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세존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선서이신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이르셨느니라.
“계행 있는 이가 계행 나쁜 이들에게
떳떳하게 얻은 것을 맑은 마음으로 베풀며
업의 결실이 넉넉함을 굳게 믿는다면,
그 보시는 주는 이로 인해 맑아지느니라.
계행 나쁜 이가 계행 있는 이들에게
떳떳하지 않게 얻은 것을 흐린 마음으로 베풀며
업의 결실이 넉넉함을 믿지 않는다면,
그 보시는 받는 이로 인해 맑아지느니라.
Idamavoca bhagavā. Idaṁ vatvāna sugato athāparaṁ etadavoca satthā: “Yo sīlavā dussīlesu dadāti dānaṁ, Dhammena laddhaṁ supasannacitto; Abhisaddahaṁ kammaphalaṁ uḷāraṁ, Sā dakkhiṇā dāyakato visujjhati. Yo dussīlo sīlavantesu dadāti dānaṁ, Adhammena laddhaṁ appasannacitto; Anabhisaddahaṁ kammaphalaṁ uḷāraṁ, Sā dakkhiṇā paṭiggāhakato visujjhati.
맛지마 니까야 MN 142 보시 분석경 (Dakkhiṇāvibhaṅgasutta) 배경
산문으로 다 밝히신 뒤, 세존께서는 같은 내용을 게송으로 다시 노래하십니다. 앞서 “주는 이로 인해 맑아짐”과 “받는 이로 인해 맑아짐”을 설명할 때는 계행만 말씀하셨지만, 게송에서는 떳떳하게 얻었는지와 맑은 마음인지, 업의 결실을 믿는지까지 함께 들어 그 안의 결을 더 촘촘히 보여 주십니다. 계행 있는 이가 계행 나쁜 이에게 베풀 때는 주는 쪽의 이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고, 계행 나쁜 이가 계행 있는 이에게 베풀 때는 그 세 가지가 반대로 흐려져 있다는 대구를 이룹니다.
묵상
무언가를 베풀 때 그 결과를 믿는 마음이 함께 있었는지 돌아본 적이 있나요? 믿음 없이 건넨 것과 믿음을 담아 건넨 것은, 받는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다르게 남지 않을까요?
“계행 나쁜 이가 계행 나쁜 이들에게
떳떳하지 않게 얻은 것을 흐린 마음으로 베풀며
업의 결실이 넉넉함을 믿지 않는다면,
나는 그 보시가 크게 결실 맺는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계행 있는 이가 계행 있는 이들에게
떳떳하게 얻은 것을 맑은 마음으로 베풀며
업의 결실이 넉넉함을 굳게 믿는다면,
나는 그 보시가 크게 결실 맺는다고 말하느니라.
Yo dussīlo dussīlesu dadāti dānaṁ, Adhammena laddhaṁ appasannacitto; Anabhisaddahaṁ kammaphalaṁ uḷāraṁ, Na taṁ dānaṁ vipulapphalanti brūmi. Yo sīlavā sīlavantesu dadāti dānaṁ, Dhammena laddhaṁ supasannacitto; Abhisaddahaṁ kammaphalaṁ uḷāraṁ, Taṁ ve dānaṁ vipulapphalanti brūmi.
맛지마 니까야 MN 142 보시 분석경 (Dakkhiṇāvibhaṅgasutta) 배경
앞 편이 주는 이 또는 받는 이 한쪽만 맑은 두 경우를 노래했다면, 이 편은 둘 다 흐린 경우와 둘 다 맑은 경우를 나란히 노래합니다. 둘 다 계행이 나쁘고 떳떳하지 않게 얻었으며 믿음도 없는 보시는 “크게 결실 맺는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부정으로, 둘 다 계행이 있고 떳떳하게 얻었으며 믿음도 굳은 보시는 “크게 결실 맺는다고 말한다”는 긍정으로 맺습니다. 앞서 산문에서 “둘 다 맑지 않음”과 “둘 다 맑음”이라 부르던 두 경우가 여기서 결실의 크기라는 말로 다시 확인됩니다.
묵상
결실이 크다, 작다는 말을 눈에 보이는 결과로만 헤아려 왔나요? 떳떳하게 얻었는지, 맑은 마음인지, 믿음이 있는지, 이 세 가지 가운데 지금 내게 가장 낯선 물음은 무엇인가요? 천천히 짚어 보세요.
“탐욕을 여읜 이가 탐욕을 여읜 이들에게
떳떳하게 얻은 것을 맑은 마음으로 베풀며
업의 결실이 넉넉함을 굳게 믿는다면,
그 보시야말로 재물로 하는 보시 가운데 으뜸이라고 나는 말하노라.”
Yo vītarāgo vītarāgesu dadāti dānaṁ, Dhammena laddhaṁ supasannacitto; Abhisaddahaṁ kammaphalaṁ uḷāraṁ, Taṁ ve dānaṁ āmisadānānamaggan”ti.
맛지마 니까야 MN 142 보시 분석경 (Dakkhiṇāvibhaṅgasutta) 배경
게송의 마지막 짝은 계행이나 떳떳하게 얻음을 넘어, 탐욕을 이미 여읜 이가 탐욕을 여읜 이에게 베푸는 가장 높은 경우를 노래합니다. 이를 두고 세존께서는 “재물로 하는 보시 가운데 으뜸”이라 못박으십니다. 이 편의 마지막 문장은 게송이 아니라 경을 전한 이들이 덧붙인 매듭으로, 이 경이 맛지마 니까야 가운데 열두째 경임을 밝힙니다. 경 자체의 가르침은 앞의 게송에서 이미 끝났고, 이 문장은 전승의 매듭임을 밝혀 둡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완전히 내려놓은 이가 똑같이 내려놓은 이에게 건네는 마음을 그려 볼 수 있나요? 그런 자리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지금의 작은 나눔이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