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보시 - 물질, 두려움 없음, 가르침

무엇을 줄 수 있는가 - 재물과 안전과 가르침, 세 결의 나눔

“수행자들이여, 음식을 주는 시주는 받는 이들에게 다섯 가지를 주느니라. 어떤 다섯인가? 수명을 주고, 아름다움을 주고, 행복을 주고, 힘을 주고, 말솜씨를 주느니라.”

“Bhojanaṁ, bhikkhave, dadamāno dāyako paṭiggāhakānaṁ pañca ṭhānāni deti. Katamāni pañca? Āyuṁ deti, vaṇṇaṁ deti, sukhaṁ deti, balaṁ deti, paṭibhānaṁ d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37 음식경 (Bhojanasutta)

배경

세존께서 수행자들에게 음식 보시의 뜻을 문답 형식으로 밝히는 첫 대목입니다. 음식을 주는 시주가 받는 이들에게 다섯 가지를 준다고 먼저 말하고, ‘어떤 다섯입니까?’라고 물은 뒤 수명·아름다움·행복·힘·말솜씨를 차례로 열거합니다. 마지막 paṭibhāna는 지혜가 아니라 말할 때의 재치와 표현 능력을 가리키므로 프로젝트의 기존 용례인 ‘말솜씨’로 옮겼습니다. 수행의 뜻은 음식이라는 한 물건만 보지 않고, 그것을 받은 사람의 삶과 몸과 기쁨과 역량에 미치는 넓은 도움을 함께 헤아리는 데 있습니다.

묵상

내가 음식을 받거나 나누었던 경험에서 수명·아름다움·행복·힘·말솜씨 가운데 떠오르는 영향이 있나요? 다섯 가지를 모두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오늘 한 끼가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도움 하나를 조용히 살펴볼 수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살생을 삼가는 성스러운 제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에게 두려움 없음·원한 없음·해침 없음을 주느니라. 그렇게 두려움 없음·원한 없음·해침 없음을 주고, 그 자신도 헤아릴 수 없는 두려움 없음·원한 없음·해침 없음을 나누어 가지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첫째 보시, 곧 태초부터 알려진 위대한 보시로서 … 지혜로운 수행자와 바라문에게 비난받지 않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넷째 공덕의 흐름 … 이끄느니라.”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bhikkhave, ariyasāvako aparimāṇānaṁ sattānaṁ abhayaṁ deti, averaṁ deti, abyābajjhaṁ deti. Aparimāṇānaṁ sattānaṁ abhayaṁ datvā averaṁ datvā abyābajjhaṁ datvā aparimāṇassa abhayassa averassa abyābajjhassa bhāgī hoti. Idaṁ, bhikkhave, paṭhamaṁ dānaṁ mahādānaṁ aggaññaṁ … appaṭikuṭṭhaṁ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Ayaṁ, bhikkhave, catuttho puññābhisando … saṁvatt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39 넘쳐흐르는 공덕경 (Abhisandasutta)

배경

첫째 삼감의 설명은 살생을 하지 않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선택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에게 두려움 없음·원한 없음·해침 없음을 주며 준 사람도 같은 세 몫을 나누어 가진다고 잇습니다. 세 표현이 두 문장에 같은 순서로 두 번 나오므로 한국어도 대명사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어 이 항목을 첫째 위대한 보시이자 전체 여덟 가운데 넷째 공덕의 흐름으로 결론 냅니다. 두 일반 말줄임표는 앞에서 온전히 나온 위대한 보시의 시간·불변 공식과 공덕의 결실 공식을 각각 줄인 것이며, 경문 자체의 …pe…와는 다릅니다. 수행의 뜻은 해치지 않음이 타인의 안전과 자신의 참여를 함께 이루는 보시임을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두려움 없음·원한 없음·해침 없음 가운데, 누군가의 삼감 덕분에 잠시라도 경험한 것이 있나요? 꼭 사례를 찾아내거나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결심할 필요는 없어요. 세 말 중 지금 몸과 마음에 가장 조용히 닿는 하나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가르침을 나눔이 모든 나눔을 이기고, 가르침의 맛이 모든 맛을 이기며, 가르침의 기쁨이 모든 기쁨을 이기고, 갈애의 소멸이 모든 괴로움을 이기느니라.

Sabbadānaṁ dhammadānaṁ jināti, Sabbarasaṁ dhammaraso jināti; Sabbaratiṁ dhammarati jināti, Taṇhakkhayo sabbadukkhaṁ jināti.

법구경 Dhammapada 354

배경

네 줄이 같은 동사 지나띠(jināti), "이긴다"로 끝나며 층을 쌓습니다. 보시, 맛, 기쁨 - 사람이 주고받는 세 영역을 훑은 뒤, 마지막 줄에서 갑자기 대상이 바뀝니다. 앞의 셋이 "무엇이 무엇을 이긴다"였다면, 마지막은 "갈애의 소멸이 모든 괴로움을 이긴다"입니다. 이 마지막 줄이 앞의 세 줄을 설명합니다. 가르침의 보시가 으뜸인 이유는 그것이 고급스러워서가 아니라, 받은 사람을 갈애의 소멸 쪽으로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보시는 배고픔을 한 번 해결하고, 두려움 없음의 보시는 한 사람의 안전을 지킵니다. 가르침의 보시는 받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먹이고 지킬 수 있게 만듭니다. 셋 사이에 우열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는 깊이가 다른 것입니다.

묵상

내 인생을 바꾼 한마디가 있나요? 그 말을 해 준 사람은 아마 큰일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중에도 그런 것이 섞여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보시를 하면 내 마음이 맑아지고 만족과 기쁨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주는 것도 아니느니라. 다만 마음의 장식이요 마음의 자산으로서 보시하느니라. 그는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마실 것·옷·탈것·화환·향·바르는 것·침구·거처·등불을 주느니라. 사리뿟따여, 어떤 사람이 이런 보시를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Napi ‘imaṁ me dānaṁ dadato cittaṁ pasīdati, attamanatā somanassaṁ upajāyatī’ti dānaṁ deti; api ca kho cittālaṅkāracittaparikkhāraṁ dānaṁ deti. So taṁ dānaṁ deti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annaṁ pānaṁ vatthaṁ yānaṁ mālāgandhavilepanaṁ seyyāvasathapadīpeyyaṁ. Taṁ kiṁ maññasi, sāriputta, dadeyya idhekacco evarūpaṁ dānan”ti? “Evaṁ, bhante”.

앙굿따라 니까야 AN 7.52 큰 결실이 있는 보시경 (Dānamahapphalasutta)

배경

마지막 사람은 보시할 때 생기는 맑음·만족·기쁨조차 주는 이유로 삼지 않습니다. cittālaṅkāra는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장식’이고 cittaparikkhāra는 마음을 갖추고 받쳐 주는 ‘자산’ 또는 도구입니다. 보시가 다른 보상이나 기분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마음을 다듬고 갖추는 실천 자체가 됩니다. 이어 첫 동기 때와 똑같은 사문·바라문과 아홉 보시물이 다시 온전히 제시되고, 세존의 질문과 사리뿟따의 긍정도 반복됩니다. 물건과 받는 이는 같아도 보시를 놓는 마음의 자리가 달라졌음이 선명해집니다.

묵상

보답이나 좋은 기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마음을 다듬는 일이 된 경험이 있나요? “마음의 장식”과 “마음의 자산” 가운데 어느 표현이 더 와닿는지, 그 까닭을 천천히 살펴보세요.