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 다섯인가?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상으로, 좋아하고 바라며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감각적 쾌락과 이어지고 탐욕을 일으키는 것이며, 귀로 알 수 있는 소리 … 코로 알 수 있는 냄새 … 혀로 알 수 있는 맛 …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으로, 좋아하고 바라며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감각적 쾌락과 이어지고 탐욕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수행자의 영역이 아닌 남의 땅이니라.”
Katame pañca?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 sotaviññeyyā saddā …pe… ghānaviññeyyā gandhā …pe… jivhāviññeyyā rasā …pe…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ṁhitā rajanīyā—ayaṁ, bhikkhave, bhikkhuno agocaro paravisayo.
상윳따 니까야 SN 47.6 매의경 (Sakuṇagghisutta)배경
앞 카드의 “다섯 감각 자극”에 이어 그 다섯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눈·귀·코·혀·몸의 순서로 답합니다. 눈의 형상과 몸의 감촉은 좋아함·바람·마음에 듦·사랑스러움·감각적 쾌락과의 연결·탐욕을 일으킴이라는 여섯 성질을 온전히 갖춥니다.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뒤의 `…pe…`는 앞뒤와 같은 여섯 성질의 반복을 줄여 보인 표지입니다. 마지막은 이 다섯을 수행자의 영역이 아닌 남의 땅이라고 결론짓습니다. 감각 대상의 존재보다 그것을 즐김과 탐욕의 대상으로 붙드는 관계가 취약한 영역이 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형상·소리·냄새·맛·감촉 가운데 “좋아하고 바라며 마음에 든다”는 반응이 가장 빨리 붙는 대상이 있나요? 그 즐거움이 잘못이라고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감각이 알려진 순간과 탐욕이 더해지는 순간을 잠시 구별해 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