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여, 이와 같이 보는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도, 느낌에도, 인식에도, 의지적 형성에도, 의식에도 싫증이 나느니라. 싫증이 나면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면 해탈하느니라.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앎이 생기느니라. 그는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느니라.”
Evaṁ passaṁ, soṇa,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nibbindati, saññāyapi nibbindati, saṅkhāresupi nibbindati,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상윳따 니까야 SN 22.49 소나경 (Soṇasutta)배경
경의 결구는 앞의 yathābhūta 관찰이 가져오는 순서를 밝힙니다. 이와 같이 보는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의식의 다섯 무더기 모두에 싫증이 납니다. 이어 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의 순서대로 싫증에서 탐욕의 빛바램으로, 탐욕의 빛바램에서 해탈로 나아갑니다. 해탈한 뒤에는 “해탈했다”는 앎이 생기고, 태어남을 다함·청정한 삶의 완성·해야 할 일의 마침·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음을 아는 네 겹 정형구로 닫힙니다. 수행 의미는 해탈을 자기평가로 추측하는 데 있지 않고, 바른 봄에서 결실까지의 경문상 인과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싫증·탐욕의 빛바램·해탈·앎”이라는 순서에서 지금 가장 오래 머물러 읽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성취 여부를 재기보다 그 말이 앞뒤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순서를 천천히 읽을 때 호흡이나 주의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답하지 않거나 이 결구를 조용히 읽는 것으로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