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숲에서도 갈애가 짝으로 남다

외딴 숲의 조용한 처소에 있어도 갈애를 버리지 않았다면 짝과 함께 머문다고 밝힙니다.

“미가잘라여, 이렇게 머무는 수행자는 비록 소리도 소음도 적고 인적이 드물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홀로 물러나기에 알맞은 숲과 밀림의 외딴 처소를 이용하더라도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갈애가 그의 짝인데 그것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짝과 함께 머무는 이’라 하느니라.”

Evaṁvihārī ca, migajāla, bhikkhu kiñcāpi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ti appasaddāni appanigghosāni vijanavātāni manussarāhasseyyakāni paṭisallānasāruppāni; atha kho sadutiyavihārīti vuccati. Taṁ kissa hetu? Taṇhā hissa dutiyā, sāssa appahīnā. Tasmā ‘sadutiyavihārī’ti vuccati.

상윳따 니까야 SN 35.63 첫 번째 미가잘라경 (Paṭhamamigajālasutta)

배경

부처님은 앞의 감각 조건을 장소의 문제와 분리해 설명합니다. 수행자가 숲과 밀림의 외딴 처소를 이용하고, 그곳이 소리와 소음이 적고 인적이 드물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홀로 물러나기에 알맞더라도, 앞처럼 머문다면 “짝과 함께 머무는 이”입니다. “무슨 까닭이냐?”라는 질문 뒤에 갈애가 그의 짝이고 아직 버려지지 않았다는 답이 곧바로 놓이며, 같은 명칭으로 다시 닫힙니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외형을 무시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내적 홀로 머묾이 완성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또한 외딴 수행처를 실패나 회피의 장소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묵상

사람과 소음이 적은 장소에 있어도 마음속에서 계속 짝이 되어 따라오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혼자 있기를 잘하거나 못했다고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장소와 갈애를 서로 다른 기준으로 둔 점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