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자신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으며, 가르침을 등불과 의지처로 삼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는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부지런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느니라.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마음에 나타나는 것에서 그것을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부지런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pe… citte …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상윳따 니까야 SN 47.14 욱까쩰라경 (Ukkacelasutta)배경
앞의 지침을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되받고 실제 방법을 밝히는 문답입니다. 질문은 자신과 가르침 각각에 등불·의지처·다른 데 의지하지 않음이라는 세 관계를 다시 놓습니다. 답은 몸·느낌·마음·마음에 나타나는 것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몸과 마지막 영역에는 부지런함·분명히 앎·알아차림·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림이 같이 붙습니다. 느낌과 마음의 `…pe…` 두 곳은 같은 설명의 반복을 줄인 표지입니다. 의지처는 이 네 경험 영역을 살피는 수행으로 구체화됩니다.
묵상
지금 몸·느낌·마음·마음에 나타나는 것 가운데 비교적 안전하게 살펴볼 수 있는 한 영역이 있나요? 넷을 모두 분명히 관찰할 필요는 없어요. 탐욕과 근심을 이미 버렸는지 자신을 판정할 필요도 없어요. 불편하면 멈추거나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가장 분명한 것 하나만 알아차릴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