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와 같이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느니라.
그 무렵 사왓티에는 여러 외도 수행자·바라문·유행자들이 머물고 있었으니,
저마다 다른 견해·다른 성향·다른 취향으로
저마다 다른 견해에 기대어 있었느니라.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nānātitthiyasamaṇabrāhmaṇaparibbājakā sāvatthiyaṁ paṭivasanti nānādiṭṭhikā nānākhantikā nānārucikā nānādiṭṭhinissayanissitā.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이 경은 사왓티 제따 숲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그 무렵 사왓티에는 서로 다른 종교를 따르는 여러 사문과 바라문, 유행자들이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이들은 저마다 다른 견해와 성향과 취향을 지니고 각자 자기가 기대는 견해만을 옳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원문은 '다르다'는 말을 네 번 겹쳐 씀으로써 이들의 갈라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강조합니다. 이 장면은 뒤에 이어지는 열 가지 견해의 다툼과, 세존께서 드시는 장님과 코끼리의 비유가 무엇을 겨냥하는지 미리 알려 주는 배경입니다.
묵상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리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나요? 지금 마음에 떠오르는 의견 하나를 붙잡기 전에, 그것이 내가 본 만큼만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놓아 볼 수 있을까요?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니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고,
또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니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느니라.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ssato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sassato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열 가지 견해 가운데 첫째와 둘째로, 세상이 영원한가 아닌가를 놓고 정반대로 주장하는 두 무리를 나란히 보여 줍니다. 둘 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는 같은 문구로 자기 주장을 못박는데, 바로 이 단정하는 태도가 뒤에서 장님과 코끼리로 비유될 다툼의 뿌리입니다. 세존은 어느 쪽이 맞는지 판정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안다고 외치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으십니다.
묵상
'이것만이 진실'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었던 생각이 최근에 있었나요? 그 생각이 내가 겪은 한 부분에서 나온 것인지, 전체를 다 보고 나온 것인지 잠시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 말 뒤에 '아직 모르는 구석도 있다'는 한마디를 슬쩍 붙여 보면 어떨까요?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니
‘세상은 끝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고,
또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니
‘세상은 끝이 없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느니라.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ntavā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nantavā loko,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셋째와 넷째 견해로, 이번에는 세상의 크기를 두고 유한과 무한이 맞섭니다. 앞서 영원과 비영원을 다투던 것과 같은 틀이 그대로 되풀이되는데, 다투는 대상만 바뀔 뿐 '이것만이 진실'이라 단정하는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같은 형식이 되풀이되는 것 자체가, 한쪽 조각만 만지고 전체를 안다고 외치는 태도가 뒤에 나올 비유의 핵심임을 미리 보여 줍니다.
묵상
크기나 범위를 놓고 '이렇다, 아니다'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질문을 떠올릴 수 있나요? 답을 모른 채로 두어도 괜찮은 질문이 있다는 것을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서두르지 않고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쉬어질 수 있어요.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니
‘영혼이 곧 몸이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고,
또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니
‘영혼과 몸은 다른 것이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느니라.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taṁ jīvaṁ taṁ sarīr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ññaṁ jīvaṁ aññaṁ sarīr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다섯째와 여섯째 견해로, 영혼과 몸의 관계를 놓고 하나다 다르다로 갈라집니다. 이 물음은 몸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지를 둘러싼 해묵은 물음으로 이어지는 자리인데, 경은 어느 쪽 답이 맞는지 가려 주지 않습니다. 대신 앞의 두 쌍과 똑같이 서로 다른 주장을 '이것만이 진실'이라 단정하는 방식이 세 번째로 되풀이됨을 보여 줄 뿐입니다. 다툼의 뿌리가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단정하는 태도에 있음을 겨냥하는 것입니다.
묵상
몸과 마음의 관계를 두고 '이렇다'라고 결론 내리고 싶었던 순간이 있나요? 확실히 알지 못하는 채로 그 물음을 곁에 두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결론을 서두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의 몸과 마음은 이미 여기 있다는 것을 함께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니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고,
또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니
‘여래는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느니라.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일곱째와 여덟째 견해로, 완성된 이(여래)가 죽은 뒤에도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다툽니다. 이 물음은 다른 경들에서도 부처님께서 있다·없다로 곧장 답하지 않으신 것으로 전해지는 주제인데, 여기서도 그 내용을 판정하기보다는 겪어 보지 못한 것을 두고 '이것만이 진실'이라 단정하는 두 견해를 나란히 세울 뿐입니다. 같은 다툼의 형식이 네 번째로 되풀이되는 셈입니다.
묵상
죽음 뒤의 일을 두고 확신에 찬 답을 듣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답을 모른 채로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까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불안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자리일 수 있어요.
어떤 이들은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는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하였느니라.
이들은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며
서로 입의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지냈으니,
‘가르침은 이렇다, 이렇지 않다.
이렇지 않다, 이렇다’라 하였느니라.
Sant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Santi pan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Te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ediso dhammo, nediso dhammo; nediso dhammo, ediso dhammo”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아홉째와 열째 견해로 앞의 일곱째·여덟째에 이어 있으면서 없다, 있지도 없지도 않다는 나머지 두 조합이 나와 열 가지 견해가 모두 채워집니다. 이렇게 열 가지를 다 늘어놓은 뒤, 원문은 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며 서로를 '입의 창'으로 찔렀다는 표현은 말이 실제로 상처를 입히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이렇다, 이렇지 않다'를 되뇌는 마지막 문장은 뒤에 나올 장님들의 다툼과 그대로 겹칩니다.
묵상
의견이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다가 그 말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던 적이 있나요? '이렇다, 이렇지 않다'를 주고받기 전에 잠시 멈추어 볼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서 보면 말의 온도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