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고 괴로운 다섯 무더기는 있다

현자들과 부처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질의 다섯 무더기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의 현자들이 있다고 인정하고 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수행자들이여,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질인 물질을 현자들은 있다고 인정하고, 나도 그것을 ‘있다’고 말하느니라. 느낌은 무상하고 …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질인 의식을 현자들은 있다고 인정하고, 나도 그것을 ‘있다’고 말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현자들이 있다고 인정하고 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Kiñca, bhikkhave,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yamahaṁ ‘atthī’ti vadāmi? Rūpaṁ, bhikkhave, aniccaṁ dukkhaṁ vipariṇāmadhammaṁ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atthī’ti vadāmi. Vedanā aniccā …pe… viññāṇaṁ aniccaṁ dukkhaṁ vipariṇāmadhammaṁ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atthī’ti vadāmi. Idaṁ kho, bhikkhave, atthisammataṁ loke paṇḍitānaṁ; ahampi taṁ ‘atthī’ti vadāmi.

상윳따 니까야 SN 22.94 꽃의경 (Pupphasutta)

배경

앞 카드와 대칭을 이루는 두 번째 완결 문답입니다. 이번에는 물질과 의식에 무상함·괴로움·변하는 성질이라는 세 한정이 붙고, 현자들과 부처님이 그것을 “있다”고 말합니다. “느낌은 무상하고 …pe…”에 놓인 한 생략표는 느낌에서 시작해 인식과 의지적 형성까지 같은 세 한정, 현자들의 판정, 부처님의 응답이 각각 되풀이됨을 나타냅니다. 이는 무상한 현상을 허무하다고 지우는 말이 아니라 조건 지어져 변하는 다섯 무더기의 현실을 인정하는 문장입니다. 이 문답의 표현 범위는 세 한정과 있음의 판정이며, 별도의 생멸 정형구는 말하지 않습니다.

묵상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 있다”는 문장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낙관이나 비관 가운데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어요. 앞 카드의 없음과 이 카드의 있음이 서로 어떤 범위를 가리키는지만 비교해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