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이르면 쏟던 힘도 가려던 마음도 잦아든다

아난다 존자가 정원에 가려던 정진과 마음이 도착 뒤 각각 가라앉는지 묻고, 바라문이 두 번 긍정합니다.

“그대에게 전에 ‘정원에 가겠다’는 정진이 있었습니까? 그대가 정원에 이르렀을 때 그에 따른 정진은 가라앉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그대에게 전에 ‘정원에 가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그대가 정원에 이르렀을 때 그에 따른 마음은 가라앉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Ahosi te pubbe vīriyaṁ ‘ārāmaṁ gamissāmī’ti? Tassa te ārāmagatassa yaṁ tajjaṁ vīriyaṁ taṁ paṭippassaddhan”ti? “Evaṁ, bho”. “Ahosi te pubbe cittaṁ ‘ārāmaṁ gamissāmī’ti? Tassa te ārāmagatassa yaṁ tajjaṁ cittaṁ taṁ paṭippassaddhan”ti? “Evaṁ, bho”.

상윳따 니까야 SN 51.15 제사를 맡는 계층의 운나바에 관한 경 (Uṇṇābhabrāhmaṇasutta)

배경

열의에 관한 첫 예에 이어, 아난다는 같은 정원 도착의 구조를 정진과 마음에 차례로 적용합니다. vīriya는 ‘정진’, citta는 ‘마음’으로 옮겨 두 항목을 합치지 않았습니다. 각 항목은 전에 정원에 가려는 것이 있었는지, 도착한 뒤 그에 따른 것이 가라앉았는지를 묻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라문의 “그렇습니다, 존자여”도 원문처럼 두 번 보존했습니다. 수행적으로 이 반복은 목적을 향한 움직임이 열의 하나에만 걸린 것이 아니라 정진과 마음에도 있으며, 목적지에 이른 뒤에는 각각 그에 따른 작용이 가라앉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정원에 가려는 정진과 마음이 도착 뒤 가라앉는다는 두 문답을 읽을 때, 어떤 일의 전후가 떠오르나요? 힘을 내던 움직임과 그곳을 향하던 마음이 같은 때에 잦아들었나요, 서로 달랐나요? 분명한 기억이 없다면 두 항목의 차이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