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이나 마음에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수행자들을 모신 뒤, 저녁때 까삘라왓투로 들어가면서 길을 벗어난 코끼리와도 마주치고, 길을 벗어난 말과도 마주치며, 길을 벗어난 수레와도 마주치고, 길을 벗어난 짐수레와도 마주치며, 길을 벗어난 사람과도 마주칩니다.”
So khvāhaṁ, bhante, bhagavantaṁ vā payirupāsitvā manobhāvanīye vā bhikkhū sāyanhasamayaṁ kapilavatthuṁ pavisanto; bhantenapi hatthinā samāgacchāmi; bhantenapi assena samāgacchāmi; bhantenapi rathena samāgacchāmi; bhantenapi sakaṭena samāgacchāmi; bhantenapi purisena samāgacchāmi.
상윳따 니까야 SN 55.21 첫 번째 마하나마경 (Paṭhamamahānāmasutta)배경
첫 발화에 이어 마하나마는 세존이나 존경할 만한 수행자들을 모신 뒤 저녁에 도시로 돌아가는 구체적인 길을 말합니다. 원문은 ‘길을 벗어난’을 코끼리·말·수레·짐수레·사람 각각에 다섯 번 붙이고, ‘마주친다’도 다섯 번 되풀이합니다. 수레와 짐수레는 하나로 합치지 않은 두 항목입니다. 이 반복은 한 번의 추상적인 위험이 아니라 여러 움직임이 연이어 다가오는 장면을 만듭니다. 다음 카드는 그 순간 부처님·가르침·승가를 향한 알아차림이 사라진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묵상
저녁에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때, 예상 밖의 움직임이 잇따르면 알아차림이 흐려지는 순간이 있나요? 다섯 대상을 내 상황에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어요. 지금 한 번에 하나만 알아진다면 무엇인지,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면 그 모호함을 그대로 둘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