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다는 확인과 가르침의 네 비유

바라문이 끝이 있음을 확인하고 아난다 존자를 두 번 찬탄한 뒤, 가르침이 드러난 작용을 네 비유로 말합니다.

“분명히 아난다 존자여, 그렇다면 끝이 있는 것이며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합니다, 아난다 존자여! 훌륭합니다, 아난다 존자여! 아난다 존자여, 뒤집힌 것을 바로 세우고, 숨겨진 것을 열며,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고, ‘눈 있는 이들이 형상을 보리라’ 하며 어둠 속에 등불을 밝힌 듯 아난다 존자께서 여러 방식으로 가르침을 드러내셨습니다.”

“Addhā, bho ānanda, evaṁ sante, santakaṁ hoti no asantakaṁ. Abhikkantaṁ, bho ānanda, abhikkantaṁ, bho ānanda. Seyyathāpi, bho ānand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otā ānand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상윳따 니까야 SN 51.15 제사를 맡는 계층의 운나바에 관한 경 (Uṇṇābhabrāhmaṇasutta)

배경

아난다의 마지막 질문에 운나바 바라문은 “분명히”라고 답하며, 끝이 있는 것이고 끝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배열을 그대로 확인합니다. 이어 “훌륭합니다”를 두 번 말합니다. 이 세 발화에 있는 “아난다 존자여”는 모두 네 번이며, 마지막에는 아난다 존자가 가르침을 드러낸 주체로 다시 나옵니다. 가르침의 작용은 뒤집힌 것을 바로 세움·숨겨진 것을 엶·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줌·눈 있는 이가 형상을 보도록 어둠에 등불을 밝힘의 네 비유로 이어집니다. 수행적으로 앞의 문답을 이해한 결과가 단순한 동의에서 그치지 않고 가르침을 분명히 보게 한 일에 대한 찬탄으로 바뀝니다.

묵상

뒤집힌 것을 세우고, 숨겨진 것을 열고, 길을 알려 주고, 어둠에 등불을 밝힌다는 네 비유 가운데 지금 가장 또렷한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를 골라야 할 필요는 없어요. 어떤 설명을 들은 뒤 이해가 달라진 경험과 닿는 비유가 있는지 가볍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