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외도 유행자들도 눈멀고 볼 줄을 모르니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지 알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알지 못하느니라. 그들은 이렇게 알지 못한 채로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며 서로 입의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지내니, ‘이것이 진리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 진리다’라 하느니라.
Evamevaṁ kho,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andhā acakkhukā. Te atthaṁ na jānanti anatthaṁ na jānanti, dhammaṁ na jānanti adhammaṁ na jānanti. Te atthaṁ ajānantā anatthaṁ ajānantā, dhammaṁ ajānantā adhammaṁ ajānantā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ediso dhammo, nediso dhammo; nediso dhammo, ediso dhammo’”ti.
우다나 Ud 6.4 여러 외도경 (Paṭhamanānātitthiyasutta)배경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를 마치신 뒤, 세존께서는 이 비유가 무엇을 겨냥했는지 직접 밝히십니다. '이와 같이'라는 말로 코끼리를 두고 다투던 장님들과 진리를 두고 다투던 외도들을 정면으로 겹쳐 놓는데, 이는 이 경의 첫머리에서 하신 진단과 같은 내용이면서도 이번에는 비유를 거친 뒤라 그 뜻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눈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부분만 만지고 전체를 안다고 여기는 태도가 다툼의 뿌리임이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묵상
코끼리 이야기를 들은 지금,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안다고 여긴 자리가 있는지 떠올려 볼 수 있나요? 그 자리를 찾았다면, 오늘은 그것을 조금 내려놓아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