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적 형성과 의식에 이어지는 비교

의지적 형성과 의식에도 무상·괴로움·변화의 성질과 세 비교,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함이 반복됩니다.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기 마련인 의지적 형성을 두고 ‘나는 남보다 낫다’, ‘나는 남과 같다’, ‘나는 남보다 못하다’고 여긴다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기 마련인 의식을 두고 ‘나는 남보다 낫다’, ‘나는 남과 같다’, ‘나는 남보다 못하다’고 여긴다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aniccehi saṅkhārehi dukkhehi vipariṇāmadhammehi ‘seyy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sadis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hīn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kimaññatra yathābhūtassa adassanā? Aniccena viññāṇena dukkhena vipariṇāmadhammena ‘seyy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sadis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hīnohamasmī’ti vā samanupassanti; kimaññatra yathābhūtassa adassanā?

상윳따 니까야 SN 22.49 소나경 (Soṇasutta)

배경

긍정형 비교의 마지막 두 반복입니다. 의지적 형성과 의식 각각에 무상함, 괴로움, 변하기 마련이라는 세 성질이 붙고, 그 바탕에서 “나는 남보다 낫다·같다·못하다”라고 여기는 세 문장이 같은 순서로 이어집니다. 두 무더기 모두 세 비교를 줄이지 않고 따로 보존하며, 각각 yathābhūtassa adassanā라는 수사적 질문으로 닫힙니다. 이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함이라는 같은 판정을 어느 비교에도 예외 없이 적용합니다. 수행에서는 의지와 앎처럼 내면적으로 느껴지는 작용도 고정된 자기 평가의 근거로 예외 삼지 않고, 변화하는 다섯 무더기의 일부로 봅니다.

묵상

떠오른 의도나 또렷한 의식을 자신의 우열을 증명하는 근거로 삼은 순간이 있나요? 그 작용도 변하기 마련이라는 구절을 함께 놓아 보면 비교의 확실함이 어떻게 보이나요? 그 판단이 느슨해질 때 다음 생각이나 말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지금 확인하기 어렵거나 아무 변화가 없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