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아난다 존자는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 머물렀다. 그때 운나바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앉은 운나바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여쭈었다. “아난다 존자여, 수행자 고따마의 곁에서 청정청정한 삶을 닦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라문이여, 세존의 곁에서 청정청정한 삶을 닦는 것은 열의를 버리기 위해서이니라.”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āyasmā ānando kosambiyaṁ viharati ghositārāme. Atha kho uṇṇābho brāhmaṇo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uṇṇābho brāhmaṇo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a: “kimatthiyaṁ nu kho, bho ānanda, samaṇe gotame brahmacariyaṁ vussatī”ti? “Chandappahānatthaṁ kho, brāhmaṇa, bhagavati brahmacariyaṁ vussatī”ti.
상윳따 니까야 SN 51.15 제사를 맡는 계층의 운나바에 관한 경 (Uṇṇābhabrāhmaṇasutta)배경
경의 도입과 첫 문답입니다. 전승자는 아난다 존자가 꼬삼비 고시따 승원에 머문 때를 밝히고, 운나바 바라문이 인사를 마친 뒤 물었다고 전합니다. 질문의 호격은 “아난다 존자여”, 답의 호격은 “바라문이여”이므로 화자와 청자가 바뀌는 자리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핵심어 chanda는 이 경 전체에서 같은 낱말로 이어지며 여기서는 ‘열의’로 옮겼습니다. 뒤에서 열의에 바탕을 둔 길이 다시 나오므로, 이를 별개의 원어인 갈애와 열의의 대조로 바꾸면 문답의 쟁점이 사라집니다. 수행적으로 이 첫 답은 청정범행의 목적을 열의의 버림으로 세우고, 다음 문답이 그 목적에 이르는 길을 묻게 합니다.
묵상
“무엇을 위한가”라는 첫 질문을 읽을 때, 지금 하고 있는 한 가지 일의 목적이 떠오르나요? 그 목적을 좋고 나쁨으로 판정하거나 곧바로 버릴 필요는 없어요. 단지 무엇을 향해 시작했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모르겠다고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