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느낌이든 … 어떤 인식이든 … 어떤 의지적 형성이든 …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의식이든, 안이거나 밖이거나, 거칠거나 미세하거나, 열등하거나 뛰어나거나, 멀거나 가까이 있거나, 모든 의식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느니라.”
Yā kāci vedanā … yā kāci saññā … ye keci saṅkhārā … yaṁ kiñci viññāṇaṁ atītānāgatapaccuppannaṁ ajjhattaṁ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ṁ vā sukhumaṁ vā hīnaṁ vā paṇītaṁ vā yaṁ dūre santike vā, sabbaṁ viññāṇ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상윳따 니까야 SN 22.49 소나경 (Soṇasutta)배경
물질에 제시된 전체 관찰이 나머지 네 무더기로 이어집니다. 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은 각각 “어떤 것이든 …”으로 줄어 있으며, 각 생략에는 시간·안팎·거침과 미세함·열등과 뛰어남·멂과 가까움의 전체 목록, 세 자아 부정,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라는 바른 지혜의 관찰이 반복됩니다. 의식에서는 이 전부가 다시 온전히 나타나 반복의 범위를 확정합니다. 수행 의미는 물질에만 무아의 관찰을 한정하지 않고 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의식의 모든 범위에도 같은 세 부정을 빠짐없이 적용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의식 가운데 “나의 것”이라고 가장 단단히 붙드는 하나가 있나요? 그것도 과거부터 현재, 안에서 밖, 멀고 가까움까지 변하는 범위에 놓아 보면 세 부정은 어떻게 들리나요? 세 표현 가운데 특히 머무는 하나가 있는지도 살필 수 있을까요? 모른다고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