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자신을 지키자는 제자의 답

제자가 스승의 방법을 부정하고 각자 자신을 지켜 같은 세 결과에 이르자고 답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수행자들이여, 제자 메다까탈리까가 그 집단의 장대 곡예사에게 말했느니라. ‘스승님,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승님은 자신을 지키십시오. 저는 제 자신을 지키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각자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지키면 재주도 보이고, 삯도 얻으며, 그 대나무 장대에서 무사히 내려올 것입니다.’”

Evaṁ vutte, bhikkhave, medakathālikā antevāsī caṇḍālavaṁsikaṁ etadavoca: ‘na kho panetaṁ, ācariya, evaṁ bhavissati. Tvaṁ, ācariya, attānaṁ rakkha, ahaṁ attānaṁ rakkhissāmi. Evaṁ mayaṁ attaguttā attarakkhitā sippāni ceva dassessāma, lābhañca lacchāma, sotthinā ca caṇḍālavaṁsā orohissāmā’”ti.

상윳따 니까야 SN 47.19 세다까경 (Sedakasutta)

배경

화자가 제자 메다까탈리까로 바뀌며 앞 제안에 대한 부정으로 답을 시작합니다. 제자는 스승을 두 번 직접 부르고, 스승에게는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을, 자신에게는 자신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놓습니다. 앞 대목의 “서로 보호하고 서로 지킴”이 여기서는 “각자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지킴”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재주를 보임·삯을 얻음·무사히 내려옴이라는 세 결과와 그 순서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반론은 공동의 목표를 버리는 말이 아니라, 위험한 균형 속에서 각자가 맡은 몸과 움직임을 먼저 안정시키는 편이 같은 목표에 이르는 알맞은 방법이라는 주장입니다. 곧이어 세존께서 이 방법을 인정하십니다.

묵상

제자는 같은 세 결과를 바라면서도 방법을 “각자 자신을 지킴”으로 바꿉니다. 함께하는 일에서 상대를 통제하려 하기보다 내가 맡은 움직임을 안정시키는 편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 있나요? 지금 떠오르지 않거나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