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알고 나서

문답을 마친 두 존자가 비로소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고 감탄하는 자리

이 말을 듣고 사리뿟따 존자는 만따니의 아들 뿐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도반들은 존자를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벗이여, 제 이름은 뿐나이며, 도반들은 저를 만따니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Evaṁ vutte, āyasmā sāriputto āyasmantaṁ puṇṇaṁ mantāṇiputtaṁ etadavoca: “konāmo āyasmā, kathañca panāyasmantaṁ sabrahmacārī jānantī”ti? “Puṇṇoti kho me, āvuso, nāmaṁ; mantāṇiputtoti ca pana maṁ sabrahmacārī jāna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24 역마차 교대경 (Rathavinītasutta)

배경

역마차 비유로 시작된 긴 문답이 끝난 뒤, 두 존자가 비로소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그동안 사리뿟따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오직 문답 내용만으로 대화를 이어 왔다는 뜻이며, 이는 뒤이어 사리뿟따가 느낄 놀라움을 준비합니다. 경 전체에서 두 사람은 서로 "벗이여"라고만 부르며 대화해 왔고, 이 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름과 소속이 밝혀집니다.

묵상

이름도 모른 채 나눈 대화가 뜻밖에 깊고 인상 깊었던 적이 있나요? 나중에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나서 그 대화가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았나요? 어느 쪽이 더 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많이 배운 제자답게, 뿐나 존자께서는 깊고 깊은 물음마다 하나하나 답해 주셨습니다. 도반들에게 이익이며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뿐나 존자를 뵙고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이들에게는 말입니다. 도반들이 그를 옷 보따리에 싸서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라도 뵙고 모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익이며 잘된 일일 것이고, 저 역시 뵙고 모실 수 있으니 저에게도 이익이며 잘된 일입니다.”

“Acchariyaṁ, āvuso, abbhutaṁ, āvuso. Yathā taṁ sutavatā sāvakena sammadeva satthusāsanaṁ ājānantena, evameva āyasmatā puṇṇena mantāṇiputtena gambhīrā gambhīrapañhā anumassa anumassa byākatā. Lābhā sabrahmacārīnaṁ, suladdhalābhā sabrahmacārīnaṁ, ye āyasmantaṁ puṇṇaṁ mantāṇiputtaṁ labhanti dassanāya, labhanti payirūpāsanāya. Celaṇḍukena cepi sabrahmacārī āyasmantaṁ puṇṇaṁ mantāṇiputtaṁ muddhanā pariharantā labheyyuṁ dassanāya, labheyyuṁ payirūpāsanāya, tesampi lābhā tesampi suladdhaṁ, amhākampi lābhā amhākampi suladdhaṁ, ye mayaṁ āyasmantaṁ puṇṇaṁ mantāṇiputtaṁ labhāma dassanāya, labhāma payirūpāsan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24 역마차 교대경 (Rathavinītasutta)

배경

사리뿟따가 뿐나 존자임을 알고 나서 터뜨리는 감탄입니다. 이름을 모른 채 나눈 대화만으로도 스승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한 제자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의 "옷 보따리에 싸서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라도"라는 과장된 표현은 만나 뵙는 일 자체가 그만큼 귀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정형화된 찬탄 어구이며, 이 경 끝부분에서 뿐나 존자가 사리뿟따에게 거의 같은 말로 되갚는 것과 짝을 이룹니다. 원문이 하나로 이어지는 찬탄 문장이라 나누지 않았습니다.

묵상

누군가와 나눈 대화의 깊이만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차린 경험이 있나요? 그런 순간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나중에 그 짐작이 맞았는지도 함께 천천히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이 말을 듣고 만따니의 아들 뿐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도반들은 존자를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벗이여, 제 이름은 우빠띳사이며, 도반들은 저를 사리뿟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럴 수가, 스승과 견줄 만한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분이 사리뿟따 존자이신 줄 몰랐습니다. 제가 사리뿟따 존자이신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많은 말씀을 드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Evaṁ vutte, āyasmā puṇṇo mantāṇiputto āyasmantaṁ sāriputtaṁ etadavoca: “ko nāmo āyasmā, kathañca panāyasmantaṁ sabrahmacārī jānantī”ti? “Upatissoti kho me, āvuso, nāmaṁ; sāriputtoti ca pana maṁ sabrahmacārī jānantī”ti. “Satthukappena vata kira, bho, sāvakena saddhiṁ mantayamānā na jānimha: ‘āyasmā sāriputto’ti. Sace hi mayaṁ jāneyyāma ‘āyasmā sāriputto’ti, ettakampi no nappaṭibhāseyya.

맛지마 니까야 MN 24 역마차 교대경 (Rathavinītasutta)

배경

이번에는 뿐나 존자가 상대의 이름을 묻습니다. 상대가 사리뿟따임을 알게 되자 뿐나는 크게 놀라며, 스승에 견줄 만한 제자와 그런 줄도 모르고 그토록 자유롭게 대화했다는 데 당황합니다. 이 반전은 앞서 사리뿟따가 뿐나에 대해 느꼈던 놀라움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얼굴은 몰랐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리뿟따의 본래 이름 "우빠띳사"가 여기서 처음 밝혀지는 것도 눈에 띕니다.

묵상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나서 그동안의 대화가 새삼 다르게 느껴진 경험이 있나요? 몰랐기에 오히려 더 편하게 나눌 수 있었던 이야기도 있지 않았을까요? 알았다면 하지 못했을 말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많이 배운 제자답게, 사리뿟따 존자께서도 깊고 깊은 물음마다 하나하나 물어 오셨습니다. …” 이렇게 이 두 위대한 이는 서로의 훌륭한 말을 함께 기뻐하였다.

Acchariyaṁ, āvuso, abbhutaṁ, āvuso. Yathā taṁ sutavatā sāvakena sammadeva satthusāsanaṁ ājānantena, evameva āyasmatā sāriputtena gambhīrā gambhīrapañhā anumassa anumassa pucchitā. … Itiha te ubhopi mahānāgā aññamaññassa subhāsitaṁ samanumodiṁsūti.

맛지마 니까야 MN 24 역마차 교대경 (Rathavinītasutta)

배경

뿐나 존자가 앞서 사리뿟따에게 받은 것과 거의 같은 찬탄을 그대로 되돌려 줍니다. 원문은 "답하다"가 "묻다"로, 이름이 뿐나에서 사리뿟따로 바뀐 것 말고는 앞서 사리뿟따가 한 찬탄과 문장 구조가 동일하므로, 이 카드에서는 도반들이 뵙고 모실 수 있음이 이익이라는 정형구 부분(앞 카드에서 이미 온전히 옮긴 것과 같은 부분)을 줄임표로 갈음했습니다. 두 존자가 서로의 말을 기뻐했다는 마지막 서술로 대화가 마무리되고, 맨 끝의 "네 번째이니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 경이 품(장)의 네 번째 경임을 적어 둔 편집자의 표시입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받은 칭찬을 그대로 되돌려 준 경험이 있나요? 그렇게 서로 인정하고 축하하는 순간은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그런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도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