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들이 나타나든 나타나지 않든, 그 요소는 그대로 서 있느니라. 이 이치는 늘 한결같이 정해져 있으며, 조건에 따라 반드시 그렇게 되는 성질이니라. 여래는 그것을 바르게 깨닫고 완전히 이해하느니라. 깨닫고 이해한 뒤 이를 알리고 가르치고 드러내 보이느니라. 그리고 ‘보라’고 말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의지적 형성이 생기느니라.’”
uppādā vā tathāgatānaṁ anuppādā vā tathāgatānaṁ, ṭhitāva sā dhātu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 idappaccayatā. Taṁ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ā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Passathā’ti cāha: ‘avijjāpaccayā, bhikkhave, saṅkhārā’.
상윳따 니까야 SN 12.20 조건경 (Paccayasutta)배경
조건 사슬이 무명→의지적 형성에 이르자, 앞에서 태어남→늙음과 죽음에 붙었던 정형구가 온전히 다시 나옵니다. 여래들의 출현 여부와 무관한 요소, 이치로서 머무름·이치의 정해짐·특정한 조건성, 그리고 깨닫고 이해한 여래가 일곱 동사로 이를 드러내는 순서가 같습니다. 마지막의 “보라”는 이번에는 무명을 조건으로 의지적 형성이 생긴다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반복은 사슬의 처음과 끝에 같은 법칙성이 적용됨을 확인하며, 새로운 원인이나 항목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묵상
처음 예와 같은 정형구가 무명과 의지적 형성의 관계에서 다시 온전히 나올 때 어떤 점이 강조되어 보이나요? 반복이 지루한지 중요하게 느껴지는지 정답은 없어요. 같은 법칙을 두 끝에 놓는 구조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