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자도 들을 자격이 있다

아나타삔디까가 눈물을 흘리고, 이 가르침이 재가자에게도 전해지기를 청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울며 눈물을 흘렸느니라. 아난다 존자가 물었느니라 - ‘장자여, 그대는 위축되어 있습니까? 가라앉아 있습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위축된 것도 가라앉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오랫동안 스승과 존경할 만한 수행자들을 가까이 모셔 왔지만, 이런 말씀은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Evaṁ vutte, anāthapiṇḍiko gahapati parodi, assūni pavattesi. Atha kho āyasmā ānando anāthapiṇḍikaṁ gahapatiṁ etadavoca: “olīyasi kho tvaṁ, gahapati, saṁsīdasi kho tvaṁ, gahapatī”ti? “Nāhaṁ, bhante ānanda, olīyāmi, napi saṁsīdāmi; api ca me dīgharattaṁ satthā payirupāsito manobhāvanīyā ca bhikkhū; na ca me evarūpī dhammī kathā sutapubb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가르침을 다 들은 아나타삔디까가 눈물을 흘리는 대목입니다. 아난다는 이를 보고 그가 마음이 위축되거나 가라앉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레 묻습니다. 그러나 아나타삔디까는 자신의 눈물이 두려움이나 낙담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세존과 여러 수행자를 모셔 왔음에도 이런 가르침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데서 온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 경은 그의 눈물을 위축이나 흔들림으로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본인의 말로 직접 해명할 기회를 줍니다.

묵상

눈물이 반드시 무너짐이나 슬픔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아나타삔디까처럼 감동이나 놀라움에서 눈물이 난 순간이 있었다면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 눈물이 난다면,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괜찮아요.

‘장자여, 이런 말씀은 흰옷 입은 재가자들에게는 잘 떠오르지 않고, 출가한 이들에게 잘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리뿟따 존자시여, 이런 말씀이 재가자들에게도 떠오르게 하여 주십시오. 눈에 티끌이 적은 좋은 가문의 자제들이 있으나, 이 말씀을 듣지 못하여 물러나고 있습니다. 듣는다면 알아차릴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Na kho, gahapati, gihīnaṁ odātavasanānaṁ evarūpī dhammī kathā paṭibhāti; pabbajitānaṁ kho, gahapati, evarūpī dhammī kathā paṭibhātī”ti. “Tena hi, bhante sāriputta, gihīnampi odātavasanānaṁ evarūpī dhammī kathā paṭibhātu. Santi hi, bhante, kulapu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사리뿟따가 방금 전한 가르침이 보통 출가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재가자에게는 흔치 않다고 밝히자, 아나타삔디까가 곧바로 반박에 나서는 대목입니다. 그는 재가자 가운데도 "눈에 티끌이 적은(apparajakkhajātikā)", 곧 이해할 바탕이 있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말씀을 듣지 못해 물러나고 있다며, 재가자에게도 이 가르침이 전해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가 자신의 안위보다 다른 이들이 이 말씀을 들을 기회를 먼저 챙기는 이 장면은, 이 경이 재가자도 깊은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대목으로 널리 읽혀 왔습니다.

묵상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나도 알고 싶다고 청해 본 적이 있나요? 아나타삔디까처럼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청해 본 순간이 있었다면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아나타삔디까 장자를 훈계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느니라. 두 존자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세상을 떠나 도솔천에 태어났느니라.

Atha kho āyasmā ca sāriputto āyasmā ca ānando anāthapiṇḍikaṁ gahapatiṁ iminā ovādena ova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amiṁsu. Atha kho anāthapiṇḍiko gahapati, acirapakkante āyasmante ca sāriputte āyasmante ca ānande, kālamakāsi tusitaṁ kāyaṁ upapajji.

맛지마 니까야 MN 143 아나타삔디까 교계경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배경

이 만남이 마지막이 되는 대목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acirapakkante)"라는 표현은 두 존자가 떠난 직후 곧바로 임종했음을 알려, 이 긴 가르침이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전해진 것이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도솔천이라는 하늘에 태어나는데, 이는 좋은 곳에 태어남을 뜻하는 결말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하늘에 태어난 그가 다시 등장하는 다음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삶에서 가장 깊은 대화였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 마지막이 있었다면, 지금 그 기억을 조심스럽게 떠올려 보아도 괜찮아요.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지금 떠올리고 싶지 않다면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