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의 자리 - 사리뿟따를 청하다

병들어 위독한 아나타삔디까가 사리뿟따를 청하고,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계셨느니라. 그때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병들어 괴로워하며 위독한 상태였느니라. 장자는 어떤 사람을 불러 말하였느니라 -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ena kho pana samayena anāthapiṇḍiko gahapati ābādhiko hoti dukkhito bāḷhagilāno. Atha kho anāthapiṇḍiko gahapati aññataraṁ purisaṁ āmantes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경의 첫 장면입니다. 이 경의 무대인 제따 숲은 다름 아닌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세존께 바친 동산인데, 바로 그 아나타삔디까가 병들어 위독해진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병들어 괴로워하며 위독한(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이라는 표현은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키는 정형구로, 이 경 전체가 임종을 앞둔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합니다. 아나타삔디까는 이 상황에서 사람을 불러 심부름을 보내는데, 그 내용은 다음 카드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가장 힘든 순간에 오히려 누군가를 부르고 싶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면 누구였나요? 지금 이 장면을 읽으며 드는 마음이 있다면 무엇인지 잠시 머물러 보아도 좋아요.

‘여보게, 그대는 세존께 가서 내 말로 이렇게 말씀드리게 -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병들어 위독한 채로, 세존의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하고.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께도 가서 같은 말로 절을 전하고, ‘부디 존자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아나타삔디까의 집에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게.’

“ehi tvaṁ, ambho puris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Yena cāyasmā sāriputto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āyasmato sāriputtassa pāde sirasā vandāhi: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āyasmato sāriputtassa pāde sirasā vandatī’ti. Evañca vadehi: ‘sādhu kira, bhante, āyasmā sāriputto yena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atu anukampaṁ upād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아나타삔디까가 심부름꾼에게 전할 말을 구체적으로 일러 주는 대목입니다. 그는 세존과 사리뿟따 두 분 모두에게 절을 전하게 하면서, 특히 사리뿟따에게는 "가엾이 여기시어(anukampaṁ upādāya)" 직접 집으로 와 달라고 청합니다. 재가자가 몸소 승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존자를 자기 집으로 청하는 것은, 그의 병이 이미 움직이기 어려운 정도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요청이 뒤이어 사리뿟따가 아난다와 함께 병문안을 가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아나타삔디까처럼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알리고 도움을 청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그런 부탁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세존께 가서 절하고 이렇게 말씀드렸느니라 - ‘세존이시여,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병들어 위독한 채로 세존의 발에 절합니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께도 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느니라 - ‘존자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그 집에 와 주시기를 청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침묵으로 이를 승낙하였느니라.

“Evaṁ, bhante”ti kho so puriso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ssa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so puriso bhagavantaṁ etadavoca: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Yena cāyasmā sāriputt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sāriput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so puriso āyasmantaṁ sāriputtaṁ etadavoca: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āyasmato sāriputtassa pāde sirasā vandati; evañca vadeti: ‘sādhu kira, bhante, āyasmā sāriputto yena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atu anukampaṁ upādāyā’”ti. Adhivāsesi kho āyasmā sāriputto tuṇhībhāvena.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심부름꾼이 세존과 사리뿟따 두 분께 차례로 말을 전하는 대목입니다. 사리뿟따는 말없이 침묵으로 승낙하는데, "침묵으로 승낙한다(tuṇhībhāvena adhivāsesi)"는 이 표현은 경전에서 요청을 정중히 받아들일 때 흔히 쓰이는 방식입니다. 굳이 대답의 말을 앞세우지 않는 이 침묵은, 뒤이어 실제로 병문안을 가는 행동으로 응답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합니다. 세존께 전한 말과 사리뿟따께 전한 말이 짝을 이루면서도, 실제로 찾아가는 이는 사리뿟따라는 것이 이 대목에서 정해집니다.

묵상

말보다 행동으로 대답하는 것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누군가 침묵으로 곁에 있어 주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어떤가요? 그 침묵이 무엇을 말해 주었는지 천천히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사리뿟따 존자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집으로 갔느니라. 그는 마련된 자리에 앉아 이렇게 물었느니라 - ‘장자여, 견딜 만합니까? 지낼 만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나아지고 있습니까, 더해지지는 않습니까? 나아지는 기미가 뚜렷합니까, 더해지는 기미는 아닙니까?’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āyasmatā ānandena pacchāsamaṇena yena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āyasmā sāriputto anāthapiṇḍikaṁ gahapatiṁ etadavoca: “kacci te, gahapati, khamanīyaṁ, kacci yāpanīyaṁ? Kacci te dukkhā vedanā paṭikkamanti, no abhikkamanti; paṭ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abhikkamo”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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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가 아난다와 함께 실제로 병문안을 가는 대목입니다. 그의 첫 물음은 가르침이 아니라 몸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묻는 것으로, "견딜 만한지, 지낼 만한지, 나아지는지 더해지는지"를 차례로 짚어 묻습니다. 이는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실제 병자를 대할 때 쓰이는 정형구로, 다른 경들에서도 병문안 장면에 되풀이해 나옵니다. 가르침을 펴기 전에 먼저 상대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묻고 듣는 이 순서가, 이어질 대화 전체의 태도를 미리 보여 줍니다.

묵상

아픈 사람을 찾아갔을 때 무엇부터 묻고 싶었나요? 사리뿟따처럼 먼저 몸 상태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과, 곧바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안부를 물어보아도 좋아요.

‘사리뿟따 존자시여,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도 않습니다. 저의 괴로운 느낌은 극심하게 더해지고 있으며 나아지지 않습니다. 마치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창끝으로 정수리를 찌르는 것처럼, 저의 정수리를 세찬 바람이 몹시 뒤흔들고 있습니다.’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 Seyyathāpi, bhante sāriputta, balavā puriso tiṇhena sikharena muddhani abhimattheyya; evameva kho me, bhante sāriputta, adhimattā vātā muddhani ūhanan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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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타삔디까가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그는 앞서 사리뿟따가 물은 대로 "견딜 만한지, 나아지는지"를 하나하나 되짚어 답하면서, 상태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비유는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창으로 정수리를 찌르는 것 같다"는 표현으로, 몸의 통증을 에두르지 않고 생생하게 전합니다. 이 경은 뒤에 죽음을 앞둔 이에게 놓아야 할 것들을 말하지만, 그 전에 먼저 그가 겪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묵상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해 본 적이 있나요?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고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힘이 될 때가 있어요. 지금 숨기고 있는 아픔이 있다면, 안전한 사람에게 그대로 말해 보아도 괜찮아요.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도 않으며, 괴로움은 나아지지 않고 더해지기만 한다고 다시 말씀드리며 - ‘마치 힘센 사람이 질긴 가죽끈으로 머리를 단단히 조이는 것처럼, 저의 머리에는 극심한 통증이 있습니다.’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 Seyyathāpi, bhante sāriputta, balavā puriso daḷhena varattakhaṇḍena sīse sīsaveṭhaṁ dadeyya; evameva kho me, bhante sāriputta, adhimattā sīse sīsavedan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고통을 호소하는 같은 틀의 말이 되풀이되며 둘째 비유로 이어집니다. 원문은 "견딜 만하지 않고..."라는 첫 문장을 매 비유 앞에 그대로 되풀이하는데, 여기서는 그 되풀이를 요약하고 새 비유에 집중했습니다(빠알리 원문의 이 반복 자체는 줄이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가죽끈으로 머리를 조이는 비유는 앞의 창끝 비유와는 다른 결의 통증, 곧 죄어드는 듯한 두통을 전합니다. 같은 틀이 되풀이되는 형식 자체가 고통이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야 할 만큼 힘든 상태를 겪어 본 적이 있나요? 그 되풀이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나요? 지금 이 대목을 읽는 것이 힘들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어 읽어도 괜찮아요.

다시 같은 말로 괴로움을 말씀드리며 - ‘마치 능숙한 백정이나 그 제자가 날카로운 칼로 소의 배를 가르듯, 저의 배를 세찬 바람이 도려내고 있습니다.’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 Seyyathāpi, bhante sāriputta,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tiṇhena govikantanena kucchiṁ parikanteyya; evameva kho me, bhante sāriputta, adhimattā vātā kucchiṁ parikan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셋째 비유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능숙한 백정이 소를 잡을 때 쓰는 칼로 배를 가르는 이 비유는 넷 중 가장 참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경은 이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전합니다. 이는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임종을 앞둔 이가 실제로 겪는 통증을 축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뒤이어 사리뿟따가 건네는 가르침은 이런 고통을 부정하거나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은 채로 이어집니다.

묵상

이런 비유를 읽는 것 자체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몸의 고통이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어떤 마음이 드나요? 힘들면 이 대목을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아요.

다시 같은 말로 괴로움을 말씀드리며 - ‘마치 힘센 두 사람이 약한 사람의 두 팔을 붙잡아 숯불 구덩이 위에서 그슬리고 태우는 것처럼, 저의 몸에는 극심한 열기가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도 않으며, 괴로움은 나아지지 않고 더해지기만 합니다.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 Seyyathāpi, bhante sāriputta, dve balavanto purisā dubbalataraṁ purisaṁ nānābāhāsu gahetvā aṅgārakāsuyā santāpeyyuṁ, samparitāpeyyuṁ; evameva kho me, bhante sāriputta, adhimatto kāyasmiṁ ḍāho.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넷째이자 마지막 비유입니다. 힘센 두 사람이 약한 사람을 붙잡아 숯불 구덩이 위에서 태우는 이 비유는 몸 전체에 퍼진 열감을 전하며, 앞의 세 비유(정수리, 머리, 배)에 이어 온몸으로 고통이 번졌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에는 처음 대답했던 말이 그대로 다시 되풀이되며 이 긴 고통의 호소를 닫습니다. 네 비유를 다 듣고 나서야 사리뿟따는 비로소 가르침을 시작하는데, 이는 고통을 충분히 듣는 것이 가르침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일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의 고통을 끝까지 다 들어 준 다음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 이 네 가지 비유를 다 읽고 난 마음이 어떤지 잠시 느껴 보아도 좋아요. 힘들었다면, 그 힘듦 그대로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