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

몸·느낌·마음·마음에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는 네 가지를 밝히고, 이 알아차림의 확립이 비구의 자기 영역임을 결론짓습니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나니, 부지런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느니라.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마음에 나타나는 것에서 그것을 관찰하며 머무나니, 부지런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수행자의 영역, 대대로 물려받은 자기 땅이니라.”

Katame cattāro?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pe… citte …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ayaṁ, bhikkhave, bhikkhuno gocaro sako pettiko visayo”ti.

상윳따 니까야 SN 47.6 매의경 (Sakuṇagghisutta)

배경

앞 카드의 정의에 이어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라고 묻고, 몸·느낌·마음·현상의 순서로 답하며 경을 닫습니다. 몸의 첫 갈래와 마지막 마음에 나타나는 것의 갈래는 관찰하며 머물기, 부지런함, 분명히 앎, 알아차림,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림을 온전히 밝힙니다. 느낌과 마음 뒤의 `…pe…` 두 곳은 같은 정형구의 반복을 줄인 표지입니다. 마지막 호격과 함께 이 네 갈래 전체를 수행자의 자기 영역이자 대대로 물려받은 자기 땅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알아차림의 확립은 네 경험 영역에서 탐욕과 근심을 버리며 계속 머무는 수행으로 구체화됩니다.

묵상

몸·느낌·마음·마음에 나타나는 것 가운데 지금 가장 먼저 알아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탐욕이나 근심을 이미 버렸는지 판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한 영역에 잠시 머물러 볼 수 있나요?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면 그렇게 알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