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과 코끼리

왕이 나면서부터 눈먼 이들을 모아 코끼리의 각기 다른 부위를 만지게 하니, 저마다 다른 것을 코끼리라 말하며 다툽니다.

‘수행자들이여, 옛날 이 사왓티에 어떤 왕이 있었느니라. 그 왕이 한 사람을 불러 말하되 ‘이보게, 사왓티에 나면서부터 눈먼 이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오라’하였느니라. 그 사람은 ‘그리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라 왕에게 대답하고 사왓티의 눈먼 이들을 모두 데리고 왕께 나아갔느니라.’

Bhūtapubbaṁ, bhikkhave, imissāyeva sāvatthiyā aññataro rājā ahosi. Atha kho, bhikkhave, so rājā aññataraṁ purisaṁ āmantesi: ‘ehi tvaṁ, ambho purisa, yāvatakā sāvatthiyā jaccandhā te sabbe ekajjhaṁ sannipātehī’ti. ‘Evaṁ, devā’ti kho, bhikkhave, so puriso tassa rañño paṭissutvā yāvatakā sāvatthiyā jaccandhā te sabbe gahetvā yena so rāj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ṁ rājānaṁ etadavoca: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세존께서 앞선 진단에 이어 비유를 드시는 이야기의 첫머리입니다. 왕이 '나면서부터 눈먼 이들'을 모두 모으라 명하는 장면인데, 훗날 시각을 잃은 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본 적이 없는 이들을 굳이 고른 것은, 뒤에 나올 각자의 확신이 실제로 본 적 없는 것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신하가 명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은 이 이야기가 앞으로 왕의 뜻대로 순조롭게 흘러갈 것을 예고합니다.

묵상

'본 적 없는 것'에 대해 자신 있게 말했던 경험이 떠오르나요? 그때 그 확신은 어디에서 왔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확신의 크기와 실제로 본 것의 크기가 같았는지도 함께 헤아려 볼 수 있을까요?

‘대왕이시여, 사왓티의 눈먼 이들을 모두 모았습니다’라 아뢰니 ‘그렇다면 눈먼 이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주게’하셨느니라. ‘그리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라 대답하고 그 사람은 눈먼 이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주었느니라.

‘sannipātitā kho te, deva, yāvatakā sāvatthiyā jaccandhā’ti. ‘Tena hi, bhaṇe, jaccandhānaṁ hatthiṁ dassehī’ti. ‘Evaṁ, devā’ti kho, bhikkhave, so puriso tassa rañño paṭissutvā jaccandhānaṁ hatthiṁ dasses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모아 온 눈먼 이들에게 왕이 코끼리를 보여 주라 명하는 대목으로, 이야기의 핵심 장치인 코끼리가 처음 등장합니다. 아직 코끼리의 어느 부위를 보여 줄지는 나오지 않으며, 다음 대목에서 신하가 이들을 나누어 각기 다른 부위를 만지게 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명령과 실행이 짧게 이어지는 문체는 이 이야기가 비유임을 알려 주는 전형적인 화법이며, 독자의 눈을 곧바로 코끼리 쪽으로 이끕니다.

묵상

같은 대상이라도 사람마다 접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럴 때 나는 상대가 만난 부분을 얼마나 궁금해했나요? 상대의 부분과 내 부분을 맞대어 보면 무엇이 더 보일지 궁금하지 않나요?

눈먼 이들 가운데 머리를 만지게 된 이들에게는 ‘이것이 코끼리다’라 하였고, 귀를 만지게 된 이들에게도, 상아를 만지게 된 이들에게도, 코를 만지게 된 이들에게도, 몸통을 만지게 된 이들에게도 똑같이 ‘이것이 코끼리다’라 하였느니라.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sīs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kaṇṇ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dant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soṇḍ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kāy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코끼리의 각 부위를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무리를 나누어 만지게 하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머리·귀·상아·코·몸통을 만진 이들에게 신하는 매번 「이것이 코끼리다」라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데, 원문도 아홉 번 모두 똑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어 이 카드는 그 되풀이를 살려 앞의 다섯 부위를 옮겼습니다. 각자에게 준 것은 코끼리 전체가 아니라 코끼리의 한 부분뿐이었다는 사실이, 이어질 장님들의 서로 다른 대답의 원인이 됩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무언가의 일부분만 보여 주고 전체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혹은 반대로, 일부분만 전해 듣고 전체를 안다고 여긴 적은 없었나요? 어느 쪽이든, 그 순간을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다리를 만지게 된 이들에게도, 넓적다리를 만지게 된 이들에게도, 꼬리를 만지게 된 이들에게도, 꼬리털 끝을 만지게 된 이들에게도 신하는 똑같이 ‘이것이 코끼리다’라 하였느니라.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pād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satthi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naṅguṭṭha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Ekaccānaṁ jaccandhānaṁ hatthissa vāladhiṁ dassesi: ‘ediso, jaccandhā, hatthī’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앞서 다섯 부위에 이어 다리·넓적다리·꼬리·꼬리털 끝까지, 아홉 무리 전부에게 코끼리를 보여 주는 장면이 마무리됩니다. 원문은 이 마지막 네 부위에서도 「이것이 코끼리다」라는 같은 문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데, 이렇게 아홉 번 반복되는 형식 자체가 그들이 저마다 다른 것을 만지고도 똑같은 확신을 얻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음 장면에서 이 아홉 무리가 왕 앞에서 벌이는 다툼은 이 대목에서 이미 예비되어 있습니다.

묵상

내가 겪은 아주 작은 경험 하나가 마치 전체를 다 아는 것 같은 확신으로 이어졌던 적이 있나요? 그 확신과 실제로 겪은 것의 크기를 견주어 보면 어떨까요? 둘 사이의 틈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수행자들이여, 그 사람은 눈먼 이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준 뒤 왕께 나아가 아뢰되 ‘대왕이시여, 저 눈먼 이들이 코끼리를 보았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 여기시면 가소서’라 하였느니라.

Atha kho, bhikkhave, so puriso jaccandhānaṁ hatthiṁ dassetvā yena so rāj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ṁ rājānaṁ etadavoca: ‘diṭṭho kho tehi, deva, jaccandhehi hatthī; yassadāni kālaṁ maññasī’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신하가 임무를 마쳤음을 왕에게 알리는 짧은 연결 장면입니다. '보았다'는 말은 실제로는 만졌을 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어긋남을 품고 있으며, 이 말 그대로를 옮겨 다음 장면에서 왕이 직접 눈먼 이들을 찾아가 확인하는 절차로 이어 줍니다. 왕에게 편한 때를 고르라 청하는 예법도 그대로 살려 옮겼는데, 이런 격식이 다음에 벌어질 소동과 대조를 이룹니다.

묵상

'보았다'는 말과 '겪어 보았다'는 말이 서로 다른 뜻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 둘의 차이를 가만히 짚어 보면 어떨까요? 평소 내가 쓰는 '안다'는 말도 한번 그렇게 짚어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왕은 그 눈먼 이들에게 다가가 물으셨으니 ‘눈먼 이들이여, 그대들은 코끼리를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저희는 코끼리를 보았습니다’라 하니 ‘눈먼 이들이여, 그렇다면 말해 보라,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는가?’라 하셨느니라.

Atha kho, bhikkhave, so rājā yena te jaccandh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e jaccandhe etadavoca: ‘diṭṭho vo, jaccandhā, hatthī’ti? ‘Evaṁ, deva, diṭṭho no hatthī’ti. ‘Vadetha, jaccandhā, kīdiso hatthī’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왕이 직접 눈먼 이들 앞에 나서서 묻는 대목으로, 이야기의 절정으로 넘어가는 문턱입니다. '보았는가'라는 왕의 물음에 눈먼 이들은 주저 없이 '보았다'고 답하는데, 이 대답에는 자신이 만진 것이 코끼리 전체라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습니다. 왕의 다음 물음 '어떻게 생겼는가'는 바로 이 전제를 시험에 부치는 질문이며, 뒤이어 아홉 가지 서로 다른 대답이 쏟아지게 됩니다.

묵상

'그렇다, 나는 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가 나중에 그것이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은 적이 있나요?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먼저 물어보고 싶나요?

수행자들이여, 머리를 만졌던 눈먼 이들은 이렇게 말하였으니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항아리와 같습니다’라 하였고, 귀를 만졌던 이들은 ‘코끼리는 마치 곡식을 까부르는 키와 같습니다’라 하였고, 상아를 만졌던 이들은 ‘코끼리는 마치 쟁기 날과 같습니다’라 하였느니라.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sīsaṁ diṭṭhaṁ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kumbh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kaṇṇ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supp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dant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khīlo’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드디어 아홉 무리가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머리를 만진 이는 항아리를, 귀를 만진 이는 곡식 까부르는 키를, 상아를 만진 이는 쟁기 날을 코끼리라 말하는데, 이는 각자 만진 부위의 생김새를 그대로 옮긴 비유입니다. 셋 다 '코끼리는 이렇다'고 확신에 차 있지만, 정작 코끼리 전체와는 거리가 먼 것을 코끼리라 부르고 있다는 데 이 장면의 어긋남이 있습니다.

묵상

내가 겪은 작은 경험을 두고 '이것이 전부다'라고 이름 붙였던 순간이 있나요? 그 이름이 실제로 가리키는 것과 얼마나 가까웠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다른 이름을 붙인 사람의 말도 함께 들어 보면 무엇이 더해질까요?

코를 만졌던 이들은 ‘코끼리는 마치 쟁기의 채와 같습니다’라 하였고, 몸통을 만졌던 이들은 ‘코끼리는 마치 곳간과 같습니다’라 하였고, 다리를 만졌던 이들은 ‘코끼리는 마치 기둥과 같습니다’라 하였느니라.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soṇḍ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naṅgalīsā’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kāy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koṭṭh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pādo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thūṇo’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코를 만진 이는 쟁기를 끄는 채를, 몸통을 만진 이는 곳간을,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을 코끼리라 말합니다. 앞선 세 대답과 마찬가지로 저마다 자신이 만진 부위의 크기와 모양을 그대로 코끼리 전체에 대입하고 있습니다. 여섯 가지 대답이 쌓일수록 코끼리 하나를 두고 이렇게까지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뚜렷해지고, 다음 세 가지 대답에서 그 목록이 마저 채워집니다.

묵상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기억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차이를 틀렸다고만 여기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 차이들을 다 모으면 무엇이 더 보일지 궁금하지 않나요?

넓적다리를 만졌던 이들은 ‘코끼리는 마치 절구와 같습니다’라 하였고, 꼬리를 만졌던 이들은 ‘코끼리는 마치 절굿공이와 같습니다’라 하였고, 꼬리털 끝을 만졌던 이들은 ‘코끼리는 마치 빗자루와 같습니다’라 하였느니라.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satthi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udukkhal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naṅguṭṭhaṁ diṭṭhaṁ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musalo’ti. Yehi, bhikkhave, jaccandhehi hatthissa vāladhi diṭṭho ahosi, te evamāhaṁsu: ‘ediso, deva, hatthī seyyathāpi sammajjanī’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넓적다리는 절구로, 꼬리는 절굿공이로, 꼬리털 끝은 빗자루로 이어지며 아홉 가지 대답이 모두 마무리됩니다. 항아리에서 빗자루까지 이어진 이 아홉 비유는 하나같이 일상에서 흔히 보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눈먼 이들이 자신이 아는 세계 안에서 성실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성실함과는 별개로, 아홉 개의 답은 서로 조금도 들어맞지 않으며 바로 다음 장면에서 부딪히고 맙니다.

묵상

내가 아는 만큼, 겪은 만큼으로 성실하게 설명했지만 다른 사람과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나요? 그럴 때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요? 서로 다른 설명을 한자리에 놓고 맞춰 볼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코끼리는 이렇다, 이렇지 않다. 이렇지 않다, 이렇다’라 하며 그들은 서로 주먹으로 치고받았으니, 수행자들이여, 그 왕은 그 모습에 기뻐하였느니라.

Te ‘ediso hatthī, nediso hatthī; nediso hatthī, ediso hatthī’ti aññamaññaṁ muṭṭhīhi saṁsumbhiṁsu. Tena ca pana, bhikkhave, so rājā attamano ahos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

배경

아홉 무리의 말다툼이 마침내 주먹질로 번지는 장면입니다. 앞서 열 가지 견해를 다투던 외도들이 '가르침은 이렇다, 이렇지 않다'라 되뇌던 것과 똑같은 말이 여기서는 '코끼리는 이렇다, 이렇지 않다'로 되풀이되어, 두 이야기가 같은 다툼의 얼개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왕이 이 싸움을 보고 기뻐했다는 마지막 문장은 뜻밖이지만, 다음 대목에서 이 비유 전체가 무엇을 겨냥했는지를 세존께서 직접 밝히십니다.

묵상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다투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과 함께 묘한 흥미를 느낀 적이 있나요? 그 다툼을 지켜보는 나의 자리는 어디쯤이었을까요? 구경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양쪽 말을 다시 들어 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