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143

인용된 가르침 32구절

이 경을 4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임종의 자리 - 사리뿟따를 청하다 8구절

병들어 위독한 아나타삔디까가 사리뿟따를 청하고,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계셨느니라. 그때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병들어 괴로워하며 위독한 상태였느니라. 장자는 어떤 사람을 불러 말하였느니라 -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ena kho pana samayena anāthapiṇḍiko gahapati ābādhiko hoti dukkhito bāḷhagilāno. Atha kho anāthapiṇḍiko gahapati aññataraṁ purisaṁ āmantes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경의 첫 장면입니다. 이 경의 무대인 제따 숲은 다름 아닌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세존께 바친 동산인데, 바로 그 아나타삔디까가 병들어 위독해진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병들어 괴로워하며 위독한(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이라는 표현은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키는 정형구로, 이 경 전체가 임종을 앞둔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합니다. 아나타삔디까는 이 상황에서 사람을 불러 심부름을 보내는데, 그 내용은 다음 카드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가장 힘든 순간에 오히려 누군가를 부르고 싶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면 누구였나요? 지금 이 장면을 읽으며 드는 마음이 있다면 무엇인지 잠시 머물러 보아도 좋아요.

‘여보게, 그대는 세존께 가서 내 말로 이렇게 말씀드리게 -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병들어 위독한 채로, 세존의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하고.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께도 가서 같은 말로 절을 전하고, ‘부디 존자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아나타삔디까의 집에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게.’

“ehi tvaṁ, ambho puris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Yena cāyasmā sāriputto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āyasmato sāriputtassa pāde sirasā vandāhi: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āyasmato sāriputtassa pāde sirasā vandatī’ti. Evañca vadehi: ‘sādhu kira, bhante, āyasmā sāriputto yena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atu anukampaṁ upād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아나타삔디까가 심부름꾼에게 전할 말을 구체적으로 일러 주는 대목입니다. 그는 세존과 사리뿟따 두 분 모두에게 절을 전하게 하면서, 특히 사리뿟따에게는 "가엾이 여기시어(anukampaṁ upādāya)" 직접 집으로 와 달라고 청합니다. 재가자가 몸소 승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존자를 자기 집으로 청하는 것은, 그의 병이 이미 움직이기 어려운 정도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요청이 뒤이어 사리뿟따가 아난다와 함께 병문안을 가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아나타삔디까처럼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알리고 도움을 청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그런 부탁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세존께 가서 절하고 이렇게 말씀드렸느니라 - ‘세존이시여,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병들어 위독한 채로 세존의 발에 절합니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께도 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느니라 - ‘존자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그 집에 와 주시기를 청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침묵으로 이를 승낙하였느니라.

“Evaṁ, bhante”ti kho so puriso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ssa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so puriso bhagavantaṁ etadavoca: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Yena cāyasmā sāriputt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sāriput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so puriso āyasmantaṁ sāriputtaṁ etadavoca: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āyasmato sāriputtassa pāde sirasā vandati; evañca vadeti: ‘sādhu kira, bhante, āyasmā sāriputto yena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atu anukampaṁ upādāyā’”ti. Adhivāsesi kho āyasmā sāriputto tuṇhībhāv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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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심부름꾼이 세존과 사리뿟따 두 분께 차례로 말을 전하는 대목입니다. 사리뿟따는 말없이 침묵으로 승낙하는데, "침묵으로 승낙한다(tuṇhībhāvena adhivāsesi)"는 이 표현은 경전에서 요청을 정중히 받아들일 때 흔히 쓰이는 방식입니다. 굳이 대답의 말을 앞세우지 않는 이 침묵은, 뒤이어 실제로 병문안을 가는 행동으로 응답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합니다. 세존께 전한 말과 사리뿟따께 전한 말이 짝을 이루면서도, 실제로 찾아가는 이는 사리뿟따라는 것이 이 대목에서 정해집니다.

묵상

말보다 행동으로 대답하는 것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누군가 침묵으로 곁에 있어 주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어떤가요? 그 침묵이 무엇을 말해 주었는지 천천히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사리뿟따 존자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집으로 갔느니라. 그는 마련된 자리에 앉아 이렇게 물었느니라 - ‘장자여, 견딜 만합니까? 지낼 만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나아지고 있습니까, 더해지지는 않습니까? 나아지는 기미가 뚜렷합니까, 더해지는 기미는 아닙니까?’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āyasmatā ānandena pacchāsamaṇena yena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āyasmā sāriputto anāthapiṇḍikaṁ gahapatiṁ etadavoca: “kacci te, gahapati, khamanīyaṁ, kacci yāpanīyaṁ? Kacci te dukkhā vedanā paṭikkamanti, no abhikkamanti; paṭ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abhikkam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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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리뿟따가 아난다와 함께 실제로 병문안을 가는 대목입니다. 그의 첫 물음은 가르침이 아니라 몸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묻는 것으로, "견딜 만한지, 지낼 만한지, 나아지는지 더해지는지"를 차례로 짚어 묻습니다. 이는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실제 병자를 대할 때 쓰이는 정형구로, 다른 경들에서도 병문안 장면에 되풀이해 나옵니다. 가르침을 펴기 전에 먼저 상대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묻고 듣는 이 순서가, 이어질 대화 전체의 태도를 미리 보여 줍니다.

묵상

아픈 사람을 찾아갔을 때 무엇부터 묻고 싶었나요? 사리뿟따처럼 먼저 몸 상태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과, 곧바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안부를 물어보아도 좋아요.

‘사리뿟따 존자시여,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도 않습니다. 저의 괴로운 느낌은 극심하게 더해지고 있으며 나아지지 않습니다. 마치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창끝으로 정수리를 찌르는 것처럼, 저의 정수리를 세찬 바람이 몹시 뒤흔들고 있습니다.’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 Seyyathāpi, bhante sāriputta, balavā puriso tiṇhena sikharena muddhani abhimattheyya; evameva kho me, bhante sāriputta, adhimattā vātā muddhani ūhanan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아나타삔디까가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그는 앞서 사리뿟따가 물은 대로 "견딜 만한지, 나아지는지"를 하나하나 되짚어 답하면서, 상태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비유는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창으로 정수리를 찌르는 것 같다"는 표현으로, 몸의 통증을 에두르지 않고 생생하게 전합니다. 이 경은 뒤에 죽음을 앞둔 이에게 놓아야 할 것들을 말하지만, 그 전에 먼저 그가 겪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묵상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해 본 적이 있나요?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고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힘이 될 때가 있어요. 지금 숨기고 있는 아픔이 있다면, 안전한 사람에게 그대로 말해 보아도 괜찮아요.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도 않으며, 괴로움은 나아지지 않고 더해지기만 한다고 다시 말씀드리며 - ‘마치 힘센 사람이 질긴 가죽끈으로 머리를 단단히 조이는 것처럼, 저의 머리에는 극심한 통증이 있습니다.’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 Seyyathāpi, bhante sāriputta, balavā puriso daḷhena varattakhaṇḍena sīse sīsaveṭhaṁ dadeyya; evameva kho me, bhante sāriputta, adhimattā sīse sīsavedan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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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고통을 호소하는 같은 틀의 말이 되풀이되며 둘째 비유로 이어집니다. 원문은 "견딜 만하지 않고..."라는 첫 문장을 매 비유 앞에 그대로 되풀이하는데, 여기서는 그 되풀이를 요약하고 새 비유에 집중했습니다(빠알리 원문의 이 반복 자체는 줄이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가죽끈으로 머리를 조이는 비유는 앞의 창끝 비유와는 다른 결의 통증, 곧 죄어드는 듯한 두통을 전합니다. 같은 틀이 되풀이되는 형식 자체가 고통이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야 할 만큼 힘든 상태를 겪어 본 적이 있나요? 그 되풀이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나요? 지금 이 대목을 읽는 것이 힘들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어 읽어도 괜찮아요.

다시 같은 말로 괴로움을 말씀드리며 - ‘마치 능숙한 백정이나 그 제자가 날카로운 칼로 소의 배를 가르듯, 저의 배를 세찬 바람이 도려내고 있습니다.’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 Seyyathāpi, bhante sāriputta,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tiṇhena govikantanena kucchiṁ parikanteyya; evameva kho me, bhante sāriputta, adhimattā vātā kucchiṁ parikan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셋째 비유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능숙한 백정이 소를 잡을 때 쓰는 칼로 배를 가르는 이 비유는 넷 중 가장 참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경은 이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전합니다. 이는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임종을 앞둔 이가 실제로 겪는 통증을 축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뒤이어 사리뿟따가 건네는 가르침은 이런 고통을 부정하거나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은 채로 이어집니다.

묵상

이런 비유를 읽는 것 자체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몸의 고통이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어떤 마음이 드나요? 힘들면 이 대목을 잠시 건너뛰고 넘어가도 괜찮아요.

다시 같은 말로 괴로움을 말씀드리며 - ‘마치 힘센 두 사람이 약한 사람의 두 팔을 붙잡아 숯불 구덩이 위에서 그슬리고 태우는 것처럼, 저의 몸에는 극심한 열기가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도 않으며, 괴로움은 나아지지 않고 더해지기만 합니다.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 Seyyathāpi, bhante sāriputta, dve balavanto purisā dubbalataraṁ purisaṁ nānābāhāsu gahetvā aṅgārakāsuyā santāpeyyuṁ, samparitāpeyyuṁ; evameva kho me, bhante sāriputta, adhimatto kāyasmiṁ ḍāho. Na me, bhante sāriputta, khamanīyaṁ na yāpanīyaṁ.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ṁ paññāyati, no paṭikkam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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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이자 마지막 비유입니다. 힘센 두 사람이 약한 사람을 붙잡아 숯불 구덩이 위에서 태우는 이 비유는 몸 전체에 퍼진 열감을 전하며, 앞의 세 비유(정수리, 머리, 배)에 이어 온몸으로 고통이 번졌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에는 처음 대답했던 말이 그대로 다시 되풀이되며 이 긴 고통의 호소를 닫습니다. 네 비유를 다 듣고 나서야 사리뿟따는 비로소 가르침을 시작하는데, 이는 고통을 충분히 듣는 것이 가르침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일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의 고통을 끝까지 다 들어 준 다음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 이 네 가지 비유를 다 읽고 난 마음이 어떤지 잠시 느껴 보아도 좋아요. 힘들었다면, 그 힘듦 그대로도 괜찮습니다.

2 무엇에도 붙들리지 말라 - 사리뿟따의 가르침 12구절

눈에서 저 세상에 이르기까지, 경험의 모든 영역에 붙들리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눈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눈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귀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귀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cakkhuṁ upādiyissāmi, na ca me cakkhu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sotaṁ upādiyissāmi, na ca me sot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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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가 마침내 가르침을 시작하는 대목이자, 이 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형구가 처음 나오는 자리입니다. "붙들리지 않으리라(na upādiyissāmi)"와 "그에 의지한 의식도 없으리라(na tan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i)"라는 두 문장이 짝을 이루어, 대상을 붙잡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대상에 기대어 서는 의식조차 두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정형구는 눈에서 시작해 뒤로 갈수록 귀·코·혀·몸·마음, 그리고 훨씬 더 넓은 범위로 똑같이 되풀이해 적용됩니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 몸을 가누는 법이 아니라 마음이 무엇에도 기대어 서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 대목이 놓인 자리입니다.

묵상

지금 가장 강하게 붙들고 있는 감각이나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을 놓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잠시, 그것에 기대어 서 있는 마음을 알아차려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코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코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혀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혀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ghānaṁ upādiyissāmi, na ca me ghān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jivhaṁ upādiyissāmi, na ca me jivhā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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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정형구가 코와 혀로 이어집니다. 앞서 눈과 귀에서 시작한 이 가르침은 감각 기관 하나하나를 차례로 짚어 가며, 그 어느 것도 예외 없이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야 함을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짚어 가는 방식은 서두르지 않고, 몸의 감각 기관 전체를 빠짐없이 살피게 하려는 뜻으로 읽힙니다. 여섯 감각 기관 가운데 아직 몸과 마음 두 가지가 남아 있으며, 다음 카드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냄새나 맛처럼 사소해 보이는 감각에도 마음이 매여 있을 때가 있어요. 오늘 하루 코나 혀의 감각에 유난히 끌렸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 순간을 가볍게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억지로 밀어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몸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마음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마음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kāyaṁ upādiyissāmi, na ca me kāy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manaṁ upādiyissāmi, na ca me mano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여섯 감각 기관 가운데 마지막인 몸과 마음까지 다루어, 눈·귀·코·혀·몸·마음 여섯 가지 전부에 같은 가르침이 온전히 적용되는 것으로 이 첫째 묶음이 끝납니다. 특히 마지막의 "마음(mano)"까지 포함된다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붙들지 말아야 할 대상이 몸의 감각에 그치지 않고 마음 그 자체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여섯 기관의 틀은 뒤이어 그 대상, 의식, 접촉, 느낌에도 똑같이 적용되며 계속 되풀이됩니다.

묵상

몸의 감각뿐 아니라 마음 그 자체도 붙들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이 순간 마음이 무언가에 매여 있다면, 그것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저 알아차려 보아도 괜찮아요.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형색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형색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소리에도… 냄새에도… 맛에도… 감촉에도… 마음의 대상에도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rūpaṁ upādiyissāmi, na ca me rūp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saddaṁ upādiyissāmi …pe… na gandhaṁ upādiyissāmi … na rasaṁ upādiyissāmi … na phoṭṭhabbaṁ upādiyissāmi … na dhammaṁ upādiyissāmi, na ca me dhamm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이제 감각 기관이 아니라 그 대상, 곧 형색·소리·냄새·맛·감촉·마음의 대상으로 옮겨 갑니다. 원문은 형색만 온전히 적고 나머지 다섯은 "…pe…"라는 편집 표시로 압축해 두었는데, 이는 형식이 완전히 같기 때문입니다. 이 카드도 원문이 이미 압축한 그대로 이름만 이어 옮겼습니다. 감각 기관에 이어 그 대상까지 다루면서, 붙들지 말아야 할 범위가 나에게 속한 여섯 문에서 바깥의 여섯 대상으로 넓어집니다.

묵상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와 맛과 감촉 가운데 요즘 유난히 마음이 가는 것이 있나요? 그것을 붙잡지 않는 연습은 아주 작은 알아차림에서 시작될 수 있어요. 지금 이 순간의 감각 하나를 가만히 느껴 보아도 좋아요.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눈의 의식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귀의 의식에도… 코의 의식에도… 혀의 의식에도… 몸의 의식에도… 마음의 의식에도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cakkhuviññāṇaṁ upādiyissāmi, na ca me cakkhuviññāṇ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sotaviññāṇaṁ upādiyissāmi … na ghānaviññāṇaṁ upādiyissāmi … na jivhāviññāṇaṁ upādiyissāmi … na kāyaviññāṇaṁ upādiyissāmi … na manoviññāṇaṁ upādiyissāmi, na ca me manoviññāṇ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감각 기관과 그 대상에 이어, 이번에는 그 둘이 만나 생겨나는 여섯 의식(눈의 의식·귀의 의식·코의 의식·혀의 의식·몸의 의식·마음의 의식)으로 옮겨 갑니다. 감각 기관도, 대상도, 그리고 그 둘이 만나 생긴 의식조차도 붙들지 말라는 것은, 경험을 이루는 세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도 예외로 남겨 두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 틀은 다음 카드의 접촉, 그다음의 느낌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묵상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 그 앎 자체에도 마음이 붙들릴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나요? 지금 알아차리고 있다는 그 사실조차 가볍게 여겨 보아도 괜찮아요. 답을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눈의 접촉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귀의 접촉에도… 코의 접촉에도… 혀의 접촉에도… 몸의 접촉에도… 마음의 접촉에도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cakkhusamphassaṁ upādiyissāmi, na ca me cakkhusamphass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sotasamphassaṁ upādiyissāmi … na ghānasamphassaṁ upādiyissāmi … na jivhāsamphassaṁ upādiyissāmi … na kāyasamphassaṁ upādiyissāmi … na manosamphassaṁ upādiyissāmi, na ca me manosamphass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감각 기관과 대상과 의식, 이 셋이 함께 만나는 자리인 접촉으로 이어집니다. 접촉은 경험이 실제로 일어나는 그 순간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부터 뒤이어 느낌이 생겨납니다. 여섯 감각 기관마다 접촉이 있고, 그 접촉마다 똑같이 붙들지 않는 익힘이 되풀이됩니다. 경험이 시작되는 가장 첫 순간부터 붙듦이 끼어들 자리를 남기지 않으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 흐름은 뒤이어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으로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묵상

무언가와 처음 마주치는 그 순간, 좋다 싫다는 판단이 따라붙기 전의 접촉 자체를 알아차려 본 적이 있나요? 그 짧은 순간을 오늘 한 번쯤 느껴 보아도 좋아요. 판단이 따라붙는 순간도 함께 지켜보아도 괜찮아요.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도…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도… 혀의, 몸의,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도 붙들리지 않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cakkhusamphassajaṁ vedanaṁ upādiyissāmi, na ca me cakkhusamphassajāvedanā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sotasamphassajaṁ vedanaṁ upādiyissāmi … na ghānasamphassajaṁ vedanaṁ upādiyissāmi … na jivhāsamphassajaṁ vedanaṁ upādiyissāmi … na kāyasamphassajaṁ vedanaṁ upādiyissāmi … na manosamphassajaṁ vedanaṁ upādiyissāmi, na ca me manosamphassajāvedanā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접촉에서 생겨나는 느낌으로 이어집니다. 느낌은 즐겁거나 괴롭거나 어느 쪽도 아닌 형태로 늘 접촉의 결과로 뒤따르는데, 이 느낌에마저 붙들리지 말라는 것이 이 대목의 핵심입니다. 감각 기관, 대상, 의식, 접촉을 거쳐 마침내 느낌까지 다루면서, 경험이 일어나는 전체 연쇄 가운데 어느 한 고리도 붙듦의 자리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이로써 감각의 문 하나를 이루는 다섯 단계(기관·대상·의식·접촉·느낌)가 모두 다루어졌습니다.

묵상

즐거운 느낌이든 괴로운 느낌이든, 그 느낌 자체를 붙잡지 않고 그저 지나가게 둘 수 있을까요? 지금 몸이나 마음에 있는 느낌 하나를 판단 없이 잠시 바라보아도 좋아요.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땅의 요소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물의 요소에도… 불의 요소에도… 바람의 요소에도… 허공의 요소에도, 의식의 요소에도 붙들리지 않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pathavīdhātuṁ upādiyissāmi, na ca me pathavīdhātu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āpodhātuṁ upādiyissāmi … na tejodhātuṁ upādiyissāmi … na vāyodhātuṁ upādiyissāmi … na ākāsadhātuṁ upādiyissāmi … na viññāṇadhātuṁ upādiyissāmi, na ca me viññāṇadhātu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감각의 영역을 떠나 이제 몸과 세계를 이루는 여섯 가지 요소, 곧 땅·물·불·바람·허공·의식의 요소로 옮겨 갑니다. 앞서 감각 기관과 대상이 경험을 다루었다면, 이 요소들은 존재 자체를 이루는 더 근본적인 층위를 가리킵니다. 흥미롭게도 이 목록의 마지막에 "의식의 요소"까지 포함되어, 의식조차 붙들 수 없는 하나의 요소로 다루어집니다. 몸이 무너져 가는 이 순간, 그 몸을 이루는 요소들부터 하나씩 놓아 가라는 가르침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몸이 땅·물·불·바람 같은 요소들의 모임이라는 말이 지금 어떻게 들리나요? 그 요소들이 그저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라면, 지금의 통증이나 불편함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답을 서둘러 찾지 않아도 괜찮아요.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형색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느낌에도… 인식에도… 형성작용에도… 의식에도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rūpaṁ upādiyissāmi, na ca me rūp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vedanaṁ upādiyissāmi … na saññaṁ upādiyissāmi … na saṅkhāre upādiyissāmi … na viññāṇaṁ upādiyissāmi, na ca me viññāṇ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이제 형색·느낌·지각·형성작용·의식이라는 다섯 무더기로 옮겨 갑니다. 이는 한 존재를 이루는 몸과 마음 전체를 다섯 갈래로 나눈 것으로, 앞서 다룬 감각의 여러 층위를 사람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다시 묶어 보여 줍니다. 여기서도 마지막 항목인 "의식"이 붙들지 말아야 할 대상에 포함되는데, 이는 앞서 되풀이해 온 "그에 의지한 의식도 없으리라"는 문장과 짝지어 보면, 의식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도 기대어 서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나를 이루는 몸과 마음 전체, 이 다섯 무더기 가운데 오늘 가장 강하게 "나"라고 느껴진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을 부정할 필요 없이, 그저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만 알아차려 보아도 좋아요.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무한한 허공의 경지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무한한 의식의 경지에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도 붙들리지 않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ākāsānañcāyatanaṁ upādiyissāmi, na ca me ākāsānañcāyatan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ādiyissāmi … na ākiñcaññāyatanaṁ upādiyissāmi … n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ādiyissāmi, na ca m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감각과 무더기를 넘어, 아주 깊은 선정에서 경험되는 네 가지 경지, 곧 무한한 허공·무한한 의식·아무것도 없음·지각도 아니고 지각 아님도 아님으로 이어집니다. 이 네 경지는 수행이 상당히 깊어진 이라야 경험하는 것으로, 아나타삔디까 같은 재가자에게는 낯설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런데도 사리뿟따는 이것마저 붙들지 말아야 할 대상에서 빼놓지 않습니다. 아무리 높고 고요한 경지라도 붙드는 순간 다시 놓아야 할 것이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깊은 경지에 대해서도 미리 붙들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런 말이 있었다는 것만 마음에 담아 두어도 충분해요.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이 세상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idhalokaṁ upādiyissāmi, na ca me idhalok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이제 감각과 경지를 넘어, 훨씬 더 큰 범위인 "이 세상"으로 향합니다. 지금까지 하나하나 짚어 온 감각·요소·무더기·경지가 모두 합쳐진 자리가 바로 이 세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 다시 한번 같은 가르침이 주어집니다. 짧지만 앞선 모든 항목을 하나로 거두어들이는 자리이며, 뒤이어 "저 세상"으로 범위가 한 번 더 넓어지면서 이 가르침 전체의 마지막 매듭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이 세상"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범위를 지금 얼마나 넓게 떠올릴 수 있나요? 내가 사는 이 세상 전체에마저 붙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나는 저 세상에 붙들리지 않으리라. 저 세상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장자여, 그러므로 또 이렇게 익혀야 하나니 -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얻고 찾고 마음으로 헤아린 것, 그 무엇에도 나는 붙들리지 않으리라. 그에 의지한 의식도 나에게 없으리라’ 장자여, 이렇게 익혀야 하느니라.’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na paralokaṁ upādiyissāmi, na ca me paraloka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ṁ. Tasmātiha te, gahapati, evaṁ sikkhitabbaṁ: ‘yampi me diṭṭhaṁ sutaṁ mutaṁ viññātaṁ pattaṁ pariyesitaṁ anupariyesitaṁ anucaritaṁ manasā tampi na upādiyissāmi, na ca me tannissitaṁ viññāṇaṁ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n”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이 세상에 이어 "저 세상", 곧 죽음 이후에 대해서까지 같은 가르침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얻고 찾고 마음으로 헤아린"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문장으로 이 긴 가르침 전체가 마무리됩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지금까지 낱낱이 짚어 온 감각·요소·무더기·경지·이 세상·저 세상을 다시 한번 통틀어, 어떤 경험의 형태로도 빠짐없이 같은 원리가 적용됨을 확인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에게 "저 세상"까지 붙들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다음 생에 대한 불안조차 붙듦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이나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 역시 붙잡지 않아도 되는 것 중 하나라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면,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보아도 괜찮아요.

3 재가자도 들을 자격이 있다 3구절

아나타삔디까가 눈물을 흘리고, 이 가르침이 재가자에게도 전해지기를 청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울며 눈물을 흘렸느니라. 아난다 존자가 물었느니라 - ‘장자여, 그대는 위축되어 있습니까? 가라앉아 있습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위축된 것도 가라앉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오랫동안 스승과 존경할 만한 수행자들을 가까이 모셔 왔지만, 이런 말씀은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Evaṁ vutte, anāthapiṇḍiko gahapati parodi, assūni pavattesi. Atha kho āyasmā ānando anāthapiṇḍikaṁ gahapatiṁ etadavoca: “olīyasi kho tvaṁ, gahapati, saṁsīdasi kho tvaṁ, gahapatī”ti? “Nāhaṁ, bhante ānanda, olīyāmi, napi saṁsīdāmi; api ca me dīgharattaṁ satthā payirupāsito manobhāvanīyā ca bhikkhū; na ca me evarūpī dhammī kathā sutapubb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가르침을 다 들은 아나타삔디까가 눈물을 흘리는 대목입니다. 아난다는 이를 보고 그가 마음이 위축되거나 가라앉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레 묻습니다. 그러나 아나타삔디까는 자신의 눈물이 두려움이나 낙담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세존과 여러 수행자를 모셔 왔음에도 이런 가르침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데서 온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 경은 그의 눈물을 위축이나 흔들림으로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본인의 말로 직접 해명할 기회를 줍니다.

묵상

눈물이 반드시 무너짐이나 슬픔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아나타삔디까처럼 감동이나 놀라움에서 눈물이 난 순간이 있었다면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 눈물이 난다면,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괜찮아요.

‘장자여, 이런 말씀은 흰옷 입은 재가자들에게는 잘 떠오르지 않고, 출가한 이들에게 잘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리뿟따 존자시여, 이런 말씀이 재가자들에게도 떠오르게 하여 주십시오. 눈에 티끌이 적은 좋은 가문의 자제들이 있으나, 이 말씀을 듣지 못하여 물러나고 있습니다. 듣는다면 알아차릴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Na kho, gahapati, gihīnaṁ odātavasanānaṁ evarūpī dhammī kathā paṭibhāti; pabbajitānaṁ kho, gahapati, evarūpī dhammī kathā paṭibhātī”ti. “Tena hi, bhante sāriputta, gihīnampi odātavasanānaṁ evarūpī dhammī kathā paṭibhātu. Santi hi, bhante, kulapu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사리뿟따가 방금 전한 가르침이 보통 출가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재가자에게는 흔치 않다고 밝히자, 아나타삔디까가 곧바로 반박에 나서는 대목입니다. 그는 재가자 가운데도 "눈에 티끌이 적은(apparajakkhajātikā)", 곧 이해할 바탕이 있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말씀을 듣지 못해 물러나고 있다며, 재가자에게도 이 가르침이 전해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가 자신의 안위보다 다른 이들이 이 말씀을 들을 기회를 먼저 챙기는 이 장면은, 이 경이 재가자도 깊은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대목으로 널리 읽혀 왔습니다.

묵상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나도 알고 싶다고 청해 본 적이 있나요? 아나타삔디까처럼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청해 본 순간이 있었다면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아나타삔디까 장자를 훈계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느니라. 두 존자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세상을 떠나 도솔천에 태어났느니라.

Atha kho āyasmā ca sāriputto āyasmā ca ānando anāthapiṇḍikaṁ gahapatiṁ iminā ovādena ova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su. Atha kho anāthapiṇḍiko gahapati, acirapakkante āyasmante ca sāriputte āyasmante ca ānande, kālamakāsi tusitaṁ kāyaṁ upapajj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이 만남이 마지막이 되는 대목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acirapakkante)"라는 표현은 두 존자가 떠난 직후 곧바로 임종했음을 알려, 이 긴 가르침이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전해진 것이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도솔천이라는 하늘에 태어나는데, 이는 좋은 곳에 태어남을 뜻하는 결말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하늘에 태어난 그가 다시 등장하는 다음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삶에서 가장 깊은 대화였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 마지막이 있었다면, 지금 그 기억을 조심스럽게 떠올려 보아도 괜찮아요.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지금 떠올리고 싶지 않다면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4 천자가 되어 돌아오다 9구절

하늘에 태어난 아나타삔디까가 게송으로 감사를 전하고, 경이 마무리됩니다.

그때 천자가 된 아나타삔디까가 밤이 이슥해지자 빼어난 모습으로 제따 숲 전체를 환히 밝히며 세존께 다가와 절하고 한쪽에 섰느니라. 한쪽에 선 그는 세존께 게송으로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 ‘이곳이 바로 그 제따 숲, 성인들의 무리가 머무는 곳, 법왕께서 계셨던 곳, 저에게 희열을 일으키는 곳이니이다.’

Atha kho anāthapiṇḍiko devaputto abhikkantāya rattiyā abhikkantavaṇṇo kevalakappaṁ jetavanaṁ obhās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anāthapiṇḍiko devaputto bhagavantaṁ gāthāhi ajjhabhāsi: “Idañhi taṁ jetavanaṁ, isisaṅghanisevitaṁ; Āvutthaṁ dhammarājena, pītisañjananaṁ mama.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아나타삔디까가 하늘에 태어난 뒤 다시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밤이 깊어질 무렵 빼어난 모습으로 제따 숲 전체를 밝히며 나타나는데, 이런 밝기의 묘사는 경전에서 신이나 하늘 존재가 나타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그가 세존께 바친 첫 게송은 다름 아닌 제따 숲, 곧 그 자신이 살아생전 세존께 바쳤던 바로 그 동산을 예찬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동산과 그곳에서 얻은 기쁨을 여전히 소중히 여기고 있음이 이 첫머리에서 드러납니다.

묵상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리운 장소나 순간이 있나요? 아나타삔디까가 제따 숲을 다시 찾아온 것처럼, 마음속에 간직한 소중한 자리를 지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그 자리가 주는 기쁨을 잠시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행위와 지혜와 진리와, 계행과 훌륭한 삶, 이것으로 사람은 청정해지나니, 가문이나 재물로는 아니니이다.’

Kammaṁ vijjā ca dhammo ca, sīlaṁ jīvitamuttamaṁ; Etena maccā sujjhanti, na gottena dhanena vā.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게송은 이제 무엇이 사람을 참으로 청정하게 하는지로 넘어갑니다. 행위와 지혜와 진리와 계행, 그리고 훌륭한 삶, 이 넷을 청정함의 원인으로 꼽으며, 태어난 가문이나 지닌 재물은 그 원인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아나타삔디까는 큰 부자였던 재가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런 그가 하늘에서 재물이 청정함의 원인이 아니라고 노래하는 것은 그 자신의 삶을 스스로 되짚어 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은 신분이나 재산이 아니라 행실이 사람의 가치를 정한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묵상

무엇이 사람을 정말로 "괜찮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나요? 가진 것보다 해 온 행동이 더 오래 남는다는 말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나요? 지금 떠오르는 구체적인 행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살펴보며, 가르침을 근본까지 살피나니, 이렇게 하여 그 안에서 청정해지니이다.’

Tasmā hi paṇḍito poso, sampassaṁ atthamattano; Yoniso vicine dhammaṁ, evaṁ tattha visujjha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앞서 무엇이 청정함의 원인인지 밝힌 데 이어, 그렇다면 어떻게 그 청정함에 이르는지를 말하는 대목입니다. 지혜로운 이는 자신에게 참으로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가르침을 근본까지 이치에 맞게 검토한다고 말합니다. "이치에 맞게(yoniso)"라는 말은 겉으로 듣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따져 보고 확인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아나타삔디까 자신이 살아있을 때 사리뿟따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재가자에게도 전해 달라고 되물었던 태도와도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따져 보고 확인해 본 경험이 있나요? 지금 무언가를 이해하려 할 때, 급하게 답을 정하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아도 괜찮아요. 그 살핌의 속도는 오롯이 나의 것이에요.

‘사리뿟따는 지혜로도, 계행과 고요함으로도, 저 언덕에 이른 어떤 수행자라 해도, 그와 견줄 이는 이 정도가 으뜸일 것이니이다.’

Sāriputtova paññāya, sīlena upasamena ca; Yopi pāraṅgato bhikkhu, etāvaparamo siy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게송의 마지막 부분으로, 자신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해 준 사리뿟따를 직접 칭송하는 대목입니다. 지혜와 계행과 고요함을 두루 갖추었다는 이 찬사는, 이미 번뇌를 넘어 "저 언덕에 이른(pāraṅgato)" 다른 어떤 수행자와 견주어도 사리뿟따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받은 가르침에 대한 감사가, 하늘에 태어난 뒤에도 이렇게 게송으로 다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게송을 끝으로 아나타삔디까 천자의 말이 마무리됩니다.

묵상

나에게 깊은 가르침이나 도움을 준 사람을 지금 얼마나 자주 떠올리나요? 그 고마움을 아직 전하지 못했다면, 지금 마음속으로라도 한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늦었다고 느껴져도 괜찮습니다.

천자 아나타삔디까는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스승께서는 이를 인정하셨느니라. 천자는 ‘스승께서 나를 인정하셨다’고 여기며 세존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그 자리에서 사라졌느니라.

Idamavoca anāthapiṇḍiko devaputto. Samanuñño satthā ahosi. Atha kho anāthapiṇḍiko devaputto: “samanuñño me satthā”ti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tatthevantaradhāy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천자가 된 아나타삔디까의 방문이 마무리되는 대목입니다. 세존은 말없이 그의 게송을 "인정(samanuñño)"하시는데, 이는 동의나 침묵의 승인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천자는 그 인정을 확인한 뒤 예를 갖추어 절하고 오른쪽으로 도는 인사를 마친 다음 그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오른쪽으로 돎(padakkhiṇa)"은 존경하는 이를 향한 전통적인 작별 인사로,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는 예를 하늘에서도 그대로 지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어떤 마음이 들던가요? 아나타삔디까처럼 그 인정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자리를 뜨는 것과, 크게 기뻐하며 알리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둘 다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어요.

세존께서는 그 밤이 지난 뒤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 ‘수행자들이여, 지난밤 어떤 천자가 빼어난 모습으로 제따 숲 전체를 환히 밝히며 나에게 다가와 절하고 한쪽에 섰느니라. 한쪽에 선 그 천자는 나에게 게송으로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

Atha kho bhagavā tassā rattiyā accayena bhikkhū āmantesi: “imaṁ, bhikkhave, rattiṁ aññataro devaputto abhikkantāya rattiyā abhikkantavaṇṇo kevalakappaṁ jetavanaṁ obhāsetvā yenāh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m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so devaputto maṁ gāthāhi ajjhabhās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다음 날 세존께서 지난밤의 일을 수행자들에게 직접 들려주시는 대목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앞서 천자 아나타삔디까가 세존께 한 말이, 이번에는 세존의 입을 통해 수행자들에게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원문은 이 게송 전체를 앞서와 똑같은 말로 다시 적어 두는데, 이는 세존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구성입니다. 뒤이은 카드에서는 이 되풀이되는 게송을 요약해 다루고, 세존이 수행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결말로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 나에게 해 준 말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 말을 옮기면서 무엇을 가장 소중히 지키고 싶었나요? 지금 그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아도 좋고, 잘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곳이 바로 그 제따 숲, 성인들의 무리가 머무는 곳, 법왕께서 계셨던 곳, 저에게 희열을 일으키는 곳이니이다. 행위와 지혜와 진리와, 계행과 훌륭한 삶, 이것으로 사람은 청정해지나니, 가문이나 재물로는 아니니이다. … 사리뿟따는 지혜로도, 계행과 고요함으로도, 저 언덕에 이른 어떤 수행자라 해도, 그와 견줄 이는 이 정도가 으뜸일 것이니이다.’

‘Idañhi taṁ jetavanaṁ, isisaṅghanisevitaṁ; Āvutthaṁ dhammarājena, pītisañjananaṁ mama. Kammaṁ vijjā ca dhammo ca, sīlaṁ jīvitamuttamaṁ; Etena maccā sujjhanti, na gottena dhanena vā… Sāriputtova paññāya, sīlena upasamena ca; Yopi pāraṅgato bhikkhu, etāvaparamo siy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세존이 수행자들에게 들려주는 게송 전체가 이 대목에 담겨 있습니다. 원문은 천자 아나타삔디까가 앞서 세존께 올린 게송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므로, 여기서는 처음 두 연과 마지막 연만 옮기고 가운데를 줄였습니다(빠알리 원문에서도 같은 자리를 줄였습니다). 온전한 내용은 앞선 네 카드(제따 숲 예찬, 청정함의 원인, 이치를 살피는 지혜로운 이, 사리뿟따에 대한 찬사)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 세존이 이 말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한다는 것은, 이 가르침의 무게를 조금도 덜어내지 않고 수행자들에게 전하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들은 소중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길 때,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애써 본 적이 있나요? 지금 나에게 그렇게 정확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말을 누구에게 전하고 싶나요?

‘수행자들이여, 그 천자는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그는 ‘스승께서 나를 인정하셨다’고 여기며 나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그 자리에서 사라졌느니라.’

Idamavoca, bhikkhave, so devaputto. ‘Samanuñño me satthā’ti m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tatthevantaradhāyī”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세존이 지난밤의 일을 수행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대목입니다. 내용은 앞서 나온 것과 똑같지만, 이번에는 세존 자신이 "나에게 절하고"라고 1인칭으로 말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렇게 세존의 입을 통해 다시 확인됨으로써, 앞서 있었던 일이 전해 들은 소문이 아니라 세존이 직접 겪은 일임이 분명해집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수행자들의 반응, 특히 아난다의 반응이 다음 대목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직접 겪은 일을 남에게 전할 때와, 남에게 전해 들은 일을 전할 때, 그 말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나요? 지금 내가 직접 겪어서 더 확실히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여쭈었느니라 - ‘그 천자는 틀림없이 아나타삔디까일 것입니다. 사리뿟따 존자께 깊이 신심을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아난다여. 헤아림으로 이를 수 있는 데까지 그대는 이르렀느니라. 그 천자는 바로 아나타삔디까이니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아난다 존자는 흡족하여 기뻐하였느니라. 아나타삔디까 교계경은 이렇게 끝나니, 첫 번째이니라.

Evaṁ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so hi nūna so, bhante, anāthapiṇḍiko devaputto bhavissati. Anāthapiṇḍiko, bhante, gahapati āyasmante sāriputte abhippasanno ahosī”ti. “Sādhu sādhu, ānanda. Yāvatakaṁ kho, ānanda, takkāya pattabbaṁ, anuppattaṁ taṁ tayā. Anāthapiṇḍiko so, ānanda, devaputto”ti.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경 전체를 닫는 마지막 대목입니다. 아난다는 그 천자가 아나타삔디까일 것이라고 스스로 헤아려 답하고, 세존은 "헤아림으로 이를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며 그 추론을 그대로 인정해 주십니다. 살아서는 위독한 몸으로 눈물을 흘리며 가르침을 들었던 이가, 죽은 뒤에는 하늘에서 스스로 그 가르침에 대한 감사를 노래로 전하는 존재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 이 경 전체의 결말입니다. "첫 번째"라는 표시는 이 경이 속한 품에서 이 경이 첫 번째 경임을 알리는 편집자의 기록입니다.

묵상

떠난 이가 삶에서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통해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헤아려 본 적이 있나요? 지금 그런 기억이 있다면, 그 사람과 나눈 마지막 순간을 조심스럽게 떠올려 보아도 괜찮아요. 애도에는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지금 이대로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