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의로 열의를 버릴 수 없다는 이의와 되물음

바라문이 끝이 있음과 열의로 열의를 버릴 수 없다는 이의를 말하자, 아난다 존자가 정원에 가려던 열의가 도착 뒤 가라앉는지 되묻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렇다면 그것은 끝이 있는 것이며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열의로 열의를 버리리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내가 이 점을 그대에게 되묻겠느니라. 그대에게 맞는 대로 대답하라.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 전에 ‘정원에 가겠다’는 열의가 있었는가? 그대가 정원에 이르렀을 때 그에 따른 열의는 가라앉았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여.”

“Evaṁ sante, bho ānanda, santakaṁ hoti no asantakaṁ. Chandeneva chandaṁ pajahissatīti—netaṁ ṭhānaṁ vijjati”. “Tena hi, brāhmaṇa, taññevettha paṭipucchissāmi. Yathā te khameyya tathā taṁ byākareyyāsi. Taṁ kiṁ maññasi, brāhmaṇa, ahosi te pubbe chando ‘ārāmaṁ gamissāmī’ti? Tassa te ārāmagatassa yo tajjo chando so paṭippassaddho”ti? “Evaṁ, bho”.

상윳따 니까야 SN 51.15 제사를 맡는 계층의 운나바에 관한 경 (Uṇṇābhabrāhmaṇasutta)

배경

네 바탕의 답을 들은 바라문은 먼저 “끝이 있는 것이며 끝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이어 바로 열의로 열의를 버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아난다는 이의를 곧장 논박하지 않고 되묻겠다고 하며, 답하는 방식은 바라문에게 맡깁니다. 첫 질문은 정원에 가려던 열의와 정원에 도착한 뒤 그에 따른 열의가 가라앉는지를 짝지으며, 바라문은 “그렇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질문 속 chanda는 앞의 목적과 길에서 쓰인 바로 그 ‘열의’입니다. 수행적으로 이 첫 예는 어떤 목적을 향하던 열의가 목적이 이루어진 뒤에도 계속 남는다고 전제할 필요가 없음을 경험에 비추어 살피게 합니다.

묵상

“열의로 열의를 버릴 수 없다”는 이의와 정원에 도착한 뒤 열의가 가라앉았다는 답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와닿나요? 최근 목적 하나를 이룬 뒤 그곳으로 향하던 마음이 잦아든 적이 있나요? 떠오르지 않거나 지금은 답하고 싶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