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아는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지혜롭게 살펴 음식을 먹느니라. ‘즐기지도 취하지도 꾸미지도 치장하지도 않고, 오직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해 해로움을 그치며 청정한 삶을 돕기 위해서다. 이렇게 예전의 괴로운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괴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으리니, 내게 살아갈 힘과 허물없음과 편안한 머묾이 있으리라.’ 수행자들이여, 이처럼 수행자는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아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bhojane mattaññū hoti? Idha, bhikkhave, bhikkhu paṭisaṅkhā yoniso āhāraṁ āhāreti: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 yāvadeva imassa kāyassa ṭhitiyā yāpanāya vihiṁ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 iti purāṇañca vedanaṁ paṭihaṅkhāmi, navañca vedanaṁ na uppādessāmi, yātrā ca me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vihāro cā’ti.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bhojane mattaññū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16 확실한 길 경 (Apaṇṇakasutta)배경
둘째 실천인 음식 절제를 질문·답·결론으로 모두 담은 단락입니다. paṭisaṅkhā yoniso는 음식을 먹으며 그 목적을 지혜롭게 살핀다는 틀을 세웁니다. 안쪽 일인칭 성찰은 즐김·취함·꾸밈·치장이라는 네 목적을 차례로 부정한 뒤, 몸의 지탱과 유지·해로움의 그침·청정한 삶의 도움을 긍정합니다. 이어 예전의 괴로운 느낌을 물리치고 새 느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두 방향과, 살아갈 힘·허물없음·편안한 머묾이라는 세 결과를 놓습니다. 결론은 이 성찰 전체를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앎’으로 다시 묶습니다.
묵상
“음식의 목적을 지혜롭게 살핀다”는 말에서 지금 눈에 들어오는 목적이 있나요? 먹은 양이나 몸을 잘잘못으로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끼나 몸을 떠올리는 일이 불편하다면 이 질문은 건너뛸 수 있어요. 편안함·지탱·허물없음 가운데 한 낱말만 읽어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