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겨듣고 스스로 지혜를 얻어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립니다.

어울려 무리 짓기를 즐기는 이에게는 한때의 해탈조차 있을 수 없나니 태양의 후예께서 하신 말씀을 새겨듣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Aṭṭhānataṁ saṅgaṇikāratassa, Yaṁ phassaye sāmayikaṁ vimuttiṁ; Ādiccabandhussa vaco nisamma,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이 경에서 처음으로 부처님을 직접 가리키는 게송입니다. "태양의 후예"는 부처님이 속한 사꺄족이 태양의 혈통을 잇는다고 전해지는 데서 온 존칭입니다. "어울려 무리 짓기를 즐기는 이에게는 한때의 해탈조차 있을 수 없나니"는 지금까지 이어 온 홀로 감의 권유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를 둔 것임을 밝힙니다. "한때의 해탈"은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라 선정 등을 통해 잠시 번뇌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말하며, 그런 잠정적 자유조차 무리 지음을 즐기는 상태에서는 얻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묵상

"태양의 후예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구절처럼, 지금 내가 어렵거나 흔들릴 때 새겨듣고 싶은 말이나 사람이 있나요? 그것이 이 경의 말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나를 붙잡아 주는 말 한마디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릇된 견해의 소용돌이를 뛰어넘어 바른 길에 들어서 도를 얻었으니 스스로 지혜가 생겨나 남의 인도가 필요 없으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Diṭṭhīvisūkāni upātivatto, Patto niyāmaṁ paṭiladdhamaggo; Uppannañāṇomhi anaññaneyyo,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앞 게송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듣던 화자가, 이 게송에서는 스스로 지혜를 얻은 상태로 나아갑니다. "그릇된 견해의 소용돌이를 뛰어넘어"는 여러 갈래로 흔들리는 견해들을 지나왔다는 뜻이고, "스스로 지혜가 생겨나 남의 인도가 필요 없으니"는 더 이상 다른 이의 가르침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이 게송의 홀로 감은 앞서와 달리 가족이나 벗과의 관계가 아니라, 스승이나 가르침에 대한 의존에서도 벗어난다는 더 나아간 차원의 홀로 섬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의 조언이나 가르침이 늘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지요. 반대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었던 순간도 있었을 거예요. 지금 내 삶에서 나 스스로 답을 찾아본 경험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탐욕이 없고 거짓이 없고 갈증이 없으며 위선도 없고 미혹의 찌꺼기마저 다 녹아 없어져 온 세상에서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Nillolupo nikkuho nippipāso, Nimmakkho niddhantakasāvamoho; Nirāsayo sabbaloke bhavitvā,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앞 게송의 "지혜"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 상태로 나타나는지를 열거로 보여 주는 게송입니다. "탐욕, 거짓, 갈증, 위선, 미혹의 찌꺼기"까지 다섯 가지가 없다고 나열한 뒤, "온 세상에서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어"로 마무리합니다. 하나씩 없앤 것을 나열하는 방식은 이 경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형태로, 홀로 감이 도달하는 마음이 무엇을 비워 낸 자리인지를 조목조목 짚어 보여 줍니다.

묵상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말이 무기력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채워지지 않아 안달하지 않는 상태에 가까워요. 지금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그 바람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가만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나쁜 벗을 멀리해야 하나니 이로움을 보지 못하고 그릇된 길에 빠진 이라 스스로도 방종과 방일에 몰두하는 이를 가까이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많이 배우고 가르침을 잘 지닌 이를 가까이하라 훌륭하고 지혜로운 벗을 사귀어야 하리니 뜻을 알아 의심을 다스리고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Pāpaṁ sahāyaṁ parivajjayetha, Anatthadassiṁ visame niviṭṭhaṁ; Sayaṁ na seve pasutaṁ pamattaṁ,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Bahussutaṁ dhammadharaṁ bhajetha, Mittaṁ uḷāraṁ paṭibhānavantaṁ; Aññāya atthāni vineyya kaṅkhaṁ,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짝을 이루는 두 게송으로, 앞서 열한째와 열두째 게송에서 다뤘던 "좋은 벗과 그렇지 않은 벗"의 주제를 다시 가져와 더 구체적으로 풀어냅니다. 스물셋째 게송은 "이로움을 보지 못하고 그릇된 길에 빠진 이", "방종과 방일에 몰두하는 이"를 피해야 할 벗의 조건으로 들고, 스물넷째 게송은 정반대로 "많이 배우고 가르침을 잘 지닌 이", "훌륭하고 지혜로운 벗"을 가까이해야 할 벗의 조건으로 듭니다. 두 게송 모두 후렴은 "혼자서 가느니라"이지만, 그 앞에는 벗을 가려 사귀라는 구체적인 기준이 자리해 이 경이 무조건적인 단절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

묵상

곁에 두고 싶은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나에게도 있나요? 그 기준이 반드시 "옳고 그름"일 필요는 없어요. 지금 나를 흔들리게 하는 관계와 나를 지탱해 주는 관계를 가만히 떠올려 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아요.

세상의 놀이와 즐거움과 감각적 욕망을 하찮게 여겨 더는 미련을 두지 않으며 꾸밈의 자리를 멀리하고 진실만을 말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느니라.

“Khiḍḍaṁ ratiṁ kāmasukhañca loke, Analaṅkaritvā anapekkhamāno; Vibhūsanaṭṭhānā virato saccavādī,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숫따니빠따 Snp 1.3 무소의 뿔경 (Khaggavisāṇasutta)

배경

이 대목(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을 마무리하는 게송으로, "세상의 놀이와 즐거움과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태도를 다시 짚어 앞서 열여섯째·열일곱째 게송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꾸밈의 자리를 멀리하고 진실만을 말하며"는 겉치레와 거짓을 함께 내려놓는다는 뜻으로, 즐거움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과 말과 태도를 꾸미지 않는 것이 나란히 놓입니다. 스무째 게송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스물한째 게송에서 스스로 지혜를 얻고, 이 게송에서 실제 태도로 드러나는 흐름입니다.

묵상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요. 오늘 하루 중에, 애써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말하거나 표현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없었다고 해도 괜찮아요. 그런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시작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