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되지 않은 여섯 접촉 영역

부처님께서 길들지 않고 지켜지지 않은 여섯 접촉 영역이 괴로움을 실어 온다고 선언하고 그 여섯을 물으십니다.

사왓티에서였다. “수행자들이여, 이 여섯 접촉 영역은 길들지 않고 지켜지지 않고 보호되지 않고 단속되지 않으면 괴로움을 실어 오느니라. 그 여섯이란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눈의 접촉 영역은 길들지 않고 지켜지지 않고 보호되지 않고 단속되지 않으면 괴로움을 실어 오느니라. …”

Sāvatthinidānaṁ. “Chayime, bhikkhave, phassāyatanā adantā aguttā arakkhitā asaṁvutā dukkhādhivāhā honti. Katame cha? Cakkhu, bhikkhave, phassāyatanaṁ adantaṁ aguttaṁ arakkhitaṁ asaṁvutaṁ dukkhādhivāhaṁ hoti …pe…

상윳따 니까야 SN 35.94 길들지 않고 지켜지지 않음경 (Adantaaguttasutta)

배경

사왓티라는 장소를 밝힌 뒤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을 부르며 설법을 여십니다. phassāyatana는 감각기관만 따로 가리키기보다 접촉이 일어나는 영역이며, 그 수는 여섯입니다. adanta·agutta·arakkhita·asaṁvuta는 길들지 않음·지켜지지 않음·보호되지 않음·단속되지 않음이라는 네 상태를 차례로 놓고, 그 결과를 괴로움을 실어 옴이라 합니다. “그 여섯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눈의 첫 답을 붙였고, 눈 뒤의 생략 표지는 혀로 넘어가기 전에도 같은 병렬 문형이 이어짐을 알립니다. 감각 자체를 없애라는 선언이 아니라 접촉을 만나는 방식의 조건을 구체화하는 도입입니다.

묵상

“괴로움을 실어 온다”는 표현을 읽을 때, 대상 자체와 그것을 만난 뒤 이어지는 반응은 어떻게 구별되나요? 오늘 눈·귀·코·혀·몸·마음 가운데 한 문에서 접촉 뒤 곧바로 따라온 반응을 판단 없이 살펴볼 수 있나요?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