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에게 폭력을 내려놓고
그들 중 누구도 해치지 않으며
자식조차 바라지 않거늘 하물며 벗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Sabbesu bhūtesu nidhāya daṇḍaṁ, Aviheṭhayaṁ aññatarampi tesaṁ; Na puttamiccheyya kuto sahāyaṁ,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무소의 뿔경의 첫 게송으로, 이후 이 경 전체에서 서른아홉 번 되풀이되는 후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를 처음 선보입니다. "자식조차 바라지 않거늘 하물며 벗이랴"는 더 크게 여겨지는 것(자식)을 먼저 놓고 더 작게 여겨지는 것(벗)은 말할 것도 없다고 짚는 화법으로, 관계를 향한 기대를 가장 무거운 것부터 가볍게 하라는 뜻입니다. 첫 줄이 "모든 생명에게 폭력을 내려놓고"로 시작하는 것은 이 경의 "홀로 감"이 남을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출발함을 보여 줍니다. 관계 자체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그 관계에 기대어 흔들리지 않으려는 자리에서 첫걸음을 뗀다는 뜻입니다.
묵상
"하물며 벗이랴"라는 구절이 조금 서늘하게 다가올 수도 있어요. 곁에 누군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에요. 오늘 하루 중에, 누군가가 곁에 없어도 내가 나 자신으로 온전히 서 있다고 느낀 짧은 순간이 있었나요? 없었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가까이 지내는 데서 정이 생기고
정을 따라 이 괴로움이 일어나니
애정에서 비롯한 허물을 살펴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벗과 동무를 가엾이 여기다가
마음이 얽매여 참된 뜻을 잃나니
친밀함 속에 있는 이 두려움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Saṁsaggajātassa bhavanti snehā, Snehanvayaṁ dukkhamidaṁ pahoti; Ādīnavaṁ snehajaṁ pekkhamāno,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Mitte suhajje anukampamāno, Hāpeti atthaṁ paṭibaddhacitto; Etaṁ bhayaṁ santhave pekkhamāno,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짝을 이루는 두 게송으로, 앞 게송의 "폭력을 내려놓음"에 이어 이번에는 애착이 낳는 괴로움을 두 각도에서 짚습니다. 둘째 게송은 "가까이 지내는 데서 정이 생기고, 정을 따라 이 괴로움이 일어나니"라며 친밀함과 괴로움을 원인과 결과로 곧장 잇습니다. 셋째 게송은 벗을 아끼는 마음(연민) 자체가 아니라 그 마음에 "마음이 얽매여" 정작 이루려던 뜻을 놓치게 되는 상황을 문제 삼습니다. 두 게송 모두 "재앙"과 "두려움"이라는 말로 끝맺어,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에 매여 방향을 잃는 상태를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벗을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정작 하려던 일이나 결심에서 멀어진 적이 있나요?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서 벗을 아끼는 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그 순간에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어요.
무성한 대숲의 가지들이 서로 얽히듯이
자식과 아내를 향한 마음이 그러하니
대나무 새순처럼 걸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Vaṁso visālova yathā visatto, Puttesu dāresu ca yā apekkhā; Vaṁsakkaḷīrova asajjamāno,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대나무의 비유가 나오는 게송입니다. 무성하게 자란 대나무는 가지와 가지가 서로 얽혀 뻗어 나가지 못하는 반면, 갓 돋아난 대나무 새순은 아직 얽힐 것이 없어 곧게 자랍니다. 이 대비를 통해 "자식과 아내를 향한 마음"이 얽힌 대숲에, 걸림 없는 상태가 새순에 비유됩니다. 앞선 두 게송이 벗과의 관계를 다뤘다면 이 게송은 가족 관계로 범위를 넓혀, 소중한 이를 향한 마음이 지나치게 얽매이면 오히려 뻗어 나갈 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대나무 가지들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지금 나의 마음도 어딘가에 그렇게 얽혀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가족을 아끼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마음이 나를 옥죄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요.
숲 속의 매이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원하는 곳으로 가듯이
지혜로운 이는 그 자유로움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벗들 사이에서는 매사에 상의해야 하나니
머무를 때도 나설 때도 길을 갈 때도 그러하니
누구도 얽매지 않는 그 자유로움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Migo araññamhi yathā abaddho, Yenicchakaṁ gacchati gocarāya; Viññū naro seritaṁ pekkhamāno,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Āmantanā hoti sahāyamajjhe, Vāse ṭhāne gamane cārikāya; Anabhijjhitaṁ seritaṁ pekkhamāno,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짝을 이루는 두 게송으로 모두 "자유로움"을 살펴보라는 말로 셋째 줄이 끝납니다. 다섯째 게송은 매이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원하는 곳으로 가는 모습을 자유의 본보기로 듭니다. 여섯째 게송은 그 자유의 반대편, 즉 "벗들 사이에서는 매사에 상의해야 하나니 머무를 때도 나설 때도 길을 갈 때도 그러하니"라며 무리에 속해 있으면 사소한 거처와 일정까지 매번 맞춰야 하는 처지를 구체적으로 짚습니다. 두 게송을 나란히 두어, 자유로움이 관계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슴처럼 매이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와 함께 지내다 보면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을 매번 맞추고 상의해야 할 때가 있지요.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 안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흐려질 때도 있어요. 요즘 나는 얼마나 내 뜻대로 하루를 정할 수 있었나요?
벗들 사이에는 놀이와 즐거움이 있고
자식에게는 큰 사랑이 있으나
사랑하는 이와 헤어질 그 괴로움을 꺼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Khiḍḍā ratī hoti sahāyamajjhe, Puttesu ca vipulaṁ hoti pemaṁ; Piyavippayogaṁ vijigucchamāno,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이 게송은 벗과 자식이 주는 기쁨을 부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벗들 사이에는 놀이와 즐거움이 있고, 자식에게는 큰 사랑이 있으나"라고 먼저 그 기쁨을 인정한 뒤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질 그 괴로움을 꺼려"라며 그 기쁨에는 언젠가 헤어짐이 따른다는 사실을 함께 놓습니다. 앞의 게송들이 관계의 얽매임 자체를 문제 삼았다면, 이 게송은 사랑이 크면 클수록 이별의 아픔도 커진다는 점을 짚어, 왜 그런 기쁨조차 붙들지 않으려 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묵상
벗과 웃고 떠들던 시간, 자식을 향한 사랑, 이런 것들은 분명 소중하고 좋은 것이지요. 그 좋음 뒤에 언젠가의 이별이 함께 온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것과 그 기쁨에 매달리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사방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고
무엇을 얻든 그것으로 만족하며
온갖 위험을 견디어내어 두려움이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Cātuddiso appaṭigho ca hoti, Santussamāno itarītarena; Parissayānaṁ sahitā achambhī,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앞선 게송들이 벗어나야 할 것(가족, 벗과의 얽매임)을 말했다면, 이 게송은 그렇게 홀로 선 이가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방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고"는 특정한 장소나 사람에게 매이지 않았다는 뜻이고, "무엇을 얻든 그것으로 만족하며"는 원하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여기에 "위험을 견디어내어 두려움이 없이"가 더해져, 홀로 감이 단순한 결핍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도 안정되어 있는 상태임을 밝힙니다.
묵상
지금 가진 것,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상관없이 스스로 괜찮다고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순간이 잘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만족한다"는 것은 원하는 걸 다 이루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서 있을 수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울지도 몰라요.
출가한 이들 중에도 다루기 어려운 이가 있고
집에 사는 재가자들 또한 그러하니
남의 자식 일에 무심하게 되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Dussaṅgahā pabbajitāpi eke, Atho gahaṭṭhā gharamāvasantā; Appossukko paraputtesu hutvā,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이 게송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나란히 두어 "함께 지내는 어려움"이 출가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있는 일임을 밝힙니다. "출가한 이들 중에도 다루기 어려운 이가 있고 집에 사는 재가자들 또한 그러하니"는 어느 쪽에 속하든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남의 자식 일에 무심하게 되어"는 앞선 여러 게송에서 다룬 "자식에 대한 애착"을 다시 가져와, 이번에는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에 대한 참견까지 내려놓으라는 뜻으로 범위를 넓힙니다.
묵상
가까운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뜻이 맞지 않아 힘든 순간이 생기곤 하지요. 그런 어려움이 나만 겪는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가 있다면, 그것을 꼭 내 탓으로만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재가자의 표식들을 내려놓나니
잎이 다 떨어진 코빌라라 나무처럼
용맹한 이는 집의 속박을 끊고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Oropayitvā gihibyañjanāni, Sañchinnapatto yathā koviḷāro; Chetvāna vīro gihibandhanāni,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첫 주제(가족과 벗에 대한 집착)를 마무리하는 게송으로, 지금까지 다룬 마음의 얽매임을 실제 출가라는 행동으로 옮기는 장면입니다. "재가자의 표식들을 내려놓나니"는 집에 매인 삶의 표시들을 벗는다는 뜻이고, "잎이 다 떨어진 코빌라라 나무처럼"은 인도에서 계절이 바뀌면 스스로 잎을 떨구는 나무를 들어, 억지로 뜯기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 자연스레 놓아지는 모습을 그립니다. 지금까지 여러 게송에 걸쳐 짚어 온 가족과 벗에 대한 마음의 정리가, 여기서 "집의 속박을 끊고서"라는 구체적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이 게송은 출가라는 특정한 삶의 방식을 그리고 있어서, 지금 나의 삶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다만 "잎이 다 떨어진 나무"처럼,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스레 내려놓아지는 것이 내 삶에도 있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