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을 붙들지 않으면 즐김이 소멸하다

형상을 기뻐하거나 붙들지 않을 때 즐김·탐욕·얽힘이 차례로 없어진다고 밝힙니다.

“미가잘라여, 눈으로 알아지는 형상들 가운데 바람직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감각적 욕망과 얽혀 탐낼 만한 것들이 있느니라. 만일 수행자가 그것들을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고 붙들어 머물지도 않는다면, 그가 그렇게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고 붙들어 머물지도 않을 때 즐김이 소멸하느니라. 즐김이 없으면 탐욕도 없고, 탐욕이 없으면 얽힘도 없느니라. 미가잘라여, 즐김의 결박에서 풀린 수행자를 홀로 머무는 이라 하느니라. …”

Santi ca kho, migajāla,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Tañce bhikkhu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ṁ anabhinandato anabhivadato anajjhosāya tiṭṭhato nandī nirujjhati. Nandiyā asati sārāgo na hoti; sārāge asati saṁyogo na hoti. Nandisaṁyojanavisaṁyutto kho, migajāla, bhikkhu ekavihārīti vuccati …pe…

상윳따 니까야 SN 35.63 첫 번째 미가잘라경 (Paṭhamamigajālasutta)

배경

부처님은 같은 형상들을 두고 앞 카드와 정확히 반대되는 조건을 펼칩니다. 수행자가 기뻐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으며 붙들고 머물지 않는다는 세 부정이 먼저 나오고, 같은 세 부정을 반복해 그때 즐김이 소멸한다고 밝힙니다. 즐김이 없으면 탐욕이 없고 탐욕이 없으면 얽힘도 없다는 두 부정 조건이 이어집니다. visaṁyutta는 즐김이라는 결박에서 풀린 상태이며, 그런 수행자를 “홀로 머무는 이”라 합니다. 끝의 생략 부호는 같은 구조가 다른 감각 갈래에 반복됨을 표시합니다. 이는 감각 대상을 없애거나 감각 경험을 억누르라는 말이 아니라,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드는 동작이 없는 경우를 정의합니다.

묵상

기뻐하지 않음·환영하지 않음·붙들지 않음이라는 세 부정 뒤에 즐김의 소멸이 놓일 때 앞의 발생 사슬과 무엇이 대칭인가요? 자신이 이미 그렇게 하는지 시험할 필요는 없어요. 두 사슬의 동사만 나란히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