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열의를 버리는 길과 실천

바라문이 그 열의를 버리는 길과 실천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어 그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러면 이 열의를 버리는 길이 있고 그 실천이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이 열의를 버리는 길이 있고 그 실천이 있느니라.” “아난다 존자여, 그러면 이 열의를 버리는 길은 무엇이고 그 실천은 무엇입니까?”

“Atthi pana, bho ānanda, maggo atthi paṭipadā etassa chandassa pahānāyā”ti? “Atthi kho, brāhmaṇa, maggo, atthi paṭipadā etassa chandassa pahānāyā”ti. “Katamo pana, bho ānanda, maggo katamā paṭipadā etassa chandassa pahānāyā”ti?

상윳따 니까야 SN 51.15 제사를 맡는 계층의 운나바에 관한 경 (Uṇṇābhabrāhmaṇasutta)

배경

첫 답을 들은 바라문이 길과 실천의 존재를 먼저 묻고, 아난다는 둘 다 있다고 같은 순서로 확인합니다. 바라문은 곧바로 각각 무엇인지 다시 묻습니다. 세 발화에서 magga는 ‘길’, paṭipadā는 ‘실천’으로 구별했으며, 질문 두 번의 “아난다 존자여”와 답 한 번의 “바라문이여”도 보존했습니다. etassa chandassa는 앞에서 말한 바로 ‘이 열의’를 가리키므로 다른 욕망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수행적으로 이 짧은 문답은 목적만 제시한 첫 답에서 실제로 닦을 네 가지 성취의 바탕을 밝힐 다음 대답으로 넘어가는 연결부입니다.

묵상

길이 있는지 묻고, 있다고 들은 뒤 그 길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순서를 읽을 때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지금 한 가지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싶은지, 아니면 구체적인 실천까지 알고 싶은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어느 쪽도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