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버리면 자신과 남의 이익을 알다

탐욕의 지배와 버림을 자신·남·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아는지와 연결하고 첫 답을 맺습니다.

탐욕스러운 이는 … 자신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남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며, 둘 모두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느니라. 탐욕을 버리면 자신의 이익도, 남의 이익도, 둘 모두의 이익도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가르침은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것이니라 ….

Ratto kho …pe… attatthampi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paratthampi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ubhayatthampi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Rāge pahīne attatthampi yathābhūtaṁ pajānāti, paratthampi yathābhūtaṁ pajānāti, ubhayatthampi yathābhūtaṁ pajānāti. Evampi kho, brāhmaṇa, sandiṭṭhiko dhammo hoti …pe….

앙굿따라 니까야 AN 3.53 제사를 맡는 계층의 한 사람에 관한 경 (Aññatarabrāhmaṇasutta)

배경

탐욕에 대한 답의 셋째 층위와 결론입니다. 원문은 탐욕스러운 이의 앞 설명을 ‘…pe…’로 줄인 뒤, 자신의 이익·남의 이익·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는 세 부정을 반복합니다. 탐욕을 버린 문장에서는 같은 세 대상을 같은 순서로 되받아 모두 있는 그대로 안다고 바꿉니다. nappajānāti와 pajānāti의 부정 대칭이 판단의 차이를 이룹니다. 마지막의 ‘…pe…’는 질문에 나온 때를 기다리지 않음부터 현자의 직접 앎까지 이어지는 정형구를 줄인 것입니다. 이로써 탐욕의 유무에 따른 해침·행위·이익의 앎이 지금 확인 가능한 가르침이라는 첫 답이 완결됩니다. 수행의 뜻은 탐욕이 이익을 보는 판단을 흐리는지 지금 살피고, 버림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아는 데 있습니다.

묵상

탐욕이 강할 때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흐려지는 것 같나요? 둘의 이익을 함께 보려 할 때 새롭게 드러나는 선택이 있나요? 지금은 이익이 무엇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면 모른다고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