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루산과 큰 땅이 불타 없어져도

산들의 왕 수메루와 큰 땅이 불타 사라져도 같은 조건의 중생들에게 괴로움의 끝을 말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산들의 왕 수메루가 불타 없어져 더는 존재하지 않는 때가 오느니라. 그러나 수행자들이여, 무명에 가려지고 갈애에 묶인 채 치달리고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괴로움이 끝난다고 나는 말하지 않느니라. 수행자들이여, 큰 땅이 불타 없어져 더는 존재하지 않는 때가 오느니라. 그러나 수행자들이여, 무명에 가려지고 갈애에 묶인 채 치달리고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괴로움이 끝난다고 나는 말하지 않느니라.”

Hoti so, bhikkhave, samayo yaṁ sineru pabbatarājā ḍayhati vinassati na bhavati; na tvevāhaṁ, bhikkhave, avijjānīvaraṇānaṁ sattānaṁ taṇhāsaṁyojanānaṁ sandhāvataṁ saṁsarataṁ dukkhassa antakiriyaṁ vadāmi. Hoti so, bhikkhave, samayo yaṁ mahāpathavī ḍayhati vinassati na bhavati; na tvevāhaṁ, bhikkhave, avijjānīvaraṇānaṁ sattānaṁ taṇhāsaṁyojanānaṁ sandhāvataṁ saṁsarataṁ dukkhassa antakiriyaṁ vadāmi.

상윳따 니까야 SN 22.99 가죽 끈의경 (Gaddulabaddhasutta)

배경

두 번째와 세 번째 대조는 불에 타는 대상을 함께 묶습니다. 먼저 산들의 왕 수메루가 불타 없어져 더 존재하지 않고, 다음에 큰 땅도 같이 불타 없어져 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 장면 뒤에는 무명에 가려지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 치달림과 윤회, 괴로움이 끝난다는 말에 대한 자신의 부정이 모두 되풀이됩니다. 바다와 달리 이 두 대상은 불타고 사라지는 동일한 동작을 갖습니다. 반복의 핵심은 우주적 파괴 자체가 아니라 무명과 갈애의 속박이 계속된다는 한정에 있습니다.

묵상

산들의 왕과 큰 땅이 차례로 불타 사라져도 같은 부정이 되풀이될 때, 반복이 어떤 무게를 더하나요? 미래의 파국을 상상하거나 두려움을 키울 필요는 없어요. 두 장면마다 다시 나타나는 무명·갈애·치달림·윤회 가운데 지금 가장 또렷한 한 단어만 골라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