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까지 달려간 선인

로히땃사가 전생에 신통력으로 한 생애를 다 걸었지만 세상의 끝에 이르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Yāvasubhāsitamidaṁ, bhante, bhagavatā: ‘yattha kho, āvuso, na jāyati na jīyati na mīyati na cavati na upapajjati, nāhaṁ taṁ gamanena lokassa antaṁ ñāteyyaṁ daṭṭheyyaṁ patteyyanti vadāmī’ti.

상윳따 니까야 SN 2.26 로히땃사경 (Rohitassasutta)

배경

부처님의 대답을 들은 로히땃사 천신이 감탄하며 화답하는 대목입니다. '놀랍습니다, 경이롭습니다'라는 상투적인 감탄사로 시작해, 방금 부처님이 하신 말씀 다섯 겹의 부정 표현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되풀이해 인용합니다. 여기서는 그 반복 부분을 '…'로 줄이고 앞 절의 표현을 그대로 가리키게 했습니다. 들은 말을 그대로 되풀이해 감탄으로 되돌리는 것은 초기 경전 여러 곳에서 되풀이되는 정형화된 응답 방식으로, 상대의 말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묵상

누군가 내 마음속 생각을 정확히 짚어 말해 줄 때,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최근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어떤 말이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그냥 넘어가도 괜찮아요.

세존이시여, 예전에 소인은 보자의 아들이며 신통력이 있어 허공을 다니던, 로히땃사라는 선인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는 이러한 빠르기가 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강한 활을 지니고 잘 훈련되어 손에 익고 익숙하고 능숙한 궁수가 가벼운 화살로 힘들이지 않고 야자수 그늘을 가로질러 쏘는 것과 같았습니다.

Bhūtapubbāhaṁ, bhante, rohitasso nāma isi ahosiṁ bhojaputto iddhimā vehāsaṅgamo. Tassa mayhaṁ, bhante, evarūpo javo ahosi; seyyathāpi nāma daḷhadhammā dhanuggaho susikkhito katahattho katayoggo katūpāsano lahukena asanena appakasireneva tiriyaṁ tālacchāyaṁ atipāteyya.

상윳따 니까야 SN 2.26 로히땃사경 (Rohitassasutta)

배경

천신이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자신의 전생 이야기로 답하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예전에 로히땃사라는 이름의 선인으로서 신통력을 지녀 허공을 날아다녔다고 말합니다. 그 속도를 화살에 견주는데, 단순한 화살이 아니라 잘 훈련된 궁수가 야자수 그늘 하나를 가로질러 쏘는 가벼운 화살만큼 빨랐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을 등장시켜, 뒤에 나올 결론이 속도의 문제가 아님을 미리 보여 주려는 장치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더 잘하고 더 빠르게 해내면 지금의 힘든 마음이 풀릴 것 같은 기대를 품어 본 적이 있나요? 그 기대가 실제로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한 번 돌아보아도 좋아요. 지금 뚜렷한 기억이 없어도 괜찮아요.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는 이러한 걸음이 있었으니, 마치 한 걸음이 동쪽 바다에서 서쪽 바다까지 이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러한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걸어서 세상의 끝에 이르리라’라고.

Tassa mayhaṁ, bhante, evarūpo padavītihāro ahosi; seyyathāpi nāma puratthimā samuddā pacchimo samuddo. Tassa mayhaṁ, bhante, evarūpaṁ icchāgataṁ uppajji: ‘ahaṁ gamanena lokassa antaṁ pāpuṇissāmī’ti.

상윳따 니까야 SN 2.26 로히땃사경 (Rohitassasutta)

배경

앞서 말한 속도에 이어, 걸음의 크기까지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대목입니다. 한 걸음이 동쪽 바다에서 서쪽 바다에 이를 만큼 컸다고 말한 뒤, 바로 그 능력을 갖춘 자신에게 '걸어서 세상의 끝에 이르리라'는 바람이 일어났다고 전합니다. 이 바람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그 바람이 세상의 끝을 공간적으로 이동해 닿아야 할 장소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며, 이 전제가 다음 절에서 무너집니다.

묵상

이룰 수만 있다면 지금의 어려움이 전부 해결될 것 같은 목표를 품어 본 적이 있나요?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정작 눈앞의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살짝 돌아볼 수 있을까요? 아직 답하기 어렵다면 그 물음만 마음에 담아 두어도 괜찮아요.

세존이시여, 저는 그러한 빠르기와 그러한 걸음을 갖추고서도,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일과 대소변을 보는 일과 잠으로 피로를 더는 일 말고는 백 년의 수명을 다하도록 걸었으나, 세상의 끝에 이르지 못한 채 그 도중에 목숨을 마쳤습니다.

So khvāhaṁ, bhante, evarūpena javena samannāgato evarūpena ca padavītihārena, aññatreva asitapītakhāyitasāyitā aññatra uccārapassāvakammā aññatra niddākilamathapaṭivinodanā vassasatāyuko vassasatajīvī vassasataṁ gantvā appatvāva lokassa antaṁ antarāva kālaṅkato.

상윳따 니까야 SN 2.26 로히땃사경 (Rohitassasutta)

배경

로히땃사 선인의 이야기가 매듭지어지는 대목입니다. 신통력으로 얻은 최고의 속도와 보폭을 갖추고 먹고 마시고 잠자는 최소한의 시간 말고는 쉬지 않고 백 년, 즉 한 생애 전부를 걸었지만 세상의 끝에 이르지 못한 채 도중에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앞서 던진 질문, 즉 '걸어서 세상의 끝에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한 실제 실험 결과에 해당합니다. 가장 빠른 존재가 한 생애를 다 바쳐도 실패했다는 사실로, 세상의 끝은 이동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이 지점에서 분명해집니다.

묵상

평생을 다해 애썼는데도 바라던 곳에 이르지 못했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있다면, 그 애씀 자체는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지금 당장 답이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