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경이롭고 여래에게 비탄은 없다

두 제자가 스승의 지시와 훈계를 따르고 네 모임에 사랑과 존중을 받는다고 찬탄한 뒤, 그들이 완전한 열반에 들었어도 여래에게는 슬픔도 비탄도 없다고 명시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제자들은 놀랍고, 수행자들이여, 제자들은 경이롭도다. 그들은 스승의 지시를 행하고 훈계를 따르며, 네 모임에게 사랑받고 마음에 들며 존중받고 존경받을 것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놀랍고,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경이롭도다. 이와 같은 한 쌍의 제자들이 완전한 열반에 들었어도 여래에게는 슬픔도 비탄도 없느니라.”

Acchariyaṁ, bhikkhave, sāvakānaṁ, abbhutaṁ, bhikkhave, sāvakānaṁ. Satthu ca nāma sāsanakarā bhavissanti ovādappaṭikarā, catunnañca parisānaṁ piyā bhavissanti manāpā garubhāvanīyā ca. Acchariyaṁ, bhikkhave, tathāgatassa, abbhutaṁ, bhikkhave, tathāgatassa. Evarūpepi nāma sāvakayuge parinibbute natthi tathāgatassa soko vā paridevo vā.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경 (Ukkacelasutta)

배경

과거와 미래의 최상 제자 비교 뒤에, 경은 먼저 제자들의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각각 말합니다. 그 근거는 스승의 지시를 행함과 훈계를 따름이라는 두 행동, 그리고 네 모임에게 사랑받고 마음에 들며 존중받고 존경받는다는 네 평가입니다. 다음에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주어가 여래로 바뀌고, 그 이유를 “슬픔도 비탄도 없다”는 두 부정으로 명시합니다. 따라서 앞의 “빈 듯함”을 여래가 슬퍼했다는 뜻으로 뒤집어 읽지 않습니다.

묵상

소중한 부재를 “빈 듯하다”고 알아차리는 것과 슬픔과 비탄에 휩쓸리는 것은 내 경험에서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그 차이를 당장 분명히 알거나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은 빈자리를 느끼는 마음과 그에 따라오는 반응을 서로 다른 것으로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