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 다람쥐 먹이터에 머무셨다. 그때 장자의 아들 소나가 세존께 다가갔다. … 한쪽에 앉은 소나에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소나여,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기 마련인 물질을 두고 ‘나는 남보다 낫다’, ‘나는 남과 같다’, ‘나는 남보다 못하다’고 여긴다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Atha kho soṇo gahapat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pe… ekamantaṁ nisinnaṁ kho soṇaṁ gahapatiputtaṁ bhagavā etadavoca: “Ye hi keci, soṇa,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niccena rūpena dukkhena vipariṇāmadhammena ‘seyy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sadis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hīn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kimaññatra yathābhūtassa adassanā?
상윳따 니까야 SN 22.49 소나경 (Soṇasutta)배경
경의 도입에서 장자의 아들 소나가 라자가하 대나무 숲의 세존을 찾아오고, 세존께서 그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다가간 뒤의 정형 절차는 …pe…로 줄어 있고, 다음 구절은 소나가 한쪽에 앉은 자리에서 설법이 시작됨을 밝힙니다. 첫 논지는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기 마련인 물질을 근거로 자신을 남보다 낫다·같다·못하다고 보는 세 비교를 모두 나란히 둡니다. yathābhūtassa adassanā는 그 셋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함”으로 묶는 수사적 질문입니다. 수행의 초점은 세 평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옳게 고르는 데 있지 않고, 변하는 물질을 자기 값의 잣대로 삼는 봄 자체를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묵상
물질을 두고 “낫다·같다·못하다” 가운데 한 판단이 떠오른 순간이 있었나요? 그 판단이 기대는 몸의 모습이나 상태가 지금도 변하고 있음을 함께 볼 수 있을까요? 비교가 잠시 멎을 때 몸의 긴장이나 시선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어느 판단도 떠오르지 않거나 이 질문을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