과 물질 전체가 "남김없이 그친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 그침의 원인을 "의식이 그침으로써(viññāṇassa nirodhena)"라고 분명히 짚어 줍니다. 처음 수행자가 던진 물음, 곧 "네 요소가 그치는 장소"는 이렇게 장소가 아니라 의식의 그침이라는 사건으로 답해집니다. 이 게송을 끝으로 세존의 대답이 마무리되고, 다음 대목에서 이야기 전체가 닫힙니다.
묵상
무언가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기보다, 그것을 붙드는 마음 자체가 가라앉을 때 문제가 풀리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당장 답을 다 알지 못해도, 이 물음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어요.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장자의 아들 께왓따는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느니라.
께왓따경은 이렇게 끝나니, 열한 번째이니라.
Idamavoca bhagavā. Attamano kevaṭṭo gahapatiputt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디가 니까야 DN 11 께왓따경 (Kevaṭṭasutta) 배경
경 전체를 닫는 정형구입니다. 신통을 보여 달라는 청으로 시작해, 세 가지 기적의 정의를 거쳐, 신들의 세계를 오르내린 수행자의 이야기와 의식에 관한 게송에 이르기까지, 처음 께왓따가 품었던 물음과는 전혀 다른 곳에 이르러 경이 끝납니다. 께왓따가 "흡족하여 기뻐하였다"는 짧은 문장은 다른 많은 경들의 끝맺음과 같은 정형구이지만, 이 경에서는 특히 화려한 신통 대신 다른 것으로 만족하게 된 결말이라는 점에서 뜻이 깊습니다. "열한 번째"라는 표시는 이 경이 속한 품에서 께왓따경이 열한 번째 경임을 알리는 편집자의 기록입니다.
묵상
처음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얻고도 흡족했던 경험이 있나요? 무엇을 얻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의 기대와 그때의 흡족함을 나란히 놓아 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