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 옷 한 벌은, 세존이시여,
제가 손수 잣고 손수 짜서
세존을 위해 마련한 것이니이다.
연민을 베푸시어 받아 주소서.”
이렇게 여쭙자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이르셨느니라.
“고따미여, 승가에 드리라.
그대가 승가에 보시하면
나도 예경받고 승가도 예경받을 것이니라.”
“idaṁ me, bhante, navaṁ dussayugaṁ bhagavantaṁ uddissa sāmaṁ kantaṁ sāmaṁ vāyitaṁ. Taṁ me, bhante, bhagavā paṭiggaṇhātu anukampaṁ upādāyā”ti. Evaṁ vutte, bhagavā mahāpajāpatiṁ gotamiṁ etadavoca: “saṅghe, gotami, dehi. Saṅghe te dinne ahañceva pūjito bhavissāmi saṅgho c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2 보시 분석경 (Dakkhiṇāvibhaṅgasutta) 배경
고따미의 청은 “세존을 위해” 손수 마련했다는 한 사람을 향한 정성과 “연민을 베푸시어 받아 주소서”라는 겸손한 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세존의 답은 그 정성을 물리치는 말씀이 아니라 받는 자리를 옮기라는 말씀입니다. “승가에 드리십시오”라는 권유 뒤에는 “그대가 승가에 보시하면 나도 예경받고 승가도 예경받을 것입니다”라는 이유가 따릅니다. 개인을 향한 보시와 승가를 향한 보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게 자라는가 하는 이 경 전체의 물음이 여기서 처음 모습을 드러냅니다.
묵상
누군가 나만을 위해 준비한 것을 다른 곳으로 돌려 달라고 한다면, 그 말을 거절로 느낄 것 같나요, 다른 뜻으로 느낄 것 같나요? 받는 이가 자리를 옮기자고 할 때, 정성 자체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두 번째로도, 세 번째로도
같은 말로 세존께 청하였으나
세존께서는 그때마다 같은 말씀으로 답하셨느니라.
“고따미여, 승가에 드리라.
그대가 승가에 보시하면
나도 예경받고 승가도 예경받을 것이니라.”
Dutiyampi kho mahāpajāpati gotamī bhagavantaṁ etadavoca: “idaṁ me, bhante, navaṁ dussayugaṁ bhagavantaṁ uddissa sāmaṁ kantaṁ sāmaṁ vāyitaṁ. Taṁ me, bhante, bhagavā paṭiggaṇhātu anukampaṁ upādāyā”ti. Dutiyampi kho bhagavā mahāpajāpatiṁ gotamiṁ etadavoca: “saṅghe, gotami, dehi. Saṅghe te dinne ahañceva pūjito bhavissāmi saṅgho cā”ti. Tatiyampi kho mahāpajāpati gotamī bhagavantaṁ etadavoca: “idaṁ me, bhante, navaṁ dussayugaṁ bhagavantaṁ uddissa sāmaṁ kantaṁ sāmaṁ vāyitaṁ. Taṁ me, bhante, bhagavā paṭiggaṇhātu anukampaṁ upādāyā”ti. Tatiyampi kho bhagavā mahāpajāpatiṁ gotamiṁ etadavoca: “saṅghe, gotami, dehi. Saṅghe te dinne ahañceva pūjito bhavissāmi saṅgho c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2 보시 분석경 (Dakkhiṇāvibhaṅgasutta) 배경
경의 원문은 같은 청과 같은 답을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두 번 더 되풀이합니다. 이 되풀이는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고따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음과 세존의 뜻도 흔들리지 않았음을 함께 보여 주는 정형구입니다. 세 번을 거듭 청하고 세 번을 거듭 같은 답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뒤에 이어질 아난다의 개입이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세 번 확인된 뜻을 향한 것임을 알려 줍니다.
묵상
같은 청을 세 번 되풀이했다는 대목을 읽을 때, 지루하게 느껴지나요, 아니면 그만큼 진심이 무겁게 느껴지나요? 무언가를 세 번 거듭 청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때 마음은 어떠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