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머무는 방향에서는 내 모임이 비지 않았고, 그 방향을 염려할 일이 없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과거의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세존들에게도 최상의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나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와 같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미래의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을 세존들에게도 최상의 제자 한 쌍이 있을 것이니, 나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와 같을 것이니라.”
Asuññā me, bhikkhave, parisā hoti, anapekkhā tassaṁ disāyaṁ hoti, yassaṁ disāyaṁ sāriputtamoggallānā viharanti. Ye hi te, bhikkhave, ahesuṁ atī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tesampi bhagavantānaṁ etapparamaṁyeva sāvakayugaṁ ahosi—seyyathāpi mayhaṁ sāriputtamoggallānā. Yepi te, bhikkhav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tesampi bhagavantānaṁ etapparamaṁyeva sāvakayugaṁ bhavissati—seyyathāpi mayhaṁ sāriputtamoggallānā.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경 (Ukkacelasutta)배경
앞의 “빈 듯이 보인다”는 말 뒤에 두 가지 부정이 이어집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머물 때에는 모임이 비지 않았고, 그 방향을 염려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뒤 시간을 과거와 미래로 나누어, 각 시대의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세존들에게도 제자 한 쌍이 최상이라고 밝힙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과거의 비교 대상이자 미래의 비교 기준으로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이 대조는 두 제자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는 이유를 그들의 역할로 구체화합니다.
묵상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일이나 모임의 한 방향을 염려하지 않아도 됐던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을 이상화하거나 자신을 비교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가 맡아 준 역할 한 가지와 그것이 남긴 영향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