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늙고 노쇠하고 연로하여, 긴 세월 끝 말년에 이른 백스무 살이다. 선도 유익도 행하지 못했고 두려움을 막을 피난처도 만들지 못했다. 바라문들이여, 이 세상은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이끌려 간다. 바라문들이여, 세상이 이렇게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이끌려 갈 때, 여기에서 몸으로 절제하고 말로 절제하고 마음으로 절제하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피난처요 은신처요 섬이요 귀의처요 의지처이다.”
“Taggha tumhe, brāhmaṇā, jiṇṇā vuddhā mahallakā addhagatā vayoanuppattā vīsavassasatikā jātiyā; te cattha akatakalyāṇā akatakusalā akatabhīruttāṇā. Upanīyati kho ayaṁ, brāhmaṇā, loko jarāya byādhinā maraṇena. Evaṁ upanīyamāne kho, brāhmaṇā, loke jarāya byādhinā maraṇena, yo idha kāyena saṁyamo vācāya saṁyamo manasā saṁyamo, taṁ tassa petassa tāṇañca leṇañca dīpañca saraṇañca parāyaṇañc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1 제사를 맡는 계층의 두 사람에 관한 첫 번째 경 (Paṭhamadvebrāhmaṇasutta)배경
세존의 답은 taggha, 곧 ‘참으로’로 두 바라문의 나이와 세 가지 하지 못함을 그대로 되받은 뒤, 그 고백을 세계의 조건과 실천으로 넓힙니다. 늙음·질병·죽음이 세계를 이끈다는 세 항목이 2.3과 2.4에서 반복되고, 몸·말·마음의 saṁyama도 세 번 나옵니다. 여기서 절제한 바로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절제가 그 사람의 피난처·은신처·섬·귀의처·의지처가 됩니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을 부정하기보다 현재의 행위를 피난처로 삼는 것이 답의 수행 방향입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절제라는 세 갈래를 읽을 때, 오늘 한 말이나 행동 가운데 조금 덜 해치도록 멈출 수 있는 한 가지가 보이나요? 지금은 떠오르지 않거나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힘들다면,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